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몸짓, 어떤 눈짓도 나를 일상에서 벗어나 그 깊은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루이 아라공
신현림은 내가 근무하는 학교와 인접한 거리에 산다. 그녀는 가끔씩 서울우유와 빵을 사들고 연구실에 찾아왔다. 새로 나온 책들을 손수 건네주기 위해 온 것이다. 이번에는 전시를 앞두고 사진을 보여 주러왔다. 언젠가 인사동의 한 찻집에서 그녀의 초기 작품인 흑백의 자화상시리즈를 본적이 있었다. 간혹 그녀의 몇몇 책 속에서 사진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 사진들은 시인이 아니라 사진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개인전을 앞두고 모아진 것들이다. 도록을 대신해 책자가 발간되는데 그 안에 실릴 원고와 함께 그녀가 찍은 사진들을 보았다. 그 사진들은 그녀의 시집과 에세이에서 만난 문장들을 그대로 닮았다. 마치 일란성 쌍둥이 같은 사진과 원고를 보다 잠이 들었다. 새벽에 느낀 거지만 글이 무척 슬펐다. 그녀가 살아온 생애와 현재 살아가는 순간들이 어렵고 힘들고 고독하다는 것을- 물론 그녀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새삼 알게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얼마나 씩씩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지도 가늠되었다. 새삼 내 자신이 부끄럽고 겸연쩍어 그녀가 그토록 자주 쓰던 ‘헝그리 정신’을 조용히 소리내어 불러도 보았다. 날이 밝았을 때 사진들을 다시 한 번 보았다. 아침 바람과 새소리에 풍경이 흔들리듯 그녀의 사진 속 대상들 또한 물이 흐르듯 떨고 있다. 한 개인의 감성과 생에 대한 열정이 피사체에 가 닿아 녹아 흐른 자국들이다.
신현림의 이번 사진은 그녀가 한때 살았던 잠실주공아파트1, 2, 3단지 주변의 풍경들이 대부분이다. 지금은 재개발공사로 인해 다들 흉가로 돌변한 곳이지만 한때 그곳에 살았던 작가는 마치 일기를 쓰듯, 이미지 산책을 다니듯, 거리를 전시장 공간으로 여기듯 둘러보면서 눈에 들어온 대상들을 찍었다. 아울러 그 동안 여행하다 만난 장면, 일상의 소소한 풍경들이 시간 속에서 건져 올려졌다. 사진가는 산만하게 우리의 눈을 끄는 것에서부터, 그것을 벗어나는 것을 세심하게 주목하기까지, 흐름에 몸을 맡긴다. 도시를 이루는, 일상을 축적시키는 불협화음적인 이미지들은 사진 속에서 기이하게 살아난다. 평범한 모습들이지만 이것들은 슬픔과 고통, 기쁨과 진부함의 원천이며 모든 권태로움에 떨림을 낳는다. 신현림은 자신의 일상이 전개되는 모든 곳에서 현재의 삶이 갖는 덧없고 순간적인 미, 우수와 노스탤지어를 발견하고자 한다. 세상의 공간을 산책하는 그녀의 시선에 걸린 모든 풍경과 모든 느낌은 적조하다. 사진가가 찍는 것은 대상이라기 보다는 어쩌면 자기 자신, 자아일 것이다. 피사체를 빌어 스스로를 투사하는 것, 다시 말해 사진가는 의미를 추구하기보다는 스스로를 무의식적으로 복제한다고 말해야 한다. 그래서 한 장의 사진은 외부세계를 드러내는 것보다는 스스로의 내부세계를 드러내는 것에 가깝다.
“우리가 외부세계를 발견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바로 살아가는 동안의 일이다‘
아울러 사진은 단순히 대상을 드러내고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물과 사물, 혹은 환경과의 관계를, 그리고 그 관계성을 주목시킨다.
그녀의 사진은 몇 개의 단편적인 이미지들이 연결되어 미묘한 관계성을 이룬다. 그것은 명료하지 않고 모호하다. 그 표현은 마치 안개처럼, 흩어지는 구름처럼 애매하다.
