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배경
한국에서의 판화는 대략 1950, 60년대를 기점으로 해서, 그 이전의 전통판화와 그 이후의 현대판화로 구분된다(혹자는 사진과 석판화가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된 1900년대 초를 그 기점으로 보기도 한다). 주지하다시피 전통판화는 생활판화로서 민중의 삶 깊숙이 침투한 것이었다. 불교의 변상도(불교의 교리를 그림으로 도해한 판화)와 유교의 전적판화(유교의 교리를 그림으로 도해한 판화), 궁중과 사대부 계급을 중심으로 제작된 각종 저작물과 목판화로 제작된 민화에서 보듯 거의 모든 삶의 지점들에서 판화는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과 미의식을 반영하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매체였던 것이다.
엄밀하게 말해, 이러한 전통판화는 생활의 필요성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서 순수한 미의식의 소산인 예술판화와는 구분되는 것이지만, 그 구분은 일정정도 임의적이고 자의적인 것일 수 있다. 즉 예술을 생활과 구분하는 것은 모더니즘 예술관념이 반영된 것이며(이는 흔히 예술의 자율성과 순수예술 논의에 의해 뒷받침된다), 이에 반해 리얼리즘 미학에서는 예술의 소산과 생활의 소산을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나아가 이를 추구하기조차 한다(이는 흔히 삶의 한 형식으로서의 예술 논의에 의해 뒷받침된다). 그리고 이는 일면 예술과 삶과의 경계를 허물고 봉합하려는 아방가르드의 예술정신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 이러한 전통판화는 옛날에 제작되어 현재에까지 전래되고 있는 고(古)판화, 고판화를 제작하는 방법을 현재에 계승하고 되살려낸 창작판화, 고판화를 복제한 복제판화를 아우른 것이며, 그 창작방법이나 의미가 현재에 계승되고 재조명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1950,60년대를 기점으로 해서, 이후의 한국의 현대판화는 여러 면에서 전통판화와는 구별되는 전기를 맞게 된다. 무엇보다도 현대판화는 순수한 미의식의 소산인 창작판화로서, 이는 생활판화의 형태로 나타난 전통판화와는 구분되는 것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은 1950,60년대를 왜 한국 현대판화의 기점으로 보는가 하는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1950년대 말에는 한국판화가협회가, 그리고 1960년대 후반에는 한국현대판화가협회가 창립되었는데, 사실상 한국의 현대판화가 이 두 협회의 창립과 그 맥락을 같이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당시의 한국현대판화에 나타난 현상으론 판화를 생산하는 주체가 본격적인 판화 전공자라기보다는 현대미술의 첨단을 이끌던 모더니즘과 특히 앵포르멜 계열의 화가들이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1970년대 중.후반이 돼야 비로소 순수한 판화전공자에 의한 판화 제작과 교육현장에서의 판화교육이 가능해진다). 이는 화가들로 하여금 판화의 각종 기법과 과정에 매료되게 했으며, 판화 고유의 장르적 특수성보다는 회화적 표현을 진작시키기 위한 형식실험의 연장선에서 판화를 이해하게 했다. 돌이켜보면, 당시 판화는 회화보다도 더 첨단의 매체로서 받아들여졌으며, 형식실험에 대한 작가들의 갈증을 상당정도 해소해주는 매체였던 것 같다. 특히 각종 (평면) 오브제를 바탕으로 한 콜라그래피 판화에서 그러했는데, 아마도 그에 의한 물성이 앵포르멜 회화의 즉물성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회화와 판화와의 긴밀한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는 이후 회화의 한 형식으로서의 판화, 회화에 대한 종속개념으로서의 판화라는 오해의 여지가 있는 관념을 낳기도 했는데, 이 자체는 이중적인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즉 회화와 판화의 관계논의가 질적 차이로 나타난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회화의 일품성과 판화의 멀티플로 나타난 유통구조의 생리와 관련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회화와 판화를 구분하고 그 경중을 따지는 논의는 소모적일 뿐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회화나 판화는 똑같이 이미지를 생산하는 방식들이며, 다만 회화에서의 그려진 이미지(직접성에 바탕을 둔)란 점과 판화에서의 찍혀진 이미지(각종 판을 매개로 한 간접성에 바탕을 둔)란 점이 다를 뿐이다. 더욱이 후기 근대 이후 모더니즘의 장르적 특수성 논의가 그 적절성을 잃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이제 논의의 초점은 회화와 판화 모두를 아우르는 이미지 자체의 속성을 밝히는 쪽으로 옮겨져야 할 것이다.
