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회화ㆍ판화 :영상의 홍수시대에 왜 회화인가?
Ⅰ. 머리말
2002년 한해의 현대회화와 판화는 다른 영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축된 감이 있다. 사진과 영상, 설치가 여전히 중요한 흐름을 보여왔다는 생각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여전히 흥미로운 작업들을 보여준 작가들도 적지는 않았다. 미니멀리즘을 여전히 중심축으로 삼고 그 위에 고급하고 세련된 소비적 감수성으로 충만한 추상작업들이 강세를 띠는가 하면 개념적 회화, 메타페인팅 등 눈여겨볼 만한 작업들이 있었다. 중진작가들의 회화에서는 별다른 흥미를 찾기는 어려웠다. 회화에 비해 판화는 그다지 눈에 띄는 작업을 보기 어려웠으며 동양화 분야는 몇몇 젊은 작가들의 신선한 시도가 그나마 위안이 되는 한해였다.
인간이 눈을 들어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바라보는 이에게 어떤 생각거리를 준다는 것이다. 회화는 바로 그 생각거리, 사고가 화면 위에 그려지거나, 얹혀진 것이다. 아울러 미술은 몸을 가진 예술가 앞에 놓인 또다른 몸(그림)의 현존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러니까 미술은 ‘있는 저것’을 색채나 광선 또는 구도를 통하여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미술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되었다. 주지하다시피 바로 그것이 현대미술의 역사, 개념의 역사를 이루었다. 미술에서의 현대성(modernity)의 표적은 미술이라는 수단을 통해 나타나거나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있는 저것’을 바라본 ‘눈’에 있는 것이다. 나아가 회화란 보이지 않는 동시에 보이고 싶은 무엇, 어떤 제3의 것을 나타내려는 지난한 시도이다. 회화적 대상이 작가 자신의 비밀 속에 있고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다만 무엇인가를 보고 떠올리는 한 개인의 단정적인 자기실현에 있다는, 이 예측할 수 없으며 정답이 없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회화만의 매력이다. 화가는 붓에 의하지 않고는 다른 어떤 식으로도 표현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해석을 기록해놓고 있는 사람이며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혼자의 손으로 직업적으로 창조하는, 자기의 손 아래에서 생명을 얻는 유일한 존재이다. 반면 그 주체는 고정되고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늘상 세계와 사물 속에서 매번 새롭게, 의심스럽게 질문된다. 바로 이러한 물음이 비교적 진지하게, 혹은 일관되게 물어져야 한다는 인식이 어느 정도 가능해진 것이 최근이 아닌가 한다.
Ⅱ. 회화를 묻는 회화
최근의 회화작업들은 회화에 내재한 여러 요소들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 주된 전략이 되고 있는 추세이다. 무엇보다도 모든 시각 경험과 이해에서 가장 중요한 ‘언어’의 역할을 강조하고 자신의 작품을 철학과 사회과학, 그리고 대중문화에 개방시키는 등 미약하게나마 상대적으로 풍부한 담론을 생산해내고 있다. 오늘날과 같은 이미지와 영상의 홍수시대에 ‘왜 회화인가’를 묻는 작업들이 상대적으로 많아졌다. 회화의 위기와 회화의 아이덴티티를 다시 물어보는 과정에서의 필연적 산물일 것이다. 이는 회화라는 것이 감각을 자극하는 생의 에너지와 리듬을 포착하여 보는 이의 감각에 그 힘을 돌려주는 것이고 논리와 사유가 접점을 이루는 곳이 다름아닌 회화라는 것의 인식이기도 하다. 개념성이 강한 회화작업은 리얼리즘에 가까운 형상화라는 공통점을 보여주면서 그리기에 대한 그림, 일루전에 대한 그림 등 메타-회화적 속성을 갖는다. 그 대표적인 존재로는 최진욱과 김지원, 김홍주 등이 있다.
자기성찰적이며 비판적인 시각과 의식으로 새로운 모색을 보여왔던 최진욱은 그림이 단순히 그림으로 존재하는 것을 거부하며 그림의 대사회적 질문을 던진다. 여전히 그린다는 것, 대상을 재현한다는 것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 이론으로서의 그림그리기다.
