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북은 대략 1960년에서 70년 사이에 그 개념이 형성되었지만, 정작 아티스트북이 실제로 제작된 시기는 그 이전인 1900년대 초로 소급된다. 국내에서는 1990년 워커힐 미술관이 기획한 <책을 주제로 한 오브제>전이 최초이며, 이 전시에서 외국의 주요 아티스트북 작가들의 작품들이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그리고 1999년 문예진흥원미술관에서 열린 <예술가가 만든 책>전은 국내 작가들이 제작한 아티스트북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본격적인 전시였다. 이 전시를 계기로 하여 이후 주목할 만한 아티스트북 관련 전시들이 연이어 열렸으며, 현재에는 관련협회가 생겨날 정도로 적어도 표면적으론 상당히 활발한 실정에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아티스트북과 관련한 개념상의 혼란으로 인해 아티스트북이 건전하고 견실한 장르로서 정착하는데 적지 않은 장애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티스트북은 아트북과 그 개념이 조금 다르다. 아티스트북은 예술가가 만든 책 오브제를 말한다. 그 비중이 책보다는 조형물에 기울어져 있으며, 그런 만큼 책의 형태는 조형물의 형태에 종속된다. 그리고 그것이 함축하고 있는 내용 역시 조형예술가들이 조형예술을 통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일반적인 의미내용과 다르지 않다. 즉 아티스트북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아티스트북은 단지 어떤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더 효과적인 매체와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드러나 보이는 형태 역시 멀티플과 개념미술 그리고 메일아트처럼 현대미술의 그것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여기서 멀티플은 예술작품에다가 출판 혹은 출간의 형식을 도입한 것이고, 개념미술은 형식보다는 내용에 그 비중이 기울어진 것이고, 또한 메일아트는 조형물로서보다는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와 그 방법에 그 맥이 닿아 있다. 한마디로 아티스트북의 정체성은 기존의 조형예술의 연장선에 있으며, 나아가 현대미술의 보편 현상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참고로, 다니엘 부흐홀츠(Daniel Buchholz)에 의하면, 멀티플아트란 삼차원의 입체작품이 복수 제작되는 경우를 말한다. 그것은 기존의 조각이 재주조되는 과정(레플리카)과도, 판화의 복수성과도 다르다. 그리고 책과 같은 인쇄물의 복제된 형식과도 구별된다. 한편, 멀티플은 판화와 마찬가지로 여러 개의 에디션으로 제작되며, 그 하나하나가 오리지널리티를 보유한 것으로 인정된다. 실제로 일부 유명작가의 멀티플은 거의 무한대로 제작되기도 한다. 또한 소프트스컵처 즉 부드러운 조각으로 현대조각의 중요한 개념을 제시한 바 있는 올덴버그에 의하면, 멀티플 아트란 상대적으로 대량의 에디션으로 제작되는, 일반적으로 크기가 축소된 조각을 말한다. 판화와 함께 거의 무한정 복수 제작이 가능한 브론즈 조각, 테라코타, 도예, 금속공예, 기타 혼합재료를 사용한 릴리프가 그 범주에 포함된다. 뿐만 아니라 광의의 멀티플아트는 다양한 형식의 오프셋, 아트포스트, 책자의 형식을 빌린 모든 인쇄 매체와 사진, 영화, 비디오, TV 등의 영상 매체를 광범위하게 포함한다.
