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에서 만난 작가는 내게 돌을 절단하고 그 내부로 들어가 원하는 형상을 추출해내는 작업은 늘 목숨을 걸고 칼을 드는 일이라고 말한다. 작가는 오랜 시간 이태리 대리석, 특정한 무늬가 표면에 드리워진 돌을 선택해 돌의 속살을 햩아 내거나 부드럽게 애무한 듯한 자취를 남겨온 작업을 선보여 왔다. 그것은 자연스레 돌의 외부와 내부가 동시에 절개되고 그것이 하나의 구성 아래 통어되면서 매우 기이한 장면을 연출했다. 무생물인 돌이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자라고 증식하는 과정을 환상적, 환영적으로 드러낸 그런 작업이다. 돌의 안과 밖을 자신의 마음과 신체로 설정하고 이를 등치시키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남긴 작업들로 기억된다. 그것은 유기적인 추상에 가까우면서도 일루젼에 호소하고 동시에 자연스러운 돌과 인위성의 사이에서 애매하게 위치를 잡으면서 구상과 추상, 형상과 비형상의 사이에서 이루어졌으며 자연과 인간의 흔적 사이에서 문득 멈춰서 버린 한 순간을 보여주기도 했다. 돌의 내부를 자꾸 만져가다가 문득 내면이 열려 상처처럼 드러난 안을 보여준 그 작업은 바닷가의 돌 들 마냥 파도와 물살에 제 몸을 맡겨버린 형국이었다. 가시 같기도 하고 심연에서 자라는 생명체를 연상시키는가 하면 동굴에서 까마득한 시간 아래 조금씩 형체를 찾아가는 종유석들의 석순이나 고드름의 형상도 닮았다. 수평으로 자리한 돌들은 하늘을 향해 삐죽한 선들이 리듬감을 지닌 체 자라고 있거나 견고한 돌의 안쪽이 조금씩 허물어져 흘러내리는 환영을 야기하는 형국이다. 물의 흐름에 의해 자연스럽게 난 자리와 구멍, 틈과 굴곡 들이 자연의 돌 안에 고스란히 재연되고 있는 형국이다. 돌 안에 자연의 순리와 법칙, 현상을 되살려 놓았다. 돌의 단호함과 견고성이 대기 아래 무르녹는 것 말이다.
특히나 대리석의 질감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 만들어내는 선의 율동은 다분히 회화적이면서 강렬한 시각적 효과를 자아낸다. 더구나 그것은 시각에서 벗어나 자극적인 촉각성을 적극 유인해낸다. 그것은 보는 이의 상상력에 호소하면서 자연을 지속적으로 연상시키는 매개가 되어 광활하고 아늑한 자연의 여러 속성 등을 통감각적으로 견인해주는 편이다.
아울러 대부분 반원형, 반달 형태로 놓여있는 돌들은 지면에 붙어 그 대지의 수평성을 확인하면서 하늘을 향해 융기한다. 허공을 향해 아우성치는 돌의 함성 혹은 돌이란 존재의 내부의 상처, 상흔 같은 인상을 준 작업이었다. 돌의 내부를 자신의 마음과 자연대상과 함께 오버랩 시킨 작업들이다.
오랜 만에 접하는 그의 근작은 여전히 무늬가 있는 이태리 대리석을 사용해 그것을 곱게 다듬고 매만져서 조개껍질과 쌀알, 밥그릇과 방석, 책 등으로 환생시켰다. 이번 작업 역시 대지에 일치된 수평구조 아래 아담한 크기로 돌들이 놓여있다. 징검다리처럼 자리한 돌들은 내려다보는 관자의 시선 아래 환하게 빛난다. 부드럽게 쓸려가듯, 잔잔한 물의 파장처럼 대리석의 단면에 주름을 슬쩍 잡아 조개의 속살과 단단한 쌀알의 결정이나 방석 등으로 만들어놓은 작가의 섬세하고 정교한 손놀림과 회화적 표현어법이 가시화 된 작업이다. 돌의 피부에 주름을 환영적으로 새겨놓은 작업들은 물질로부터 자연스럽게 이미지가 발아하고 다시 물질과 이미지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평화로운 풍경으로 마감된다.
