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한다. 하늘을 찌를 듯한 마천루와 달동네가, 고가도로와 어설프게 줄을 쳐 놓은 텃밭이 부조화 속의 조화를 이루며 도시 풍경을 그린다. 이미 철거되거나 철거중인 달동네, 재건축아파트, 옥상 위의 노랗고 파란 물탱크, 도심의 야경을 수놓는 현란하고 조악한 네온사인, 차량의 유리창에 도배를 해놓은 룸살롱 선전 딱지 속의 유혹적인 자태의 여인, 도심의 변두리를 지키며 서있는 초소 등 온갖 이질적인 풍경의 지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뒤섞여서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풍경의 이면에는 근대화의 과정이 중첩돼 있고,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사회학적이고 미학적인 지점들이 긴밀하게 직조돼 있다. 그 근대화의 망들 사이로 도시의 현재가 축조된다. 그러니까 도시가 과거 위에 축조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더불어 축조되고 있는 것이다. 이때의 과거는 단순한 아카이브를 위한 자료가 아니라 현재를 생산하는 현재진행형의 능동적 계기이다.


정재호는 도시 풍경들 가운데 이처럼 현재진행형의, 근대화의 과정이 관통해 지나가는 지점들을 그린다. 이를테면 인천의 차이나타운과 월미도, 서울의 청계천과 각종 아파트들이다. 특히 아파트는 도시인의 삶의 터전으로서, 그가 사는 의미이며, 그의 정체성과 동격이다. 다시 말해서, 아파트란 그 자체 근대화가 관통하는 아이콘이며, 근대인의 삶이 관통하는 도관(導管)이다. 도시미관을 이유로 마치 따개비처럼 닥지닥지 땅바닥에 붙어있던 판자촌을 밀어내고 그 위로 아파트가 들어선 이후, 아파트는 도시공학의 온갖 과정을 거치게 된다. 각종 서민아파트와 시범아파트의 경우에는 콘크리트로 축조된 골격만 덩그렇게 지어진 채 나머지 부분은 전적으로 입주자의 몫으로 남겨지게 되는데, 이때 그 이권을 따내기 위해 폭력배들의 난투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종종 아파트 자체가 이제 막 귀국한 건축공학도의 형식실험의 장으로서 주어지기도 한다. 이는 최초로 아파트 단지를 기획한 행정주체들마저도 예기치 못한 온갖 변수가 처음의 기획에 덧붙여지게 되고, 아파트 고유의 개인주의와 공동체적 삶의 양식이 공존하는 기형적인 형태를 낳기도 했다(예컨대 옛 마당에 해당하는 중정 공간이 조성되는 등의). 이처럼 삶의 터전은 정책 입안자나 기획 주체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실제로 그곳에 기숙하며 사는 사람들의 삶의 편의에 맞춰 수정되고, 왜곡되고, 덧붙여지고, 변질되면서 자족성을 획득하고, 자신만의 공간을 축조해나간다.


1971년생인 정재호는 아파트 세대이며, 흑백 TV가 컬러 TV로 교체되기 시작했던 시기를 살았던 세대다. 그는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에 지어진 아파트들만을 집중적으로 그린다. 그 아파트들에서는 작가가 공감할만한 삶의 체취와, 근대화를 겪은 사람들이 공유할만한 삶의 흔적이 배어난다. 개중에는 이미 그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린 아파트가 있는가 하면, 작업 와중에 사라지는 아파트도 있고, 예정된 철거를 기다리고 있는 아파트도 있다.

작가는 이렇게 사라지거나 사라질 것들을 낱낱이 기록하고 재현한다. 그리고 그 시간을 정지시켜 기념비적인 성격을 부여한다. 과거를 현재화하고 박제화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제3의 장소, 탈장소, 실재하지만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 장소, 한때의 삶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장소, 없는(부재 하는) 장소, 기묘하고 괴물 같은 장소, 헤테로토피아를 떠올리게 한다. 정재호는 도시와의 부조화를 이루는 이 이질적인 장소, 친숙하면서도 낯선 장소를 그린다. 이로부터는 근대화의 과정을 지나쳐온 보통 사람들의 삶의 채취가, 성냥갑 같은 아파트 속에서 초라한 프라이버시를 향유했던 사람들의 상처가 묻어난다.

