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택
#2605
그림에세이- 청도의 ‘바다풍경’
나는 무수한 그림들 속에서 산다. 너무 많은 이미지들이 내 삶을 가득 에워싸고 있어서 어느 때는 잘 가늠이 되지 않는다. 미술평론가란 직업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그림감상의 즐거움을 다소간 억압한다. 나는 글을 쓰기 위해, 전시를 기획하거나 자료수집을 위해 혹은 이런 저런 필요성에 따라 그림을 보아왔다. 그리고 그 수만큼이나 많은 작가를 만났다. 그렇게 접한 그림들 중 가장 인상적인 그림 하나를 고를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다만 상처처럼 남은 작가/작품을 말해볼 뿐이다. 그중 하나를 건져 올린다.
꽤 오래 전 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오후 시간에 나는 낯선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늘상 바쁜 업무에 시달린 터라 나는 매사에 용건만 간단히, 단도직입적인 대화를 원했다. 그러나 상대방은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장광설을 늘어놓는가 하면 사투리가 심해 잘 알아들을 수 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정리된 내용은 이러했다. 이름은 청도며 지금 선원일을 하고 있고 틈나는 대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혹 그림을 좀 봐줄 수 없겠느냐는 내용이었다. 나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며칠 후 그가 정말 삼천포에서 올라왔다. 얇은 회색 잠바에 청바지 차람이었었나..그는 “고아이며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고생도 엄청나게 했다. 그렇지만 늘 그림에 대한 열정은 간직하고 있었다. 지금 뱃일을 나가고 있는데 무척 힘들고 거친 일이다. 그러나 바다에 나가서도 틈틈이 니체나 바슐라르의 책을 읽으면서 그림을 그렸으니 봐 달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고생담에 가슴 한 쪽이 시렸다. 슬프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혹은 그가 미욱해 보였다.
작가가 된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미술대학을 갈 형편이 안돼 미술을 포기했지만 여전히 미술에 대한 갈망과 욕망을 거둘 수 없는 이들은 어떻게 구원될까? 하필이면 왜 그런 욕망을 갖고 태어났을까?
나는 그가 그린 그림들을 펼쳐보았다. 신문지에 둘둘 말려진 그림들이 비로소 납작하게 펴졌다. 삼천포에서 올라온 그림들은 비릿한 바다 내음과 짠 소금기, 물기를 지닌 바다/파도를 그린 그림들이었다. 어설픈 면이 있었지만 그가 그린 바다는 뭉클한 감동과 뜨거운 격정이 깃들어 있었다. 그 동안 보아온 관습적인 바다풍경, 창백하게 잘 그린 것과는 다른 그림이었다. 나이프로 물감을 이겨 바르고 긁어가면서 캄캄한 밤에 거세게 들이치는 파도와 둥근 달이 있는 적조한 풍경화를 그렸다. 낮의 뱃일이 끝난 후 어둑한 밤이 되자 그는 갑판에 나와 바다를 보았다. 작은 캔버스를 꺼내 급박하게 물감을 칠했다. 아마 몇몇의 선원들은 좁고 지린내가 진동하는 선실에서 고스톱을 치거나 술을 마실 것이다.
청도라 스스로 지칭한 그는 일이 끝난 밤 시간을 이용해 그림을 그렸다. 거친 바람이 불고 파도가 이는 밤바다는 무섭고 어두웠을 것이다. 그의 그림은 온통 바다풍경밖에는 없다. 그는 그 바다 이외에 다른 풍경을 보기 어렵다. 그는 무엇이든지 그리고 싶어했을 것이다. 그때 그의 눈앞에 삶의 현장이자 치열하고 각박하며 공포스럽기 그지없는 바다가 다가왔다. 그것은 더 이상 평화롭고 낭만적이며 아름다운 바다가 아니다. 자신의 존재가 그 바다에 투사되었다. 땅에서 멀어져 적막한 바다로 나온, 지상의 가족이 없는 그는 예술을 위안 삼아 스스로를 견뎌내고자 했던 것 같다. 나는 이 같은 과도한 예술지상주의나 지나치게 소박한 작가 상이 위험해 보였지만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그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놀라웠다. 순간 내 삶이 마냥 부끄러웠다. 이 미술계라는 좁고 폐쇄적인 제도 안에서 이른바 엘리트 미술인들 이나 만나고 그들만을 전부로 알고 오로지 전시장에 진열된 작품만을 보면서 그것을 미술의 전부로 알고 지냈던 내 자신이 말이다. 그로 인해 나는 이름 없고 가난한, 미술계란 제도에서 배제된 그러나 화가의 꿈을 가진 무수한 이들을 기억하고자 했다. 그들의 욕망이 온전히 개화되고 절실하고 맑은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기를 새삼 기원해본다. 그러나 그 후 다시는 못 본 청도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