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속에 녹아든 ‘생활의 발견’
<일상의 연금술> 전/평범한 사물들의 다양한 변형·결합 선보여


이동욱은 <그린 자이언트>에서 깡통 속에 작은 인간의 형상을 만들어 넣었다(작은 사진). 최정현의 <네티즌>은 키보드와 마우스를 모아 뱀을 형상화했다(큰 사진).


지난 6월 하순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실에서는 일상 생활에서 쓰이는 평범한 사물들을 이용해 만든 흥미롭고 재미있는 작업들이 선보였다. 키보드와 마우스를 모아 뱀을 만들거나, 옷걸이와 삽으로 사슴의 머리를 만들고, 플라스틱 바구니를 벽에 죽 걸어 꽃의 형상을 그려 보이거나, 식용 국수 가닥을 무수히 집적해 소파와 실내 가구를 만들고, 통조림 깡통 안의 혼합 재료를 사용해 작은 인간의 형상을 만들어놓는 식이다. 전시를 둘러보면서 기발한 상상력과 손재주, 그리고 익숙한 사물들이 약간의 변형과 개입을 통해 또 다른 존재로 변환된 것을 보며 감탄했다.

참여 작가들은 모두 연금술사이다. 이제 미술이란 특정한 재료와 전문 작가들의 손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사물 모두가 훌륭한 미술적 재료이며, 누구나 그런 작업을 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생길 듯하다. 한편으로는 이런 것까지도 이제 미술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하는 자괴감도 들 것이다.

최근 국내 젊은 작가들의 작업에서는 이처럼 주변의 사물(오브제)을 활용해 재미와 유머를 표출하는 작업들이 부쩍 눈에 띈다. 무수한 사물들의 범람 속에서 살아가며 체득한 물건들과의 친화력이 이를 가능하게 한 것 같다. 그러나 오늘날 젊은 세대는 풍요한 물건들의 벼락 같은 축복 속에서, 너무 많은 것을 욕망하고 갈망해야 하는 조바심 속에서 죽어가는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사물의 도움 없이는, 물건 없이는 살 수가 없다. 작가들은 이제 자연이 아니라 사물, 물건에서 상상력을 키운다. 그림을 그리기보다 주변의 물건을 조합하고 변형하면서 무언가를 꿈꾸고 욕망하며 논다. 이것이 오늘날 미술이 되었다.

서양의 경우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회화는 어떤 미술 분야보다 특권적인 위치를 향유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이후 사진과 영화가 등장하고 새로운 인쇄·복제 기술이 광범위하고 빠른 속도로 유포되면서 재현 회화의 위상은 의문시되었다. 새로운 기술적 수단들은 ‘이미지 생산’이라는 사회적인 기능을 회화보다 더 완벽하고 객관적으로, 더 빠르고 값싸게 수행했다. 이때부터 회화는 이미지를 생산하는 기능보다는 평면적인 화면과 물감과 붓질의 특성 등 회화의 기본적인 조건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만이 회화의 존재성을 유일하게 지켜주는 마지막 지점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회화는 이제 그리기라는 고전적인 방법에 회의를 느끼면서 일상의 사물들로 눈을 돌리는 한편, 다른 영역과의 이종교배를 통해 삶을 연장해 가고자 했다. 아마도 그런 징후의 가장 선진적인 작업은 피카소의 콜라주일 것이다. 그는 그려진 그림의 표면에 신문이나 우표, 노끈 등을 부착했다. 지금까지 서양 회화가 화가의 눈앞에 펼쳐진 세계를 고스란히 그리고자 했다면, 피카소는 아예 그 세계 자체를 캔버스에 그대로 옮기고자 했다.

새로운 장르 여는 ‘이종교배’ 실험

1910년대 마르셀 뒤샹 역시 ‘회화의 종말’을 선언하면서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변기 중 하나를 선택해 전시장에 진열했다. 작가의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그리던 데서 벗어나 이미 존재하고 있는 사물을 임의로 선택해 예술 작품이라는 이름을 작가 스스로가 부여해버린 것이다. 이 뒤샹의 복제품은 사실 미술이나 회화라고 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복제와 차용을 통해 ‘미술의 죽음’을 선언한 것이다. 뒤샹이 보여준 지향점을 확대 계승한 것이 바로 설치미술인데, 이는 오늘날 미술의 주류로 성장해 있다.

현대 미술은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면 그 매체를 미술계 안으로 끌어들여 이름을 달아줌으로써 생명을 유지해 왔다. 이런 생존 전략은 스스로의 존재 기반을 와해시킬지도 모르는 위험을 안고 있다. 미술이 독자적인 전통과 관습을 하나씩 해체했을 때, 그것은 이미 미술이 아닌 제3의 영역일 뿐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미술에서 회화나 조각, 판화와 사진 등 전통적인 장르 구분이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 되었다. 각 장르는 이종교배를 통해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 대표적인 방법론의 하나가 일상의 사물을 활용하고 결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상의 연금술>전은 희망일까, 종말일까?



시사저널 2004/07/08 767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