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를 마주하는 김포의 서쪽 끝자리(보구곶리)에 홍선웅의 작업실이 있다. 나는 오랜 시간을 건너편으로 북한 땅이 길게 드리운 모습이 보이는 한강의 하류, 분단이 실감나지 않는 기이한 풍경 앞에 직립해 있었다. 이곳은 파란 하늘과 따스한 가을 햇살, 그리고 더없이 조용한 시골 동네의 전형성을 띄고 있다. 세상의 변방처럼 이곳은 한적하고 풍경은 햇살에 가물하다. 동네마을회관을 빌어 작업실로 쓰고 있는 작가는 만나자마자 곧장 판화얘기로 들어간다. 악수와 함께 직접적으로, 경제적으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작가의 스타일이 감지된다. 그러고 보니 그의 판화 또한 간명하고 경제적인 선으로 압축되어 있다.
돌이켜보면 내게 홍선웅의 판화는 오윤과 함께 지난 80년대에 탐독했던 여러 책들의 장정과 삽화로 다가온다. 그래서 이렇게 오랜 시간을 구면으로 대해온 듯한 정겨움이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와 나는 초면이다. 하긴 그런 게 문제 될 리는 없다. 작가는 작품 뒤에서 늘상 살아있고 시선을 주면 그는 다가온다.
곧장 1층 판각실에 들어섰고 이후 그는 우리 전통판화의 우수성에 대해 말문을 연다. 이곳은 그간 깍고 찍은 판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보관하는 장소로서 판각들이 책처럼 놓여있다. 은행나무에 새긴 목판의 좌우가 휘어지지 않게 마구리를 댄 판각들은 판 자체를 중시하는 배려이다. 판화를 일정량 찍고 나면 버리는 현대적 판화 관행을 반성하고, 목판화가로서 찍어낸 판화뿐만 아니라 원판의 중요성을 고려한 그는 판이 잘 뭉개지지 않는 은행나무를 쓰며 또한 판 자체를 보관하기 위해 전통목판화처럼 좌우에 별도의 두터운 나무를 대는 마구리 형식을 쓴 것이다. 우리 선조들이 좋은 나무들만을 골라 마구리까지 하며 정성 들여 판목을 만들고 보관하였음을 새삼 상기시킨다.

그는 우리 전통판화를 공부하기 위해 수많은 문중과 사찰, 서원을 탐방하고 그 안에 저장된 방대한 양이 목판들을 연구해서 우리 민족의 판각문화, 전통판화를 환생시켜내고 있는 작가다. 그리고 이런 노력은 자연스레 그를 불교와의 깊은 인연으로 엮어낸 계기가 되었다. 왜냐하면 전통목판화는 사실 경전의 필사와 보급이란 측면에서 불교의 전래와 가장 깊은 연관을 맺고 있기에 그렇다. 해인사의 팔만대장경 같은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또한 부석사에도 고려 각판인 화엄경판(보물 제735호)가 온전히 보전되어 있어서 우리의 판각문화를 잘 보여준다. 현재 전국 70여 개 사찰에 841종 31,781판이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전통목판을 공부하다가 불교와 자연스레 접하면서 그의 작업이 숙성해간 것이다.
우리 민족은 원래 학문을 좋아하고 책을 사랑하였기에 목판본들이 수없이 생산되었고 그 속에서 종이와 함께 각 문화가 발달되어왔다. 판화에는 경전의 삽화로 변상판화가 절의 사간판으로 생산되었으며 아울러 국가에서 관장했던 의궤도를 비롯해서 지도와 천문의, 의학서의 도해, 문집삽도, 계회도, 부적, 시전지 등의 판화가 생활문화 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판화의 풍부한 유산과 전통은 근대 이후 사멸되는 과정에서 망각되거나 외면당해 왔다. 80년대 민중미술 운동과 전략적인 측면에서 판화를 활용한 작가는 새삼 전통목판화 공부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것 같다. 그래서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사찰을 다니며 절에 있는 판고를 뒤지고 영. 정조 연간의 뛰어난 판각문화에 비로소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한다. 그에 따라 전통적인 불교변상판화에 주목하고 이후 조선시대 정조연간에 제작된 이른바 진경판화를 접목한 그만의 판화를 선보이게 되었다.
