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림의 근작에 대한 짧은 단상
오래전부터 최근까지 나는 그의 작품을 적잖게 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의 작품의 반경이 워낙 넓고 다양해서 쉽게 정리되어 다가오진 않았다. 사실 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너무 거칠고 단순하게 파악하고 정의해버리는 것보다 그 자체를 그대로 두고 받아들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김구림 하면 떠오르는 것이 특정한 스타일이나 관습적인 그림의 틀로 저당 잡히지 않는 작가, 모더니스트로서의 아방가르드 정신에 충실한 이, 장르를 넘나들면서 부단히 기존 미술의 진부한 관념과 획일적 사고를 이탈하고 유출시키는 작가 등등이 우선적으로 각인된다. 아니 늘 새로운, 낯선 감수성과 미술에 대한 고정되지 않은 사유를 선보인 작가라는 생각이다. 다분히 추상적이고 모호할 수 있는 인상적 정의이지만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진정한 모더니스트의 목록에 우선적으로 올려질 작가란 점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멀리서 그의 작품을 보다가 우연히 그의 근작을 일별할 기회를 가졌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작가와의 만남이란 것도 인연이 있는 것이라 그 때를 기다릴 수밖에 도리가 없다.
평창동에 있는 그의 집/작업실은 전망이 좋은 카페 같았다. 창으로 기막힌 산이 내려와 있고 커다란 명품 스피커와 한 벽 가득 빽빽하게 꽂혀있는 CD, 곳곳에 걸린 그림들과 오브제들이 마술처럼 뒤섞여 있는 공간이었다. 그 공간 자체가 전시공간이자 오브제화 된 영역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음악을 듣고 산을 바라보면서 온갖 사물들을 연결하고 이미지를 덧붙여 시각적인 연출을 도모하고 집행한다. 그는 온갖 사물들이 혼재한 고립되고 안락한 왕국에 있는 마술사, 연금술사 같다. 페인팅과 함께 오브제작업이 주를 이룬다. 늙은 나이에 여전히 작업이 주는 묘미는 역시 놀이적 재미일 것이다. 상상력과 창의력이 물처럼 흘러 다니는 곳,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과 기이한 연출력, 그리고 현대문명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메시지와 관능적인 이미지들이 겹쳐있는 작업실에서 그는 놀라운 작업량을 축적시키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그곳에서 70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무언가를 만들고 그리는데 대한 흥미를 잃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의 삶이 다하는 순간까지 지속해서 현재라는 시대성을 ‘타킷’ 삼아 지칠 줄 모르게 이미지와 오브제를 빌어 미술적으로 발언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작업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우선 디지털로 출력 받은 사진이미지 위에 추상표현주의적인 붓질을 과감하게 얹혀놓은 페인팅이 있다. 기존의 이미지(사진)위에 기생 하는 이 그림은 일종의 오브제 회화인 셈이다. 디지털이미지의 시대에 아날로그적인 화가의 붓놀림과 제스처가 한 화면에 공존하고 있는 형국을 보여준다.
바탕을 덮고 있는 사진이미지는 관능적인 백인 여자의 얼굴과 몸의 일부가 크게 확대된 것이다. 몸의 일부가 과도하게 증폭되어있는 이 이미지는 디지털로 대변되는 현대(서구)문화와 시각이미지, 아울러 포르노이미지와 동시대시각문화의 친연성을 동시에 아우르는 복합적인 의미를 안고 있어 보인다. 그 위에 한 순간에, 직관적으로 갈기듯 그어놓은 붓놀림이 드라마틱하다. 꿈틀거리고 기에 충만한 이 붓질은 차갑고 관능적이고 황폐한, 물화된 문화에 대항하는 한 개인, 예술가의 몸짓, 절박한 제스처와 음성을 닮았다. 그 붓놀림에는 여전히 한 작가만의 고유한 몸짓과 회화에 대한, 미술에 대한 자존적인 존엄성이 깃들어있고 생명력이 꿈틀댄다. 그런가하면 동양의 모필 문화의 상징적 기호역할도 한다. 그러니까 이 붓질은 생명의 불모성을 초래하는 서구문화, 디지털이미지 등에 대한 대안적 측면도 있고 아울러 그것들을 끌어안는 측면도 노정한다.
그는 늘상 두 가지 상반된 것의 충돌과 갈등 구조를 동시에 드러내는 한편 이것과 저것의 극단적 선택 대신에 두 가지를 모두 넘어서는, 혹은 동시에 포용하면서 그 경계의 날을 주목시키는 편이다.
