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미술계 결산


올 해는 광복 60주년을 기념하는 해다. 해방 이후 한국현대미술사의 궤적이 적지 않은 시간줄달음질 쳐서 이룬 지형도가 만만치 않은 시간의 힘과 무게를 느끼게 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미술이 무언을 고민하고 어떤 것을 성취해왔으며 남긴 과제는 또 무엇이었는지를 진지하게 성찰하는 그런 시간이 필요한 해였다. 그러나 과연 그런 논의와 사고가 번성했는가에 대해서는 의심스럽다.

올 미술계 이슈 중 이중섭 작품의 위작시비는 압권이다. 유족과 미술품감정협회가 대립각을 세우고 진위공방을 벌였는데 잠정적으로 위작으로 판결났지만 여전히 진행형이다. 검증제도 미비와 전문가들의 안목과 이론에 저항하는 미술시장과 유족 등이 어우러져 빚어낸 활극이다. 그 다음 사건으로는 김인규 교사에게 내려진 대법원의 유죄판결이다. 검찰과 법원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집단임을 증거하고 있는데 올 한해도 그런 징후들은 여전했다. 미술계에서는 이번 사건을 좀 과장해서 표현한다면 ‘법이 예술의 영역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표명한 사건’으로 인식하는 분위기다. 성기노출을 음란이 기준으로 삼고 있는 법원의 이번 결정은 예술표현의 자율성 문제를 새삼 제기하고 있다. 전후맥락과 작가의 의도를 이해한다면 그런 판단이 나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간 최경태 사건과도 동일한 맥락에서 고민해보아야 할 대목이다.

또 하나 의미심장한 사건으로는 다름 아닌 친일미술인의 명단 공개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에서 밝힌 이번 명단에는 미술인이 모두 25명 기재 되어있다. 몇몇은 빠져있고 또 정확한 명단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그래도 대표적인 친일미술인은 망라하고 있다.
‘친일협력단체와 기관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한 미술인, 총후미술전, 결전미술전, 단광회, 조선미술가협회, 국민총력조선연맹문화부, 종군화가개인전, 징병제 실시기념사업회 등에서 활동한 작가를 검토대상으로 삼았다고 밝혔는데 그에 따라 구본웅, 김경승, 김은호, 김인승, 노수현, 박영선, 배운성, 심형구, 윤효중, 이상범, 장우성, 정종녀, 정현웅 등이 그들이다. 그러나 이 원로작가들은 자신들의 행적에 대해 살아생전 참호의 고백이나 반성과는 무관한 길을 걸어왔고 오히려 자신의 친일미술인 논의에 결사적으로 저항해왔었다. 어쩌면 그런 점이 우리 미술사의 가장 불우하고 황폐한 풍경을 만들어온 결정적 지점인 것 같다.


얼마 전 관객 100만을 돌파한 국립중앙박물관 역시 올 해 가장 커다란 뉴스거리다. 본격적인 한국 최고, 최대의 박물관의 탄생과 그에 걸맞은 전시문화를 기대하려는 의욕들이 관객수치로 표현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아울러 사간동, 기회동 일대에 화랑들이 새롭게 선을 보이면서 이제 화랑가의 지형도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선컨템포러리, 원 앤 제이, 예나로, 빛 갤러리 그리고 인사동에도 작은 화랑 여러 개가 새로 문을 열었다.
그런가하면 국제적인 미술행사도 줄을 이었는데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는 입장객이 총 50만 명을 기록했고(수치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경기도 세계도자비엔날레,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그리고 51회 베니스비엔날레 등이 있었던 해다.

고유섭 탄생100주년과 관련된 일련의 행사는 올해 가장 큰 의미를 지닌 것이었는데 대규모 학술대회와 출판 등이 뒤를 이었다. 춘곡 고희동 40주기전시와 문신10주기, 유경채 10주기 전시 등도 뒤를 이었다. 한편 이구열선생이 이끌어온 한국근대미술연구소 30주년을 기념하는 논총의 출간도 의미 있는 행사였다.

올해는 무엇보다도 일본현대미술이 인기였다. 대표적인 전시로는 단연 나라 요시토모전을 꼽을 수 있다. 오타쿠세대의 네오팝, 그리고 애니메이션과 그래픽디자인을 넘나드는 그이 그리기는 여러 전시전략 및 출판 등과 맞물리면서 동시대 젊은이들에게 커다란 파장을 남겼다. 야요이 쿠사마, 케이팝과 제이팝 등의 전시를 통해서도 일본 작가들의 작업세계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컸는데 이는 일본현대소설의 선풍적인 인기와도 궤를 같이 하는 독특한 문화현상이다. 동일한 선에서 중국현대작가들의 작품도 자주 선을 보였다. 이들의 냉소적 사실주의와 정치적 팝은 오랜 사회주의 전통과 사실력을 기반으로 해서 왕성한 문화적 소화력을 축으로 전개되는데 중국작가들의 앞날의 행보에 가능성을 보여주는 일련의 전시들이었다.

아울러 유럽현대사진, 특히 독일 사진작가들의 전시도 줄을 이었다. 살가도의 다큐멘터리 사진, 칸디다호펴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와 토마스 스트루스 등의 전시가 돋보였고 특히 김영섭사진화랑의 일련의 기획전시와 외국작가소개 등은 매우 활발한 행동반경을 보여주었다. 대다수 젊은 작가들이 지나치게 독일 사진작가들의 작업을 모방하고 추종하는 폐단도 눈에 띈 한해였다. 정동석, 배병우, 김수남, 김옥선, 조습, 이상현, 한국민중80인의 사진첩 등의 전시가 돋보였다.

주요 기획 전시로는 서울청년미술제포트폴리오2005, 시간을 넘어선 울림전, 반갑다 우리민화, 단원대전, 픽쳐스, 당신은 나의 태양, 한국미술100년 1부 전시 등이 주목되었다. 개인전으로는 김홍주, 오경환, 최상철, 조습, 배영환, 바이런 킴, 함양아, 서은애, 박윤영, 정재호, 허윤희, 천성명, 김준, 김주연, 김주현(조각), 홍경택, 이지은, 박찬경, 김홍석, 이종구, 김정선, 이동욱, 민재영, 홍수연 등의 개인전시가 기억나는 한 해였다.

여전히 어려운 미술시장, 사실은 실종되고 소문만 무성한 동네, 진지함을 가장한 폭력들이 여전히 타인들을 향해 칼끝처럼 겨냥되던 한 해를 겨우 보내고 있다는 느낌이다. 미술인들 모두 차분하게 자신을 되돌아보고 남의 이야기 말고 자기 이야기를 진솔하게, 최선을 다하는 한 해를 맞이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미술인들이 착해져야 할 시기다.

- 서울아트가이드 2006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