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화-신명과 애증의 시선



이상국은 유화와 판화를 함께 하는 작가다. 우리 화단에서 이런 일관성은 비교적 드물다. 서양화가들 중 판화작업을 병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두개의 작업이 분리되지 않고 함께 적극적으로 추구되는 경우는 분명 희귀하다. 단순한 회화작업의 판화적 번안에 머물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상국은 유화와 판화 작업 모두를 통해 상호 보조하는 동시에 두 개의 영역에서 결핍된 부분들을 채워나가고 둘 모두를 끌어올리는 장치로서 다룬다. 이는 일종의 균형을 잡는 일이기도 하다. 둘 다 평면에서 이루어지는 일이지만 회화가 표면을 바르고 채워나가고 붓질에 의존한다면 판화는 나무판을 깍고 파고 잘라내면서 흑백의 긴장을 추려내는 이다. 그는 그림을 그리다가 판을 찍어 보기도 하고 판화로 한 것을 가지고 다시 유화 작업을 한다. 그리고 이 작업은 수없이 반복되는 편이다. 사실 이 두 영역은 하등의 차이가 없을 수 도 있다. 그는 자신의 조형적 성취감과 완성을 향해 자신이 납득하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밀어 올리는 과정에서 판화와 유화 모두를 필요로 한다는 인상이다.
물감을 붓으로 바르고 덮어나가는 일과 칼을 들고 나무를 깍아 내는 행위 사이에는 매번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이 기다린다는 공유성이 있다. 선을 어떻게 그을 것인가, 이 부분을 칠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칠한다면 어떤 색을 어떻게 칠해야하는가, 남겨둘 것인가 채울 것인가?
“나는 그림을 그리는 일은 항상 무당이 칼 위에 선 것 같이 긴장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무당은 칼 위에서 다른 마음을 먹으면 발에 피가 나는데, 작가가 그렇지 않다면 곤란하지요”(작가노트)
이상국에게 회화와 판화에는 기묘한 이율배반이 하나로 뒤엉켜있는 셈이다.
그에게 회화와 판화가 서로 다르지 않다. 그는 말하기를 둘 다 신명이 나야 되며 그것이 바로 완성으로 가는 길이라고 한다.
신명이란 단어를 접하다보니 오윤이 생각난다. 내 기억에 의하면 오윤은 신명과 맥잡기 등에 관한 말을 남겼고 그것을 그림 속에 적극 실천해 나간 이였다. 전통문화예술뿐 아니라 민간인의 미의식 일반에 나타나는 신명은 본질적으로 ‘스스로 신이 나는 것’을 중시한다. 몸이 기와 관련하여 생기, 생동을 중시하는 서민들의 미감과 관련되며 자연과의 교감이 컸던 전통시대와 관련되는 미감일 것이다.
이상국에 의하면 판화는 직관적인 신명을 가능케 한다. 유화가 지속적인 맛을 준다면 판화는 직관적인 것이다. 바로 그런 측면이 그가 판화에 매료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마도 이런 신명과 관련된 것은 그가 대학시절부터 지속적으로 접한 한국의 전통연희와 풍물, 판소리 등에 대한 천착으로 인해 민족전통의 정서가 내부에서 자연스레 발효된 부분일 것이다.
<그의 작업실에 걸린 유화와 판화들은 상호 참조적인 대상으로 마주하고 있다. 그것들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서로 마주하면서 조금씩 가다듬고 거듭되는 첨삭을 견뎌낸다. 그런 면에서 이상국의 제작방식이나 소재, 대상은 거의 변함이 없고 작품은 중후한 세월과 시간의 녹을 기꺼이 받아낸 흔적으로 매번 환생한다. 그것은 과거의 것이면서도 늘 현재의 것이다. 그가 찍고 그려낸 산동네 풍경이나 사람과 나무, 바다는 동일하고 반복적인데 그 반복 속에는 어떤 완성의 정점을 향해 육박하는 기운과 조형적인 안목의 궁극을 조탁하는 예리함을 드러내는 과정을 관통해오면서 닳고 마모되고 숙성된 그의 대상들이 조금씩 다른 얼굴로 나타난다. 그는 매번 다르게 다가오고 보이는 그 대상들을 어떻게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 대상이 지닌 생명의 약동이나 기운을 어떻게 하나의 결정적인 선으로 혹은 선과 면과 색으로 구성해낼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질문해보고 있다. 사실 한 덩어리의 돌을 잘 그린다는 것도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다. 중국화론에 보면 “5일에 돌 한 덩어리를 그리고, 10일에 물 하나를 그린다”는 말이 있다.
