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 작가추천
1. 박미현-별과 기하학의 드로잉
박미현은 파브리아노 수채화지나 2절 아르쉬 종이를 4등분해서 한 조각에 일본 pilot에서 나온 HI-TEC-C 0.3검정 펜으로 원형의 점은 비워두고 나머지 부분은 새까맣게 칠했다. 다른 작품은 도형들을 작도했다. 박미현의 이 드로잉은 집중 속에서 그려진다. A4크기의 종이에 육각형, 원형, 작은 사물들의 외형을 떠내 그 빈 내부를 직선으로 꼼꼼하게 채워 넣었는데 그 부분은 검정으로 완벽하게 칠해져 강렬한 존재감이 느껴진다. 가늘고 섬세한 펜을 움직여 화면을 검정으로 물들이듯 칠해나가고 덮어나가는 방식은 다소 무모해 보인다. 손이 가지 않으면, 칠하지 않으면 채워질 수 없다. 어쩌면 이 작업은 자신을 채근하고 독려하면서 의도적인 집중으로 몰고 가는 명상이나 수행을 연상시킨다. 조금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는 그리기, 철저한 계산과 노동이 요구되는 제작행위는 작품의 아이디어와 그것의 완성까지의 과정을 온전하게 일치시킨다. 작가는 오랫동안 미술가, 건축 가, 장인들이 사용한 실용적인 동시에 상징적인 도구인 컴퍼스와 직선 자, 연필 등을 가지고 그렸는데 그것들은 분명 신성한 속성을 지닌 도구들이었을 것이다. 그 도구를 통해 세상의 이치와 모든 창조물의 원리의 비밀을 풀어내는 일을 가능케 하는 행위가 추구되었는데 기하학이 바로 그것이다. 기학학이란 형상을 통해 우주의 근원적 일자와 조응하는 것을 말한다. 박미현은 바로 그 기하학을 드로잉 화 했다. 수학적이고 기계적인 도면과 같은 드로잉은 엄격하면서도 여전히 비밀스러운 대상의 독해이자 가시적인 세계 너머를 연상시켜주는 초현실적인 환영을 제공한다. 이 별과 도상은 일종의 매개이자 열쇠에 해당한다.
하늘(우주)이나 바다는 넓고 크고, 인간의 눈앞에 늘 현존하지만 개별 인간이 그것의 실제 깊이를 가늠하기는 불가능하다. 그 같은 대상은 인간에게 숭고함을 안긴다. 인간의 시측과 실측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 들 말이다. 따라서 그런 깊이를 지닌 것들은 경험보다는 믿음(지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시각으로는 광대한 평면으로 보이지만 그 평면은 깊이와 상상을 품은 평면이다. ‘리터럴’한 평면이 아니라 어떤 신비한 에너지를 내뿜는 그런 평면인 것이다. 그것은 몽상가들을 유혹하지만 잡을 수 없는, 불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작가는 그 불가능한 것들을 납작한 평면에 올려놓는다. 이 화면 역시 2차원에서 3차원으로 나가는 기이한 공간을 지녔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매혹적인 평면이 존재하는 한 회화 역시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평면의 속성과 조응하는 대상을 찾고 그려나가는 것이 박미현의 회화인 셈이다.
2. 김은진
‘눈에 보이지 않고, 어떤 분절적인 언어로도 파악할 수 없는 경험의 영역에 관련된 것을 눈에 보이는 형태나 색채와 같은 오감에 작용하는 표현 속에 반영한 예술적인 활동’이 다양한 문화 속에서 다양한 스타일로 만들어낸 것을 이콘이란 광의의 해석으로 써본다면 김은진 역시 그 도상을 자의적으로 편집하고 환생시키는 작가다. 제도 종교의 도구이거나 민속학 자료에 지나지 않는 이콘들을 새롭게 해석하고 이 세계의 다층적인 모습만큼이나 다양한 여러 겹의 옷을 입고 있는 것들을 다시 읽고자 하는 것이다. 사실 전통적인 이콘, 성화는 이 세계와 인간 존재의 의미, 세상의 처음을 찾는 인류의 여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이다. 그러니까 이콘의 문제는 특정 종교의 이미지와 관련된 것만이 아니라 ‘인간 생명체가 겪어온 경험의 전 영역 속에서 그림이나 기호로 표현된 것이 어떤 위치에 놓이고 어떤 작용을 하는가라는 물음’과 관련되어 있다. 작가는 잃어버린 무한을 회복하기 위해 그 이콘을 다시 물질과 물질적 감각으로 향하게 하는데 이는 주술과 신비와 영성의 힘을 상실하고 망각한 현대인들에게 다시 그 처음의 장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김은진의 그림에는 옷, 의복이 중요한 기호, 도상으로 작동한다. 특정 종교와 관련된 의복이란 기호와 인형, 동물 등을 결합시켜 물질문명 내지는 탐욕스런 자본의 힘과 세속적인 욕망을 비판하는가 하면 자신의 일상을 반영하는 코드로 혹은 고독하고 힘겨운 생애를 유지해나가는 이들에 대한 배려의 차원에서 작동하는 의복 등 다양한 의미로 수놓아진 의복을 그려나간 그림이다. 이미지와 문자 그리고 강렬한 채색이 설 어울려 자아내는 풍성하고 스펙타클한 힘이 느껴지는 동양화다. 그러니까 김은진은 원래 이콘의 힘과 신비를, 그 승화를 지금 이곳의 현실문맥 속에 위치시켜놓고자 한다. 작가는 물신을 적극적으로 환생시킨다. 물신은 영험한 힘이 되고 의미가 되어 일어섰다. 이 지점에 김은진의 채색화가 다른 작업들과 구분되는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이미지를 통해, 그림 그리는 행위를 통해 상처나고 균열을 일으키고 갈라진 것들을 메우고 연결하고 감싸안고자 한다. 이미지라는 선물을 통해 상실한 영성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3. 백지희
