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현대미술 - 우울한 블랙홀, 그 자장(磁場) 속으로의 진입
Ⅰ. 1989년은 중국 현대미술의 전개에 있어서 상징적인 해로 간주된다. 이 해에 중국미술관에서 열린 [중국현대미술전]이 공식적인 중국 아방가르드 미술의 탄생을 알렸기 때문이다. 리 시엔팅, 페이 다웨이, 인 슈앙시와 같은, 당시 중국의 언더그라운드 미술을 지휘했던 미술평론가들에 의해 이 전시회가 조직됐고, 그것이 중국 사회에 던진 충격파는 예상외의 것이었다. 게다가 훗날 필자가 호주에서 만나 당시의 생생한 일화를 들을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한 여성 작가의 퍼포먼스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일변도의 구태의연한 중국 미술계를 뒤흔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전시장 벽을 향해 권총을 발사한 이 퍼포먼스는 천안문 사건으로 대변되는 중국 인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반영한 것이다. 알다시피, 1989년 6월 4일에 발생한 천안문 사태는 장기적인 마오쩌둥의 1인 독재체제가 야기한 필연적인 결과였다. 당시 민주화를 요구하며 천안문 광장에 모인 수십 만 명의 학생, 노동자, 시민들을 향해 탱크와 장갑차를 동원하여 무차별 발포를 감행, 다수의 사상자를 낸 중국정부는 그 이후 국제사회의 혹독한 비판에 시달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천안문 사태와 1996년에 발생한 원명원 사건은 많은 지식인과 예술인들을 해외로 망명케 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천안문 사태 이후 반체제 지식인들의 집단 거주지였던 원명원이 당국에 의해 강제 해산된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중국의 아방가르드 미술을 실천했던 많은 수의 작가, 큐레이터들이 표현의 자유를 찾아 해외로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페이 다웨이, 후 한루, 황 용핑 등은 파리로, 차이 구오 쾅, 황 루이 등은 동경으로, 슈빙, 장 후안 등은 뉴욕을 향해 각자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나아갔다.
중국 내의 정치적 기류와 맞물린 이 일련의 사건 외에도 중국미술이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 요인에는 몇 가지가 더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덩 샤오핑에 의해 1970년대 후반부터 추진된 중국의 개혁‧ 개방 정책이다. 이 정책은 중국이란 거대한 항모(航母)가 ‘죽의 장막’으로 대변되는 폐쇄적인 공산주의 정책을 마감하고 서구의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는 수정된 사회주의로 선회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처럼 탄력적인 정책의 수용은 결과적으로 예술인들에게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 이후 대중매체를 통해 간헐적으로 유입된 서구미술에 대한 정보는 중국 미술가들로 하여금 새로운 매체와 표현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중국의 현대미술이 서방세계를 비롯한 국제미술계에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게 된 것 또한 중국의 개혁‧ 개방정책과 관계가 깊다. 알다시피, 중국의 개혁‧ 개방 이후 구미 제국의 관심사는 중국시장이 지닌 거대한 잠재적 구매력에 두어지고 있었다. 13억에 달하는 중국의 인구가 보장하는 시장개척의 가능성은 당시 세계 기업인들의 군침을 흘리기에 충분했다. 1990년대 초반이후, 서구의 큐레이터, 화상, 미술관 관장, 미술전문지 기자들이 빈번하게 중국 미술계의 문을 노크하기에 이른 것은 경제의 침투에 앞서 일단 문화적 접근을 꾀한 전략적 제휴의 냄새가 짙다. 서구의 자본이 중국의 시장에 침투하기 위해서는 일련의 교두보 마련에 부심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가장 세련된 방법은 아무래도 문화교류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Ⅱ.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중국현대미술특별전](11. 12-12. 5)은 현 단계 중국 현대미술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제5회 광주비엔날레 아시아 지역 큐레이터를 비롯하여 2005년 상하이 젠다이 MOCA 개관전 감독을 역임한 이원일 큐레이터가 기획한 이 전시회에는 베이징, 청두, 상하이, 충칭, 하이난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국의 현대미술 작가 25명이 초대되었다. 이 전시회는 회화를 중심으로 조각, 사진, 판화, 설치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중국 현대미술의 최근 경향을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그러나 회화에 지나치게 편중된 느낌이 짙고 상대적으로 멀티미디어나 영상 부문이 배제돼 있어서 중국 현대미술에 대한 전체적인 흐름을 살펴보기에는 다소 미흡한 감이 있었다. 그러나 이 전시회의 실질적인 주관사가 미화랑이라는, 근본적으로 영리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상업화랑인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결점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이번 전시회가 전반적으로 보기 드문 대작들로 구성돼 있고, 작가들 대부분이 국제 미술계에 한창 떠오르고 있는 중국의 대표적인 작가들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결점이 충분히 커버됨은 물론 미술계에 기여한 공을 치하해야 할 것이다.