판화로 국한하자면 흰색과 검은 색, 여백과 선만을 가지고 무한한 조형의 매력과 선의 기운을 다채롭게 조율하는데 공력을 바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간결하면서도 단순한 화풍이다. 그는 빠른 수법으로 심령에서 순간적으로 느끼는 의상(意象)을 잡아내고자 한다. 그 의상을 판화작업으로, 칼로 추려내고자 하며 동시에 여러 준법/칼질을 실험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우리 화단에서 좀 유별난 존재다. 어떻게 보면 그의 작업은 현대미술의 여러 이즘이나 유파, 혹은 유행이나 패션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유형의 작업을 지속해나가는 편이다. 아니 유행을 타지 않는, 미술의, 회화의 항구적인 대상인 그 자연을 거듭, 거듭 바라보고 느끼고 이해하고 표현하려는, 절박하면서도 절망스러운 그러면서도 조금은 희망적인 어떤 순간을 드러내는 일에 의탁한 화가란 생각이다. 이런 태도는 마치 산수화나 사군자를 치는 문인사대부의 의식 및 수행과 밀접한 연관이 있어 보인다.
이상국의 그 같은 작업방식은 그의 삶에서도 엿보인다. 그는 항상 현실과 예술, 인생과 작가적 삶, 전통과 현대, 동양화와 서양화, 형식과 내용의 극단에서 나름의 균형을 잡아왔던 것 같다. 그는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현재 유화와 판화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유화물감과 붓을 칼처럼 다루는가 하면 목판의 칼을 모필처럼 쓴다. 나는 그의 판화가 부드럽고 날카롭고 핵심적인 붓놀림을 그대로 떠낸 것이라고 본다. 그러니까 그 판화는 붓이 서지 않으면 판화는 될 수 없다는 것을 은연중 말하고 있다.
그는 판화를 통해 그림을 보니까 전혀 새로운 안목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목판을 하게 되면 칼을 들고 매번 이거냐 저거냐를 분명히 선택하게 되는데, 이런 과정에서 조형의 세계를 더욱 단련해 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하염없이 ‘적절한 것’이 나올 때까지 다듬는다. 목판을 통해 그는 대상이 본질이랄까, 핵심을 단순하게 추려낸다. 아울러 흑백의 대비는 구성을 옥죄듯이 긴장감 있게 몰고 간다. 거칠면서도 단단한 칼질과 ‘안으로 옥죄면서도 밖으로 힘차게 뻗치는 절절한 인력이 수축과 확대의 공간 증식을 적절히 마감’하는 것이다.’ 그로인해 조밀하면서도 조밀하지 않고 성글면서도 성글지 않는 화면이 드러난다.
“성글함이 없으면 조밀함을 이룰 수 없고, 조밀함이 없으면 성글음을 나타낼 수 없다. 그러므로 허실이 서로 살아나고 소밀이 서로 생기면 회화의 일은 이루어진다.”(반천수)

이상국은 대상을 재현하는가 하면 그 대상의 본질을 추려나가고 가시적인 대상에서 비가시적인 힘과 기를 찾는다. 그는 형태의 닮음을 구하지 않고 생동한 기운을 구한다. 만물은 영기의 화신이므로 만물이 영기를 발산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고 그것을 여하히 표현하느냐는 것은 화가의 몫이다. 그는 보면서 보이지 않는 영역을 시각화하는데 관심이 있고 보이지 않는 것에서 볼 수 있는 것을 찾는다. 그래서 구상화로 보이면서도 일반적인 사실적 그림과는 차원이 다르고 추상화로 다가오면서도 예의 형식적 관점이나 논리성과는 별개의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런 구분 자체가 모호하고 별 의미가 없다는 발언일 수 도 있다.