김지원은 ‘본다는 것과 그린다는 것’의 관계, 그림 그리기에 관한 그림 등 그리기를 통해 그림그리기를 넘어서고자 한다. <그림의 시작-구석에서> 연작의 도상들은 그림 밖의 벽면이나 모퉁이, 바닥으로 연장되어 있다. 이는 회화의 위기에 맞서는 전략으로 현대사회에서 그림의 존재방식을 묻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비닐그림은 그림을 여전히 캔버스라는 전통적인 매체에 그려야 한다는 관습을 지우고 아울러 비닐을 통해서 투과하는 일루전을 보여줌으로써 회화적 일루전에 대한 관습을 지극히 가벼운 방식으로 반전시키며 의미의 중층구조를 밀도있게 생산해낸다.
회화적 시선과 색채를 물어보는 한편 현실시각이미지의 폭과 예술 시각이미지의 폭의 갈등에 대해 발언하는 작업을 선보이고 있는 이광호는 영화 <이중간첩>의 시놉시스에 관한 느낌의 형상화이다. 영화적 긴장감과 회화적 색채가 만났는데 탄탄하게 구성된 화폭과 선명한 색채는 유채회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시각적 충격을 제공하면서 영화적 시간을 화폭의 대비로 연출하는 등의 흥미로운 화면을 보여주었다.
패러디 전략을 통해 개념적 회화를 추구하는 작가들도 다수 있다. 권여현의 근작 <부유자아>는 패러디 전략을 통해 자아의 아이덴티티를 문제시하며 구체적인 형상화를 통해 이전 작품의 판에 박힌 방식의 합법성을 박탈한다. 아울러 심미적 생산의 행위 자체에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하나의 형식을 창조하는 방식으로 기능한다.
고낙범은 <초상화 미술관> 시리즈를 통해 미술의 역사에 등장하는 명화들 중 한 작품을 선택해 그 작품을 전체, 혹은 부분적으로 오려내 그 속에 들어있는 색채를 분석하고 채집한 후, 그 결과 색띠의 도표를 만들어낸다. 이 분석표에 따라 명화는 그 주변 친구들의 초상화로 각색되어 재생된다. 한마디로 전통회화를 분해해 다시 그리는데, 한편으로는 그 전통을 부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 전통에 서식한다. 여전히 미술사라는 전통에 기생하면서 자신의 미술을 주장한다. 즉 그의 작품이 만들어지는 창조의 공간을 제시하면서 자신의 창조과정 자체를 작품의 일부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명화를 패러디하고 사진과 회화를 넘나드는 등 ‘그림에 관한 그림’을 그리며 지적인 게임을 펼치는 배준성은 서양미술사에 등장하는 명화 속의 옷을 그려 자신이 임의로 찍은 모델에게 입히는 <화가의 옷> 시리즈로, 미술사에서 제시된 텍스트가 새로운 층위에서 부활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과, 참외, 수박 등 온갖 과일껍질을 말려 그것을 캔버스에 재조합하는 연작 또한 트롱푀이유라는 전략을 통해 전통적인 재현과 일루전에 대한 불신을 매우 냉소적이고 지적으로 조롱한다. 이러한 인용과 차용에 의한 패러디는 텍스트의 반영이자 왜곡이며 이는 무관한 새로운 의미망을 조직하는 텍스트의 생산방식이다. 무엇보다도 김홍주의 회화는 그 정점에 있다. 기존의 관습적인 회화에 대한 비판과 대안의 성격을 띠며 기존의 예술개념과 그것이 지향해온 자아도취적 심미주의, 과도한 작가주의에 의문을 던지는 한편 메타회화의 여러 측면들에 대한 모색이 활발했던 한해로 기억될 것이다.