정조 시대에 판화는 정치, 문화적 중심 기구인 규장각에서 기획하고 규장각 각신들이 판화 간행의 실무를 맡아서 심혈을 기울여 제작되었으며 당시 가장 기량이 뛰어난 화원들이 참여했기에 정교하고 아름다우며 질적, 양적으로 풍부하고 다양한 판화들이 많이 제작되었다.
수 십 가지의 수종의 표현과 파격적으로 굵은 각선, 다양한 점, 선의 표현으로 각법의 모든 면을 보여주는 한편 진경화법이 응축된 당시의 판각문화의 사실정신은 그에게 커다란 귀감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우리의 전통 판화를 연구하고 이를 계승하고자 판화기법, 판각의 보존, 조선 닥종이나 한지와 무명 천에 전통 염색을 해서 천연색을 만들어내 이용하는가 하면 그 안에 담기는 내용 역시 한국 산천의 아름다움과 사찰풍경, 역사를 담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판을 어머니이고 대지이며 각은 그 대지에 씨앗을 뿌리고 나무를 가꾸는 행위로 여겼으며 형은 그 노동의 산물이자 풍요로운 대지의 결실로 인식했다고 한다. 이 세 가지가 분리될 수 없으며 그런 각수의 마음 아래 나오는 것이 진정한 판화였다고 한다. 그도 선배각수들이 그 같은 마음과 손을 닮고자 갈망한다.
그에 따라 은행나무를 사용하며 타각기법(망치로 두드려서 깊이 있게 파는 기법) 아래 먹과 한지를 사용하는 그의 판화는 우리 전통목판화의 계승에 근접하고 있다. 망치로 조각칼을 두드리며 깊고 얕게 파나가는 타각법이나 칼을 안으로 끌어당기는 인각의 판각기법만이 힘차고 옹골찬 각의 맛을 낼 수 있다고 하는데 그 결과 다소 거칠고 투박하지만 고졸한 먹을 한없이 풍기는 고판화나 먹판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홍선웅의 유연하고 간명한 선으로 드러난 사찰풍경이나 다색 목판화로 찍힌 풍경이 그 흔적이다. 먹으로 찍는 수성목판화의 그윽한 맛이 선미처럼 담겨있다. 특히나 먹을 갈 때 한약제인 천궁 다린 물을 쓰는 기술을 터득해서 농담이 균일하면서 흑연 맛이 돌고 먹의 윤기와 그윽한 깊이를 담고 있으며, 희끗희끗하면서 부드러운 먹 선을 연출하고 있다. 아울러 먹 선묘의 맛을 살리기 위해 좋은 조선 닥종이나 천연 염색한 무명 천을 선택하며 배경에는 더러 투실한 화강암의 탁본을 활용하기도 한다. 이를 종합해서 그는 무엇보다도 ‘우리산천의 아름다움’을 찍고자 한다. 동시에 그 풍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사찰이다. 사인암, 쌍계사, 희랑대, 미황사 등은 그가 즐겨 다룬 소재다.
그는 거칠면서도 투박한 각의 멋과 먹 색의 담백한 아름다움을 즐긴 것이 우리 민족의 미감에 다름 아니며 우둔한 듯 서투르며 돌을 깨듯 거칠고 투박하면서도 때론 날렵한 각의 아름다움이야말로 우리 판각문화의 진정한 멋이라고 말한다. 그는 현재 자신의 판화를 이른바 ‘진경판화’라고 부르고자 한다. 한국 자연의 아름다운 장소와 사찰 등을 방문하고 이를 그린 그림과 함께 정갈한 문장들이 어우러진 매력적인 그의 판화는 잊혀지고 사라져버린 전통목판화의 맛을 재현해내면서 동시에 희미해져 가는 진정한 한국자연의 진면목을 또한 일으켜 세우려는 의지 아래 몸을 내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