부부화가




얼마 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피에르&쥘의 전시를 보면서 안 사실인데 이들은 30여 년 동안 함께 살면서 여전히 서로에게 영감과 자극을 받으면서 그 둘의 애정을 견고하게 지니고 있다고 한다. 게이 커플의 보여주는 이 놀라운 결속은 모든 이성애자들을 은연중 위협한다. 3년도 못살고 헤어지기가 다반사인 작금의 상황에 비추어 보면 30년 동안 동성애부부가 보여주는 이 금슬이 경이롭다.

내 주변에는 무척 많은 부부작가들이 있다. 그러니까 화가와 화가, 화가와 조각가, 조각가와 조각가, 화가와 사진작가, 화가와 디자이너 혹은 화가와 미술사가, 평론가, 큐레이터 등으로 얽히고 설켜있다. 좁은 미술계 동네라 그저 한 다리 건너면 다들 막역하게 아는 사인인데 우연히 그들이 부부로 엮여져있음을 알았을 때는 무척 흥미롭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그러다가 문득 그들의 작품이 은연중 닮았음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서로의 영향관계나 미술에 대한 생각과 취향 등을 가늠해보기도 한다. 그래서 부부화가나 미술인 가족을 떠올려 보았다. 결혼의 의미가 부단히 탈색되어 가고 가정이 끝없이 해체되어 가는 지금에 와서 새삼 부부화가나 미술인 가족을 거론하는 것이 무슨 의미를 지닐까? 서로 같은 길을 가는 미술인부부들의 삶이 다른 이성들의 결합과 부부생활과는 좀더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여기는 이들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미술인부부들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과거에 화가가 된다는 것은 주변의 극심한 반대를 극복하고 가난을 당연시 여기는 고행의 길이라 여겼기에 그 선택이 자뭇 비장하기까지 했다. 따라서 결혼이나 평범한 가정을 꾸리는 일은 남의 일인 것 마냥 인식되곤 했다. 또 그래야 예술가적인 삶을 사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긴 예술의 길은 마치 스님들의 수행의 길이나 도를 닦는 일과 같은 것으로 여겼기에 가능한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잡사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 바람직한 삶으로 요구되기도 했었다.
그래서 이전에 화가라면 대개 가난한 남자들이고 생활력이나 현실적인 것과는 무관한 이들로 상징되었고 그에 따라 헌신적이고 순종적인 부인의 내조로 어렵게 살아가면서도 미술의 꿈을 잃지 않는 것으로 인식되곤 했다. 박수근이나 장욱진의 부인 같은 경우가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다. 가난이 일상화된 화가들의 가정은 밥 대신 미술을 먹고사는 꿈 많은 가정일까?

여자화가일 경우는 상대적으로 좀 다르다. 여대출신의 미술인들이 특히 이상적인 결혼상대자로서 각광받는 것은 여전한 것 같다. 해서 법관이나 의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배우자가 바로 여성화가, 여성예술가다. 지금도 예외가 아니다. 여전히 여자 미술인들은 자신의 작업을 지속하기 위해서라도 경제력이 있는 남자를 선호할 것이고, 사실 이는 미술을 작업을 지속하기 위한 절대적인 조건(?)이다. 굳이 여성화가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이 여자들은 자신의 미래가 남성에게 저당 잡혀 있다는 강박, 불안, 공포 같은 것들로 훈육되어있다. 어느 부모치고 자신의 딸을 가난한 남자, 화가에게 덥석 내줄까? 그래서인지 여자들은 사랑에 쉽게 빠지기보다는 여러 정황을 이리 저리 재고 가늠하고 따져봐서 남편감을 고른다. 여기에는 자신이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조건이 뒷받침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가 가장 우선 시 될 것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자들 역시 이왕이면 예술가 부인을 얻는 게 가장 균형 잡히고 이상적인 결합이라고 생각할 수 도 있고 가정을 꾸리는데 예술만큼 도움되는 게 없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녀는 벽지와 커튼의 선택이나 집안 인테리어에서 나아가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문화생활의 총지휘자로서 섬세한 손길을 두루 두루 광명처럼 비추리라고 상상할 것이다. 그러니까 미술을 배운다는 것은 우선적으로 그런 일에서 표시가 나는 일이라고 믿고 있다. 미술가 부인은 화장이나 패션에서 남다른 무언가가 분명 있을 것이고 아이들 양육과 교육에서도 고급스럽고 품위 있는 문화적, 예술적 배려가 충만하리라고 확신한다. 내가 결코 지니지 못한 능력의 결핍을 그녀는 보충해준다!