Ⅲ. 젊은 세대들의 신선한 회화적 모색
회화의 기본적 요소들을 안고가면서도 이를 새롭게 해석하며 실험적 경향을 제시하는 작품들이 두드러졌다. 오늘날 회화라는 전통적 장르를 새롭게 표현한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 되었다. 회화는 작가의 정신, 몸, 마음과 환경, 공간 모두를 포함한 깊은 내면적 에너지의 결정체다. 젊은 세대들은 설치라는 큰 조합 안에 회화를 해체하고 재해석한다. 젊은 세대들은 실제공간과 작품공간, 기존의 회화공간에 대한 무작위적 해체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는 젊은 세대들이 공존해 있는 사이버와 현실에 대한 공간의 탐구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들의 현실적 공간은 모니터가 놓인 독립된 장소이고, 독자적으로 미디어를 움직이며 또다른 사이버공간의 타자와 소통한다.이들에게 회화라는 2차원의 평면 안에서 과거의 현실적「초현실적」추상적 공간의 재해석뿐만 아니라 사이버공간의 이미지도 시도한다. 캔버스라는 정해진 화면에서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주변환경을 끌어들여 캔버스 안의 조형적 구성만이 아닌 다양한 시각적 체험을 제시한다. 캔버스 안에서 보이는 2차원적 작업이 현실공간의 연장이 되기도 하고, 현실공간 역시 그림의 한부분이 되기도 한다. 관객이 그림을 보는 시점이 해체되고 관객이 그림 안으로 들어가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갖게 되기도 한다.
이샛별의 경우 화면에서의 주체가 주변 배경처럼 변형되어 어떤 공간에도 스며들어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이 오버랩되는 현재상황을 말하면서 동시에 환경에 의해 변종되는 사회를 고발한다. 권자연이나 이주요는 하이퍼텍스트적이고 인터랙티브적인 특성으로서의 회화를 실현한다. 전시환경에 직접 그림을 그림으로써 그림 자체가 남아 있거나 없어져버리는 순간적인 방식을 취한다. 기존회화의 영원성과 영속에 대한 해체작업이다. 권자연은 벽면 공간 자체를 염두에 두고 일상적 풍경을 그려나가며, 이주요는 극히 개인적인 체험을 스토리와 함께 벽면 공간에 적용시켜 표현한다. 환경을 배경으로 즉흥적이며 순간적 연속성에 의해 그려진 작업이다. 이명진과 설승순은 일상 이미지가 그려진 나무조각을 연결해 나간다. 주변에 일어난 일상의 이야기를 일기를 써내려가듯이 끊임없이 연결해나간다. 레고 퍼즐의 조각과 같은 나무판 위의 친숙한 이미지들은 모여서 하나의 집이 지어지며 그속에서 자아와 타잔간의 동질성이 형성된다.
회화의 점•선•면•색채 등 조형적 형태를 실험하는 작가로서 정세라는 음영의 대조적 공간감을 극대화한 작업을 꾸준히 시도하며 일상의 풍경에서 보여지는 밝고 어두운 형태를 캔버스에 붙인 실제 입체요소의 착시를 통해 사실적으로 연출한다. 정수진의 경우는 여러가지 다양한 사실적 형상이 한 화면에 조합되어 스토리가 형성되는, 혹은 초현실적인 작업으로 읽힐 수 있으나 전통적 방식의 색채나 형태 대신 실제 존재하거나 작가가 다양한 경험에 의해 만들어낸 사물들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화면 가득 구상적 이미지들을 쌓아올리듯이 그린 작품 속에서 일정한 내적 구조를 찾는다. 작가는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을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내고자 한다. 이는 보이는 것만이 존재하는 것이고 그것만을 믿는,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단정짓는 작가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회화의 평면성을 강조하며 현대의 대중적인 이미지나 기호를 사용해 팝아트의 새로운 해석을 보여주는 작가들은 박미나, 이정승원, 이동기 등이 있다. 과거의 작가들이 사회적 문제를 사실적인 형태로 직접 묘사해 무거운 이미지로 표현한 데 비해, 이들은 현대소비사회가 만들어낸 기호라는 새로운 형태로 이미지들을 만들어 표현한다. 논리•의미•분석에 의해 분류되고 기호에 의해 움직이며 존재하는 현대 소비사회를 단순한 형태와 화려한 색채를 사용해 경쾌하고 밝은 작업으로 선보인다. 박미나는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자연과 인공적인 것을 단순한 기호로 만들어 오늘의 풍경을 제시한다. 이정승원은 디지털영상의 최소단위인 픽셀을 상징하는 포스트 잇을 사용, 대중에게 친숙한 명화 이미지를 제공한다. 이동기는 아톰•미키마우스라는 만화주인공을 소재로 정치적•사회적 문제를 대입한다.