특정의 예술작품이 복수 제작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전과정을 오토메이션에 의존함으로써 원작과 한치의 오차도 없는 복수예술품이 제작 생산되는 경우와, 전과정 이나 혹은 과정의 일부를 수작업에 의존함으로써 에디팅된 작품들 상호간에 미묘한 차이를 포함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복수예술품은 이탈리아의 신사실주의 예술가 피에르 만조니(예술가의 똥과 예술가의 호흡), 아르망, 올덴버그(멀티플 조각), 독일 플럭서스 그룹(각종 간행물의 형태로 출간되는), 마르셀 뒤샹(일련의 상자 작품들), 그리고 기타 1960년대 초 이래로 미국의 일부 유명작가들을 중심으로 제작되고 있으며, 주로 조각과 같은 입체 작품에서 그 예를 접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아트북은 책에 그 비중이 기울어져 있다는 점이 아티스트북과 다르다. 아트북은 책을 기존의 존재방식 또는 정체성과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보자는 발상의 산물인 것이며, 그 연장선에서 비롯된 것이 오브제로서의 책 즉 책 오브제다. 책 자체를 오브제의 한 형태로 본다는 점에서는 아티스트북과 다르지 않으나, 책을 엮어내는 방식 곧 장정에다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서 보듯이 상대적으로 책 고유의 포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 아티스트북과는 다르다. 그 전형적인 형식으로는 타이포그래피 즉 문자조형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해석한 경우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국외적으로는 유럽의 다다와 러시아 형식주의에 바탕을 둔 각종 연감과 포스터가, 그리고 국내적으로는 <보고서>가 이러한 책에 대한 형식실험의 맥락에서 뚜렷한 성과물을 내놓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워커힐 미술관 전시 <책을 주제로 한 오브제>전의 서문을 쓰기도 했던 지그프리드 잘트만에 의하면, 아티스트북은 기존의 책을 예술적인 상황으로 재구성할 수도 있고, 예술가에 의해서 전혀 새로운 오브제로서의 책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때로는 책과는 무관한 재료들이 이용될 수도 있으며, 나아가 기존의 책의 개념과 최소한의 관련만 갖기도 한다. 형태와 재료가 전통적인 책의 개념과 유사한 경우가 있지만, 일반적인 책처럼 읽을 수는 없다. 어느 경우이건 종래의 책을 읽던 것과는 다른, 전혀 새로운 종류의 지각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사실을 전제로 해서 아티스트북의 사례를 보면, 우선 종이와 펄프, 특히 수제 종이에 의한 제작과 페이퍼캐스팅을 들 수 있다. 아티스트북은 복사 및 컴퓨터 프린트 출력물이나 영상 투사 방식 등의 첨단 미디어 기법으로 제작될 수도 있다. 이러한 첨단의 방식은 인터넷을 통한 전송 방식과 전자책을 포함한다. 또한 아티스트북은 특정의 기록물이나 내용물을 담은 상자의 아상블라주 형식을 띨 수도 있다. 그리고 특정의 개념이나 사건을 다룬 기록물과 사사로운 일기나 일지 형식의 정보나 관련 자료들을 나열하고 전시하는 형식을 취할 수도 있다. 이 경우는 여타의 다큐멘터리와 설치 유형의 아티스트북을 아우른다. 거기에는 일기나 일지, 사진들, 자전적인 기록물들, 작가노트, 인쇄물, 판화, 전화번호부, 악보, 지도, 엽서 형태의 콜라주 작품, 회화, 오브제 등이 포함된다. 이외에도 아티스트 북은 이러한 자료들을 전시하는 방식과 관련해서 도서관이나 박물관을 재현한 전시 형태를 띨 수 있으며, 그리고 여기에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장서표와 전각과 부적이 포함된다.
현대미술의 문맥 속에서의 아티스트북은 특히 초현실주의 화가인 막스 에른스트의 콜라주 소설, 마르셀 뒤샹의 일련의 상자 작업들, 독일의 플룩서스 그룹의 멀티플 작업들, 개념미술과 페미니즘 예술가들의 사적이고 공적인 영역을 넘나드는 사회성이 강한 작업들과 관련이 깊다. 특히 독일의 신표현주의 예술가인 안젤름 키퍼는 이미 1969년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작업과 함께 따로 책 작업을 병행해오고 있다. 그리고 구(舊) 소련 시절에 미국으로 망명한 설치미술가 일리아 카바코프는 전통적인 러시아의 이야기책의 형식을 따른 일종의 아트앨범을 지속적으로 제작해오고 있다.
이처럼 아티스트북은 현대미술과 긴밀하게 맞물려 있으며, 그 표현영역을 증대시키는데 기여해왔다. 아티스트북이 국내에 소개된 지도 근 십수 년이 지난 만큼, 이제 사실상의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서 아티스트북을 재정의해야 할 시점에 이른 것 같다.