사실 그의 작업실은 페인팅보다도 온갖 오브제, 그러니까 기계부품이나 마네킹 및 다양한 잡동사니들로 넘쳐난다. 이른바 정크아트에 가까운 그의 오브제작업들은 흡사 초현실주의자들의 작업과 작업실을 보고 있는 느낌을 준다. 초기에 백남준이 텔레비전모니터와 함께 다양한 오브제를 활용한 작업을 한 이유의 일단은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구해 이를 활용할 수밖에 없었던 점에 있었다고 한다. 특히 미국이란 사회에서 작가들이 작업하는데 드는 비용을 생각한다면 그의 입장이 납득될 것이다.(뉴욕에 있는 강익중이나 임충섭, 변종곤 등의 작가들이 한결같이 오브제를 다루는 이유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김구림 역시 자기 삶의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값싼 재료들을 활용해 흥미로운 작업을 만들고 있다. 사실 좋은 작업은 경제적인 작업인 것이다.
동시에 그가 문제시하고 발언하고자 하는 동시대의 삶과 문화는 결국 수많은 사물, 물질들이 대변하고 있다. 현대인들은 사물과 물질, 이미지의 포화 속에 잠식당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더욱 극대화되거나 정교해지고 압도적이 되어 간다. 따라서 작가의 할 일은 그것들을 통해 역설적인 발언을 하고 그 사물들을 또 다른 언어로 환생시키는 것이 되고 있다. 아울러 뒤샹 이래로 작가의 손에서 새로운 것을 마치 신의 능력처럼 만들고 재현한다는 관점은 큰 도전을 받았고 따라서 이후 작가들은 이미 기존에 흘러넘치는 수많은 사물들에 말을 건네고 이를 변형하고 조작하면서 딴지를 걸거나 개입하는 방향으로의 선회를 보여준 바 있다. 그리고 이런 방식은 오늘날 현대미술의 주류적인 방법론이 되었다. 사실 김구림의 이 오브제작업은 이미 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 면에서 그는 일관되게 기존의 사물과 이미지를 차용하고 이를 해체하고 변질시키는 ‘놀이’를 감행해온 작가다. 그리고 그 놀이는 오늘날까지 유지되는데 그런 측면이 근래에 들어와서 더욱 짙어지고 있다는 인상이다. 그가 새삼 오브제들을 연출하면서 자신의 생각의 구체적인 외화과정을 즐기고 있다는 느낌, 여전히 손을 빌어 무언가를 만들고 그리고 덧붙여나간다는 흥미를 잃지 않으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근작에서는 책이나 마네킹이 주된 대상이 되고 있다. 여기서 책(텍스트)은 문자, 사고, 이성, 주체의 발화를 담고 있는 매체로 다루어지는 것 같다. 마네킹은 의사재현, 가짜, 복제, 허구와 불모성의 상징으로 다루어진다는 생각이다. 아울러 그는 컴퓨터 부품이나 기계부속물, 부품 등을 주로 활용한다. 이것들을 주된 바탕으로 삼고 그 위에 사진이미지와 이러저러한 작은 사물들이 첨가되고 이미지와 문자가 개입하면서 무척이나 흥미진진한 볼거리를 만들어 보인다. 여기에 첨가되는 사진이미지는 대부분 포르노이미지들이다. 젊은 여자들의 관능적이고 성적인 몸이 빚어내는 이 하드코어이미지는 기계적이고 차갑고 건조한 문명과 문화에 대응하는 생명의 이미지로 차용된 것 같다. 그에게 이 여성의 몸, 성적 포즈들은 한편으로는 뜨거운 생명과 본능의 기호로 작동하고 인간적인 본질을 이루는 그 어떤 것으로 드러난다. 여기에는 부득이 남성적 시선의 기호가 작동한다. 사실 그의 근작 모두는 이런 에로티시즘적 요소가 그 중심에 버티고 있다.
<간략하게나마 그 작업들을 보면서 이 작가가 지닌 상상력, 탁월한 연출력, 사물들을 초현실적으로 연출하고 구사하는 놀라운 솜씨에 새삼 놀랐다. 그는 아이디어나 건조한 개념, 관습적이고 형식화된, 그래서 이미 죽은 회화 언어로 말하기보다 끊임없이 자기 생을 이루는 현재의 사물, 이미지를 통해 동시대 문화와 삶에 대해, 잃어버린 감수성과 상상력에 대해, 진정한 인간의 생의 욕망에 대해 기술記述하는 작가고 그 기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