이들 젊은 세대들의 감성은 미술사적 경향에 속해 하나의 장르나 주의를 만들기보다는 각자의 정체성에서 출발한 일상을 소재로 작업을 하기 때문에 다양한 작업을 선보인다. 미술사에서 볼 때 이미 2차원의 평면에서는 모든 실험이 행해졌기 때문에 신세대작가들은 새로운 사조를 만들어야 하는 부담을 지우고 자신의 정체성을 일상이라는 주제를 통해 미술사에서의 수많은 사조로 조합하고 해체하며 재해석한다.
Ⅳ. 추상회화의 흐름
근자에 추상회화에 대한 관심이 새삼스럽게 증가한다는 생각이다. 후기추상 혹은 후기미니멀리즘이라고도 불리는데 대표적인 작가들은 다음과 같다.
우선 이인현을 들 수 있는데 그는 생마포를 화면으로 이용하여 테레핀을 섞은 안료를 화면에 스며들거나, 또는 묽게 물들여 작업의 과정을 물적으로 객관화하고 있다. 결과는 화면에 생기는 지층과도 같은 물감 흔적의 띠인데 이는 마치 수묵화와 닮았다. 지극히 절제된 화면의 띠와 색선은 기하학적이고 객관화되었지만 마치 평면에 드러난 시간의 누적을 상징하듯, 관념적 깊이를 드러낸다. 그는 붓터치를 최대한 감축하고 작가의 주관적 흔적을 최소화하여 전통적 그리기를 배제한다. 이러한 정서 역시 한국 추상회화의 공유된 특징이다.
장승택은 단색화에서 오는 절대적으로 화려하고 외향적인 심미적 추구를 해체하면서도 정제미를 겨냥한 미적취향이 두드러진다. 무엇보다도 화면 위에 터치를 남기지 않으면서 작가를 지우는 몰개성적인 성격을 강조하여 그리기로부터 멀어진다. 화학재료의 성분적 결합과 분리에 관심을 두고 실험적 과정의 결과로 작품을 제작한다.
김택상은 물과 안료의 혼합과 물의 증발이 만들어내는 화면의 특이한 흔적으로 작업한다.
이들은 다양한 기법과 매체를 이용, 화면을 새롭게 구성하는 데서 승부를 건다. 과정과 매체, 시간의 개입과 캔버스의 상호작용을 객관화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새로운 흔적을 위한 노력과 시도, 감각의 극대화’ 같은 것들이다. 이는 좀더 고려된 상업주의의 결과이다. 그러니까 바로 그러한 것들이 동시대 추상작가들의 작업인데 이는 나름대로 의미있는 흔적 만들기를 통해 추상표현주의와 후기 회화적 추상이라는 모더니즘 계보에서 벗어난 또다른 회화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 작업을 ‘후기미니멀적 추상’이라고들 부른다. 이런 경향에 대한 논의는 우선, 그린버그가 공식화했던 순수한 회화, 즉 타장르와의 연결을 끊고, 매체의 한계를 파고드는 순수추상미술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이다. 또한 서구의 모더니즘의 심미적 기준과 지향점을 초월함으로써 관객을 사로잡는 예술의 절대기준을 거부한다는 점이다. 아울러 미니멀리즘이나 개념미술로 대변되는 후기모더니즘이 해체한 회화의 위상과 평면성을 다시 복원하여 회화를 구성하는 물적요소들이 만들어내는 모호한 영역을 발견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니까 후기 미니멀아트에서 입체작품에 주로 시도되었던 매체와 형태 간의 다양성을 연구하며 회화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반면 보편적으로 캔버스를 여전히 표현의 장으로 여기고 이것을 대상으로 매체의 물성을 실험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모더니즘의 강령에 매여 있다는 생각이다. 상당수 작가들이 추상회화를 지속하는 경우, 회화적인 존재성을 강조하지만 안료와 기법의 사용은 비회화적이고 물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무엇보다도 물성을 극도로 밀어붙이고 이를 포기하지 않는 심미적 태도, 작품 안에서 정제되고 단순한 미감을 추구한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그리고 여기에는 고급한 소비사회의 감수성과 세련된 감각 위주의 물질체험이 따라붙는다.
