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이상이 공존하는 아카디아
-앙리 마티스, [사치, 고요, 관능], 1904-5년.
-앙리 마티스, [사치, 고요, 관능], 1904-5년.

마티스는 1904년 여름을 강렬한 태양광선이 내려 쪼이는 남프랑스의 해변에서 보내면서 여행지에서의 감흥을 화려한 색 점들로 표현했다. 햇살이 넘치는 행복한 순간들이 가득 담겨 있는 이 그림은 거의 100년 전 풍경이지만, 당시의 햇살과 바람이 아직도 살아있는 듯 신선하다. 이 그림의 제목, ‘사치, 고요, 관능’은 보들레르의 산문시 ‘여행에의 초대’에서 인용한 것이다. 보들레르는 이 시에서 기막히게 화려한 나라를 노래하면서, 번잡한 세속을 벗어나 사치와 고요, 그리고 관능이 존재하는 이상향으로 떠나라고 권유한다. 그곳은 동서양이 어우러지고, 모든 것이 아름답고 풍요롭고 고요하다. 그곳에는 사치스러움이 질서 속에 빛나는 즐거움을 누린다. 무질서와 소란, 뜻밖의 일은 이 나라로부터 제거된 듯하다. 그곳에서 시간은 더욱 느리게 지나간다.
마티스 역시 이같이 어딘지 알 수 없는 미지의 나라에 향수를 느꼈다. 실존하는 도시 생 트로페즈는 파괴적인 현대의 시간성으로부터 벗어나 잃어버린 왕국이 된다. 여기에는 그의 주요 주제인 고대와 가족, 풍경이 모두 등장한다. 그것은 이국적인 소나무가 서있는 해안 가와 그곳에 앉아있는 부인과 아들을 그린 실제의 풍경이자, 고대의 여신같은 벗은 여인들이 함께 있는 상상의 장면이다. 현실과 상상이 결합된 소풍이라는 테마는 르네상스 시대 이후에 아카디아를 상징하는 전통적 주제였다. 마티스는 이 전통적 주제를 당시에 유행하던 신인상주의의 새로운 기법을 불어넣어 순수하고도 원시적인 세계로 재 탄생시켰다. 여기에서 자연은 무한히 풍요롭고 따뜻하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의 자연이 아니라, 예술에 의해 정정된 자연이다. 그것은 보들레르가 말했듯이, 자연이 꿈 또는 예술에 의해 수정된 것이다.
마티스가 ‘순수한 무지개 빛깔로 그려진 그림’이라고 말한 이 작품에서 색 점들은 현재적 삶의 덧없고 무상한 아름다움을 부각시킨다. 바람과 햇살에 부서지는 듯한 색 점들은 단순히 묘사적 기능을 넘어서 자율성을 띄고, 분절된 선들은 배경과 인간을 동등한 밀도로 처리하면서, 추상적이고 균질인 화면을 형성한다. 그림이란 것이 객관적 현실이나 주관적 경험의 반영이나 표현인 대신에, 현실과 평행한 세계라는 현대회화의 논리가 녹아있는 것이다. 또한 이 그림에 공존하는 일상과 미지의 세계는 현대성의 두 가지 측면이다. 그의 작품은 매 순간 변하는 현실 풍경과 고전적 질서가 결합되어 있다. 이 작품의 현대성은 일시적인 형상과 영원한 것이 신비스런 관계를 맺는 것에 있다.
현대의 휴양지와 고대의 이상향이 결합된 이 그림은 고대의 신 디오니소스를 호출한다. 현대를 지배하는 이성만능의 세계에 대한 대안을 예술에서 찾고자 했던 현대 화가들에게 도취와 광기, 그리고 변신의 신인 디오니소스는 높이 평가된다. 마티스의 그림은 개별화의 원리가 파괴될 때, 인간과 자연의 가장 깊은 근원으로부터 솟아나는 황홀의 감정‘(니이체)이 내포되어 있다는 점에서, 디오니소스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순수한 야수성은 고요한 고전적 질서와 결합되어 있다. 현대적 조형수단은 평범한 일상을 무너뜨리면서 미지의 세계를 열어 제친다. 다양성과 차이가 충만한 예술적 가상의 영역을 통해 현대예술은 태고적인 것과 접속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