<그녀의 사진들은 일상적인 사물에서 일상성을 넘어서는 의미를 잡아내고자 한다. 일상이란 그 단어가 의미하듯이, 모든 사람에게 낯익은 것을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일상만큼 개인적으로 특별한 것은 없을 것이다. 일상이라는 개념은, 대중과 개인의 경계를 넘나드는 매우 물렁물렁한 영역이다. 사진은 개인과 대중의 공간을 혼돈 시키고, 낯선 광경을 낯익은 이름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작가는 자신이 찍은 사진들을 통해서 그날이 그날인 사소한 일상과 삶의 의미를 되살리고 되찾을 수 있지 않을 가를 질문해본다. “조금은 느린 셔터소리와 달짝지근한 햇살이나 라이트 광선을 사용하여 삶을 지탱하는 힘을 끌어내는"것이다.
그녀는 바라보는 것마다 꿈틀거리고 움직이는 것을 느낀다.
신현림은 이 짧고 찰나적인 생에 대한 애정을 사진으로 봉인한다. 사진은 그러한 그녀 자신이 욕망과 열정에 전적으로 부합한다. 사진은 곧바로 지나가 버리는 시간을, 시간 속 대상을, 풍경을 영원한 향수(鄕愁)로 품는다.
“나는 내 작품 속에서 매일 반복되는 때로 지루하고 답답한 일상을 조금 뒤틀기, 뒤집어 보기, 거꾸로 보기 등을 일구려했다. 예술이 되고 나날이 참담한 일상도 참신하게 보여서 생기를 되찾고 힘을 얻는다.”
그녀는 지난 소중한 기억을 찾아주는 매개물인 세상의 모든 것, 모든 느낌을 가능한 온전히 기록하고 한다. 그것은 소멸되어 가루가 되거나 바람이 되어 흐르는 것들을 간직하고자 하는 안스러운 욕망이기도 하다. 그래서 순간은 아름답다.
사실 예술의 모든 언어는 순간을 영원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 속에서 발전되었다. 단어를 빌어 쓰던 시인이 이미지를 불러 세워 시처럼 보는 이에게 다시 읽도록, 보도록 권유한다. 신현림의 사진은 매우 익숙한 대상, 너무 익숙해서 진부하고 낯익은 사물과 풍경들이다. 어디선가 본듯한 기시감에 적셔져 있다. 그녀는 바로 그러한 대상들의 피부에 기이한 낯설음과 예기치 않은 상황을 드리운다. 좋은 사진은 누구나 보았고, 너무 많이 보았다고 믿고 있는 것들을 다시 보게 하고 이질감을 느끼게 하며 낯설게 한다
“어떤 점에서는 아무도 꽃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다. 꽃은 아주 작고, 우리는 바쁘다. 그리고 본다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친구를 사귀는 일이 시간 걸리는 일인 것처럼”(조지아 오키프)
아울러 사진 속 대상들은 시각적 이미지로만 머물지 않고 무언가 자꾸 연상되어 또 다른 상황과 사정을 말하는 한편 시어나 단어처럼 자립한다. 언어화의 충동을 간직한 이미지들이자 텍스트에 얽혀있는 사진들이다. 그것이 신현림의 사진이다.
일회적 삶을 살다가는 유한한 인간들에게 지금 이곳의 풍경, 사물은 다시는 볼 수 없고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거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마냥 흘러 가버리는 것들이다. 사진은 그 흐름을 부동으로 만들어 각인 시킨다. 시간이 죽음이라면 사진은 그 죽음에 대항한다. 한 장의 인화지에 봉인된 시간과 사물은 소멸되고 사라질 운명에 처한 모든 것들의 잠시 유예된 죽음 앞에서의 창백한 멈춤이다. 한때 있었음을, 존재했음을 여전히 강조하는 사물과 시간들은 안스럽지만 우리들 기억 속에서 그것들은 다시 살아나 불사한다.