개념작업적 요소나 허구적 의미의 차용(도료의 레디메이드 색상이나 허구적 산수화 코드의 차용)을 끌어들이면서도 전형적인 모더니스트페인팅을 보여주는 문범은 그 모더니즘 회화의 여러 층위를 매혹적으로 실험하는 보기드문 작가이다. 더불어 손으로 칠해진, 근본적으로 수평과 수직으로 분할된 면의 어우러짐을 통해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기이한 해방감을 맛보게 하는 박영남의 추상회화는 격조있는 서정회화의 면모를 보여준 작업이었다. 이미지와 물질의 관계를 탐구하는 홍수연의 작업들은 투명한 추상회화인데 그 투명함은 빛으로 인해 인간이 색채를 지각할 수 있고 빛은 존재를 생성시키는 가장 근본적인 장치이지만, 빛은 형체없이 우리 인간의 삶으로 스며드는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되어 쓰여진다.
반면 생명감 넘치는 색감과 독자적인 추상회화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박승순의 그림, 형상과 추상이라는 두가지 다른 요소들의 겹침으로 투명하게 층을 이루는 화면을 통해 시간과 의식•기억과 의미를 보여주는 박혜련, 순수조형의 의미로 이해되기보다는 끝없이 지워가고 채워가는 행위를 통해 의식의 흐름을 드러내고 의식의 안과 밖을 내다보는 공간으로서의 화면을 보여준 김기린, 자연묘사로서의 회화와 근대에서의 이야기로서의 회화 사이에 위치하는 기이한 지대에 존재하는 회화/붓질을 보여주는 정주영, 캔버스에 물고기나 시계 등의 형상을 그린 후 물감이 마르기 전에 깍거나 닦아내는 작업을 통해 바탕의 색을 제거하면서 만들어진 불연속하는 연속의 자유로운 선을 통해 이미지와 행위를 대립시키고 그 둘을 강고히 결합하고자 하는 의도를 보여주는 박영근 등의 작업이 돋보였다.
아울러 디지털 복제시대의 이미지의 존재와 위상을 다룬 황인기의 화면을 축조하는 이미지의 최소 단위인 리벳이나 실리콘은 디지털 이미지에서의 픽셀이나 여타의 복제 출력물의 점 또는 브라운관의 주사선에 해당한다. 여기에는 레이스 장식에 사용되는 미세유리 결정체나 레고블록이 도입된다. 레고블록은 작가가 실재하는 세계와 그것에 바탕을 둔 재현 이미지를 임의적으로 조합하거나 해체하여 임의적인 세계와 임의적인 이미지로 번안해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전통산수를 차용, 먹으로 그려진 평면그림을 3차원적인 입체 형태로 전이시킨다. 이를 통해 복제이미지마저 전적으로 물질적인 형태를 취한다는 점에서 작가의 작업이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Ⅴ. 형상회화
일상에서의 아주 평범한 생활들, 그속에서 일어나는 사유와 풍경 그리고 마음속에 꿈꾸는 이상향을 몽환적인 이미지로서 표현한 이광택의 그림은 낯선 타향에서의 삶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자연과 더불어 살고픈 욕망들이 편안하게 그려졌다.