우리는 분명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낀다. 시각작용은 온 몸의 총체적 반응이고 모든 감각기관의 현현과 맞물려있다. 내 앞에 존재하는 산이나 나무는 그저 눈에 박힌 외형적 존재의 실루엣만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는 나무의 수런대는 수액들의 즐거운 함성이나 나뭇가지의 세찬 흔들림, 바람에 뒤척이는 몸통, 사계절의 변화 속에서 매번 다르게 존재하는 나무를 거듭 만난다. 아울러 나무를 볼 때마다 느끼는 나의 심리도 다양하다. 그는 수시로 실제 물체를, 자연대상의 치밀한 관찰 속에서 조형을 취해나간다. 그리고 그것을 다복다복 선으로, 칼로 다듬는다.
“제 필법은 좀 특이하다고 할 수 있는데 현장을 스케치한 것을 다시 목판에 칼로 떠본 후에 유화를 그리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현실의 자연이 아니고 이미 조형화된 목판화 작업을 놓고 재구성한다는 점에서 이미 그릴 때부터 일정하게 현실에서 이탈했다고 할 수 있다.”
(작가노트)

외형적으로는 단단한 조형과 모더니즘적인 형식을 보여주지만 늘상 주제의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거나 대상의 사의를 추구하는데서 벗어난 적은 없다. 그는 항상 자신의 삶의 반경에서 바라보고 이해하고 느꼈던 것들을 충실히 조형적으로 옳게 올려놓는 일에 관심이 있는 작가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이 설정한 기준과 가치에 엄격하고 또한 철저하다. 그는 분명 작업이란 모름지기 엉덩이의 힘에서 나와야 한다고 믿는 것 같다. 충분한 작업량이 결국은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작가란 존재는 모여서 떠들고 토론하고 스터디하고 비판만 해대고 모든 것을 말로 해낼 것이 아니라 결국은 작업실에서 혼자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고독하게 보내느냐에 달려있다. 이 고집스러움이 70년대와 80, 90년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변함없이 자신의 미술을 지켜낼 수 있는 강력하고 질긴 동인 이였다는 생각이다. 아울러 대학동료인 오윤, 오경환 등과 함께 탈춤, 국악, 우리 것에 대한 심취와 매료 및 전통미술에 대한 탐구가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전통과 민속에 대한 이 관심은 비로소 자신의 그림,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독려한 바탕이 된 것이다. 당시 그는 ‘뿌리 깊은 나무’ 등의 책자나 동주선생의 강의를 통해 전통예술세계를 접하고 단원이나 혜원, 겸재를 알게 되고 고구려고분벽화양식을 접했으며 나아가 전통연희의 맛과 풍류를 비로소 익혔다고 한다. 70년대에 박정희에 의해 강제된 관제적인 민족문화가 한편으로는 근대화과정에서 급격히 망실한 우리의 전통문화에 대한 진지한 자각과 모색의 길을 역설적으로 열어놓은 측면이 있다.
<미술학교를 갓 나와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 지 모를 때에 특히 현대미술의 와중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고심하고 있을 때 맞닥뜨린 민화의 독특한 아름다움의 광채는 가히 충격이었다고 고백한다. 거친 호흡, 감동적 접근, 직접성, 형태의 단순화와 평면성, 선조의 독특한 힘 등은 그가 민화에서 받은 조형적 감동을 적절하게 나타내주는 특성이었는데 이는 자연스레 판화와 회화작업으로 연결된다. 그는 전통 속에서 깊은 뿌리나 맥을 찾되 자기 나름으로 소화하여 현실적인 상황과 결합시키고자 하였다.