모든 사진에는 덧없이 흘러가 버리는 순간에 대한 집착으로서 ‘지금, 여기’의 일회적 현존에 대한 극진한 관심, 강박적 집착 같은 것들이 스며들어 있기도 하다. 사진을 찍는 다는 것은 일종의 정지를 만들어내는 것이고, 부피와 면적을 갖지 않는 시간의 점을 보여준다. 이것은 사진만이 지닌 능력이다. 우리들의 시선은 결코 시간을 점으로 볼 수 없으며, 세계를 정지시켜서 그토록 오랫동안 응시할 수 없다. 그렇게 낚아챈 순간이 보는 이에게 말을 건네고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다가오는 것이다. 그것이 다름 아닌 사진이 지닌 시적 능력일 것이다.
사진은 여러 종류의 형태 기호들이 모여 이루어내는 일종의 말, 침묵의 언어이다. 이 명시적인 내용이 없는 사진의 말은 오히려 풍성한 다성, 다층의 목소리를 낸다. 그 소리를 통해 우리는 일상의 진부함으로부터 스스로를 일깨울 수 있다. 사진을 찍는 다는 것은 말을 나꿔채는 것이며 또한 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것은 ‘비메시지적 메시지다.’
사진가는 세상을 총체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전문영역과 감수성, 기호에 따라 보는 식으로 제한되어 있고, 카메라 렌즈라는 한정된 공간과 방식으로밖에 볼 수 없지만, 누구나 보고 지나치는 대상 속에서 사진적인 아름다움과 개성을 찾아내서 표현하는 존재다. 그는 확실히 잘 보는 사람이다. 사진가의 눈은, 의사나 사냥꾼의 눈과 마찬가지로, 움직이는 세계의 무한히 다양한 상황 속에서, 위험이나 행운의 특이한 변화를 파악하는 것이다.
다른 감각도 기억과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눈은 특히 상징적, 경구적, 다면적 지각에 뛰어나다. 그리고 본다는 것은 항상 새롭고 즐거운 체험이다. 보는 것에 대한 관심이 커지다 보면 단지 눈에 어떤 대상의 모습이 비친다는 물리적인 현상이 아니라, 보는 것과 관계된 지각 심리적. 문화적 감각에 대한 관심으로 번져 나간다. 그러니까 보는 것은 단지 눈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눈이 하는 일은 그저 빛을 모으는 것뿐이다. 그것은 뇌에서 이루어진다. 보는 것은 결국 사고하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시각적 이미지는 감정을 건드리는 도화선이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바라보면 감각 전체가 깨어나 그것을 평가한다. 뇌는 눈앞의 것들을 볼 뿐 아니라, 몇 년 전의 광경이나 상상 속의 일을 생생히 그려내기도 한다. 또한 눈은 새로운 것을 좋아한단다. 그래서 우리가 지루하거나 지치지 않고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바라보면서 사는 가 보다. 아니 더욱 새로운 볼거리, 자극적이고 쇼킹하고 놀라운 이미지를 강도 높게 요구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눈은 텅 빈 구멍이다. 그것은 결코 충족될 수 없고 만족 또한 모른다.
<신현림은 어쩌면 가장 하찮은 것이 가장 매혹적인 것임을 깨달을 때, 삶이 다시 보인다고 말한다. 작은 것들의 아름다움이 모여서 삶의 즐거움이 되고 자신이 머물거나 지나는 장소가 자기 몸과 같이 소중히 여겨지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녀는 진부하고 의미 없이 흘러가는 것들을 잠시 불러 세워 그 존재를 다시 상기시켜준다. 무의미에 의미를 세우고 찰나적인 세상의 흐름에 잠시 고요와 침묵을 만든다. 사실 이 세상에 결정적 순간이 아닌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녀는 감각의 밸브를 죄다 열어 놓고 세상을 만난다.