자기 가족의 집안식구들을 다룬 김을의 <옥하리 265번지>는 우리민족의 보편적 삶의 기저에 깔려 있는 ‘피의 흐름과 진실’을 인식해보고 혈류를 타고 흘러가는 삶과 죽음, 사랑과 슬픔의 가족사를 그려낸다. 자신의 고향집이었던 전남 고흥군 고흥읍 옥하리 265번지에서 탄생하였거나 살았던 가족의 인물화를 보여주는데 재활용한 캔버스 위에 유화로 그려진 얼굴들은 먹을 이용한 것처럼 기억에 호소하는 듯 희미하고, 퇴락한 모습을 그린 31점의 그림을 한눈에 볼 수 없게 차곡차곡 순서를 지어 고리에 건 방식으로 인해 하나씩 넘겨가며 만나게 된다.
죽음에 대한 상상력과 기억, 목록의 집결로 이루어진 안창홍의 개인전은 자신이 죽어가고 있음을, 도처에 죽음이 가득 차 있음을 이미지화한다. 그의 그림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망각 속으로 밀어넣고 싶은 죽음의 이미지들을 불러들여 회화의 영역안으로 끌어들이면서 삶 속에 늘 죽음이 있음을 은유한다. 이렇듯 죽음이란 매우 진부하면서도 선뜻 다루기 힘든 소재를 즐겁고 충격적으로 그려낸 작품들이었다.
35년간의 작업의 궤적을 보여준 김차섭의 형상회화는 폭과 깊이를 지닌 인문학적 사유와 역사적 시선, 그리고 작가로서의 실존의식들이 교차하면서 빚어내는 회화의 한 단면을 보여준 전시로 기억된다.
김홍주는 꽃그림을 통해 가장 매력적으로 회화를 보여주었다. 정밀하고 섬세하게 그려진 부드러운 세부, 절대적으로 확대된 꽃 등은 기묘한 인상을 주면서 다층적 존재로서의 꽃/이미지를 넘나드는 유쾌하고 기이한 체험을 전해주었다.
폐광촌 연작을 선보인 오치균은 그만의 특유한 손 그림을 통한 질감과 분위기의 재현에 녹슬지 않는 솜씨를 보여주었지만 개별대상에 따른 감흥의 진폭이 너무 무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Ⅵ. 동양화의 흐름
무엇이든 다 그릴 수 있는 작금에 여전히 산수화, 꽃, 인물 등으로 한정되어 있는 동양화단의 문제는 장르 자체가 아니라 장르를 해석하고 구사하는 작가의 상상력이다. 예를 들어 산수화의 독법이 과거의 의미론적, 상징적 구조에 인질처럼 사로잡혀 있는 상황에서, 즉 산수화라는 기호에 대한 재독해나 의미론적 파열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따라서 산수화라고 하는 특정스타일을 포기하느냐, 포기하지 않느냐는 것이 아니라 산수화의 현실속에서 유통되고 있는 기존의 의미론적 영역을 어떻게 하면 파격적이고 비현실적으로 확장 갱신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산수화에 대해 좀더 새로운 상상력을 부여한다면 산수화의 비현실을 빌어 이 시대의 현실을 탐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잊혀졌던 한국채색회화의 역사를 되돌아보고자 마련된 <채색의 숨결-그 아름다움과 힘전>은 20세기 채색화에서 혁혁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인정된 6명의 작가, 50여점을 선보인 전시다. ‘전통의 계승과 현대적 혁신’이라는 주제에 천착했던 작가들을 통해 채색화가 갖고 있는 힘과 정신을 보여주고자 한 이 전시는 20세기 채색화의 성과를 정리하고 한국미술의 지평을 넓히고자 한 전시였다. 반면 작가들이 너무 뻔하다는 아쉬움이 든다.
이은숙은 자연풍경을 닮아가는 인물의 표정(표정-자연), 불두시리즈를 통해 필선의 새로운 해석을 보여준다. 한국화의 전통적 매재를 사용하면서도 서양의 매재를 적극 수용하는 한편, 같은 회화의 평면 속에서 내부와 외부의 공간을 갈라내고자 캔버스라는 서양회화의 틀 위에 한지를 덧붙이고 인간의 삶과 자연을 그대로 드러내기 위해 메타포를 이용하는 점 등에서 주목된다.