중학교미술선생을 하면서 주어진 자투리 시간에도 작업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판화였다. 그의 초기 판화는 바로 자신의 학교선생으로서의 체험이 반영되어있다. 동시에 70년대 말과 80년대의 암울한 사회현실의 풍경 역시 슬그머니 묻어나온다. 그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모순이 우리 사회모순의 총체적 집약임을 절감하고 고민했던 것 같다. 생활지도부에 붙잡혀서 꿇어앉아 취조당하는 아이들, 벌서는 아이들, 교무실 풍경, 교감에게 혼나는 동료교사, 술자리, 길거리의 맹인가수, 룸살롱에서 뱀 춤을 추는 여자, 학교주변의 산동네풍경, 공장지대 등은 바로 그런 삶에서 나온 판화들이다. 삶이 땟국이 질질 흐르는 현실의 구체적인 풍경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어렸을 때 국민 학생 때였던가, 조회대 앞에서 추위에 떨면서 하얀 입김을 뿜으며 애국가와 교가를 힘차게 부르면서, 매일 매일 보았던 산동네, 천막교실에서의 2부제 수업, 그러고도 20여년이 지난 후 두 번째 근무했던 학교. 2층 교실에서 수업하다 내려다보았던 해방촌 산동네가 그때와 똑같은 감동으로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였다. 4.19때였던가. 우리 동네 뒷동산에 한 떼의 철거민들이 몰려와 밤에는 집을 짓고 낮에는 경찰이 철거반을 동원하여 헐어대는, 짓고 헐고 옥신각신 하는 모양을 보면서 삶의 억척스러움에 울음을 삼켜본 적이 있었다...나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오늘의 나를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현실로 되돌아와, 나 자신을 인식하고 확인하는 데에서 출발하는 것이었다..나 자신을 온통 벌거숭이로 만들어 표현하고 싶었고, 울고 싶도록 깊숙이 파고드는 외로움을 그리고 싶었다. 그리하여 오늘을 사는 다정한 이웃과 성실한 이웃, 외로움을 아는 이웃,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웃과 오늘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삶의 현장에 뛰어들어 그들과 함께 느끼고, 생각하고 체험하는 데에서 현실을 이해하게 되었고 우리의 공통된 언어를, 진실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림은 그저 그림일 뿐, 억압도 제약도 규범도 없는 자유, 그 자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허재비. 홍동지, 사람, 그 사람, 겨울사람, 공장지대, 마을, 산동네들, 어렸을 때 조회대 앞에서 매일 매일 보면서 느꼈던 산동네와 같은 감동을 가지고 그리고 싶었다.”(작가노트)
생활 주변에서 그림의 소재를 끌어온 그는 서울이 고향이라 늘상 보던 홍제동, 응암동, 해방촌 주변의 산동네를 그렸고 이후 학교 선생으로 있으면서는 교실과 교무실 풍경, 아이들을 자연스레 담아왔다. 이 소재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생활 주변의 삽도들이다. 자신이 선 위치에서 바라보게 되는 산동네와 공장지대. 서울 어디서나 이마에 와 닿는 서울 주변의 암산들, 그런가하면 일상 깊숙이 만나는 사람들과 사상(事象), 맹인가수, 기다림, 슬픔, 벌서는 아이들 등이다. 특히나 교사생활은 교사라는 직업의 부정성에 대한 인식을 심화시켜준 경험이었다고 한다. 인간으로서 정말 견디기 힘든 구조적 모순에 갇혀있고, 어느 분야보다도 일제의 잔재가 깊이 잔존하고 있어서 권위주의나 비리 등이 만연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후 89년 교사직을 영영 떠나버렸지만 교사생활을 통해서 사회생활의 단면을 체험했고 그 속에서 일정하게 자기단련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교직을 떠나면서 이제 그의 판화에는 사람 대신 자연이 들어찼다. 산과 나무, 바다가 온통 판을 채웠다. 전업 작가가 된 후로는 사람의 냄새 보다는 자연에 더욱 천착하고 있다는 인상인데 이는 아무래도 사람을 접할 기회가 이전과 달리 별반 없기 때문이다. 한편 그는 매우 단순한 소재를 통해서도 작가가 지닌 다양한 생각과 체험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무 한 그루, 산이나 바다는 자신의 의미 있는 선택에 다름 아니다. 결국 그림이란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언어가 되어야 한다.