나혜석은 김우영과의 결혼에 앞서 그에게 몇 가지 조건과 요구를 내세웠는데 그중 하나가 작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영악하고 화가로서의 욕망이 누구보다 많았던 선진 개화인 나혜석은 김우영의 지위와 경제력을 통해 자신의 앞으로의 작업활동을 보장받고 싶어했다. 급진적인 페미니스트의식을 드러낸 그녀의 선택으로서는 좀 비굴해 보인다.

오늘날 작업을 활발하게 할 수 있는 여성작가들 상당수는 무엇보다도 경제력이 뒷받침되는 작가들이다.(다 그렇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남편의 경제력이 개인전 횟수와 미술계에서 살아남는 바로미터로 작동한다. 이것은 슬프지만 비정한 사실이고 서글프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자본주의 사회이기에 전시활동도 자본에 비례하는 것이다. 남편의 경제력과 지위가 부인의 개인전 횟수와 활동이력, 미술품 판매나 화랑과의 관계, 심지어 오프닝 날 화분의 숫자와 정확히 비례한다.

따라서 대다수 여성작가들은 가능하다면 경제적인 능력이 있는 남편 감을 우선적으로 요구할 것이다. 그것을 속물근성이라고, 지나치게 현실적이라고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녀가 오래 살아남아 그 덕을 누리고 좋은 작품을 자식처럼 많이 낳아 준다면야...(제발 남편의 수입과 경제력을 노상 입에 거품을 물면서 자랑하지만 말아줬으면 좋겠다)
간혹 남자작가들도 능력 있는 부인을 만나서 작업하는데 별다른 지장이 없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는 매우 운이 좋은 ‘케이스’인에 그러니까 부인이 학교선생이나 약사, 의사, 직장인이 그렇다. 장땡인 경우다. 남편은 부인과 아이들 출. 퇴근 시에 운전사로 활동하거나 잠깐씩 집안 일을 돌봐주고 나머지 시간에는 작업실에서 온전히 작업만 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다 작업이 잘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정말 미술인 부부들이 부쩍 많아졌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술대학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미술 장르가 확대된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아울러 일반인들이 미술, 예술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시선이 이전과는 달라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자식들에게 미술을 시키는 것이 극히 관대해졌다. 미술인들도 능력만 있으면 잘먹고 잘살고 사회적으로 대우받는다는 인식이 확산되어서 그런가 보다. 이전에 미술인 부부는 대부분 아내가 남편을 돕는 ‘내조형’인데 비해, 요즘 미술인 부부는 생활은 같이 하되 작업은 따로따로 하는 ‘개별형’에 둘 다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자극과 격려의 대상으로 위치하고 있음도 눈에 띈다.

이들은 같은 학교에서 만난 동기거나 혹은 선후배 사이가 대부분이다. 아무래도 미술대학이란 곳이 실기실에서 함께 하는 시간이 많고 밤늦은 시간까지 작업한다며 자연스레 어울리다 보니까 순간적으로 ‘필’이 꽂히는 상황이 그만큼 많기도 할 것이다. 도서관하고는 좀 다른 공간이지 않은가? 그런가하면 화실에서 만나는 경우도 무척 많은 것 같다. 함께 그림을 배우다가 좋은 감정이 생겨서 다소 지루하고 아슬한 연애기간을 거쳐 결혼하는 경우도 있고 혹은 아르바이트 선생으로, 화실원장으로 제자를 가르치다가 엉겹결에 부인으로 들어 앉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경우는 좀 속보이는 행동이다. 이들의 아주 많은 나이 차이가 스승과 제자의 순애보적 애정(?)의 깊이를 수량화시켜주는 것 같기도 하다.

가만 생각해보면 최근 부부화가들이 많이 생기는 것은 아무래도 같은 전공자끼리 사는 게 서로 도움이 될 것 같고 이해해주는 폭도 다른 전공자에 비해 많을 것이고 또한 추구하는 길이 같으니까 작업을 지속하기에 유리하다는 등의 여러 생각과 예측에 힘입는 것도 같다.

그러니까 배우자를 선택하는데 있어 불안한 미래를 잠재울 능력에 ‘포커스’를 맞추기 보다 마음이 맞고 취향과 감각이 같아서 사는데 편한 상대, 그리고 자신들의 일을 다른 어떤 것보다 우선시하고 있는 젊은 세대들의 가치관에 따른 선택으로 보인다. 좋은 일이다.

