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비트루비우스적 인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비트루비우스적 인간]

미셀 푸코에 의하면 근대 이전의 시대는 유비analogy를 통해 세계를 이해했다. 가령 사자의 몸뚱이에는 힘이, 독수리의 눈빛에는 왕자의 위엄이 새겨져 있다고 믿었다. 유사성의 한 형식인 유비는 논리적인 차원에서는 구별되는 요소들 사이에 통로를 만들어준다. 유비는 하나의 중심점으로부터 무한한 수의 관계들로 확장될 수 있으며, 전 우주의 형상들은 한데 모여들기도 한다. 이때 어느 방향으로든지 통하는 공간상의 특권을 가진 중심점이 존재하는데, 이 지점이 바로 인간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은 르네상스의 인식론적 공간의 이미지가 바로 구(球)임을 알려준다. 여기에서 인간은 모든 상응관계의 중심점이 되어, 모든 사물의 척도가 된다. 그는 ‘인간은 세계의 모형’이라고 하였다. 이제 인간은 자기 자신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러나 레오나르도는 자연을 보다 잘 인식할수록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르네상스 시대에 중세의 상징적 우주는 원근법같이 사물을 구성하는 체계적인 언어로 변화한다. 르네상스 인에게 원근법은 인간주체가 자기가 정한 형태를 우주에 부여함으로서 우주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그 주체는 이 새로운 상징적 세계의 중심을 차지하여, 자신의 척도에 따라 세계를 해명하고 실재를 재구성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레오나르도는 이러한 기하학적 도식을 넘어서 육안을 통한 직접적인 경험에 접근했다.
그는 시대의 언어와 직접 관찰에 근거한 생생한 사물들과의 간극에서 작업한 독특한 작가였다. 그는 시대의 도식성과 거리를 두면서, 오직 자신의 눈을 믿고 세계전체를 구석구석까지 답사함으로서 자연의 초이질성을 발견했다. 그의 수많은 데상은 그가 사물의 외관을 치밀하게 검토하고 최대한 정확하게 묘사하고자 했음을 보여준다. 이 새로운 감각의 세계에서 경험은 이성보다 우선 시 되었다.
실제 관찰을 통해 판에 박힌 도식을 극복할 수 있었던 레오나르도가 자연을 관찰할 때 매혹된 것은 바로 자연의 세부이며, 자연을 구성하는 마디였다. 자연의 무한한 경이로움 앞에 선 그의 손아래에서 엄청나게 많은 기괴함이 그려졌다. 바사리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사이를 오가는 그의 윤곽선을 격찬하였다. 레오나르도는 예술적 창조가 반드시 자연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고 믿었지만, 동시에 예술창조에 있어서 우연의 역할도 인정하였다.
동시대의 다른 화가들이 단 하나의 비례규범을 만들어 고정시키려고 한 것과는 달리, 그는 개성적인 것과 특수한 것을 중시했다. 그의 방대한 자연탐사의 결과인 수많은 드로잉들은 단순히 과학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는 과학이 사물의 양을 생각하는 반면에, 예술은 사물의 질을 생각한다고 하였다. 그는 자연도 살아있는 것으로 간주하여, 폭풍이나 대홍수같이 움직이고 있는 힘의 문제에 많은 관심을 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