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안의 타자들
-제임스 앙소르의 [가면이 있는 자화상]




북구의 기괴하고 환상적인 전통을 이어받은 제임스 앙소르는 100여 점이 넘는 자화상을 남겼다. 그가 자신을 재현하는 방식은 엽기적인 면이 있어서, 스스로를 지옥에 보내기도 하고 해골이나 망령, 곤충, 예수가 되어 있는 자신, 심지어는 요리된 모습으로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가면이 있는 자화상’에서 앙소르는 가면들에 포위된 폐소 공포증 환자처럼 나타난다. 그 가면들은 동양, 아프리카 등 여러 기원을 가지는 것들이지만, 대체로 가면과 얼굴의 구별이 안가는 평범한 부르주아 사회의 전형적인 사람들에 해당된다. 이것은 숨막힐 듯이 꽉 찬, 유령 같은 대중들에게서 소외되는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의 집은 관광객들을 상대로 이국적인 물건들과 장난감, 말린 동식물, 축제용 가면 등을 파는 가게였는데, 이러한 유년기의 기억이 프랑스 인상파의 영향을 받은 무지개 빛 밝은 색채의 힘을 빌어 화려하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 그림에서 그는 멋들어진 모자를 쓰고 있는데, 그것은 플랑드르 지방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루벤스의 자화상을 본 딴 것이다. 마치 앙소르는 루벤스의 가면을 쓴 카니발의 인물처럼 보인다. 동시에 화려한 꽃 장식이 달린 여성스런 모자와 남성적인 수염의 병치는 양성(androgyny)적인 기묘한 매력까지 풍긴다.

그는 가면에 둘러싸인 자화상을 통해서 소외와 분열, 자기만족과 변신에의 유혹이라는 양 극점을 오고간다. 보통 가면은 자화상처럼 시간의 파괴로부터 개인을 보호한다. 동시에 그것들은 거울처럼 자기 동일성을 확인하는 자리임과 동시에 타자(他者)가 드러나는 곳이다. 앙소르는 분장이나 가면을 통해서 자신을 미지의 대상으로 삼는다. 얼굴은 가면이, 가면은 얼굴이 되어 뒤섞이고 있는 이 축제의 무대에서 그는 자신의 상을 하나의 고착이 아니라, 가볍고 분열되고 흩어져 있는 변화무쌍한 상으로 만든다. 그가 자화상을 매개로 하여 자신을 비추어 보는 방식은 50여 개(가면의 숫자)의 조각으로 깨진 거울 속, 만화경적인 광채에서 드러나는 자아이다. 여기에서 깨진 거울 조각들은 자아의 통합을 위협하는 분열적이고 환상적인 요소가 된다.

사빈 멜쉬오르 보네는 [거울의 역사]에서 깨진 거울은 그 균열을 통해 괴물들을 들여오고, 그렇게 해서 내부와 외부세계를 연결하는 고리는 끊어진다고 말한다. 이 분열된 주체의 거울에 더 이상 확실한 자신의 모습은 없다. 혹은 자신의 모습을 알아보지 못한다. 조각난 거울에서 발견되는 것은 낯선 분신들이다. 앙소르는 가면들에게 위협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면들에 의해 보호되고 있기도 한다. 더 이상 자기상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작가와 주체로부터 떨어져 나와 자유를 얻은 반사상은 한 공간에 뒤섞이고 상호교환 된다. 그는 가면과 분장의 힘에 사로잡히고, 이 분열과 전도는 작가를 광기의 순간에 이르게 한다. 자아의 반사 상 앞에서 앙소르가 느끼는 현기증은 정처 없는 자유이자, 죽음에 가까운 공허이다. 그러나 자기 동일성의 균열에서 솟아오른 치명적인 타자들은 예술의 무한한 근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