백지희는 지속해서 추상회화의 깊이와 질에 대한 고민을 보여준 작가다. ‘talk란 제목을 단 근작은 원형과 타원형이 화면을 가득 점유하고 유동하는 장면을 풍경처럼 보여준다. 유사한 색상들의 섬세한 변화가 촘촘히 채워져 있는 화면은 우선적으로 옵티칼한 구조를 보여준다. 아울러 원형과 타원형의 형상들이 은밀한 운동감으로 진동하면서 산포되어 있는데 이는 마치 구름처럼 떠있고 물처럼 흘러가면서 부유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형태와 색상으로 인한 환영을 창출하는 이 그림은 서정적이고 사색적이기도 하고 낯익은 듯하면서도 묘한 장면이며 분명한 윤곽과 형태감을 보여주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수한 차이가 섬세하게 느껴진다. 무엇보다도 색채간의 긴장과 조화가 아름답다. 색상과 색상이 자아내는 풍성한 울림과 뉘앙스가 고전적인 회화의 힘을 안긴다. 그런가하면 오직 원형/타원형의 리드미컬한 반복만이 미묘한 환영을 치명적으로 망막에 다가온다. 그래서인지 평면에 원형들이 첨가되고 겹쳐질 때마다 변화하는 긴장과 균형의 관계는 색에 의하여 수축, 팽창을 거듭하면서 모종의 에너지를 발산하다. 이 색의 에너지에 의해서 보는 이의 감각과 신체가 화면 안으로 은연중 빨려 들어가고 함께 흐르고 이동하는 것이다. 말 풍선이나 캡슐, 픽셀 등을 닮은 이 형태들은 여러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한계와 무한을 말하며 여러 시간의 층들이자 내밀한 마음의 결이고 떠돌고 부침하는 생각과 상념들, 눈물 한 방울, 응고된 감정의 윤곽들, 수많은 말들, 그리고 개별적 존재들의 에고이자 각자의 삶의 윤곽과 사고의 영역, 생의 풍경, 그것들이 어우러져 이루어내는 삶의 관계망 같은 것들을 암시한다. 백지희는 평면들 간의 균형에 대한 탐구와 색채의 순수성을 유지하면서도 그림이 어떻게 한 개인의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격조 있는 추상회화의 한 단면을 우리 눈에 선사하고 있다.
4. 김윤수
투명한 비닐을 발모양으로 오려내서 그것을 기준으로 삼아 일정한 크기로 계속 확장하면서 중첩시키는 조각은 마치 수학적인 공식에 의해 특정 형태를 증식시키는 방법을 닮았다. 가볍고 부드러우며 자기 혼자서는 존재하지 못하는 단위들을 무수히 반복해서 하나의 덩어리를 만들어나가고 이를 통해 공간을 채워나가는 그런 조각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골판지를 가지고 특정 사물의 외곽을 따라 계속 감아가면서 나중에는 전혀 다른 형태를 보여주는 작업도 공통된 작가의 어법이 되고 있다. 김윤수는 일정한 사물을 자신의 조각의 틀로 삼아 그 외부를 입체적으로 감싸고 모방하는 일이 된다. 그것은 기존 사물의 피부를 모방하고 그 외부에 기생하면서 자기 존재를 부단히 가변적인 상황성으로 만드는 전략이다. 이는 기존 조각의 상투적인 어법과 무척 다르다. 아울러 가볍고 투명하며 부드럽고 말랑거리는 재료들을 반복해서 집적시키고 겹쳐놓으면서 만들어내는 색감과 질감, 덩어리의 시각적 이미지는 무척 회화적인 동시에 일루젼을 극화시킨다. 재료들은 자신들이 스스로를 복제하고 모방하고 참조하면서 끝없이 갈 뿐이다. 문득 멈춘 자리는 성장을 잠시 그치거나 속도가 잦아든 후에 찾아오는 막막한 공허나 고요처럼 보는 이들의 시선에 불안하게 정지되어 있다. 그것은 순간에 멈춰서있다. 완결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한 종결도 아닌 기이한 시간대에 물질들은 다만 그렇게 있을 뿐이다. 마치 우리들 삶의 어느 시간대가 늘 그렇듯이 말이다.
5. 허윤희
허윤희의 드로잉은 모호한 자취들이다. 그것은 꿈과 상상, 몽상의 얼룩 같기도 하고 미묘한 감정의 분비물 같다. 인간 형상과 자라나는 나무와 식물이 혼재되어 있는 이 풍경은 기이한 상상력의 소산이자 몽환적인 정경이며 동시에 식물적 상상력과 변신이란 상황을 흥미롭게, 유니크하게 펼쳐 보인다. 목탄으로 대담하게, 표현적으로 칠해진, 그려진 형상은 매일의 일상에서 받은 느낌이나 자기 자신이 삶의 잔해들이다. 그것은 자화상에 해당하기도 하고 자신의 삶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를 자문하는 행위에서 나오는 그림이기도 하다. 그것은 실존을 위한 예술적 몸부림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런 점이 그녀의 드로잉의 독자적인 지점이다.
박영택
#2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