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네 스스로 책임져랴?
- 국립현대미술관의 책임운영기관 전환 논의


최근 미술계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책임운영기관화 문제가 큰 이슈로 부상했다. 그럼으로 인해 한국 근·현대미술사 연구와 전시, 소장작품 확보, 미술자료 아카이브 구축, 근대미술작품 보존과 처리, 심화연구를 위한 학예기능의 강화, 서울시내 분관화(기무사 터의 복합문화공간화와 연동)와 같은 매우 중요한 문제들이 논의 밖으로 밀려 버렸다는 게 더 큰 문제로 다가온다. 책임운영기관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그렇다면 위의 논의들은 책임운영기관과 무관한 것인가?

연일 터져 나오는 각종 핫이슈로 미술계가 뜨겁다. 미술품 거래에 매겨진 미술품양도소득세법, 문예진흥원의 위원회 체제로의 전환, 환경조형물의 공공미술기금 체제로의 전환, 국립현대미술관의 책임운영기관 지정, 대한민국미술대전의 향후과제 등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때보다도 미술계가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듯 보인다.

이들 가운데 대한민국미술대전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각종 위원회에 의해 뒷받침되는,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내세운 참여정부 이후 입안된 것들이다. 개중에는 이미 체제 전환이 완료돼 현재 시행 중인 것도 있고, 논의가 진행 중인 것도 있다. 대개는 논의 과정에서 미술계의 전면적인 반대에 직면해 있으며, 이는 이해당사자간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난맥상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을 책임지라구요?
국립현대미술관의 책임운영기관 지정에 대해서는 지난 7월 11일 행정자치부가 국립현대미술관을 포함한 14개의 각종 국립기관을 내년부터 책임운영기관으로 전환한다는 발표가 발단이 되었다. 여기서 책임운영기관이란 기관의 행정 및 재정상의 자율성을 부여하고, 그 운영성과를 기관장이 책임지도록 하는 행정기관형태를 말한다.

책임과 예산의 자율성을 미술관에 부여해서 미술관 운영의 효율성을 극대화한다는 취지이다. 공채로 임용된 기관장은 임용기간 동안 기관을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대신에 예산을 자체적으로 조달해서 기관의 재정자립도를 높여야 하며, 일정한 성과에 미치지 못할 경우에는 그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다(국립현대미술관은 이미 기관장을 공채로 임용해오고 있다).

그러니까 독립기관으로서의 자율성과 예산의 자체조달, 그리고 책임소재를 밝힌다는 것이 책임운영기관의 핵심인 것이다.

사실, 일을 추진하거나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행정주체와 미술전문가간의 불협화음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공공연하게 행정주체는 지원을 하되, 간섭을 해서는 안 된다는 냉소적인 말이 나오기도 한다.

이런 저간의 사정을 생각해볼 때 국립현대미술관이 자율성을 갖는 독립기관으로서 홀로서기를 할 수 있다면, 책임운영기관 체제로의 전환을 진지하게 고려해 볼만하다.

그러나 이는 중장기적인 플랜일 수는 있어도, 지금 당장 적용하는 것은 분명히 시기상조이다. 이 제도를 도입하고 정착시키기까지 20여 년의 시간이 소요된 영국이나, 수년 전부터 이 제도를 도입한 일본에서도 여러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는 현실이 이를 말해준다.

게다가 영국과 일본의 경우에는 이미 정부출자와 민간재원이 합쳐져서 독립된 기금이 마련돼 있던 상태였다. 허나 한국의 경우는 이런 독립기금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 있다.

나아가 국립현대미술관의 세출대비 세입이 4퍼센티지 대에 지나지 않은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재정자립도도 낮다(2003년도 통계수치를 보면, 1년 예산이 213억 원인 것에 반해, 유일한 수입원이랄 수 있는 입장료 수입 총액은 3억 천만 원에 불과하다). 혹여 기부금 제도를 활성화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겠으나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부금 제도와 관련한 세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리고 관련 세법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재정경제부, 행정자치부, 문화관광부 등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세 주체와의 협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렇듯 독립기금도 마련돼 있지 않고, 재정자립도도 취약하고, 기부금 제도마저 운용할 수 없는 현실에서 미술관 운영에 소요되는 예산을 자체 조달하라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그러므로 예산을 자체 조달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영리목적의 수익사업 위주로 미술관을 운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장 현재 700원하는 일반관람객 입장료를 상향조정해야 하는데, 그러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대국민 공공서비스 기관이라는 본래의 취지가 퇴색된다.나아가 기껏 올려봤자 1만 원정도일 텐데(현재 상업화랑이 전시를 유치하고 받는 금액의 최대치를 기준으로 볼 때), 이를 위해서는 관람객을 끌수 있는 소위 블록버스터형의 전시를 유치해야 한다.