근작은 이전 작업에 비해 상당히 구체적인 형상들이 단어처럼 놓여져 있다. 화려한 외양 아래 단단하고 차갑고 무거운 돌덩어리가 아름다운 진주를 머금고 키워내는 조개의 내부 속살이 되고 하얀 쌀 한 알로 환생하고 말랑거리고 푹신한 쿠션(방석)이 되기도 하고 날개를 단 한복의 저고리가 되었다. 좀더 구체적인 자신의 이야기를 담지한 이 형상들은 쌀알을 키워내고 품고 있는 조개를 통해 쌀알/밥이 우리들 삶에서 보배에 다름 아님을 역설한다. 동일한 밥그릇 형태의 표면 위에 남녀를 상징하는 기호나 꽃들이 얹혀있는 작품 역시 밥과 삶 그리고 현실 속에서 먹고 사는 일의 여러 단상들을 떠올려준다. 펼쳐진 책의 형상 안에서 자라는 가시/봉우리의 형상을 한 작품 역시 자전적인 사연과 굴곡 심한 생애를 암시한다.
한결같이 힘들고 어려운 우리들 삶의 현실에 대한 풍자나 진솔한 이야기 구조가 되어 놓인 이번 조각들은 다분히 개인적인 서술이 풍경을 이룬다. 방석의 형상을 한 작업 역시 겉으로는 아름다워 보이는 대리석이며 편안한 휴식을 독려하지만 실은 차갑고 딱딱하고 무거운 돌이라는 상반된 요소의 충돌을 보여주면서 이를 통해 작업을 하는 작가의 마음과 작업 과정에 대한 은유를 품고 있다. 그래서일까, 근작은 철저히 자전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선에서 전개되고 동시에 자신이 처한 구체적인 현실에 대한 반응으로 채워져 있다. 오랜 외국유학생활에서 귀국해 이곳에서 작업하며 사는 현재 삶에서 파생되는 여러 상염과 감정들이 작업에 솔직하게 묻어있다. 그래서인지 근작은 대리석 조각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재료와 어법 아래 풀려진다. 그 솔직하고 다소 직설적인 감정을 형상화하기 위해서는 돌 작업을 벗어날 필요가 있었던 것 같다. 대리석뿐만 아니라 스테인레스와 오브제를 사용한 여러 작업은 평면 위에 입체적인 이미지를 부감시키고 설치적인 영역으로의 확장 아래 조각을 이야기체로 전환하는데 적극적임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탄광에서 쓰던 긴 부삽을 이용한 설치작업은 여전히 고수해야할 노동의 신성함, 손의 중요성, 고귀한 장인정신에 대한 작가의 바람 같은 것이 묻어있다. 오늘날 현대조각은 그 같은 조각의 미덕과 노동의 가치를 상당부분 증발시키거나 폄하해오고 있다는 인식과 함께 자신에게 있어 조각의 세계란 여전히 손의 노동과 결합되어 있음을 증거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똑같은 밥그릇의 형태 안에 밥알이 가득 채워져 있거나 부분적으로 혹은 거의 담기지 않는 것들을 나란히 배열한, 스텐을 이용한 판 작업은 부조이면서 회화적 성질을 강하게 드러내면서 동시에 밥그릇을 둘러싼 삶의 여러 양태, 생존을 둘러싼 치열한 사회적 갈등 등에 대한 반응의 형상화다. 그런가하면 화려하고 커다란 서구적 화병에 꽂힌 장미꽃과 그 주변에 청자를 연상시키는 기형에 담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벼는 한국 사회와 화단에서의 서양과 동양 사이의 갈등과 오해, 왜곡 등에 대한 풍자적인 발언이다.
이렇듯 현재 작업은 자신이 처한 사회현실에서 겪는 여러 상황을 반영하는 매개로 유인되고 있다는 인상, 나아가 현실적 삶에 대한 단상과 느낌, 그리고 작업하는 조각가로서의 인식 등이 얽혀있는 형국이다. 다소 신랄하고 냉소적이면서도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풍자성을 강하게 드리운 근작은 그런 면에서 자전적이고 메시지가 강한 조각으로의 이동을 보여주는 한편 그의 조각적 재료 사용과 어법에 있어 커다란 변모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박영택
#2811
현혜성-자전적 발화로서의 조각
박영택
2006. 07. 31.
박영택
서울 출생
인명사전 바로가기 : www.daljin.com/author/688
미술평론가 박영택(b.1963)은 [얼굴이 말하다, 마음산책(2010)], [예술가의 작업실(2012)]을 저술하였고 아시아프 총감독(2010)을 역임하였으며, 경기대학교 예술대학 예술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