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 멜로디, 색채의 하모니
-Paul Klee, [Twittering Machine], 1922년.




스프링과 태엽장치가 된 기계 새가 지저귀고 있는 이 그림은 파울 클레의 관심사를 복합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는 선과 색채, 추상과 재현, 자연과 인공, 미술과 음악, 작가와 선생 등등, 언뜻 보기에 서로 상반되는 가치들 사이에서 교묘하게 균형을 잡은 예술가였다. 선의 멜로디와 색채의 하모니가 종합된 이 작품에서, 선은 사물의 외곽을 따라 명확히 그어 졌다기보다는 정처 없이 배회하고 있으며, 색은 칠해졌다기 보다는 저 깊은 곳에서 배어 나오는 듯하다. 음의 고저를 표현하는 음표처럼 배치된 기계 새들의 소리는 얇게 번지는 미묘한 색을 타고 메아리친다. 어린아이가 그린 듯 한 천진함과 소박함이 있는 동시에, 영혼의 떨림을 미묘하게 드러낸 표현력이 돋보인다. 클레는 완벽한 형식성과 강렬한 느낌으로 갈라진 20세기 초반의 전위미술의 흐름 속에서 그림의 힘과 거품을 뺀 화가였다.

유기체처럼 저절로 자라나는 듯한 작품을 추구한 클레는 스스로를 깊숙한 뿌리에서 올라오는 수액을 통과시키는 나무로 생각했다. 작가는 막연한 암시만을 간직한 채 그림을 시작할 뿐 그림은 스스로 완성되어 가는 것이며, 뿌리가 열매의 존재를 모르듯 주제는 그림이 끝났을 때에야 비로소 드러난다. 클레는 완성된 형태보다는 형태를 만들어 내는 원동력에 더 큰 가치를 둔다. 마찬가지로 그는 현재의 이 세계가 가능한 유일한 세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처럼 현실을 시간적 공간적으로 우연히 고착된 형태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면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가 펼쳐진다. 이렇게 획득된 자유는 한낱 기계 장난감에 불과한 사물에도 자연에 내재하는 힘을 불어넣는다.

있는 그대로의 표현보다는 있을 수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어 한 클레는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게 하려 했으며, 스스로 형성되는 것의 매개자가 되고자 한다. 그는 고착된 형태나 결과보다는 원천과 과정을 중시함으로서 자연의 질서를 구현하고자 하였고, 이는 자연의 본성에 거스르지 않는 유기체적 이미지로 나타났다. 물론 이러한 과정은 고도의 기술과 지식을 요한다. 미술사가들은 클레가 선, 색채, 형태, 상징, 원근법 등이 가지는 회화적 기능에 대해 엄격하게 탐구함과 동시에, 이 요소들과 자연현상의 유사성을 강조했다고 지적한다. 기계 새를 표현한 이 그림은 세계를 하나의 모델, 즉 기계를 창조한 전능한 존재가 움직이는 전체로 파악한다. 이 보이지 않는 힘은 확대된 세부와 우주적 규모의 풍경 모두에 관철된다.

음악적 주제가 표현된 이 그림에서 선의 역할은 특히 중요하다. 선은 단순히 새들의 외양이 아니라, 새들의 구조와 운동을 구현한다. 새를 이루는 여러 구성 요소들 율동적으로 배치함으로서 변화가 있는 반복을 이루는 것이다. 그것은 모티브의 다양한 변환과 조합을 이룬다는 점에서 음악적이다. 색채와 명암의 전이, 주제의 반복과 변화, 펼쳐져 전개되는 느낌 등은 음악가이기도 했던 그의 경력과 관계된다. 이러한 음악성을 통해 추상과 만나지만, 클레는 순수조형 요소에만 탐닉한 추상 화가는 아니었다. 그는 미술 고유의 힘, 요컨대 순수한 시각적인 이미지의 힘을 알고 있었지만, 동시에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범우주적인 스케일의 내용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클레의 그림에서 추상과 재현은 상반되지 않고 종합된다. 추상은 특정한 것을 초월하여 시각적 경험을 보편화시키는 매개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