“나로서는 산을 그리면서도 내 시대를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작가노트)
사실 그가 산이나 자연이라는 주제에 집중하게 된 것은 그 같은 소재를 통해서 모더니즘에도 식상하고 한편으로는 이제까지의 민중미술이 작품에도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문제의식을 형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그의 작업은 앞서 언급했듯이 ‘내면에 감추어진 힘의 외연적 질서의 또 다른 형상’이다. 그것은 구상적이면서 동시에 추상적이고 추상적이면서 동시에 구상적이다. 춤추듯 흔들리는 선들은 세계를 고정시키지 않는 자의 포괄성과 우연성으로 충만하다. 그는 자연을 해체하고 다시 재구성하면서 ‘가슴 아픈 느낌과 어떤 새로운 에너지, 기’를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힘이 보는 이에게 전달될 수 있느냐가 작업의 핵심이다.
그림이란 것이 화가가 그려놓은 구도와 색상을 보는 것만으로 멈췄다면 화가와 감상자, 작품과 감상자 사이에 깊은 교감은 이루어지기 어렵다. 훌륭한 그림이라면 말하는 그림일 것이다. 그림은 우리에게 분명 어떤 말을 하고 있으며 이렇듯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그림, 무슨 소리를, 메시지를 들을 수 있을 때 그 그림은 진정 살아있는 그림일 것이다.
화가가 치밀한 구도와 색상으로 그려낸 어떤 생각-이면-은 감상자의 시각을 자극하고 감상자는 자신의 미의식 속에서 그 시각적 인식을 청각적 상상력으로 전환시키게 된다. 다시 말해 감상자는 화가의 그림이 전달하는 어떤 말, 어떤 욕구ㅡ 어떤 생각과 어떤 주장을 직접 자신의 귀로 듣는 경험을 통해 본질적 인식에 다다르게 된다. 따라서 화가가 그려내는 이면은 감상자의 환청-청각적 상상력-속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진정한 미술, 예술은 인간의 감관을 총체적. 유기적으로 교호하게 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여기서 이면(裏面)이란 사물의 표면에 나타나지 않은 내면을 가리킨다. 표면이 현상이라면 이면은 그것의 본질일 수 있다. 동양의 예술은 표면보다는 이면을 잘 그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 왔다. 흔히 판소리의 예술성을 가늠하는 중용한 잣대로도 이면을 말한다고 한다. 판소리에서 광대가 고도의 성음과 선율로 그려낸 이면은 관중의 청각을 자극하고 관중은 자신의 미의식 속에서 그 청각적 인식을 시각적 상상력으로 전환시키게 되는데, 다시 말해 관중은 광대의 소리가 빚어내는 어떤 장면, 어떤 사실, 어떤 정황을 직접 자신의 눈으로 ‘그려서 보는 것’이란다. 그러므로 광대가 그려내는 이면은 관중의 상상력 속에서 비로소 완성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림 역시 그 이면이 들리고 보여질 때 그것을 보고 느낄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이상국의 판화는 그런 이면에 맞닿아있다.
이상국의 판화는 칼들이 춤을 춘다. 아니 모필의 선들이 살아 약동한다. 그것은 대상의 재현이나 실루엣이 아니라 대상 너머에 있는 영기와 존재의 숨결, 호흡, 맥박과 같은 것이다. 신명나는 울림이 있고 거친 한 숨도 있고 서러운 눈물도 가득하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서럽다. 그것들은 모두 생사의 찰나 속에서 거듭난다.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눈과 몸도 매번 그렇게 다시 태어나고 죽는다. 그의 판화 속에 등장하는 산동네와 사람들의 모습, 산과 나무와 바다 는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와 현실적 풍경의 상징들이고 그가 파낸 선은 그것을 매번 바라보고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연민어린 시선들의 어지러운 교차와 흔들림과 애증들이 만들어낸 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