더구나 이전과는 달리 먹고사는 문제가 그렇게 까지 심각하지는 않기에 그럴 것이다. 둘이 같이 학원이나 화실, 어린이 미술교습소 등을 할 수도 있고 대학 강의를 나가면 그럭저럭 살면서 작업도 계속할 수 있다. 현재 미술인 부부들 중에서도 계속해서 왕성한 작업활동을 하는 커플이 적지 않다. 이런 경우는 대개가 남편이나 아내, 어느 한쪽이 대학에 자리잡고 있거나 혹은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가들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근자에 재능있고 똑똑한 젊은 부부작가들이 활동도 야무지게 해나가는 모습을 자주 접한다. 다만 너무 많은 욕심을 부리면서 빨리 성과를 보거나 유일한 생의 목적인 대학교수가 되기 위해 바지런을 떨며 애쓰는 그런 전략형들의 현실감각이 좀 불만이지만 그것을 탓하기에는 우리 현실이 너무 가파르고 어렵다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이들보다 현실감각이 많이 뒤쳐지는 부부작가들은 시댁에 얹혀 살거나 시골로 내려가 삶의 규모를 줄이거나 혹은 그저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하면서 견디다 보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비릿한 낙관 아래 잠겨 작업에 몰두하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삶은 경이롭고 기적 같아서 아직 이들 중 누군가가 굶어죽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그러니까 부부작가들의 삶이 만만치는 않다는 것이다. 먹고살기 위해 학원이나 화실을 운영하면 작업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또한 어영부영해서는 또한 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둘 중 하나가 직업전선으로 나가고 남은 이가 배우자의 몫까지 해야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다. 둘이 열심히 해서 함께 각광도 받고 성공(?)도 하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런 축복을 다 주지 않는다. 그런데 더욱 아쉬운 것은 부인이 자신의 길을 포기하고 열심히 뒷바라지를 해도 좀체 가능성이랄까,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부인을 위해 남편이 작업을 포기하고 내조하는 경우는 드물다) 미술의 길에 성공과 세속적 보상이 무엇이겠는가 마는 그래도 좋은 작업으로 인정도 받고 미술계에서 논의도 되고 중요 기획전시에 초대되면서 작품의 질이 성숙해 가는 단계가 드러나면 좋은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특정한 직업 없이, 당연히 수입도 없이 오직 그림만 그리면서 수 십 년을 살아오다 어느 덧 초로의 나이를 먹어 가는 자신을 되돌아보는 일은 서글프다. 동기나 후배가 어느 대학에 전임으로 갔다는 소식이 풍문처럼 들려올 때, 곗돈 타서 치른 전시가 본전도 못 건졌을 때, 자신의 존재가 화단에서 빠르게 망각되어간다는 사실이 불현듯 들 때 그는 혹 그녀는 깊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런가하면 열악한 상황 아래서도 함께 작업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근검과 절약으로 생활을 꾸려나가면서 커다란 욕심 없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부부화가들도 있다. 아니면 배우자의 희생을 바탕으로 작업하는 이들도 그렇게 사는 것에 충실하면서 그 안에서 생의 의미를 부단히 낚아 올리는 이들의 모습은 아름답다. 세속적 성공과 안위, 미술계에 명망을 얻거나 판매에 절치 부심하는 일 등에서 비껴나 부지런히 자신만의 작업을 지속. 심화시키는 부부들을 보면 더없이 감동스럽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나는 지금 그런 몇몇 부부들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망막 안이 온통 흐릿해진다.





화가를 다룬 일반적인 전기와 연구논문들은, 대개 창조성을 예술적 자기 표현을 위한 비범한 (대개는 남성인)개인의 고독한 몸부림으로 자주 묘사해왔다. 최근에 와서 풍요롭고도 고통스러운 동반자 관계와 공동 작업상의 복합성을 탐색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음을 본다. 사실 이성으로서 한 쌍을 이룬 두 사람은, 그 다양성으로 인해 부단히 매혹적일 수 있다. 특히나 그들이 감수성이 예민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예술가들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동반자 관계의 끝없는 복합성에 대한 놀라움이 그것이다. 반면 우리는 둘 만의 관계 내에서 작용하는 사적인 상호작용의 다양함을 충분히 이해하기 힘들다. 부부의 일은 두 사람만이 안다. 부부화가들이 서로의 작업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이들 부부가 추구하는 미술은 무엇이며 그것이 공유될 수 있는 것이지, 다르다면 그럼에도 부부로서의 관계를 유지해나가는데 아무런 장애가 없는지, 미술인 부부들이 직면한 가장 어렵고 힘든 문제는 또한 무엇인지, 그들의 자녀들에게도 역시 같은 길을 권유할 것인지 등의 물음이 부풀어오른다.