막스 에른스트의 로망 콜라주

흔히 로망 콜라주 또는 콜라주 소설로 알려진 막스 에른스트의 아티스트북은 그가 최초로 시도한 것으로 알려진 프로타주 연작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1926년 프로타주 기법에 의해 제작된 <박물지> 연작은 이후 시각 이미지의 연금술로 불려지는 초현실주의 특유의 표현 방식에다가 하나의 모델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박물지 연작 이후 에른스트는 각각 세 차례에 걸쳐 본격적인 로망 콜라주를 발간한다. 1929년에 발표한 <100개의 머리를 가진 여자>와 1930년의 <갈멜 수녀원에 들어가기를 원했던 소녀의 꿈>, 그리고 1934년에 출간한 <선을 행하는 일주일 혹은 7가지 기본 요소>가 그것들이다. 특히 1934년 작품에서 에른스트는 하루에 한 가지씩 7가지 악을 형상화함으로써 7일간에 걸쳐 진행된 신의 선의의 창조에 대비시키고 있다. 이 일련의 작품들은 신문이나 잡지로부터 오려낸 이미지를 정교한 동판이나 목판화로 그려진 삽화에다 콜라주하는 형식으로 제작된 것들이다. 이를테면 동판화가인 도레의 삽화에다가 또 다른 이미지를 교묘하게 콜라주한 다음에, 사진 재판 과정에서 그 이음새가 드러나지 않도록 정교하게 처리함으로써 완벽한 초현실주의적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초기 콜라주 소설에서는 텍스트와 이미지가 공존하다가 후기에 가면서 점차 텍스트 없이 이미지만으로 구성된다.

