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소용돌이에 휘감긴 밤하늘
-[The Starry Night], Vincent Van Gogh, 1889년.
-[The Starry Night], Vincent Van Gogh, 1889년.

목사 집안에서 태어나 탄광에서 선교사 생활을 하기도 한 반 고흐의 그림에는 종교적 열정이 가득 담겨있다. ‘별이 빛나는 밤에’는 15개월 가량 짧게 지속된 생애의 절정에 그려진 것이다.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에 그는 이 지방(아를르)을, ‘드높은 하늘은 너무나 푸르고 태양은 유황 빛 광채를 쏟아 붓고 있다’면서, ‘밀도 깊은 색조, 맑은 공기, 그리고 가슴 설레는 고요함’에 빠져 있다고 썼다. 아를르 지방의 뜨거운 햇빛 아래의 밀밭이나 과일나무들을 그린 풍경에서 우리는 대지의 풍요를 느끼게 된다. 권총 자살하기 1년 전 반 고흐는 아를르 근처의 정신병원에 입원하였는데, 여기에서 이 그림이 그려졌다. 그해 9월 동화같은 농촌 마을을 내려다보며 그려진 이 그림에는 전경의 삼나무를 비롯해서 모든 것이 격렬한 에너지로 타오르고 있다.
만물이 찬란한 빛의 소용돌이에 의해 상호 연결되어 격정의 정점까지 치솟는다. 화면 중심부의 작은 교회 탑만이 고요하게 중심을 잡고 있다. 이 그림이 그려지기 1년 전 여름,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 반 고흐는 ‘언제쯤이면 늘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별이 빛나는 하늘을 그릴 수 있을까’라고 말하면서, 압도될 것 같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 완벽함에 아무리 큰 무력감을 느끼더라도 우선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한다. P. 보나푸는 이 그림이 아를르에 머무는 동안 빛의 힘을 발견했던 반 고흐의 꿈이 현실화된 것이라고 평가한다. 반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성경의 모든 내용에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는 빛의 정신이 뿌리 깊게 배어있다. 어둠에서 빛으로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빛을 가장 소망하는 사람이야말로 그 빛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환희에 찬 별들의 세계로 가려면 죽음의 관문을 통과해야 함도 깨닫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것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색채를 주관적으로 사용하고자 했던 반 고흐는 평범한 시골마을이 환각적인 색채로 폭발시킨다. F. 제임슨은 우중충한 농촌의 대상세계를 의도적이고 격렬한 변형에 의해 유화물감의 순수 색으로 찬란하게 구체화한 것은 유토피아적 태도라고 말한다. 이것은 현대사회에서 생겨난 어떤 새로운 분업의 일부이며, 자본주의적 삶의 분화를 복제하는 신생감각 기관의 새로운 분열인 동시에, 그러한 분열 가운데서 필사적으로 유토피아적인 보상을 추구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이 유토피아적 공간 속에서 내적 체험이 고양된다. 축제같은 힘이 넘치는 반 고흐의 그림은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이라는 존재는 안정적이고 영원한 것, 그리고 에너지에서 분출하는 거대하고 알 수 없는 힘’(바타이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초감각적이고 초이성적인 경험과 연결되어 있는 이 그림은 정신적인 에너지로 가득한 영혼이 신에 도달하기 위해 놓은 사다리에 비유할 수 있다. 그것은 세상을 사물바깥에서만 보는 현실적 태도가 아니라, 우주의 목적론적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다. 슈타이너는 ‘진정한 신비주의의 의미에서 정신을 인식하는 자만이 자연에서 일어나는 사실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화가는 반 고흐가 스스로 밝히듯이 자연을 보는 방법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별이 빛나는 밤에’는 황홀경과 초월을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고, 범 우주적인 것에 사회적 개별자를 통합시킨다는 점에서 종교적이다. 신비주의자들은 종교성과 연관된 신비는 이성의 대상이 아니라, 의식의 원천이 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술은 광기의 결과라기보다는 광기를 치유하는 수단이다. 그림은 세상의 혼란 속에서 반 고흐가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