최근 몇 년간 국내에는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중국 현대미술 붐에 편승하여 이와 관련된 전시회를 기획하는 사례가 상당수 있었는데, 여기에는 상업화랑이 기획한 소규모의 초대전 외에도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국공립미술관 기획에 의한 대규모 기획전이 포함돼 있다. 또한 광주비엔날레를 비롯하여 부산비엔날레,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포천아시아미술제와 같은 대규모 국제전을 통해 다수의 중국 작가 작품이 소개된 바 있어 국내 미술애호가들의 중국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는 어느 정도 충족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국내에 소개된 중국 작가들은 최근 몇 년 사이 베니스비엔날레를 비롯한 대규모 국제전을 통해 세계 미술시장에 진입한 작가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어서 중국 현대미술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식상한 메뉴였던 것도 사실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그간 국내에 자주 소개된 바 있는 팡 리준, 장 시아오강, 유에 민준 등등이 배제된 가운데 비록 비슷한 연배이지만, 이들에 비해 다소 뒤늦게 국제전을 통해 서구에 집중적으로 소개되고 있는 작가들이 다소 포함돼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왕칭송은 얼마 전에 열린 [포천아시아미술제]에도 초대된 적이 있어서 국내의 미술 애호가들에겐 이미 구면인 셈인데, 사실 이 작가의 사진작품은 2000년에 열린 [제3회 광주비엔날레]에서도 소개된 바 있다. 그의 작품의 특징은 앞서 언급한 세 작가들과 함께 유년시절에 문화대혁명을 체험한 세대에 속하면서도 그들이 유년시절의 불우했던 체험을 반체제적인 시각에서 자조적 혹은 냉소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중국의 고전 명화를 패러디하는 색다른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작품은 가령 중국의 고전명화 가운데 하나인 고개지의 <여사잠도>를 등장인물들의 분장을 통해 현대적으로 각색하는 작업이 주류를 이루어왔는데, 이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중국적 현상을 대변해 주는 것이다.
장 시아오강의 ‘현실에 대한 무표정’, 유에 민준의 ‘냉소’, 팡리준의 블랙 유우머와도 같은 ‘자조’의 세계가 보여주는 ‘냉소적 리얼리즘’(리 시엔팅)은 왕광이를 대표로 하는 ‘중국 팝’과 함께 중국의 암울한 현대사가 낳은 지극히 중국적인 트레이드 마크다. 이 등록상표는 국제전을 통해 신속히 상품화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품화의 주체가 중국이 아닌, 서방세계의 미술관계자들이라는데, 문제의 핵심이 있음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중국의 급속한 개방화의 물결을 타고 중국의 미술계를 넘나들었던 서구의 화상, 미술평론가, 큐레이터, 미술저널리스트들에 의해 이들의 작품세계가 서구의 미술계에 소개되었고(물론 이 작가들이 세계 미술계에 소개되기까지에는 홍콩에서 T. J. Hanart Gallery를 경영하고 있는 미술평론가 겸 큐레이터인 장총쑹의 힘이 컸다.), 이들은 현재 스타급 작가로 중국사회에서는 보기 드물게 부와 명예를 누리고 있다. 여기서 이들의 국제적인 성가가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것과 원래의 작품이 지녔던 아방가르드 본연의 비판정신이 쇠퇴하는 것의 상관관계가 반비례한다는 사실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이 전시회의 도록에 글을 기고한 구첸칭(미술평론가, 상하이 다륜현대미술관 부관장)의 지적은 그런 점에서 매우 시사적이다. 그는 최근에 중국 미술계에 나타나고 있는, 젊은 작가들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지 불과 한 두 해 사이에 세계 정상급 국제비엔날레를 통해 스타로 부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는 이를 가리켜 ‘헬리콥터 현상’이라는 매우 재미있는 호칭으로 부르고 있다. 