마르셀 뒤샹의 상자 작품

상자와 관련한 아상블라주 형식의 아티스트북은 초현실주의와 다다, 네오 다다와 팝아트의 예술가들이 제작한 작품들이 전해지고 있다. 그 가운데 특히 마르셀 뒤샹은 상자형 작품을 총 3회에 걸쳐 제작한 바 있다. 1914년에 제작된 <1914년 박스>, 1934년에 제작한 <녹색 상자>, 그리고 1966년의 <화이트 박스>가 그것이다. 이외에도 뒤샹은 <여행 가방 속의 상자>(1941)로 명명된 작품을 제작한 적이 있으며, 어느 경우이건 멀티플과 에디션 개념을 적용해서 일정한 한정 매수 내에서 똑같은 작품을 복수 재생산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먼저, 최초의 박스 작업인 1914년에 제작되어 <1914년 박스>로 명명된 작업을 보면, 단지 다섯 부만 제작된, 종이로 된 박스 안에는 14권에 달하는 자필 노트와 한 장의 드로잉과 스케치, 계획도면 등의 원본을 재차 사진으로 축소해 찍은 자료들이 들어 있다.
1934년 작품 <녹색 상자>는 뒤샹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라지 글라스>를 제작한 이후에 작가가 일체의 작업으로부터 손을 뗀 지 12년 후에 같은 제목으로 제작되었는데, 이때 노트들이 담겨진 상자가 녹색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파리에서 300부가, 디럭스 판으로 20부가 따로 제작되었다. 디럭스 판은 보통 판에는 없는 필사본 노트 하나가 첨부되어 있다. 상자 안에는 84개에 달하는 노트와 도표들, 작품 <라지 글라스>를 찍은 사진, <라지 글라스>를 모사한 복제품 8개가 포함돼 있다. <1914년 박스>가 원본을 사진으로 전환한 것임에 반해, 이 작품에서는 가급적 노트들을 원래 상태로 복제하기 위해 원본과 똑같은 종류의 종이와 잉크를 사용해서 이를 석판으로 떠냈으며, 종이의 모양도 원래 노트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뒤샹 자신도 언급하고 있듯이 원래 <라지 글라스>의 제작을 위한 예비 스케치에서 비롯되었으며, 작품이 함축하고 있는 기호들을 읽어내는데 상당한 도움을 줄 목적으로 제작된 것이다. 하지만 정작 <라지 글라스>와 이 작품이 갖고 있을만한 어떤 의미상의 결정적인 고리를 찾아내기란 쉽지가 않다. 오히려 <라지 글라스>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물건이나 의미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일부 노트에서는 뒤샹 자신이 의도적으로 애매모호함을 조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인상마저 든다.
1966년에 뒤샹은 세 번째 상자 작품인 <화이트 박스>를 제작한다. 이 이름 또한 노트들이 흰 플라스틱 상자에 담겨져 있어서 붙여진 것이다. 형식은 녹색 상자와 같으며, 76개에 달하는 축소된 노트들을 포함하고 있다. 박스의 노트들은 영어로 번역되어 뉴욕의 코디어 앤드 엑스트럼 출판사에 의해 150부 한정판으로 출판되었다. 노트의 내용은 레디메이드 오브제에 관한 단상들과 함께, 그 자체로는 추상적이거나 기하학과 관련된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외에도 뒤샹은 <라지 글라스>에 대한 일종의 미니어처로서, 여러 오브제들과 <라지 글라스>의 부분 작품들, 유화, 35페이지에 달하는 노트, 도표와 도식들, 116장에 달하는 설명이 부가된 사진들을 담고 있는 <여행 가방 속의 상자>(1941)와, 그리고 어디에도 첨부되지 않았던 노트를 두 번에 걸쳐 각각 출간한 바 있다. 이들 노트들은 1948년 마타 에카로이가 <주형의 그림자들>이란 제목을 붙여 자신이 간행하는 잡지에 실은 바 있으며, 그 가운데 일부인 <가능한> 이란 제목의 노트를 1986년에 피에르 안드레 베노이가 30부 한정판으로 출간한 바 있다.
뒤샹은 이 일련의 작품들에서 자신의 작품이 단 하나의 뻔한 의미로 읽혀지기를 원치 않았다. 그러니까 작품의 궁극적인 목적을 이해나 해석의 대상이 아닌, 외부로부터 주어진 어떤 결정적인 의미와도 연결되지 않는 그 자체 자족적인 오브제에다가 둠으로써 모든 가능한 의미들을 궁극적인 것이 아닌 임의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상자에 담겨 있는 노트들 역시 뒤샹 자신이 제작한 오브제 혹은 레디메이드를 포함한 모든 입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는 표면적인 의미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론 일부러 애매모호함을 조장함으로써 결정적인 의미 읽기를 방해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느껴지는 갑갑함은 결국 뒤샹이 제기한 자족적인 오브제라는 의미로 되돌아가게 만든다.