미술 작품은 개인의 단독 작업에 의해 창조된다는 믿음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사회구조가 가족간, 부부간, 그리고 이성간의 관계 설정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라면, 창조적 활동에 종사하는 두 사람이 어떻게 이런 구조에서 탈피되거나 탈피하지 못하는 채로 대안적인 이야기를 건설할 수 있겠는가하는 물음은 흥미롭다. 공동작업에 대한 개념, 즉 ‘결합 속에서 성취와 자기 표현을 위한 두 사람의 투쟁’(샤리 벤스톡)을 살펴본다는 것은 그래서 더욱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이성으로 이루어진)한 쌍이란 인간의 동반자적 관계상의 여러 배열 중 하나일 따름이다.

창작행위는 혼자서 하는 것이라는 통념을 고려할 때, 한쪽은 항상 ‘중요한 사람’, 그 동반자는 ‘다른 한 쪽’이 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서구의 경우 여성은 로뎅과 클로델, 잭슨 폴록과 리 크래스너, 그리고 막스 에른스트와 레오노라 캐링턴의 경우처럼, 흔히 직접적인 경쟁자라기 보다는 흐릿한 복사물로, 자기만의 창의성이라고는 거의 없는 모방자로 여겨졌다. 고정관념에 따르면, 남자가 자신의 근본을 초월하는 반면, 여자는 자신의 근본에 의해 한계 지워지거나 구속당한다고 한다. 시몬느 보부아르에 의하면 이런 여성은 ‘자기 일에 열정적으로 몰입할 수가 없고’,‘자기를 잊어버릴 수 가’없다. 자신의 인간적 환경을 초월할 수 없는 이런 기질상, 눈부신 예술작품을 창조해낼 수 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 스티글리츠와 조지 오키프,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 등은 예외적인 경우로 꼽힌다. 그들 부부는 서로가 서로에게 창작욕과 상상력이 불타오르도록 기름을 부어주었다.

우리의 경우 임용련과 백남순의 뒤를 이어 김기창과 박래현이 부부작가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른바 부부전이란 것도 이들에 의해 처음 시도되었다. 이후 적지 않은 부부전의 예들이 있었다. 서로 같은 길을 가는 화가 부부는 매우 편리하고 바람직한 것 같기도 하지만 때로는 일반적인 부부보다 까다롭고 어려움이 더 많을 수 도 있을 것이다. 창작의 고통을 상대방이 좀 알아주고 위로해지기를 바라기에는 민망한 구석이 있고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일이 있을 것이고 또한 배우자가 하고 있는 일의 신비감이 걷혀져 있기에 존경심이나 막연한 기대 등이 자리잡기 힘들다. 또한 부부는 살면서 얼굴도 성품도 취향과 기호도 닮아간다고 하는데 그러다 보니 자칫 작업까지 똑같이 닮아 가는 수가 있을 수 있다. 둘의 개성이 모방된다는 사실은 작업을 하는 작가로서는 치명적이다. 그러나 작업에 대한 여러 생각들을 공유하고 그 너른 틀 안에서 방법론과 감각을 달리 하면서 각자의 개성과 감각을 살려나간다면 그것 또한 보기 좋은 일이다. 그런 부부작가들이 꽤 많이 있다.

부부가 작가라 좋은 점이라면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 비교적 솔직하게 논의할 수 있고 해결점을 찾아나갈 수 있는 점, 작업에 필요한 정보를 손쉽게 주고받을 수 있다는 점, 서로의 길을 격려라고 자극을 줄 수 있다는 것 등이다. 물론 날카롭고 까다로우며 지나치게 뚜렷한 개성을 지닌 배우자끼리 날카롭게 부딪쳐 결국 헤어지는 사례도 있지만 그런 사례가 유독 미술인 부부에게 많이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미술인 부부와 가족이 늘어나고 있고 이들의 활동과 영향력이 날로 커져간다는 사실은 분명 우리 미술계를 이전과는 다른 상황으로 만들어놓고 있다. 배우자간에 힘이 되어주고 격려의 손길로 예술의 길을 독려하는 모습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아름답다.(단 지나친 가족이기주의나 혈연에 좌우되는 폐해는 피해나가야 한다. 사실 이런 구태는 여전히 만연되어 있다. 자신의 권력과 능력이 세습되기를 바라는 욕망들은 현실적 삶에서 당연해 보이지만 예술마저 그렇게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이들 부부들에 의해 우리 미술이 단단하게 성숙되어가기도 하고 또한 그 자녀들이나 형제들에 의해 견고하게 계승되는 측면 등은 분명 미술계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것의 정체와 의미는 좀더 많은 논의를 요구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