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나무 아래에서의 드라마
-구스타프 클림트, [LAlbero Della Vita], 1905-9년.




이 그림은 클림트가 대저택을 위한 장식으로 의뢰받아 제작한 것으로, 가운데 ‘생명의 나무’를 중심으로 왼편에 ‘기다림’, 오른편에 ‘성취’가 배치되어 있다. 삼각형 무늬 옷을 입은 무언가 기다리는 여인 맞은편에 포옹한 남녀가 기다림의 끝인 ‘성취’를 나타낸다. 화면 중심부에서 자라나는 생명의 나무는 좌우에 배치된 인간의 드라마와 얽혀있다. 양편 인물의 얼굴과 손 부분만 사실적이고, 나머지는 장식적 배경과 통일된 화면을 이룬다. 양쪽으로 휘감아 들어가는 나뭇가지들은 서로 연결된 나선형 패턴 속에 통합된다. 삼각형, 사각형, 원형의 기하학적 무늬는 아롱거리는 나무의 형태와 어우러져 장식적인 형태를 만든다.

이 추상과 장식 패턴은 나무와 인물같은 자연적 대상의 무게를 덜어내고, 모든 것을 공중에 붕 띄우면서 행복이라는 주제를 전달한다. 가운데의 생명의 나무는 중량감 있는 실제의 나무라기보다는 날렵한 덩굴손이나 식물이 품어내는 향기처럼 몽실 거린다. 미세한 나뭇가지들의 리드미컬한 배열은 우주의 생태를 압축하는 원형적 형태이다. 생명의 기운들이 넘쳐나는 나무는 넉넉한 모성과도 같이 인간들을 품는다. 여인과 연인은 태초의 질서가 아로새겨져 있는 자연의 정원에 서있다. 자크 브로스는 [나무의 신화]에서 자연은 식물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나무는 주기적으로 재생되는 삶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죽음과 부활, 생명의 순환을 상징한다.

클림트의 ‘생명의 나무’는 명확히 어떤 식물에 속한다기 보다는 식물도 동물도 아닌 원초적 형태를 가지고 있다. 브로스는 동물세포가 변형된 식물세포일 뿐이라고 말한다. 거대 유기체요 경이로운 에너지의 압축기인 나무는, 우주만방에 생명의 기운을 퍼트린다. 이 생명의 나무는 세계의 기원과 동시대를 살고 있는 불멸의 존재로서, 지속과 비옥함의 상징이 된다. 종교학자 엘리아데는 나무가 끊임없이 재생하는 살아있는 우주를 구성한다고 지적한다. 우주목의 신화에 나오는 것처럼 나무는 세계의 중심이 된다. 생명의 나무는 우주의 중심에 위치하여 하늘과 대지, 그리고 지옥을 연결한다. 인류의 상징체계에서 하늘과의 소통은 나무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클림트의 ‘생명의 나무’는 천상과 지하의 심연 사이를 연결해 주며, 그로서 우주는 영원히 재생될 수 있다. 예술가들 역시 우주에 생기를 부여하는 통로가 되고자 했다. 지상과 하늘을 연결하는 나무는 어두운 지하의 물질을 통과하고 지상과 하늘 사이를 오르내릴 수 있게 한다.

나무는 실제로 이동을 하지 않고도 현실의 다른 영역으로 옮겨갈 수 있는 매개의 상징물로서, 그림 속의 연인들 뿐 아니라 이를 보는 관객도 천상으로 올려놓는다. 모든 것을 휘감아 도는 이 선들은 또한 여러 예술 쟝르를 결합하려는 총체예술을 지향한다. 순수미술과 응용예술의 경계는 사라지고, 심지어는 소리와 향기까지도 그림에 통합된다. 당시의 예술가들에게는 오직 예술을 통해 삶을 재구성하려는 미의 왕국의 건설이 목적이었다. 20세기 초입 과학과 이성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예술 역시 자연을 극복하고자 했다. 이성이 자연에 대해 그러했듯이, 화가는 예술을 통해 자연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고자 한다. 물론 그 ‘자연’에는 비속한 일상적 삶도 포함되어 있다. 클림트를 비롯한 현대 화가들은 자연으로부터 발생한 창조력을 찬미하지만, 그것은 철저히 상징적인 기호의 지배 아래에 존재해야 했다. 뜨듯한 모태와도 같은 상징의 세계는 곧 식어서 추상적인 기호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