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차드 해밀튼(Richard Hamilton)이 <오늘날의 가정을 그렇게 색다르고, 흥미를 끌도록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1956)라는 최초의 팝아트 작품으로 알려진 작품을 제작한 지 근 50년이 지났다. 사진 콜라주 기법에 의한 이 작품을 제작하면서 해밀턴은 ‘대중적이고, 일회적이고, 소비적이고, 저렴하고, 대량 생산된, 젊고, 재미있고, 섹시하고, 교묘하고, 매혹적이고, 그리고 대기업적인’이라는 말로써 팝 아트를 설명했다. 이 기법이나 정의 속에는 팝아트의 특징이 고스란히 내재돼 있다.

먼저, 사진 콜라주 기법은 팝아트의 방법론이 차용(패러디)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말해준다. 잡지, 신문, 만화, 영화, 애니메이션 등의 각종 대중매체 속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을 광범위하게 차용하고, 그 이미지들을 재구성하고 재편집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이미지가 원래 속해 있던 맥락으로부터 이미지를 일탈시켜, 이를 전혀 다른 차원에다가, 이질적인 맥락 속에다가 편입시키는 탈맥락화와 재맥락화를 실천한다.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최초의 이미지는 임의적이고 자의적인, 출처불명의 익명적인 이미지로 재생산된다. 이렇게 재생된 이미지는 그것이 대중적인 매체로부터 발췌된 것이란 점에서 친숙하기도 하고, 작가에 의해 재해석의 과정을 거친 것이란 점에서는 낯설기도 하다. 그것은 시대의 표면현상에 감각적으로 반응하기도 하고, 그 이면에 흐르는 시대정신에 대해서 발언하기도 한다. 차용은 말하자면 팝아트의 생리가 새로운 이미지를 생산하기보다는 기존의 이미지를 소비하는(재해석하는) 형태에 맞닿아 있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렇게 차용되고 재해석된 이미지들이 대중적이고 통속적인, 표면적이고 표피적인, 가볍고 피상적인 팝아트의 내용물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는 그대로 키치와 캠프와 댄디즘으로 나타난 정서적 모드에 맞닿아 있으며, 각종 하위문화의 지층으로부터 파생된 온갖 형태의 정치적 코드(그 자체 정체성의 논리와는 비교되는 차이의 논리에 바탕을 둔)에 맞닿아 있다.

팝아트는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원주의와 후기구조주의의 탈의 논리, 그리고 일상사회학과 맞물리면서 일정정도 변화를 겪게 되는데, 그러한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른 팝아트가 네오 팝이다. 그러므로 네오 팝의 정체성이란 팝아트와 다르지 않으며, 다만 팝아트의 동시대적인 버전 정도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 자양분을 흡수하고 있는 대중문화가 변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팝아트 역시 변화하며, 대중문화가 특정의 의미로만 한정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팝아트 역시 그러하다. 그러니까 팝아트와 대중문화는 서로 연동돼 있는 것이다. 또한 팝아트가 어떠한 형식으로든 동시대의 아이콘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일상성에 바탕을 둔 리얼리즘 미학의 또 다른 한 형태로도 보인다. 다만 팝아트가 그 시대의 감각적으로 드러난 표면현상에 반응한다면, 리얼리즘 미학은 그 현상의 이면에서 작동하는 억압의 계기들에 주목하고, 이로부터 현실에 대한 참여와 실천을 위한 구실을 끌어내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하지만 그 경계가 생각만큼 뚜렷하지는 않다. 즉 시대를 투명하게, 그리고 객관적으로 반영한다는 반영이론은 리얼리즘 미학과 마찬가지로 팝아트에 대해서도 정당하게 적용돼야 한다. 다시 말해, 팝아트가 시대의 표면을, 그리고 리얼리즘이 시대의 이면을 반영하는 거울인 것이다. 이 거울에 반영된 시대상은 제3세계 국가들이 거의 엇비슷한 근대화의 과정을 거친 탓에 일종의 코스모폴리타니즘적인 풍경으로 나타나며, 그 틀 속에서 어느 정도 변용된 형태의 지역적인 특수성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최근 수년 내의 미술 경향을 보면 이처럼 미술과 대중문화의 접점에 주목하는 한편, 이로부터 파생된 개념을 주제로 한 전시들이 눈에 많이 띤다. 예컨대 <팝팝팝전>(가나아트센터), <팝콘전>(키미아트갤러리), <퍼니퍼니전>(갤러리 세줄), <행복전>(한전프라자갤러리), <나라 요시토모전>(로댕 갤러리), <플라잉넷 도시픽션전>(조흥갤러리), <집전>(한전프라자갤러리), <사랑 - 그 힘전>(키미아트갤러리), <싱글전>(가갤러리), <미술과 놀이전>(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과 인사아트센터가 연례전 형식으로 여는 전시>, <미술과 마술전>(현대갤러리) 등의 전시들이 달라진 삶의 풍속도를 반영하고 있으며, 이는 그대로 네오 팝의 이름 아래 아우러진다.