길로 이루어진 현대적 삶의 공간에서 느끼는 개인적인 고립과 획일성 등의 감정을 시적감성으로 풀어낸 이여운의 그림은 자신의 일상적 삶의 공간에서의 실존적 감정을 흥미롭게 그려냈다.
먹, 장판지, 회칠한 한지, 템페라, 기타 전통안료들을 사용하여 형상과 여백의 관계를 추구하면서 꽃이란 단일한 소재를 확대해 그만의 특유의 일루전을 만들어내는 이기영은 먹과 물의 번짐에 따른 내부적인 운동을 통해 꽃의 형태가 분해되어 더욱 표현적인 형태로 변화되는 과정을 예민하게 포착해 보여주었다.
그런가하면 <흔들림 문득> 연작을 통해 김호득은 숱한 점들을 찍으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이 가는 대로 이동하면서 자연과 생에 대해 깨달은 바를 산개시켜나가고 있었다. 짧고 둔탁한 먹선들이 이루어내는 질서와 그 안에 내재한 조화로운 운율감을 보여주는 송수남의 <붓의 놀림> 연작 또한 오랜 시간 수묵작업의 여정을 보여주는 작업이었다.
풍경을 그려나간 유근택의 활약도 단연 돋보인 해였다. 그의 수묵은 힘이 있고 시선의 긴장감과 속도, 불질, 먹 등이 색다른 배열 속에서 코드화되는 데 따른 묘한 매력이 존재한다. 아마 지난 한해 가장 활발히 활동한 작가로 기억될 것이다.
Ⅶ. 판화의 흐름
전통판화에서 새로운 매체와 형식이 도입되면서 판화의 탈장르가 가속되고 특히 컴퓨터를 이용한 디지털 프로세싱에 의한 작업과 판화를 이용한 아티스트 북 장르로 영역을 더욱 넓혀간 한해였다. 역사적으로 판화의 발전은 경제적인 방향을 선택하는 인쇄기술의 발전과 함께 해왔기에 현대의 대량인쇄기법인 오프셋을 판화예술에 적극 도입하거나 디지털을 기반으로 하는 컴퓨터프린트 형식을 판화기법에 접목하는 흐름도 보편적인 것이 되었다.
최근에는 젊은 작가들이 중심이 되어 컴퓨터프린트를 전통판화기법에 접목하거나, 혹은 컴퓨터프린트만으로 제작하거나 아예 컴퓨터출력을 위한 정보만을 저장한 CD롬 형식을 판화의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나아가 인터넷에 작품의 정보를 띄우고 원하는 사람은 어디서나 출력할 수 있는 형태의 작품 등도 활발하게 제작되고 있다. 이러한 형식의 다양함과 함께 좀더 효과적인 예술소통을 위해 다변화된 전시방식도 고려되고 있다. 현재의 전시장이나 화랑 중심의 소통방식으로는 판화의 대중화를 충분히 만족시킬 수 없기에 아티스트 북의 제작과 전시 등을 통해 대중과 더욱 밀접해질 수 있는 소통형식에 대한 적극적인 모색이 활발해지고 있다. 판화를 이용해서 예술을 더욱 풍부하게 하고 대중화할 뿐만 아니라 판화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확산시키는 여러 의미있는 작업들이 더욱 기대된다.
판화미술의 인사동 대축제도 있었는데(<서른 아홉개의 전시회>) 이 전시는 1983년 국내 최초로 개설된 성신여대대학원 판화과에서 조직된 <성신판화> 20주년 기념전시인데 국내 최초로 생긴 판화과의 의미를 되새기고 매체 홍수 속에서 한국현대판화의 현주소를 성찰•재도약하기 위해 대규모 전시회를 마련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국현대판화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판화라는 장르를 일반인들에게 인식시키고 수용자인 관람객과 공급자인 작가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 절실하다는 필요성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 출처:<2003 문예연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