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극사실주의가 새로운 유행이 되고 있다. 90년대 후반부터 회화의 부활과 연관된 전시들이 선보이더니 어느 순간 젊은 극사실주의 작가들의 고된 손의 노동과 새삼스러운 환영주의가 전시장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음을 본다. 영상과 설치, 개념적 작업에 실증이 난 미술계가 다시 이미지의 부활과 손작업의 가치에 열광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미술계의 불황이 시장성이 강한 구상작업을 강력히 호출하고 있는 것인지 혹은 그간 서구현대미술의 여러 흐름과 양식들에 조응하던 한국미술계가 그로부터 떨어져 나와 중심과 주변이라는 구조 아래 작업한다는 죄의식 없이, 고민 없이 할 수 있는 작업의 모색, 그리고 설치나 영상작업에 비해 돈이 덜 드는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 때문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여하튼 상당수 작가들이 극사실적 회화에 매진하는가 하면 팝 적이고 옵 적이며 장식성이 강하고 평면에 미묘한 환영을 불러일으키는 회화에 몰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흐름 역시 지나치게 회화를 단순화시키는가 하면 자본과 시장에 쉽게 저당 잡혀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회화의 품위와 여러 다기한 생각과 방법에 대한 모색들을 갈망하게 된다. 특히 좋은 추상회화들이 사라지고 다소 경박한 손의 기교들만이 횡행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든다.
백지희는 지속해서 추상회화의 깊이와 질에 대한 고민을 보여준 작가다. ‘talk란 제목을 단 이번 그림들은 원형과 타원형이 화면을 가득 점유하고 유동하는 장면을 풍경처럼 보여주었다. 유사한 색상들의 섬세한 변화가 촘촘히 채워져 있는 화면은 우선적으로 옵티칼한 구조를 보여준다. 아울러 원형과 타원형의 형상들이 은밀한 운동감으로 진동하면서 산포되어 있는데 이는 마치 구름처럼 떠있고 물처럼 흘러가면서 부유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형태와 색상으로 인한 환영을 창출하는 이 그림은 서정적이고 사색적이기도 하고 낯익은 듯하면서도 섬세하게 느껴진다. 오직 원형/타원형의 리드미컬한 반복만이 미묘한 환영을 치명적으로 망막에 안긴다. 평면에 원형들이 첨가되고 겹쳐질 때마다 변화하는 긴장과 균형의 관계는 색에 의하여 수축, 팽창을 거듭하면서 모종의 에너지를 발산하다. 이 색의 에너지에 의해서 보는 이의 감각과 신체가 화면 안으로 은연중 빨려 들어가고 함께 흐르고 이동하는 것이다. 말 풍선이나 캡슐, 픽셀 등을 닮은 이 형태들은 여러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한계와 무한을 말하며 여러 시간의 층들이자 내밀한 마음의 결이고 떠돌고 부침하는 생각과 상념들, 눈물 한 방울, 응고된 감정의 윤곽들, 수많은 말들, 그리고 개별적 존재들의 에고이자 각자의 삶의 윤곽과 사고의 영역, 생의 풍경, 그것들이 어우러져 이루어내는 삶의 관계망 같은 것들을 암시한다. 백지희는 평면들 간의 균형에 대한 탐구와 색채의 순수성을 유지하면서도 그림이 어떻게 한 개인의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격조 있는 추상회화의 한 단면을 우리 눈에 선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