플룩서스의 멀티플아트

독일에서 유래한 플룩서스(Fluxus)는 대략 1950년대 말에서 60년대 초에 처음 시작된 이래로, 70년대를 정점으로 해서 현재에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국제적인 미술운동이다. 하나의 미술운동이 이렇듯 상당기간에 걸쳐 지속력을 갖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초기의 멤버들이 상당수 세상을 등진 이후에도 2, 3세대 작가들에게 그 정신이 이어지고 있음으로 인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운동 자체의 열려진 개념 설정과 예술에 대한 유연한 태도로 인해 가능한 일이었다.
플룩서스 운동의 특성은 작가주의보다는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요셉 보이스나 백남준, 존 케이지나 볼프 포스텔 등 플룩서스 출신으로서 개인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들이 없지 않지만, 운동의 본래 취지는 공동체적인 것이었다. 이를테면 동료의 원작을 차용하면서 이를 원작과는 전혀 무관한 새로운 창작의 개념으로 각색해냄으로써 원작과 개작과의 관계를 모호하게 한다. 이로써 예술에서의 생산을 익명적인 것이 되게 함과 동시에, 이를 공동체의 자산에 귀속시키는 식이다.
이런 차용에 대한 무감각증은 인터미디어(intermedia)적인 운동의 취지에도 반영돼 있다. 이를테면 구체시(具體詩)의 문학적 형식에 그 근거를 둔 작가들(조지 마키우나스와 에멋 윌리엄즈, 스포에리와 브레머와 같은), 음악에서 출발한 작가들(칼하인츠 스톡하우젠과 존 케이지, 샤롯 무어맨과 백남준과 같은), 미술을 전공한 작가들(요셉 보이스와 볼프 포스텔과 같은)이 자신의 전공에 구애받지 않고 그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문학과 음악, 미술과 건축, 연극과 무용(머스 커닝햄)의 경계를 넘어 탈장르를 실천한 것이다.
부연하면, 구체시를 통해서 시를 이미지화하는가 하면, 행위음악을 통해서 소리를 시각화하기도 하고, 해프닝을 통해서 미술에 연극적인 요소를 도입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전시가 주로 미술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제외하면, 플룩서스의 작업과 행위는 엄밀하게는 미술을 비롯해서 종래의 어떤 장르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이로써 플룩서스는 창작에서의 공동체주의(창작의 사회적 기능 또는 환원과 관련된), 익명성(저자의 죽음 논의와 관련된), 인터미디어(상호작용성과 관련된), 탈장르(총체예술 논의와 관련된)의 개념을 선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플룩서스란 어떤 양식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정신적인 태도를 뜻한다’는 르네 블록의 정의도 그렇거니와, 실제로 제작된 작품들을 보건데 완결된 오브제로서의 작품보다는 창작자의 생생한 개념, 개념의 흔적, 개념이 작용하는 프로세스가 중시된다. 특히 완결된 오브제로서의 작품을 거부하는 태도는 ‘미술가가 만든 비실용적인 물건으로서의 미술 오브제에 단호히 반대한다’는 창립 멤버인 조지 마키우나스의 전언에도 반영돼 있다.
플럭서스는 이렇듯 완결된 오브제의 생산을 일종의 출간의 형식으로 대신한다. 그렇다고 해서 전통적인 책자를 떠올릴 필요는 없다. 일종의 멀티플 오브제로 정의할만한 형식으로서, 다양한 개념의 흔적들에다가(구체시, 짤막한 코멘트를 첨부한 악보, 행위예술에 동원된 각종 소품들, 플룩서스의 연보와 개인사적인 자료들, 일정한 개념에 따라 재배열된 수집 품목들, 동료간에 주고받은 서간집들 등등) 에디션의 개념을 적용하고 이를 출간해 상자 속에 보관한 것이다. 일종의 박스 아트(Box art)로 정의되는 이런 출간물의 형식은 실상 마르셀 뒤샹의 선례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플룩서스는 소음음악(존 케이지), 메일아트(Mail art), 개념미술, 그리고 프로세스 아트(현재진행형 예술)를 각각 선취하고 있다.