이 가운데 <팝팝팝전>은 팝이라는 이름으로 한일현대미술 작가들의 작업을 모아놓은 전시이다. 이를 보면 팝의 항목에 캐릭터, 문신, 만화와 애니메이션, 놀이, 페티시즘(물신주의), 채집, 자기복제, 의미의 양가성 혹은 양면성, 의미의 자기화 혹은 재맥락화, 환영 혹은 환각과 같은 개념들이 등재돼 있다. 이 개념들이 대중적이고 통속적인 미적 감수성을 반영하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고, 더러는 사적이고 심리적인 차원에서 자기암시의 형태로 현상하기도 한다.

그리고 <팝콘전>에서의 팝콘은 대중을 의미하는 팝과 기호를 의미하는 아이콘의 합성어이다. 동시대를 관통하는 대중적인 기호를 겨냥한 이 말 속에는 팝아트의 속성이 들어 있다. 즉 가볍고 피상적인, 달콤하고 우호적인 미적 감수성과 함께, 사태의 표면질감에 천착하는 인스턴트 문화, 일회용 문화에 대한 선호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퍼니퍼니전>은 말할 것도 없이 웃기는 미술, 재미있는 미술, 가벼운 미술을 겨냥하고 있다. 이는 여러 면에서 전통적인 미술, 정통적인 미학과는 비교되는 태도를 암시한다. 즉 숭고와 승화, 비극과 비장미, 진리와 진실, 예술지상주의, 본질주의와 환원주의, 신과 형이상학 등의 거대담론과는 비교되는 웃음과 해학, 풍자와 아이러니, 피상성과 우연성, 개인서사와 미시담론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면에는 생산에 바탕을 둔 노동문화와는 비교되는 놀이, 유희, 게임에 바탕을 둔 소비문화에 대한 긍정이 놓여 있다.

이와 함께 <행복전>은 소시민의 일상성을 암시하며, 그 자체 팝아트와 일상사회학이 만나는 접점을 말해주고 있다. 즉 보통사람들의 의식주, 성과 사랑, 종교와 여가생활, 유행과 트랜드, 소비양식과 삶의 양식과 같은 반복적이고 관성적이고 일상적인 현상들에 대한 의미부여에 그 맥이 닿아 있는 것이다.

