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릿광대, 인생의 희극과 비극의 주인공
-조르쥬 쇠라, [서커스], 1891년





20세기 초에 국제적인 예술의 도시 파리로 몰려든 떠돌이 화가들은 화려한 서커스의 세계와 그 무대의 주인공인 어릿광대에 자신의 정체성을 투사하곤 했다. 이 작품을 그린 쇠라 이외에도 피카소, 샤갈, 로트렉 등이 서커스에서 이 세상과 예술가에 은유를 발견했다. 그들에게 둥근 서커스의 무대는 ‘마술의 원’으로서, 그곳에서는 아무런 억압도 없고, 엄격한 규칙 속에서도 자유로왔던 것이다. 쇠라는 화사한 점묘 기법으로 덧없는 환영으로 가득 찬 이 세계를 묘사했다. 서커스의 어릿광대는 만능 재주꾼이지만, 뿌리 뽑힌 삶과 다중적인 자아를 지닌다는 점에서 예술가와 닮았다.

광대들은 직업화된 독립사회를 이룬다는 점에서도 예술사회와 유사하다. 인류학자 카유와에 따르면, 서커스는 나름의 관습과 자부심, 그리고 규범을 지닌 소우주로서, 그 곳에는 자신의 특이성에 집착하고, 세상과의 격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광대들은 어릴 때부터 엄격한 훈련을 받는다. 그것은 현실 속에서는 아무 쓸모도 없고 때로는 죽음을 가져오는 무용한 묘기들이다. 쇠라의 그림에 나오는 광대처럼 그들은 평상시에는 사회의 이방인이지만 무대 위에서는 왕이 된다. 떠돌이 극단의 광대는 본래 축제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이었다고 한다. 이 그림에서 왕관 모양의 모자를 쓰고 열광의 무대를 관장하는 이 광대는 ‘축제의 왕’과 닮음 꼴이다.

축제에서 주인과 하인의 역할 교환은 신분의 전도를 상징한다. 물구나무를 선 곡예가 암시하듯이, 광대는 기존의 질서를 뒤집어엎으려는 역전의 위기를 상징한다. 이 역전극에서 가면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광대의 가면과도 같은 분장은 난장(亂場)의 세계로 들어가는 방법의 하나로, 이들에 의해 사물의 습관적인 질서가 무너지는 순간, 사회의 금기는 위반된다. 광대는 터무니없는 상상적 세계 안에 사는 편집광적 인물로, 그들의 광기는 주어진 사회와는 다른 세계를 조직하려는 욕망의 상징이다. 이렇게 형성된 해방구 속에서 그들은 ‘무정부주의자의 왕’이 되어 그들의 역할을 다하고, 결국은 희생된다.

인류학자들은 축제에서 제비뽑기로 뽑힌 왕이 향연을 이끌면서 온갖 쾌락을 맛보고 축제 마지막 날에 제의화 된 재판을 받고 처형되는 수많은 실례를 보고한다. 무질서와 혼돈의 왕을 죽이고 사회는 다시 일상적 질서를 되찾는다. 광대와 예술가의 기원이 되는 그 ‘축제의 왕’은 질서유지와 사회의 근본적 변형을 가능하게 하는 희생양의 역할을 떠맡는 것이다. 또한 어릿광대가 하는 일이란 엉터리로 흉내내는 것으로, 신화들 속에서 그들은 종종 속임수꾼tricster으로 나타난다. 속임수나 장난질로 질서를 어지럽히는 트릭스터는 모든 것을 난장판으로 만든다. 트릭스터는 신처럼 세계를 조직하고 완성시키고자 했지만, 그의 실수와 결점으로 인해 아무 것도 완전하게 이루어 진 것이 없다.

종교학자 엘리아데는 트릭스터의 형상에서 새로운 유형의 종교를 추구하는 인간의 모습, 즉 세계의 지배자가 되고자 하는 인간의 이미지를 본다. 트릭스터는 변형자임과 동시에 문화적 영웅이기도 한 것이다. 동시에 광대는 모든 장난 밑에 깔려 있는 근본적인 인간적 진실, 즉 의미와 목적을 상실한 우주, 우연이 지배하는 부조리의 세계에 직면한 인간의 무기력에 주의를 환기시킨다. 악한 우주와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제물들의 수난은 대중들에게 웃음과 두려움을 제공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