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아파트가 있는 풍경
어린 시절 도심 변두리에 살던 나에게 아파트란 공간은 일종의 별천지였다. 아마도 60년대 이후 모든 한국인에게 그 아파트란 공간은 근대화의 상징, 혹은 부와 성공과 안락한 자본주의의 승리를 표상하는 이미지였을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의 생의 목표가 다름 아닌 더 큰 평수와 더 첨단의 시설로 마감된 아파트로 진입하는 것이 되었다.
<정재호는 종이 위에 먹과 채색물감을 사용해 서울의 오래된 아파트 전경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아파트 정면을 눈앞에 일으켜 세우듯이 화면 가득히 재현했다. 그가 찾아서 그린 아파트들은 대부분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에 세워진 것들이다. 남산 순환도로에서 남대문으로 내려가는 길에 위치하고 있는 이 회현동 시범아파트는 마치 계곡이 푹 꺼져 들어간 곳에 다소 기괴하게 위치해있다. 남산으로 이어지는 경사면을 깎아 그 위에 옹벽과 축대를 이용한 계단형의 기초를 다지고 좁은 공간 안에 아파트를 밀어 넣었기 때문이다. 35년 동안 이 아파트는 서울 한복판에서 살아왔지만 이제 곧 사라질 것이다. 오래된 아파트는 도시빈민들의 주거지이며 노후하여 안전하지 않기 때문에 시급히 철거되거나 재건축되어야 하는 도시의 흉물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빠른 회전을 보여주는 자본의 순환 속에서 아파트란 공간 역시 그만큼 빨리 소모되어야 하고 자꾸 리모델링 되어야 한다.
<작가는 오래된 아파트가 가진 풍부한 의미에 새삼 주목한다. 그곳은 분명 낡고 스산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삶이 이루어지고 있고 생애의 고단함과 수많은 사연들이 덕지덕지 붙어있고 눈물겨운 목숨들이 바글거린다. 도시가 노후화되는 것은 도시의 건물이나 구조물이 오래되어서가 아니라 도시가 실패했기 때문에 그 지역이 노후화되어 간다고 한다. 서울은 낡고 오래된 것들은 가차 없이 사라지고 경제적 투기와 자본의 논리, 욕망에 의해 새것과 고급스러운 것들만이 추구되고 다시 지어질 뿐이다. 서울은 끊임없이 과거를 부정함으로서 존재한다. 오로지 현재만이 살아있는 유령 같은 도시다. 서울이라는 거대 자본주의 도시 구조 속에서 더 이상 경제적 가치를 가지지 않는 늙은 아파트들은 관리가 부실해지고 이내 황폐해진다. 작가는 실패한 이 도시의 부속물에 대해 멀찌감치 보고 흉물스럽다고 말하기 전에 그 앞에 바싹 다가서 보기를 권한다. 그 안을 거닐면서 낡은 창틀과 어지러운 베란다와 스티로폼으로 만든 소박한 화단, 장독대을 보도록 권유한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일상과 생의 무늬를 보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