구첸칭을 비롯하여 필리, 주 키와 같은 의식이 있는 미술평론가들은 서구의 시각에서 제조되는 이러한 폐해에 대해 적이 우려스런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주 키의 분석은 우리에게도 타산지석이 됨 직하다. 그는 지난 10년 간 서구의 제도미술기관에 의해 이루어진 중국의 아방가르드 미술이 서구 종속화 현상과 관계가 깊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에 의하면 1990년대에 서구인들이 아방가르드라고 생각한 중국미술은 두 가지 중 하나로 분류되는데, 하나는 서구미술을 닮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닮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서구미술을 닮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는 중국미술이 형식에 있어서는 서구미술을 따르고 있다는 점이라고 그는 지적하고 있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서구인들은 중국미술의 독창적인 면보다는 서구적 형식으로 번안한 중국의 사회와 문화, 정치에 대한 현상을 소재로 한 작품들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여기에는 서구인들의 문화 우월주의적 시각이 은연중에 배어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이 아닌가. 마치 이란성 쌍둥이와도 같은, 혹은 당의정과도 같은 우리의 전략 수출 상품들이 국제전을 통해 서구 미술계에 소개돼 국제미술계를 떠돌다가 어느 사이엔가 미아가 돼 종국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될 운명에 처하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서구의 미술관계자들에 의해 발탁됐다는 존재의 이유도 석연치 않기는 매일반이다.
알다시피, 중국의 현대미술이 국제미술계에 진입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은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하랄드 제만이다. 그처럼 과감하게 중국작가들을 일종의 전략상품으로 국제미술계에 소개한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1999년, 제48회 베니스비엔날레의 [아페르튀토(Appertutto)]전에 무려 20여 명에 달하는 중국의 아방가르드 작가들을 대거 기용했던 그는 중국미술에 관한 한, 일등공신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죽었고, 이 전시회에 참여했던 작가들이 앞으로도 계속 작가적 성공을 거둘지는 아무도 모른다. 과연 이 전시회를 통해 국제적인 스타가 된 왕두는 세계적인 작가로 살아남을까?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Ⅲ. 이번 전시회에 참가하고 있는 작가들의 연령은 5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에 이르는 분포를 보이고 있다. 내용적으로는 ‘냉소적 리얼리즘’과 ‘중국 팝’ 이후에 나타난 현 단계 중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작업이 이 두 경향과 무관한 것은 아니다. 가령, 펭 젠지에의 젊은 여자의 얼굴을 클로지업시켜 그린 그림은 냉소적 리얼리즘의 연장선상에 서 있으며, 마우쩌둥의 얼굴을 유리잔에 이입시킨 우 밍종의 작품은 특정한 아이콘의 상징화라는 점에서 중국 팝과의 연계를 보이고 있다. 이번에 출품된 작품들의 대다수는 주 키의 말처럼 중국의 사회, 정치, 문화적 상황에서 소재를 구한 것들이다. 지극히 트렌디한 경향을 보이는 이들의 세계는 비록 형상화나 표현에 따른 테크닉은 우수하다 하더라도 전형화돼 있으며, 지극히 상투적인 측면을 보이고 있다. 내게는 그것들이 마치 “중국의 현대미술은 이런 것이다”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팝=돈’의 미묘한 상관계가 마치 블랙홀처럼 아방가르드의 숭고한 정신을 해체하고 영혼을 빨아들이는, 그 위험한 자장(磁場) 속으로 중국의 현대미술이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적이 걱정스러운 것은 비단 필자만의 기우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