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환태평양’지역의 의미와 미술



폴리네시아란 많은
섬들이라는 뜻이다. 육지면적은 작으나 섬들이 분포하는 해역은 태평양의 거의 반을 차지하며, 서부의 엘리스 ․통가 ․사모아 ․토켈라우 ․피닉스
제도(諸島), 중부의 쿡 ․라인 제도, 남동부의 투부아이 ․소시에테 ․투아모투 ․마르키즈 제도, 북부의 하와이 제도 및 남동쪽 끝의 이스터섬
․살라이고메스 제도, 남서단의 뉴질랜드섬 등이 포함된다. 광대한 해역에 섬들이 산재하지만 주민은 폴리네시아인(人)으로서의 현저한 동질성을 보여,
남서단의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族)의 언어가 오늘날에도 최북단 하와이의 카나카족에게 통한다.

정치적으로는 대체로
북부(하와이)는 미국, 서부(사모아 ․통가 ․피닉스 ․쿡 등)는 영연방 제국, 동부(소시에테 ․투부아이 ․투아모투 등)는 프랑스, 그
동쪽(이스터 등)은 칠레에 의해 관할되어 왔으나, 근래에는 사모아(1962) ․통가(1970) ․투발루(엘리스 제도, 1978) 등의 독립국이
생겨났다.

폴리네시아인은 형질적으로 꽤 명확한 단일 인종을 형성하며 지적인 수준이 오세아니아에서 가장 높다고 한다. 폴리네시아
서부, 즉 통가 ․사모아에서는 멜라네시아인(人)과의 혼혈이 두드러지나 동부로 옮아가면서 폴리네시아인으로서의 순수성이 높아진다. 폴리네시아인이
아시아에서 옮겨간 것은 기원전 수세기 때이며 그 후 10여 세기 사이에 폴리네시아 전역에 분포되었다. 카본데이팅(방사성탄소에 의한 연대측정)에
의한 폴리네시아인의 거주 증거는 가장 오래된 것이 BC 150년경으로 추정되고, 이스터섬이 4세기 경, 하와이가 9세기, 뉴질랜드가 14세기
경으로 여겨진다.

폴리네시아에서는 주민의 사회적 지위가 대추장 ․고위 추장 ․보통 추장 ․평민이라는 계층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그
밖에 추장에게는 반드시 몇사람의 대판추장(代辦酋長)이 딸려 있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다. 대판추장은 추장을 대신하여 지방이나 읍 ․면을
다스리거나 추장을 보좌하는 일을 맡는데, 대판추장도 계층구별이 있다. 일반적으로 추장의 지위에 있는 자는 대단한 권위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쉽게 입을 열지 않았고 그 대변인의 역할을 대판추장이 맡았다. 또 추장에게 부수된 권위는 자연히 추장으로 하여금 아랫 사람들에
대해 여러 가지 금령(禁令)을 발하게 하여 행동을 제약하여 왔다. 이것이 이른바  타부(tabu/tapu)로, 추장의 보이지 않는 마력(魔力), 즉 마나의 발현이다. 폴리네시아인의 종족 국가는 마나적 ․신권적(神權的) ․터부적 국가에 기초한
것이다.

(1) 개념 문제
듀크 대학의 교수 아리프 딜릭은 아시아-태평양이라든가, 환태평양 혹은 태평양 분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한 지역을 정의할 때 발생하는 몇가지 문제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그는 한 논자의 표현을 빌어 “경계를 지을 수도
없고 중심이 어디에 있을지도 모르는, 파스칼이 말한 그 끔찍한 구체와 흡사한” 그런 것으로 이 지역을 어떻게 파악해야가라고 묻는다. 지역에 대한
여러 규정들에다 또 하나의 정의(definition)를 덧붙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 이유란 정의는 포함하는 만큼 배제하며, 당면 문제가
무엇인가 규명해야 하는 경우에는 도움이 되기보다는 방해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 대한 대부분의 정의들이 가정하는 문제점은 지리학적
편향, 인간들이 다양한 활동을 펼쳐나가는 물리적 경계가 분명한 무대처럼 여기는 것에 있다. 공간을 하나의 텅빈 컨테이너로 보았던 뉴톤식의 사고
처럼 지역을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활동과 분리하여 일단 텅빈 공간으로 정의하고 있는 셈이다. 지도에 그려진 모습을 보면, 태평양 지역은
베링 해협에서 남극에, 캘리포니아에서 한국과 중국에, 알래스카에서 타스마니아(오스트레일리아 남쪽의 섬)에 그리고 타스마니아에서 동남아시아에,
캄차카 반도에서 칠레에 걸치는 지대를 포괄한다.

