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정, 길에서 무릉도원을 만나다>전
- ‘나만의 화법’으로 한국 산수 묘사

소정 변관식 화백의 30주기를 맞아 다시 공개된 ‘전가춘색(田家春色)’ (1963년 작, 종이에 수묵 담채, 40×197.5cm).

소정 변관식(1899-1976)은 한국 근대 동양화가로서 전통 회화가 붕괴되고 한편으로는 서구 미술이 유입되던 시기에 여전히 산수화라는 장르를 통해 한국의 자연을 담고자 했던 화가다. 국내에서 마지막으로 조선적인 그림을 그렸던 화가이자 정통 동양화의 명맥을 유지했던 그가 유명을 달리한 지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덕수궁미술관 1,2층 총 4개의 전시실을 채운 그림들은 그의 초기작부터 말기에 이르기까지 상당수를 망라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의 70년대 금강산 그림 앞에서 아주 오래 머물렀다. 거장이라 하더라도 모든 작품이 다 좋을 수는 없다. 감동적인 것은 한 작가가 평생을 걸고 그렸던 그림들이 비로소 말년에 이르러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과 그만의 체취와 손맛으로 버무려진 어떤 아득한 경지를 보여주고 있을 때이다. 그 경지는 아무 생각없이 오로지 한 곳에만 집중한 무심함과 자기 몸을 걸고 그렇게 버텼던 시간의 무게 앞에서 자지러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것이 미술의 길이고 화가의 생애임을 다시 깨닫는다.

그에 비하면 오늘날 그림들은 너무 가볍고 경망스럽고 잔머리 속에서 나오는 듯하다. 화가들 역시 다들 영악하고 좀더 빠른 길로만 몰려간다는 생각이 든다. 미술이 어디로 갈지 초조해하지 말고 자신이 설정한 작업을 묵묵히 해내면서 스스로 그 길을 만들어 보이는 것이 더없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의 그림 앞에서 다시 일러 받고 있었다.


소정은 황해도 출신이지만 어린 시절 외가가 있던 서울로 와 공업전습소 도기과를 졸업했다. 하지만 그림이 좋아 외조부 조석진의 화실을 출입하면서 그 제자들과 교류하며 그림을 익혔다. 이후 일본 유학을 통해 동양화가로서 입지를 다졌다. 그러나 1930년대 후반 모친과 부인을 동시에 잃는 개인적인 아픔을 겪게 되자 그 후유증으로 세상과 등지고 금강산을 비롯해 전국을 유랑하면서 야인으로 지내게 된다. 지독한 가난과 가족의 죽음, 당시 미술계와의 불화는 그를 아웃사이더 혹은 철저한 개인주의자로 만들었고 어쩌면 이런 과정이 그만의 독자적인 화풍과 기법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세속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힘이 되었을지 모른다.

“한국적 풍류와 아취 가장 잘 표현”

그가 우리 화단에 본격적인 모습을 드러낸 시기는 해방 이후지만 그의 진가와 명성이 알려지기까지는 1970년대를 기다려야 했다. 그는 우리 산야의 메마르고 칼칼한 대기감, 그리고 노녀의 산세들이 지닌 옹골찬 기운, 스산하고 황량한 농촌의 들녘, 화사한 매화와 복사꽃이 흐드러진 풍경, 빼어난 자태와 드라마틱한 동세를 지닌 금강산, 그리고 그 사이를 바삐 걸어가는 갓과 두루마리 차림의 노인 등을 먹과 약간의 채색으로 평생 동안 그렸다. 젊은 시절 방랑으로 점철된 시기 그는 금강산에 매료되어 그곳에서 비로소 우리 자연의 특질과 성향, 한국인의 자연에 대한 인식과 태도, 그리고 그에 따른 그림의 방법론을 터득했다.

흔히들 그의 그림을 조선 후기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전통을 계승하면서 한국 산수의 아름다움 특질을 우리의 정서에 기초한 독창적인 근대 형식으로 재창조했으며 한국적 풍류의 흥취와 아취를 가장 잘 묘사한 것이라고들 한다. 동시에 전통과 근대의 사이에서 여전히 이전의 그림에서 보이는 고답적인 요소 및 근대적 요인들이 뒤섞인 과도기적 그림이라고들 한다. 사실 모든 작가들은 결코 자신의 시대를 벗어날 수 없다. 돌이켜 보면 변관식은 자신의 시대를 누구보다도 충실하게 보낸 이다. 작품뿐만 아니라 화가의 길이란 무엇인가를 새삼 이 시대에 우리 모두에게 간절히 들려주고 있다.

* 시사저널 2006. 4. 11



변관식 / 전가춘색 / 1963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