안젤름 키퍼의 아티스트북

안젤름 키퍼는 독일 신표현주의 작가들 가운데서도 특히 서사성이 강한 작가다. 문학성이 뛰어나다는 말이다. 문학성은 실재하는 문학 텍스트로부터 소재를 취한 경우(예컨대 독일 중세 신화나 설화, 그리고 중세 유태교 신비주의 정전인 카발라를 소재로 한), 서사적인 텍스트를 시적인 암시로 함축해낸 경우, 역사적인 사실이나 이데올로기에 대해 논평을 가한 경우(역사성과 현실참여), 그리고 문자 텍스트를 이미지의 일부로 차용한 회화와 사진작업에 나타난 개념미술(키퍼의 작업이 갖는 개념미술의 성격은 자신이 사사 받은 요셉 보이스로부터 유래했다)의 일면을 포함한다. 키퍼의 작업에서의 이런 문학성의 요소들은 개별적인 작품이나 성향의 형태로 존재하기보다는 대체로 중층화돼 있으며, 이는 자신만의 주관적인 화법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작가는 <탄호이저>에서 독일 중세 신화를 다룬다. 13세기 독일의 궁정가인이자 바그너의 동명의 오페라에도 등장하는 탄호이저는 세속으로부터의 모든 구속을 벗어나 홀로 떠도는 예술가로서, 순수한 사랑을 실천한 탓에 단죄 받는 욕망의 화신으로 나타난다. 14권의 납으로 제작된 책을 가시덩굴과 함께 쌓은 설치작업에서 예술가의 순수한 사랑은 지(知)에 대한 사랑으로, 그리고 그 욕망은 앎에 대한 욕망으로 되살아난다(고대 그리스에서 에로스는 지에 대한 사랑을 의미했다). 가시덩굴은 知에의 탐구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음을, 가시로 대변되는 독이 知가 품어야 할 일부임을 암시한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예술가의 욕망이 앎을 추구하는 한 형식이며(예컨대 감각적 知), 그리고 그 형식은 세속의 형식에는 반(反)하는 것임을 말해준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에서 시인은 세속적인 삶의 형식 곧 세속적인 질서를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로 여겨졌으며, 이후 중세시대의 가인은 사실상 시인이었다.
키퍼는 이 작업을 비롯한 여러 작업에서 납을 특히 知와 관련이 깊은 소재로서 이해한다. 작가는 납을 ‘개념을 위한 재료’라고 언급하고 있으며, 납과 知와의 이러한 연관은 요셉 보이스에서도 확인된다. 키퍼에게서의 납은 연금술에서의 기억을 담아내는 신비한 금속이자 변환과 변질의 금속이며, 멜랑콜리의 별인 토성의 금속을 의미한다. 그런가하면 토성은 예술가의 별이기도 하다(알브레히드 뒤러는 멜랑콜리 곧 우울한 기질과 토성을 예술가의 정체성과 연관시키기도 했다). 납은 순수한 질료와 개념, 지식, 그리고 죽음을 뜻하기도 한다. 이로써 납은 황폐화된 불모의 땅에 대한 키퍼의 우울한 반문명적인 성찰을, 현재에 드리워진 신화의 암울한 예시를 대변해준다. 납은 키퍼의 작업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인 재(災)와 함께 파괴와 재생을 동시에 암시하는 양가성을 함축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별자리 책>과 같은 일련의 아티스트북을 통해서는 대지를 상징하는 납판에다가 밤하늘의 별자리를 중층화함으로써 하늘과 대지가 서로 통하는 양가적 의미의 회복을 지향한다. 여기서 그 지향점은 묵시록적인 파국과 함께 재생의 가능성을 내재한 신화의 복원력과, 그리고 모든 고정된 논리를 넘어서는 연금술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예술가의 상상력에 맞춰져 있다.



개념미술가들의 아티스트북

아티스트북은 특히 오브제로서의 미술작품을 의문시했던 개념미술가들과 관련이 깊다. 그들은 미술 대신에 예술이라는 보다 포괄적인 개념이 내재된 텍스트성을 전달해줄 수 있는, 무엇보다도 감각적인 성질을 염려하지 않아도 될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요구했으며, 그들의 이러한 욕구가 자연스레 책의 형태에 주목하게 했다. 사전(辭典)에 실린 예술의 정의를 확대 전시한 조셉 코주스의 1967년 작품 <관념의 관념으로서의 미술>과, 역시 사전으로부터 발췌한 사진으로 된 도상과 텍스트로 구성된 존 발데사리의 1972년 작품 <미술사>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 작품들은 외관상 보다 직접적으로 책의 형태를 상기시키는 특징이 있다. 이처럼 책의 형태를 즉각적으로 환기시키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전산 용지에 부가된 데이터 기록을 확대 전시한 코주스의 <배경과 부정> 역시 아티스트북의 형태로부터 그다지 멀지 않다.

