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으로 통하는 문턱
-클로드 모네, [수련], 1903년.
-클로드 모네, [수련], 1903년.

하늘이 아래에 깔려있는 이 그림은 언뜻 보면 거꾸로 걸린 것 같다. 구름이 떠있는 하늘과 신록이 반영되는 연못은 자연의 거울로서, 대우주를 포함하고 있는 소우주가 된다. 모네는 눈만 있는 사람으로 오인될 만큼 끈질기게 자연을 추적한 화가였다. 그래서 모네는 기억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고 말했다. 그는 빛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따라잡으려 했던 사냥꾼이었다. 빛나는 막으로 포착된 자연은 환상적이기까지 하지만, 그것은 철저히 현장작업의 산물이다. 모네의 작품은 주위 환경에서 직접 소재를 찾고, 이를 정확하게 묘사한 결과였다. 그의 그림은 철저한 리얼리즘의 산물이었지만, 그것은 굳은 현실의 기계적 반영은 아니었다. 연작의 형태를 취하는 그의 작업은 결코 규격화될 수 없는 현상을 포착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를 사로잡은 자연의 순간순간들은 섬세한 시적 분위기를 띄게 된다. 우주가 그에게 보여주는 것을 붓으로 증명하고자 했던 모네의 그림은 누구도 포착한 적이 없는 미지의 것에 닿아있다. 수련이 떠 있는 연못은 화가의 눈에 우연히 포착된 풍경이라기 보다는, 우주만물의 덧없는 순간의 삶이 고정된 소우주이다. 이 소우주에는 생명의 기운이 가득하다. 어떤 시인의 노래처럼 이 세계는 ‘모래알에 깃든 영원성, 그리고 한 송이 꽃에 존재하는 천국’으로 나타난다. 그에게 수련이 떠있는 연못은 자연의 빈 공간으로, 이 공백에 반영된 이미지는 실재와 동일한 비중을 지닌다. 모네는 자연을 바라볼 때마다 무엇이든 기록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일단 작업이 진척되면 그림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이 지독한 자연주의자는 그림 자체의 현실성을 인식하게 된다.
프루스트는 모네의 그림을 ‘자연과는 다른 방식으로 펼쳐진 자연의 정원’이라고 평가했다. 그의 그림은 연못에 핀 수련임과 동시에, 색의 무한한 팽창 속에 조화롭게 어우러진 색조가 일시에 피어난 것이다. 특히 수련 연작의 경우, 화면의 수평선이 사라짐으로 인해 평면화가 강조된다. 수면 위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은 그림의 얇은 표면 공간에 집약되어, 전경도 배경도 없이 거미줄같이 얽힌 연결 관계로 드러날 뿐이다. 비평가 로버트 휴즈는 뉘앙스로 충만한 한 장의 그림을 에너지의 장으로 파악한 모네의 시각이 추상회화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한다. 모네의 연못은 무한성을 상징한다. 불확정적인 상태를 포착하고 고정되지 않은 것을 정착시키며, 너무나 복잡하고 덧없기 때문에 도저히 정의 내릴 수 없는 현상에다 구체적인 형태와 위치를 부여해 주는 작업이 모더니즘이 지향하는 근본 목표였다.
모네는 덧없고 순간적인 것을 영원과 결합시킴으로서 현대성을 구현하고 있다. 보들레르는 현대성을 ‘덧없는 것, 사라지는 것, 우연적인 것이다. 이것이 예술의 반을 차지하며, 다른 반쪽은 영원한 것, 변화하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모네의 작품은 현재적 삶의 덧없는 아름다움을 포착함으로서, 현실과 영원의 직접적 교류를 보여준다. 현대를 특징짓는 일시적 순간은 영원한 것과 신비스런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순간적인 것은 영원함의 흔들거리는 반영이 아니라, 영원한 것으로 통하는 문턱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