정재호가 그린 아파트들에는 어김없이 이름이 있다. 청운시민아파트, 수색아파트, 대광맨션아파트, 중산시범아파트, 금화시민아파트, 회현시범아파트, (현대)아현아파트, 안암맨션 등의. 이는 작가가 그저 막연하게 아파트를 소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라는 삶의 현실이 전개되는 그 구체적 실체를 갖는 아파트를 소재로 했음을 말해준다. 자신과 삶의 연륜을 같이한 사라질 아파트들을 찾아 답사하고, 조사하고, 기록하고, 재현하고, 현재화한다. 이는 단순한 아카이브의 축조 이상의 사라질 것들에 대한 애가(哀歌)이며, 현재 속에 과거를 계속 영위케 하려는 방책이다. 그 자체 자기반성적 행위이며, 자기 반영성의 소산이다.

작가는 아파트에다 실재감을 부여하기 위해 정통 수묵화의 재료적 한계를 뛰어 넘는다. 수묵화는 투명한 재료인 탓에 대상의 실재감보다는 상대적으로 관념적인 표현에 강하다. 따라서 작가는 부분적으로 불투명한 채색법을 도입해서 실재감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파사드, 즉 정면성을 강조하는데, 이는 아파트의 전면을 화면에 가득 채우는 식의 풀 사이즈로 나타난다. 이는 아파트를 관념적 대상이나 정서적 대상으로보다는 즉물적인 대상으로 읽게 만든다. 화면 자체를 아파트와 동일시하고, 아파트의 얼굴을 근대화의 얼굴과 동일시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파트를 근대화의 과정이 낳은 우연하고 돌발적인 사태를 반영하는 거울로서 읽게 해준다.

나아가 작가는 아파트를 그대로 재현한 입체 표현 위에다가 채색을 가하거나, 이처럼 입방체(그 자체 일종의 오브제로 화한 아파트)로 드러난 아파트 모형을 공간에 설치하는 방법으로써 그 실재감을 강화한다. 근작에 와서는 일체의 채색이 사라지고, 순수하게 입체적인 표현으로써만 아파트를 형상화하고 있다. 이때 입체는 전작에서처럼 채색에 종속되는 정도를 넘어서서 그 자체 자족적인 존재성을 획득한다. 그러고 보면, 그리기로부터 그리기와 만들기가 공존하는 단계를 넘어, 마침내 만들기로 진화해온 것이다. 이는 종이를 오리고, 붙이고, 접는 공작성이 강조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 내용을 보면, 외부로 돌출돼 있는 베란다와 창문, 덧댄 구조물, 길가와 바로 통하는 현관문, 계단참의 장독대와 화분 등으로서, 60,70년대 지어진 아파트 고유의 근대화의 과정과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그리고 사람과 개 등의 삶의 모습이 투영돼 있으며, 심지어는 외계인, 폭발하는 후지산, 무너지는 아파트, 태권V, TV, 만화에 등장하는 말 풍선마저도 나타나 있다. 주로 창문에 투영된 이 장면들은 그 자체 허구로서보다는 환상마저도 아파트 주민들의 삶의 한 모습임을 주지시킨다.

이처럼 정재호의 작업은 아파트를 근대화의 아이콘으로서 가정한다. 그리고 그 이면에서 과거를 현재화하는 한편, 일종의 도시공학적 아카이브를 수행한다. 특히 공작성이 두드러진 근작에서는 하얗게 표백된 실재를 대면하는 것과도 같은 섬세하면서도 가벼운 입체작업으로써 리얼리티를 재고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