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순간 벼락처럼 오기도 하고 작가란 존재 또한 느닷없이 다가온다. 미처 못 보았고 전혀 알지 못했던 그림과 작가는 그토록 부재했지만 이후 절대적인 풍경으로 자리한다. 조지연의 작업실 벽면에 부착된, 검게 그려진 몇 개의 그림을 보았다. 그것은 칠해지고 그려지기보다는 검정물감을 빌어 문지르고 지나간 자국, 검정물감과 마음껏 놀다 그친 순간으로 응집되어 멈춰있다. 천 위에 검정 색의 유화물감 덩어리가 흘러 다니다가 멈추고 이내 흩어져버린 형국이자 검은 질료가 으깨지고 엉기고 들러붙어 인간의 형상을 희박하게 드러내면서 진동하는 듯하다. 붓을 대신해 손가락으로, 온 몸으로 격렬하게 그린 자취다. 검은 색 하나만으로도 풍부한 색채의 뉘앙스와 농담의 변화, 얼룩과 반점, 터질 듯한 팽창감과 빠른 속도감 그리고 난해하고 굴곡 심한 내면의 반응, 수많은 생각의 교차와 감정의 기복 등을 효과적으로 표현해내고 있는 회화다. 그것은 매혹적인 형상의 부분적 취용과 추상적인 효과를 도상적이면서도 본능적인 그리기의 배합 아래 긴장감 있게 조율하고 있다.
<나는 순간 그 그림들을 어디선가 보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유년기의 여자아이들이 흰 종이 위에서 하루 종일 지칠 줄도 모르고 엎드려 그려대던 ‘공주’와 ‘여자의 몸’이 순간 오버랩 된 것이다. 오로지 그림 그리는 일에 몰두해 빨갛게 상기된 볼과 삐죽이 나온 입술, 커다랗게 뜬 눈망울, 천진난만하고 더없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그 작고 통통한 손, 흘러내린 머리카락 몇 가닥이 약간의 미열과 온기를 동반한 관자놀이 부근과 볼에 붙어있는 장면 말이다. 모든 아이들은 그림에 있어 천재들이다. 아직 문화화 되지 않은 눈, 길들여지지 않은 감수성, 자신에게만 관심 있는 것만을 놀라운 집중력으로 그려내며 다른 것에는 하등의 관심도 두지 않는 무심함, 지칠 줄 모르고 반복해서 특정 이미지, 상을 뽑아내려는 욕망 등은 무섭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그러나 아이들이 자라면서 문화에 길들여지고 관습적 시선에 굴복하면서부터 어린 시절의 눈과 마음은 실종되고 그림 역시 그 시절로 결코 되돌아갈 수 없게 된다. 문득 그림 그리기는 공포가 되고 그림 그리던 추억이 마냥 희박해지면서 비로소 유년은 그/그녀에게 그렇게 버려진다.
조지연의 그림에서 나는 아이들의 그림에서 접하는 기이한 열정, 욕망, 천진함과 집중력 등을 만난다. 물론 그녀는 아이가 아니고 어른이며 미술교육을 받은 자이기에 어린아이들 그림과는 분명 다르다. 그녀는 아이들 그림을 모방하거나 유사한 재현에 기울기보다는 그 눈과 마음, 집중을 다시 환생하고자 하는 것 같다. 혹은 여전히 가슴 뛰고 그리고 싶은 것만을 그리고 오로지 자신에게 있어 절박하고 관심 있고 충실한 그 무엇이 그림이 되어야만 하는 열정과 욕망을 간직하고 있는, 이제는 무척 희귀한 예술적 자존의 열정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이 그림은 실존적일까? 모든 이즘과 논리에 철저하게 무관한 그림, 오로지 살아있는 자신의 몸과 깊이를 가늠하기 힘든 내면으로부터만 발화하는 이 그리기는 사실 아이들 그림에서 여전히 싱싱하게 살아 오름을 본다. 어쩌면 작가는 그 경이로움을 동경하고 그 눈과 마음을 지니고 살면서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는지 모르겠다.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검정 색 하나만을 가지고 작가는 어린 시절 즐겨 그렸던 동화 속 공주 혹은 만화영화나 특정 캐릭터로 등장하는 여자 상과 유사한 이미지를 그리고 있다. 아울러 그것은 자신의 자화상이고 세상의 얼굴들이자 무수한 몸들이다. 자신의 삶 속에서 겪은 경험과 타인에 대한 관찰과 내면의 반향들에 기울여 폭발적으로 드러낸 그림은 마치 검은 물감이 화면 위로 용암이 되어 분출한 형국이다. 자기 감정과 사고에 충실하게 반응한 그림은 더없이 예민하고 감성적인 한 존재가 한 장의 리트머스지가 되어 이 세상과 접촉하고 상처받고 놀라고 격분하고 감동한 궤적의 응고이자 시적 문장들이다. 결국 모든 그림은 자아가 체험한 세상과의 상처들로 자욱하다. 상당히 압축적인 이 그림은 오로지 모든 상황과 감정, 순간을 단 하나의 결정적인 인간의 얼굴, 손, 몸으로 압축했다.
작가는 자신의 손을 화면에 밀착시켜 그 윤곽을 조심스레 그어나갔다. 자신의 손, 신체의 일부가 화면에 고스란히 전이된다. 그림 속에는 유독 손이 많이 등장한다. 손은 감출 수 없는 감정, 몸의 미세한 반응, 온기와 떨림, 땀과 수분, 욕망과 조심스러움 등을 간직하면서 진동한다. 그것은 언어를 대신하고, 문자를 넘어서며 모든 말들을 지운다. 한 사람의 손가락은 세상과의 접점이자 경계이며 세계와 타자는 그 손가락의 피부 위에서 비로소 감지되고 시작된다. 손은 너무 멀리, 혹은 너머 근거리에서 타인과 나 사이에서 방황하고 머뭇거린다.
놀라거나 당황하거나 행복해 보이는 얼굴 표정, 식물처럼 자란 긴 머리카락, 다섯 개의 섬세한 손가락, 연체동물이나 나무처럼 왜곡된 신체의 변형은 어둠 속에 홀로 남겨져 모든 상황에 대해 발설한다. 마치 렌트켄 필름처럼 흑백의 변화 속에 모든 이미지는 투명하거나 불투명하다. 캄캄한 암흑 안에서, 심연에서 번져 나오는 듯한, 끄집어 올려지는 듯한 그런 이미지들이다. 흑백의 드라마틱한 변화가 집중적인 감정변화와 사고의 유출을 마구 드러내고 있다. 타인에 대한 관찰과 내면 감정에 대한 이해, 자기 자신에 대한 이 고백적 그리기는 일기처럼, 감정의 간직, 기억의 저장처럼 또는 한 개인의 신비스런 영성을 간직한 도상처럼 다가온다. 우리 화단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이 그림은 그만큼 섬세하고 열정적인 동시에 상처받기 쉬운 한 사람의 총체적인 삶의 감각에서 나오는 그림에 가깝다. 말랑거리는 장식이나 가짜 고뇌가 아닌 감정과 정신의 비등점까지 육박해 올라가 비로소 터져 나오는 그런 그림 말이다.
박영택
#2568
조지연-검은 그림
박영택
2004. 12. 31.
박영택
서울 출생
인명사전 바로가기 : www.daljin.com/author/688
미술평론가 박영택(b.1963)은 [얼굴이 말하다, 마음산책(2010)], [예술가의 작업실(2012)]을 저술하였고 아시아프 총감독(2010)을 역임하였으며, 경기대학교 예술대학 예술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