환태평양이나 태평양 분지라는 명칭은 이 지역 전체를 가리킨다는 느낌을 주는 만큼
포괄적이고 (물리적으로 이 지역에 자리잡고 있는 모든 사람들한테 공존 상태를 시사해준다는 점에서) 다 같이 평등하게 포함해 들이는 점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오도한다. 강한 물리적인 연상을 같고 있는 이 명칭들을 문자 그대로 따져보더라도 얼핏 드는 인상만큼
포괄적이지가 않다. 둘 중 좀더 흔히 사용되는 환태평양Pacific Rim이라는 표현은 지나치게 이 지역 가장자리에만 초점을 맞추고 이 지역
형성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안쪽 부분을 빼놓는 만큼(최근 ‘태평양권’에 관한 한 논의에서는 심지어 섬들을 의식적으로 배제하는 지경에까지
나아가기고 했다.) 만족스럽지 못하다. 지역 중심이 대양 어딘가 있는 것처럼 들리는 ‘태평양 분지’는-적어도 오늘날에는-이와는 반대되는 면에서
불만족스럽다. 더욱이, 정태적인 물리적 연상을 일으킨다는 점에서-이런 연상은 이 지역 경계들을 하나의 시간대에 설정된 특정 경계 개념과
동일시함으로써 얻어진 것인데-두 명칭 모두 이 물리적 지대 어딘가에서 시작되고 수행되는 활동들에 따라 지역 경계선이 넓어지거나 좁아질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한다.
하나의 지역으로서 태평양 지역이란 구미의 창안물이다. 이 지역의 사람들이 자기네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구미인의 의식에 포함되어야 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들의 자율적인 의식이나 역사(더 정확하게는 역사들)와 무관하게 이 지역이 한
지역으로서 생겨난 것, 다시 말해 이 지역의 근대 역사는 아주 많은 부분 구미인들의 활동 결과였다. 아메리카 대륙에 대해서 휘테이커가 하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는 태평양에도 역시 해당되는 말이다.

아메리카가 어떤 형태든 통일성을
지닌다는 생각은[……]알레스카에서 티에라 델 푸에고 Tierra del Fuego(마젤란 해협을 사이에 두고 본토와 마주보고 있는 남미 남쪽
끝의 군도)에 걸쳐 아메리카에 자리하고 있던 숱한 원자적인 사회들의 성원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유럽인이 오기 전까지는 결코 해본 적이 없는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태평양 주민들 사이에 상호 교류가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18세기 후엽에
이르러서야 출현한 지역의 시각에서 보면, 이 상호 관계는 국지적인 것이었고 주민들의 자신들에 대한 의식도 그러했다. 태평양 지역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유럽의 전지국적 확장과 함께인데, 이것이 이 지역이 하나의 지역으로서 성립하는 전제이다. 유럽인들은 이 지역의 서쪽과 동쪽
끄트머리로 들어와 이 지역에 진출하게 되나, 이곳에 태평양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계기는 동쪽으로부터, 즉 케이프 혼Cape Horn[남미 최남단
칠레령의 작은 섬에 있는 곶] 주변으로 들어오면서였다. 덧붙여 말하자면 이 최초의 진출은 바로 몇 십 년 전에 콜럼버스가 아시아로 가려다가
우연히 마주친 뜻밖의 새로운 대지 덩어리로 말미암아 생겨난 문제들에 유럽인들이 대처하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콜럼버스의 본래
의도가 아시아 발견이었던 까닭에 아시아로 새로 발견된 태평양을 한데 묶여 생각되었다. 또 한편 태평양은 아메리카 대륙의 정복과 인식의 연장으로서
처음으로 역사 의식 속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후 두 세기에 걸쳐 이지역을 태평양 지역으로 구성하고 형태를 부여하며,
그에 따라(중국과 일본이라는 고도로 발전된 사회들도 포함해서) 이 지역의 본래 주민들의 국지적인 의식을 더 넓은 지역적 의식으로 변화시키게 되는
것이, 바로 유럽인들 및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가 그곳 사람이 된 유럽인 후예들의 활동이라는 점이다. 결국 국지적 사회들을 이 지대 사방을 다
포괄하는 하나의 지역으로 통합시키게 되는 것은, 바로 탐험과 특산물을 구하기 위해 곳곳을 샅샅이 훑어나간 구미인의 움직임들이다. 구미인이 태평양
지역을 창안(발명)했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이 지대로부터 예전에는 거기 없었던 구조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환태평양에서 일본의 역할을 비중이
높으면서도 애매한 위치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경제 강국으로의 등장은 이 지역형성기에 확립된 태평양 지역 전체를 유럽과
미국에 대한 제 3세계로 만들어 놓은 구미의 헤게모니를 와해시키면서도 이를 대체할 만한 구조나 대안적인 전망은 제공하지 못하고 있으며, 태평양
지역의 의미를 놓고 계속 불확실함이-그리고 상호 두려움과 반복이-생겨나는 책임도 여기에 있다. 구조에 있어 구미의 유산이 아직도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다는 점은 일본인들의 정서에서도 매우 잘 드러나는데. 일본인들은 일본이 세계 경제 강국이라는 위치에도 불구하고 헤게모니를 쥔 사회가
아니라 헤게모니에 끌려가는 사회이며, 유럽과 미국에 대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관계에서는 여타 제3세계 사회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는 단순한
지역 강국에 불과하다는 지극히 당연한 느낌을 갖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와 태평양이라는 지역의 내부적 모순들은 여러 가지 요소로 말미암아 한층
복잡해지는데, ‘이 요소들 가운데는 해묵은 것도 있고 현재 세계의 산물도 들어있다.