개념미술의 연장선에서 제작된 아티스트북의 다른 예로는 에드 뤼샤, 게르하르트 리히터, 안젤름 키퍼, 한나 다보벤, 크리스토(크리스토의 포장미술은 원래 현대미술사 책을 노끈으로 꽁꽁 동여맨 것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일리아 카바코프, 그리고 루카스 사마라스에게서 확인할 수 있다. 에드 뤼샤가 1966년에 제작한 아티스트북은 선셋대로에 있는 모든 건물들을 촬영한, 첩첩이 접혀진 사진첩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작가는 디터 로트의 거리에서 주운 각종 쓰레기 조각을 꼼꼼히 정리하여 만든 여러 권의 아티스트 북을 발표하기도 했다.

사실주의에서 추상에 이르기까지의 회화의 다양한 지평을 넘나드는 것으로도 유명한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1972년에 <48 장의 초상>이라는 백과사전 식의 아티스트북을 제작했다. 백과사전의 도판에 실린 19, 20세기를 빛낸 유명인들의 흑백 사진을 크게 확대해서 정교하게 그린 다음, 그것을 다시 사진으로 찍어내는 과정을 거듭함으로써 사진과 회화와의 경계를, 오리지널리티와 차용된 이미지와의 경계를 다룬 작업이었다. 이를 통해서 작가는 유명인이나 위인 또는 천재라는 현대적인 신화에 대해서 논평을 가한 것이다.

한나 다보벤의 아티스트북은 그 성격상 낱낱의 일상을 기록한 일기의 형식을 띤다. 1960년대 말부터 일기 또는 일지와 같은 작품을 제작해온 다보벤의 1971년 작 <1년에 1세기>는 일 년 동안 매일 노트 장을 1부터 99까지 세어 이를 책으로 엮어내고, 그 책들을 모아 마치 사설 도서관처럼 보이도록 설치했다. 이렇듯이 노트 장을 세는 것이나 그것을 책으로 묶는 것, 그리고 그 결과를 도서관처럼 보이게 설치하는 행위는 그대로 작가 개인의 삶의 과정(시간)을 상징한다. 조작된 사진으로도 유명한 루카스 사마라스가 1968년에 제작한 아티스트북은 움직이거나 입체의 그림 책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종이의 형태를 임의로 잘라 변형시키거나 안쪽에 구멍을 내는 방식으로써 책의 형태에 새로운 공간 개념을 도입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페미니즘 예술가들의 아티스트북