사실, 이런 전시를 치러내는 데에는 기하급수적인 보험료를 비롯해 에이전시를 유치해야 하는 등 결코 예산 없이 그저 되는 게 아니다. 나아가 이런 상업성이 농후한 전시 위주로 가다보면 현대미술의 현장성을 실시간으로 반영할 수도 없거니와, 때로는 관람객의 취향과는 동떨어진 형식실험이 강한 작업들이 전시될 수 있는 여지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러면 국내에서 유일하면서도 명실상부한 현대미술의 센터라는 이름이, 취지가 무색해진다. 나아가 수익을 위해서라면 미술관 건물을 대관전시에 내주고 돈을 벌어야 하는데, 이런 대관 위주의 미술관이 일반 상업화랑과 다른 점이 무엇이 있겠는가.

- 공공성과 공익성은 자본에 앞선다

이번 법안의 입안 주체는 지난 2000년 국립극장을 책임운영기관으로 지정한 이후 재정자립도가 상당할 정도로 나아진 점을 들고 있는데, 이는 공연예술과 미술을 단순 비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예컨대 각종 대형 뮤지컬의 입장료가 수만 원에서 수십만 원에 달하는 것에 비해(기업이 예술을 지원하는 메세나가 이런 공연예술을 중심으로 편중돼 있고, 그만큼 미술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협찬사를 따내기도 쉽다는 현실과도 맞물려 있는), 미술전시를 위한 입장료는 그 최고액이 1만 원 선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공연예술은 순회공연을 할 수 있지만, 미술전시는 장소의 한정을 받는다. 그나마도 국립극장의 현재 재정자립도가 잠정적으로나마 향상된 것으로 나타난 것은 단순한 수치상의 비교에 지나지 않으며, 실제로는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매년 해오던 지방공연이 축소되는 등 오히려 공공서비스라는 본래의 목적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국립극장의 책임운영기관 지정 당시 한국예술종합학교와 국악원을 같이 지정하기로 했다가 해당 기관의 적극적인 반대로 무산됐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힘없는 기관을 실험대에 올린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나아가 국립현대미술관이 현재 시행하고 있는 각종 사업들 중 특히 공익사업은 오히려 지금보다도 더 후퇴하거나, 왜곡되거나, 축소될 것이 뻔하다. 예컨대 작가들의 창작현실을 지원하기 위해 현재 실시 운영해오고 있는 창동과 고양 두 곳의 스튜디오는 차후 더 확대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미술 감상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계층을 위한 찾아가는 미술관 사업도 잠정적으로는 중단되거나 축소될 것이다. 이외에도 미술관이 운영하고 있는 각종 평생교육프로그램 역시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국내 작가를 해외에 소개하고 진출시키기 위한 각종 국제교류활동 역시 위축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술관 본연의 기능이 왜곡될 것이다. 예컨대 국내 근 현대미술을 대상으로 한 학예연구활동과 이에 따른 아카이브 구축, 그리고 미술작품과 관련 사료에 대한 수집과 보존 기능이 위축될 것이다.

이 모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업을 위해서는 실질적인 재정적 독립과 함께, 무엇보다도 현재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옛 기무사 터로의 이전이 선행돼져야 한다. 도심지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아 접근성을 확보한 연후에나 책임운영기관으로서 요구되는 재정적인 자립도, 수익성 있는 사업도 가능할 것이다.

이와 함께 덕수궁미술관을 근대전문미술관으로,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을 현대전문미술관으로 분리 독립시키는 사업도 이뤄져야 한다. 책임운영기관으로의 전환은 이런 제반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이 선행된 연후에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상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책임운영기관을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 적용한다면 재정적인 자립을 이루어내기는커녕 일정한 시행착오를 거친 연후에 결국에는 종전과 마찬가지로 국고의 지원을 받아 운영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면 정부는 정부대로 재정적인 부담을 줄인다는 본래의 목적을 이룰 수가 없게 되고, 지원체계만 오히려 지금보다도 더 복잡해질 뿐이다.

잘 알다시피 복잡해진 돈줄은 책임소재를 불명확하게 하는데, 이는 책임을 묻는다는 본 법안의 취지와도 어긋난다. 그리고 기관장의 예산처에 대한 종속을 심화시켜 자율성의 확보마저 어렵게 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미술관이다. 공공성과 공익성을 중심으로 한 대체기관이 없는 현 상태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을 시장경제의 논리 속에, 경쟁체제의 틀 속에 방치한다는 것은 무책임한 발상이다. 행정적 편의주의의 발상이다. 중장기적으로는 독립기관으로서의 홀로서기를 해야 하겠지만, 적어도 그러기 위해서는 제반 여건이 갖춰져야 할 것이다.

- <기전문화예술> 9,10월호 문화초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