한편, <나라 요시토모전>은 일본 팝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요시토모가 일본 현대미술계에서 성공한 이면에는 만화와 애니메이션 강국이라는 일본 문화의 특수성이 놓여 있다. 그러니까 만화와 애니메이션, 영상산업과 팬시상품이 구별되지 않고 서로 맞물려 있는 토양과 인프라, 그리고 미술과 디자인의 유기적인 관계에 대한 인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요시토모의 그림에 등장하는 소녀 캐릭터는 이러한 복잡한 산업구조 속에서의 풍요로운 일상과 함께, 정작 그 이면에서는 억압적이고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중성이나 이중인격을 드러내 보여준다. 즉 그 소녀에게는 천진난만하고 순진한 유아적 캐릭터와 더불어, 그 이면에 잔인한 본성을 숨기고 있는 악마적 캐릭터가 중첩돼 있다. 마치 귀여운 악마 혹은 악동을 보는 듯하다. 그는 어른들의 상실되고 저당 잡힌 유년을 상징하며, 결코 풍요로운 삶이 치유해줄 수는 없는 상처 즉 트라우마를 암시한다. 이처럼 성장을 멈추거나 거부한 어른아이는 키덜트와 통하며, 그 자체가 네오팝의 한 트랜드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리고 <플라잉넷 도시픽션전>에서 작가들은 도시에 만연한 각종 간판들에서 채집한 상호들을 소재로 하여, 일종의 가상 시나리오 혹은 가상 소설을 재구성해낸다. 그 텍스트 속에서 상호들은 엉뚱하게도 등장인물로 나타나기도 하고, 지명이나 사물을 지시하기도 하고, 나아가 사태를 설명하는 문구로 전치되기도 한다. 문법으로 일컫자면 보통명사, 대명사, 지시대명사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동사와 형용사 그리고 부사마저도 종횡무진 가로지른다. 물론 여기서 소재로 차용된 각종 상호들이 처음부터 서로 연관된 의미를 갖고 있을 리가 없다. 다만 작가들이 그 이질적인 상호들을 서로 연관지음으로써 전혀 예상치 못한 의미들이 생겨나게 한 것이다. 이렇게 재구성된 텍스트는 외관상으론 일관된 틀을 갖고 있지만, 실상 그 틀은 임의적으로 조작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엄밀하게 말해 그 텍스트는 시작도 끝도 없다. 마치 하이퍼텍스트처럼 중간쯤에서 아무렇게나 시작될 수도 있고, 전혀 예기치 못한 곳에서 급작스런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작가들이 재구성해낸 텍스트는 사실은 끝이 없는 이야기의 임의적인 한 부분, 한 단락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런 터무니없는 텍스트, 임의적인 텍스트 쓰기와 관련해볼 때 ‘플라잉넷’이라는 그룹의 이름이 흥미롭다. 즉 날라 다니는 그물, 날라 다니는 망이라는 말이다. 여기서의 망들은 원고지의 칸들을 암시하며, 따라서 날라 다니는 원고지란 어떠한 고정된 의미와 개념으로부터도 자유롭다. 한편으로는 상황논리에 강하고, 또 다르게는 기왕의 모든 정론들을 넘어서는 의미의 형식실험을 떠올리게 한다. 유목주의에 착안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이 이름 자체는 모든 결정적이고 고정된 의미체계를 해체시키고 재편하기,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의 인식지도 그리기, 온갖 이질적이고 무관계한 것들을 접붙이는 매핑하기에 그 맥이 닿아 있다. 그리고 이는 차용과 차용된 이미지의 재맥락화에 그 맥이 닿아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미지(의미)를 생산하기보다는 이미지(의미)를 소비하는 방식과 태도에 그 맥이 닿아 있다는 점에서 팝아트와 통한다.

이런 팝아트의 동시대적 경향성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주요 작가들로는 최정화(각종 플라스틱으로 만든 일상용품에 반영된 키치적 감수성을 통해서 자본주의의 물신주의풍조를 풍자하는), 김준(몸에 새겨진 일종의 사회화된 문신을 통해서 현대인의 의식을 풍자하는), 정진아(똥과 남근을 통해서 사회적 금기를 문제시하는), 이동기, 강영민, 권기수(만화 혹은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재해석한), 김지혜(전통적인 책거리 그림을 재해석한), 서은애(문자도와 같은 전래하는 회화 속에 자신의 얼굴 초상을 대입시켜 그린), 손동현(배트맨과 같은 미국 대중문화의 아이콘을 전통채색화로 재현한), 안성하, 이지송(사물들을 마치 클로즈업한 사진처럼 사실적으로 재현한), 전상옥(유명 잡지에 등장하는 모델 사진을 그대로 사실적으로 재현함으로써 전략적으로 차용된 이미지, 소비되는 이미지로 나타난 동시대의 이미지의 존재방식을 드러낸), 김상길(버버리와 같은 특정의 인터넷 동우회를 찍은 기념사진을 통해서 인터넷 시대의 달라진 대인관계와 그 풍속도를 반영한), 이수연(홀로그램을 통해서 일종의 가짜낙원, 키치낙원을 형상화한), 권재홍(프라모델로 나타난 미니어처를 통해서 미술을 장난감 놀이로 전치시킨), 김경화(천 소재로 만든 소프트한 공구를 통해서 사물에 대한 고정관념을 문제시한), 박상희(간판을 소재로 한 그림들), 홍경택, 낸시 랭, 류지선, 윤정원, 한슬, 안두진, 김태연, 프로젝트 그룹 옆(엽) 등을 들 수 있다.

