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넘어서는 유혹의 전
-Orlan, [Refiguration], 1998년.
-Orlan, [Refiguration], 1998년.

오를랑은 고대 콜롬비아 및 아프리카 가면들이나 조각상들을 자신의 얼굴과 합성한 괴물같은 이미지로 유명하다. 그녀는 자신의 얼굴과 몸을 조각의 대상으로 삼는다. 실제의 수술이든 컴퓨터로 합성된 가상적인 변형이든 그녀는 자신의 몸을 변형시킴으로서, 스스로 살아 있는 미술작품이 된다. 그러한 변모를 위해 몸에 칼을 대는 것도 서슴치 않는다. 눈 위에 악마의 뿔처럼 튀어나온 형태는 실제 성형의 결과이다. 몸에 그림을 그리고 문신을 새기거나, 뚫고 상처를 내는 행위는 일반적인 미의 기준에 의한 성형이기보다는, 고대나 원시부족들의 제의적 신체 변형을 떠오르게 한다.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에 의하면 원시인들의 안면문양 같은 신체 장식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환상에 상징적인 형식을 부여하려는 것이다.
그들은 분장을 통해 그 문화의 꿈을 장식한다. 그것은 자연에서 문화로, 동물로부터 문명화된 인간에로 이행을 나타내는 경계선이 된다. 오를랑은 자신의 얼굴과 낯선 것들을 혼합시킴으로서, 다른 존재, 초자연적인 영역과 교통하고자 한다. 특히 작가는 그러한 혼합된 초상에 기념비성을 부여함으로서, 견고한 가면을 통해 죽음과 부패를 극복하고자 했던 고대인들의 정신을 투영한다. 이러한 경향은 현대에도 하위문화 속에도 남아 있는, 폭력적인 관능성을 자극하는 신체 훼손과 몸치장에 대한 엽기적인 취향과도 잘 어울린다. 조물주는 인간을 자신의 모습대로 창조했으므로, 이러한 임의적 변형은 신의 작품을 손상시키는 일이다. 중세의 독실한 서구인들은 신의 섭리는 자연스럽고, 악마의 소행은 작위적이어서, 예수는 하나의 얼굴을 가지고 있지만, 악마는 일곱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러나 보들레르 이래로, 인위적인 기교로 자연을 초월하고자 하는 경향이 근현대 예술의 저변에 깔리게 된다. 오를랑 역시 인공성을 숭배하던 근대의 전통 속에서, 자연스러운 미가 아니라 인위적이고 불가사의하며 입문 의식적인 아름다움을 뽐낸다. 그녀는 이를 통해 운명으로서의 해부학을 극복하고 관객을 유혹하고자 한다. 유혹은 자연이 아니라, 복잡한 의례나 놀이의 영역에 속한다. 보드리야르에 의하면, 복잡한 의례나 놀이는 생산과 욕망의 논리를 거부하고, 가상과 기호, 매혹의 차원에서 자신의 미적 내기를 추구한다.
오를랑은 유혹을 통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극단적 도전을 행한다. 이러한 의례적 폭력은 잔인함 마저 감돈다. 모델들에 의한 놀이, 그리고 그들의 불안정한 결합 관계가 그녀의 유희의 세계를 특징짓는다. 여기에서 육체의 욕구는 본능의 법칙을 발견하거나 확립하는 것이 아니라, 가상의 과정을 조직하는 것이다. 컴퓨터 합성이나 외과 수술을 통해 변형된 그녀의 초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도식과 인위적인 균형을 강요한다. 통상적인 현대인의 화장이 신체의 특징과 부위를 강조하면서 본능이나 욕망에 호소한다면, 오를랑은 무당이나 제사장 같은 과장되고 기괴한 분장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