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다시 들여다보고자 하는 시선의 욕망 아래 출현한다. 일종의 ‘레디메이드’들을 렌즈 앞으로 불러들여 그것들을 다시 보게 하고 이를 사진적인 어법으로 재현하는 행위가 바로 사진인 것이다. 그 재현의 행위 안에는 사진 찍는 이, 바라보는 이의 육체와 감각, 기억과 체취가 고스란히 묻어있다. 예를 들어 똑같은 나무를 찍는다 해도 찍는 이에 따라 너무도 다른 나무들이 필름 위에 새겨진다. 해서 우리는 사진 한 장을 보면서 누군가의 몸과 감각으로 해석되고 걸러진 무수한 풍경을 만난다. 사진이 많을수록, 사진 찍는 이가 많을수록 그만큼 세상은 풍성한 해석에 의해 다시 쓰여 지고 새삼 이미지화된다.
사실 사진만큼 당대적이고 사회적이며 예술적인 동시에 대중성 및 과학과 경제 등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매체도 없을 것이다. 오늘날 사진은 모든 이미지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사진이미지가 홍수를 이루는 환경 속에서도 우리들의 눈과 마음에 물처럼 스며들어 사물과 세상을 관조하고 속절없이 사라지는 모든 것들에 연민과 애정의 시선으로 돌아보게 하는 그런 사진은 드물다.

한 장의 사진을 통해 우리들 삶의 공간을 뒤돌아보게 하고 내 눈앞에 펼쳐지는 인생의 찰나적인 스침과 아련한 흔적들, 꽃가루처럼 날리는 시간의 분말들, 그리고 그 어딘가에서 조용히 죽어가는 사람들의 그림자를 비추는 관조적이고 인문적인 사진이미지의 힘들이 쇠락하고 다만 스펙타클하고 개념적이며 차갑고 논리적인 사진이미지 혹은 자본과 상품미학의 강력한 후광을 지닌 사진들만이 지배적인 환경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김병훈은 자신의 삶의 공간을 고독한 보행자가 되어 거닐면서 보고 만난 모든 이미지를 감성적으로 인화하고 있다. 사진이미지를 통해 쓴 이 일기, 단상을 보고 있으면 하루치의 생애가 그렇게 달콤하고 따스하고 더러 비애스러우면서도 스산함으로 절여져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미묘한 흑백의 색으로 절여진 감성적인 톤들은 무겁고 삭막한 도시의 사소한 일상을 기념비적으로 각인해주는 동시에 추억과 향수에 지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덧난 마음의 결들과 여러 상흔들을 견딜만하게 해준다. 그의 사진은 자기 눈앞에 펼쳐진 모든 이미지를 사진으로 저장하고 그 기록을 통해 유한한 삶의 무상함을 견디고 그 이미지들과 함께 살아갈 자신의 눈과 마음, 의식과 몸들을 추스르는 행위 아래 서식한다. 그는 사진을 찍는 다기 보다는 사진 적으로 산다. 자기 몸 전체가 렌즈가 되고 필름이 되고 인화지가 되어 순간순간 본 모든 것을 재현하고 기억한다. 유난히 감성적이고 예민한 이 젊은 사진작가의 눈에 포착된 우리들 삶의 미세하고 곤궁한 그러면서도 아름답고 살만한 풍경들은 바로 내 눈앞에 펼쳐진 지극히 일상적인 정경이다. 그런 면에서 일상은 극락이면서 마장인 셈이다. 김병훈은 바로 그 일상의 풍경을 늘 자기 앞에 대면하면서 사는 일과 의미에 대한 섬세한 성찰을 사진으로 또박 또박 써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