그 중 첫 번째는 단순한 지역적 강국이 아니라
전지구적 강국인 나라들이 드러내는 지역 바깥에 대한 관심이데, 이런 나라로는 미국과 일본을 우선 손꼽을 수 있지만, 가난하기는 해도 (그리고
경제적으로 종속된 위치에 있기는 해도) 지역 바깥까지 마치는 세력을 자랑하는 중국도 포함된다.

두 번째 요소는 이 지역 주변에
있는 다른 지역 구성체들(혹은 잠재적 구성체들)의 존재이다. 미국이 그리고 부분적으로 일본이 실질적인 힘을 미치고 있으나 미국의 태평양이냐
아시아의 태평양이냐 하는 문제는 미해결의 상태이다. 세계 경제 발전의 불확실성은 태평양 지역의 구조를 불확실하게 만든다. 세계가 민족 국가들로
구성되던 일을 과거지사로 돌릴지도 모를, 작업장과 생산 과정이 전지구상에 분산되어 있는 ‘지구 공장 global factory을 잘 살펴야
하는 단계에 우리는 와있다. 이 지역의 사회들이 인상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지금은 중국 같은 나라들에서조차 모방하고 있는) 수출
주도 정책 덕분으로, 이 정책에서는 관심이 일국적 상황으로부터 국제적인 상황으로 옮아간다. 제레피의 표현을 빌리면,

“이처럼 현재의 전지구적 제조업 체계에서는 분석의 핵심 단위가 민족국가 대신에 수출망이 되고 있다.”


오마에 켄이찌와 같은 잘 알려진 국제적인 시장 분석가는 이제 모든 것을 국가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전지구적 발전을 한데 엮는 국가 내부의 지역들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오마에에 따르면, 미국 전체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그보다는 새로운 역동적 힘들을 빚어내는 오렌지군이나 북캐롤라이나주를 생각해야 된다는 것이다. 오마에가 설파하는 ’국경 없는 세계‘라는 것이
의미가 있다면, 제1세계니 제3세계니 혹은 북이니 남이니 하는 구분 역시 무의미해진다. 제3세계에도 ’지구 공장‘의 작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제적 엘리트층이 있으며, 마찬가지로 미국과 같은 제1세계에도 사회 성원 가운데 일부는 경제 성장의 한복판에서 제3세계적 위치로 떨어지고 있다.


국가 경제가 침체하는 동안에도 국경지대 경제들과 경제 특구(特區)들은 번창한다. 오늘날 태평양 지역이 전세계의 주목을 받는 이유가
태평양 사회들이 이같은 새로운 경제 형태의 대두에 있어서 매우 중대한 몫을 하고 그외 지역들에 미래의 전망을 예시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시아인 그리고 전세계의 많은 분야의 전문가들은 다시금 태평양 ‘재창안’의 와중에 있는 것이 된다. 그로 인해 이 지역의
개념 규정을 둘러싼 토론이 드세질 수 밖에 없다. 환상과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걷히고, 현실적 이해들과 여러 입장들이 상충하는 세계적 변화 속에서
이 지역의 미래 형태가 차츰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지금, 그 미래는 종전의 어느 때보다도 아시아․ 태평양의 미래가 될 공산이
크다.

(2) 환태평양(pan-Pacific) 미술의 모색

“다른 모든
문화적 활동이 그러하듯이 한 전시는 그것이 이루어지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조건 지어진다. 모든 패러다임의 변화는 시간의 변화에 따라 생긴다.
하이쿠 시의 일본 대가인 바쇼(Basho)가 말하기를 불변하는 것과 패션 사이의 균형이 예술과 문화의 가장 중요한 점이며 패션이 생기는 데에는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고, 바쇼가 말하기를 그런 순식간의 현상에도 뭔가 영원한 것이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패션은 불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