길을 가다 마주친 행인들, 누군가의 뒷모습, 벽 위의 낙서, 능, 구름, 발자국, 바다, 돌장승 등 문득 희열감에 떨게 하면서 또한 서글프게 다가온 것들을 담담히 찍었다. 순간의 정수, 순간의 이미지를 포착한 이 사진들은 그 순간성으로 떨고 있다. 그러니까 이 사진들은 순간의 세계에 대한 동의의 포착이란 본능적 작업과 이미지 읽기의 뒤따름이 하나로 스며들어있다. 여기서 시선은 세계에 대한 동의이자 완전한 행위로 충만하다.
사실 한 장의 사진은 시각적 경험으로 흘러 넘치는 세계에서 떨어져 나온 하나의 이미지다.
따라서 이미지와 경험 사이의 관계는 깨어질 수 없을 뿐 아니라 지극히 유연하게 물려있다.
이 사진들에는 시각적 흥미와 이미지적 기이함을 구성해내는 명료하고 뚜렷한 일련의 모순성이 담겨 있다. 한결같이 영화에서 따온 한 장의 스틸사진 같은 느낌도 준다. 사진 예술은 한 장이 아니라, 오직 하나의 목소리로서 전부를 말하는 여러 장의 이미지 속에서 이런 유연성을 능숙하게 구사한다. 결정적 순간, 지각의 단편을 도려내어 그것을 원래의 맥락에서 상상의 영역으로 옮겨놓는 하나의 외과 수술용 메스와 같은 것이 다름 아닌 사진이다. 그것은 상이한 사물들이 동시에 드러나 관객의 시선을 붙잡고 놀라게 하며 대답 없는 질문을 남긴다. 그래서 사진은 마치 어떤 설명이 없이 ‘미지의 문맥에서 찢겨져 나온 것’ 같아 보인다.
신현림의 카메라에 잡힌 사소한 대상, 사물, 풍경은 기억의 저장고 깊숙한 곳에 잠자고 있는 신경을 건드리고 추억을 건드리고 마음을 헤집어놓는다. 친숙하게 묘사된 이미지이지만 마치 초현실주의자들이 그러했듯이 전혀 엉뚱한 맥락으로 서로 이어 붙여져서 묘한 모습이 되었다. 구름과 발자국이 한데 어울렸고 누드와 덮개에 씌워진 자동차와 음식과 만발한 꽃이 서로 한 자리에 놓여 있는 식이다. 이러한 ‘낯설게 하기의 방법을 통해서, 눈이 본 것을 단순히 옮겨 놓는 것이 아니라 뭔가 이상하고 낯설고 기이하게 얽혀있는 분위기를 만든다. 그러니까 이 이미지들은 단지 그것 자체로 귀결되고 단락짓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것과 암묵적으로, 이상하게 얽혀있거나 다른 어떤 것을 은근히 떠올려준다. 이는 꿈이나 무의식, 기억을 더듬게 하고 혹은 다중적으로 얽힌 이미지의 세계를 새삼 다시 보게 한다.
여기에는 과거의 개인적인 기억이 체험과 함께 하고 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환경, 풍경, 사물과 대상은 다 그렇게 저마다의 기억, 추억과 연관되어 저마다 다르게 이해되고 다가오고 만나지는 것이며 기이한 시간과 동반된다. 신현림의 사진은 자신의 일상에서 비롯된 모든 감각의 총화이자 결정으로 멈췄다. 그녀는 세상의 모든 것을 찍고 싶어한다. 세상의 모든 느낌을 저장하고 싶어하며, 그 모든 것을 기억하고자 한다. 기억하고자 하는 욕망은 순간의 시간에 집착하는 욕망이다. 아찔한 그리움, 소멸되는 것들을 그렇게 하염없이 간직하고 싶은 것이다.
박영택
#2549
신현림-흔들리는 풍경
박영택
2004. 09. 30.
박영택
서울 출생
인명사전 바로가기 : www.daljin.com/author/688
미술평론가 박영택(b.1963)은 [얼굴이 말하다, 마음산책(2010)], [예술가의 작업실(2012)]을 저술하였고 아시아프 총감독(2010)을 역임하였으며, 경기대학교 예술대학 예술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