또한 아티스트북은 개념미술의 형식을 빌려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페미니즘 예술가들에게서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지엽적인 차이를 도외시한다면, 대개 인체를 표현의 대상으로 삼은 점이 특징이다. 낸시 스페로는 서로 다른 역사적 시기에 속하는 여성들의 이미지 100여 개를 아연판에 찍어내어, 이를 열거하는 방식으로 여성들의 개별적인 존재를 다루고 있다. 개별적인 존재를 하나의 동질성을 갖는 존재로 객관화하려는 제도의 습성을 의문시한 것이다. 이외에 스페로는 텍스트와 콜라주가 한 화면에 공존하고 있는 <아르토 사본> 연작(1971-72)을 제작하기도 했다.
유지니오 딧본의 1986년 작 <8 명의 생존자>와 1991년 작 <사람 얼굴의 역사>는 표면적으로 초상을 다룬다는 점에서 스페로와 일맥상통하다. 초상 사진과 그려진 이미지, 신분증, 증명서, 그리고 신상명세서를 확대 복사한 자료를 포함하고 있다. 전시된 자료들 옆으로는 각종 서류를 정리한 서류철과 빈 봉투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아드리안 파이퍼는 <유색인>으로 명명된 아티스트북에서 피부색과 속담을 연결시켜 색상에 대한 감정을 풍자하는 수단으로써 인체를 다루고 있다. 그런가 하면 키키 스미스는 아티스트북 (1991)에서 신체의 각 부분을 심리적인 상태와 의미론적인 연결을 시도한 바가 있다. 포지티브와 네가티브로 된 사진 이미지를 조합한 후, 그 위에다가 그려진 이미지를 부가한 이 작품에서 각각의 신체 부위는 인간의 특정 심리 상태를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
메리 켈리가 1973년부터 79년간에 걸쳐 제작한 <산후 기록> 역시 아티스트북의 범주에 포함된다. 작가와 아기와의 관계를 기록한 총 135개의 단편들을 조합한 이 작품에서 작가는 아기가 태어나면서부터 자기 이름을 말할 수 있을 때까지의 성장과정을 석고 주형, 천, 종이, 숯, 석판 에칭의 형식에다가 담아내고 있다. 아기의 발을 석고로 뜬 모형, 아기의 낙서, 아기의 속옷, 음식 차트, 그리고 켈리 자신의 메모 등의 기록물을 통해서 작가는 모성의 생래적인 측면과 사회적으로 구축된 측면을 대비시키고 있다.
수잔 레이시의 1972년 작 <강간>은 종이를 접은 이음새 위에 마치 봉인을 하듯 ‘강간’이라 쓰인 텍스트를 붙이고, 그것을 다시 찢어내어 사이가 벌어지게 함으로써 벌어진 틈과 찢겨진 봉인이 강간이라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게 했다. 그런가 하면 사진과 텍스트를 혼용하고 있는 바바라 크루거는 오프셋 인쇄로 제작된 아티스트북을 메시지를 전달하는 즉각적이고도 효율적인 방법으로서 제시하기도 했다.

결어

책을 오브제의 한 형식으로 본 아티스트북은 아이러닉하게도 책의 진정한 존재의미에 대해 되돌아보게 만든다. 인간의 역사는 지식의 역사이고, 책의 역사이다. 혹자는 책의 이러한 역사가 가능한 한 정보를 압축시키려는 디지털 프로세스에 의해서 종말을 맞게 될 것이라고 예단하기도 한다. 경제적인 논리로 볼 때, 책의 구조는 지나치게 느슨하고, 책의 자각 속도는 지나치게 느려서 그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책의 미덕은 다름 아닌 이런 느슨한 구조와 느린 자각에 있으며, 이를 단순히 디지털 프로세스의 미덕인 정보와 속도로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처 활자화되지 못한 의미들을 활자화된 의미들과 짜맞추거나, 의미들이 쳐놓은 망 속에 빠져 길을 잃는 일, 그리고 하나의 텍스트에 덧칠된 각종 이질어(異質語)와 이종어(異種語)를 찾아내어 그 텍스트의 행간(行間)을 채워 넣는 지적 유희(그 자체가 감각적 유희를 불러일으키는)는 책의 물질적인 언어를 경유한 느린 사유를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움베르토 에코에 의하면, 한 권의 책이란 언제나 끊임없이 다른 책을 언급하고 있다. 이는 한 권의 책은 다른 책에, 하나의 의미는 다른 의미에, 하나의 사유는 다른 사유에 맞물려 있다는 상호텍스트성에 바탕을 둔 텍스트의 불투명성을 밝힌 것이다. 책의 존재의미는 이런 타자간의 상호영향사를 재확인하는 데에 있으며, 책을 오브제의 한 형식으로 보는 아티스트북의 존재의미는 이를 확대 재생산하는 데에 있다. 아티스트북은 그 자체 상품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양하면서, 보다 나은 삶의 방식을 제시하는 것과 같은 근원적인 반성에서 그 존재의미가 찾아져야 한다. 예술은 정신의 객관화와 물화를 거부하는 삶의 한 형식이기 때문이다(2005년 7월 신촌 아트리움 세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