이 작가들로부터 나타난 경향은 그 자체가 달라진 삶의 풍속도를 대변해주며, 이는 그대로 네오팝의 주제의식이나 양식과도 통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동시대적인 아이콘의 한 형식으로서의 캐릭터, 아바타와 같은 가상의 인격체, 픽토그램과 같은 이미지와 문자가 결합된 기호, 가상세계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흉내내는 코스프레 놀이, 놀이와 축제, 순수미술과는 구별되는 키치, 문신과 피어싱과 코스매틱(화장) 등의 몸에 대한 관심, 디즈니랜드 풍의 유아적이고 동화적인 환상 이미지에 대한 관심, 인터넷 글쓰기를 통한 환상문학, 크레올 문학(무국적 혹은 다국적 글쓰기), 코쿤족 혹은 히키코모리(자기만의 세계 혹은 자기강박에 사로잡혀 육체적으론 외부와 고립돼 있으면서, 가상현실을 통해서만 외부와 소통하는 이중적인 캐릭터), 키덜트, 코스튬, 트랜드, 홈리스, 게임아트, 간판, 쇼핑, 만화와 애니메이션, 디자인, 팬시상품, 그래피티(낙서화), 스프레이 그림, 스티커 그림, 포르노그래피, 스타쉽, 팬클럽, 그리고 각종 하위문화 그룹을 아우르는 등의 실로 어지러울 정도로 다양한 형태로서 나타난다.

한편, 동시대의 캐릭터를 대변해주는 컴퓨터키트와 엠티비키트와 함께 팝아트적인 미적 감수성과 생활감정을 내재화하고 있는 주체를 팝키트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동시대를 대변해주는 캐릭터의 주체인 동시에 객체이다. 그는 동시대의 전형적인 모습을 반영하고 재현하며, 당대적인 문제의식과 시대정신을 상징하고 암시한다. 그는 일련의 서사예술은 물론이고, 상품의 전략, 광고의 욕망, 그리고 나아가서는 스타십의 열광과 더불어서 거주한다. 물신주의가 팽배한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그는 소비자의 욕망을 파고드는 심리적인 기제가 되고 있고, 따라서 그에게는 문화의 얼굴을 한 자본의 욕망을 퍼트리는 첨병의 역할이 주어진다. 이처럼 팝키트 혹은 캐릭터에서는 당대의 정치적이고 경제적이고 사회학적인 여러 이질적인 맥락들이 교차한다. 그리고 그 자체가 현대미술에 나타난 여러 물화된 인격체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이와 관련된 주요 작가들로는 김준(마초맨, 사우나맨, 문신맨), 조범진(아치와 씨팍), 조습(명랑맨), 이동기(아토마우스), 김학민(가상현실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흉내낸 코스프레, 분장놀이), 박활민(컴퓨터 모니터를 흉내낸 홀맨), 강영민(서늘한 미인), 이소미(스마일 맨) 등을 들 수 있다.

이처럼 동시대에 있어서의 팝아트는 기존의 미술은 물론이거니와 인문학과 사회학간의 경계마저 넘나들며, 이질적이고 낯선 것들을 친근하고 익숙한 것으로 바꿔놓는다. 그 주제는 일상사회학의 광범위한 논의와 맞물려 있으며, 또한 서핑(사태의 본질보다는 그 표면현상에 감각적으로 천착하는)과, 매핑(기왕의 인식 틀에 자기를 끼워 맞추기보다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인식지도 그리기), 그리고 패러디(이미지 훔치기 혹은 이미지 재맥락화 하기)의 전략과 맞물려 있다. 미술과 대중문화가 교차하는 지점들을 영토화하면서, 그 각 지점들에다가 시대를 관통하는 아이콘을 세운다. 이는 때때로 외관상 무의미해 보이는 행위에다가 의미를 부여하는 놀이로 나타나기도 하고, 더러는 사사로운 경험을 객관화하는 행위로 현상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팝아트는 특정 시기와 특정 지역과 특정 사조에 한정되기보다는 언제나 재정의되는 열려진 개념이다. 그것은 마치 현재진행형의 시대정신을 흡수하는 리트머스지와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