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고 싶다
-Turner, [Mortlake Terrace],1826년.




황혼의 태양 빛을 가득히 받는 가로수들과, 그 뒤로 보이는 강, 그리고 강 위에 떠있는 배들은 오후의 평화와 무상한 삶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전달한다. 레이스처럼 부드럽고 풍성한 나뭇잎들은 황금빛 대기와 어우러진다. 지는 해와 더불어 강물에 떠내려가는 듯한 배 위의 사람들은 인생에 대한 터너의 비관주의적 정서를 나타낸다. 여행을 좋아했던 터너는 특정한 장소에 대한 감수성을 전달하려했다는 점에서, 영국 낭만주의 풍경화가의 대열에 선다.

D. 레이놀즈는 터너의 초기작품들이 실제의 장소들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지형학적 풍경화의 전통에 속한다고 지적한다. 이것은 또한 영국의 조경에서 유행하던 ‘풍려적인pictureque’ 전통에 속한다. 풍경이 그 자체로 보호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은 18세기 전반 영국에서 처음 나왔다고 한다. 보호되어야 할 것은 이탈리아어로 피토레스코pittoresco, 즉 ‘그림과 같은 아름다움’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픽쳐레스크라는 용어가 파생되었다. 관념적인 풍경을 넘어서, 현장 사생의 전통을 연 화가 터너는 그 장소에서 곧바로 그림을 완성시킴으로서, 장소에 대한 직접적인 느낌을 전달한다.

그러나 그것은 건조한 사실주의는 아니었고, 대자연에 대한 신비와 경외가 간직되어 있다. 이는 가늠할 수 없는 무한한 시간과 공간, 그리고 거대한 자연력과 대면한 왜소한 인간이라는 낭만주의적 주제이기도 하다. 물론 터너의 그림은 형식적인 면에서 고전주의적 특징도 보여준다. 요컨대 낮은 수평선과 전경, 중경, 후경으로 나뉘어진 장면, 그리고 부드러운 광선의 대기효과 및, 관객을 화면 깊숙히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는 중앙의 요소--이 그림에서는 화면 밑단의 돌 벤치가 관객의 시선을 화면 안쪽으로 유도한다--가 그것이다.

터너의 그림은 내용 면에서 낭만주의에 속하지만, 실제의 지형에 근거를 둔다는 점에서 사실주의적이고, 균형 잡힌 구도를 견지한다는 점에서 고전주의적인 면이 있다. 하기야 풍경화의 일가(一家)를 이룬 대가에게 이러한 인위적 구분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다. 터너는 서구 미술사상 가장 훌륭한 색채화가 중의 한사람으로 손꼽힌다. 그는 자연광에서의 색채에 대한 탐구로, 프랑스 인상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터너에게 자연이란 너무 풍요롭고 다양하기 때문에 고전주의적인 견고한 틀을 벗어난다. 모든 경계를 무너뜨리는 대기의 효과는 자연의 무한한 변형 능력을 강조한다.

‘고전적 예술은 한정적인 것을 묘사하고, 낭만적 예술은 무한한 것을 암시한다’는 시인 하이네의 말은, 낭만주의와 고전주의를 대조시키는 키워드이다. 터너의 경우 다듬어진 화면이나 정확한 윤곽, 그리고 조각적인 볼륨보다는 거친 붓질이나 색채를 강조하는 낭만주의 전통에 속한다. 또한 낭만주의는 절멸해 버린 것에 대한 숭배’를 보여준다고들 한다. 석양 가득한 강물 위에 떠도는 작은 인간들은 잠시 머물다 저 멀리 사라져 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사색을 불러일으킨다. 이 그림에서 삶의 덧없음을 가리키는 해질녘의 황혼은 삶의 신비와 우수를 전달한다.

터너는 그의 다른 그림에서 무덤이나 폐허, 옛 수도원 같은 이미지로 문명의 몰락을 묘사했으며, 은둔에 빠진 말년으로 갈수록, 빛을 머금은 격렬한 수증기로 모든 것을 용해시켰다. 낭만주의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낭만적’이란 말은 자연 속의 풍경, 즉 옛 이야기와 연관된 산, 숲, 그 밖의 야생적인 장소들을 묘사하는데 쓰여졌다. 자연에는 역동적이고 유기적인 성질이 있으며, 인간적인 정감을 가지고 있다고 인식되었다.

터너의 풍경화는 객관적인 자연묘사를 바탕으로 하지만, 동시에 자연과 자신이 일체가 된 마음의 풍경이기도 하다. 터너는 위대한 신비주의자들처럼 정신과 자연의 상호작용, 즉 전 우주와 자신을 연결짓는 감각을 묘사하였다. 그것은 전 우주에 정신력이 편재해 있다는 사상이다. 그의 그림에서 자연은 모든 것이 통일된 하나의 유기체로서, 형이상학적이고 신비주의적인 면이 있지만, 자연의 개별성과 특수성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진정한 다원주의의 씨앗을 내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