한편, 1980년대 와서 한국현대판화는 또 한번의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1980년대 한국미술계는 순수미술과 참여미술 계열의 이념대립이 첨예화된 시기였다. 당시 참여미술계의 민중목판화운동은 정치에 대해 발언하고 민중을 계몽하는 풀뿌리문화운동의 첨병 역할을 했다. 유신체제와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나타난 정치적 현실을 배경으로 한 당시 목판화운동은, 1차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독일의 표현주의 목판화, 문화혁명을 배경으로 한 중국의 목판화운동, 그리고 좌파세력을 중심으로 민주화를 실현하는 도구로서의 남미의 목판화운동과의 상관관계에 놓여져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와중에서 불교 변상도와 유교의 전적판화, 그리고 민화에 나타난 목판화의 정신과 형식을 현재화하고, 그 단절된 끈을 이으려는 노력과 형식실험이 행해졌던 것도 한 성과라 할만하다. 민중목판화는 이처럼 정치적 발언과 참여의 계기에서 더 나아가 이후에는 선화(禪畵)를 연상시키는 잠언적인 목판화와 그 속에 기록과 서사의 계기를 담아낸 기행 목판화, 그리고 생명사상과 자연환경에 그 초점을 맞춘 생태 목판화로 확대 재생산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런가하면 한국미술계는 1980년대 중.후반에 국내에 소개된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원주의에 의해 또 한번 근본적인 변화에 직면하게 된다. 도입 초기에는 오리엔탈리즘과 후기식민주의 논의, 신제국주의와 반세계화운동, 페미니즘과 퀴어 논의, 그리고 상황주의와 도시주의 논의 등의 정치적 발언을 세련화한 후기 마르크스주의의 형태로 현상하며, 그 이해관계가 당시 참여미술 계열의 그것과 맞물리는 것이었다.
한편으론 정작 그 이론의 도입 당시보다는 상당한 시간이 흐른 이후에야 그 정치적 담론의 실체가 밝혀지고 현재화한 것에 대해서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일면 아이러닉한 측면이 없지 않다. 이를 아마도 이론과 이론의 형상화과정의 간극과 차이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은 후기구조주의 쪽으로 논의의 축이 옮겨가면서, 몸 담론과 욕망이론, 그리고 해체론으로 확대 재생산된다. 이러한 분위기와 맞물려서 재현과 서사 논의가 재조명되고, 회화와 사진에 이어 영상매체와 디지털매체가 그 논의를 견인하는 지배적인 시대양식으로서 자리매김 된다. 이후 한국미술계는 말하자면 장르 중심에서 주제 중심에로(이는 큐레이터를 주축으로 한 각종 주제전과 기획전시가 활성화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순수미술 중심에서 순수이미지 중심에로(이는 콘라드 피들러의 순수가시성이론으로부터 장 보들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이론에 이어진 이미지론과 관련된다), 그리고 형상성과 일상성 중심에로(이는 거대담론이 회의에 부쳐진 이후의 미시담론과 개인서사의 보편화 현상과 맞물린다) 그 논의의 축이 옮아간다.
판화 역시 예외일 수는 없다. 즉 판화와 관련한 이후의 논의는 장르적 특수성과 매체적 특수성 논의에서 내용중심에로 그 축이 옮아가게 되며(판화는 다른 장르에 비해 기술적 제약이 강한 장르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 변화가 더디거나 소극적일 수 있다), 복제와 복수성 논의를 넘어 이미지 자체의 존재방식과 작용방식을 밝히는 쪽으로 확대돼야 한다는 시대적 당위성을 요청받는다. 사실상 무한정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매체에 있어서의 한정매수 논의는 그 의미를 상실하며, 이는 판화에 한정된 문제의식이기보다는 모든 조형예술에 적용되는 것이다.
미학적 배경
일찍이 발터 벤야민은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1936)이란 소논문에서 향후 예술작품의 정체성이 달라질 것임을 예견한 바 있다. 즉 판화와 함께 영화와 사진 등의 새로운 매체의 등장으로 인해 하나의 이미지가 복제 재생산될 수 있게 되었으며, 따라서 예술작품의 정체성 논의가 일품 회화를 중심으로 한 오리지널리티로부터 복제 이미지로 옮아가고 있다고 본 것이다. 그 이면에는 예술작품과 관련한 천재성이나 형식논리 그리고 미적 향수와 같은 예술작품이 내재하고 있는 고유의 조건보다는, 예술작품이 사회와 맺고 있는 관계를 중요시하는 관념이 놓여 있다. 새로운 매체의 등장으로 인해 창작환경이 달라지고, 이는 예술작품과 사회와의 관계가 더 긴밀해졌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미지가 더 이상 예술가의 전유물이 아닌, 한 장의 사진, 신문과 잡지의 지면, 영화관의 스크린, TV의 모니터, 전광판의 광고보드 등의 보다 복잡하고 다양하게 얽혀 있는 사회적 회로 속을 떠도는 단자가 된 것이다. 이렇게 복제된 이미지는 기술 복제의 시대를 넘어, 전자 복제와 디지털 복제의 시대로 이어지면서 자기의 정체성을 유포시킨다.
그런가하면 ‘미디어가 곧 메시지’라는 마샬 맥루한의 미디어 이론은 사회적 환경이 달라지면 당대적인 이데올로기도 달라지고, 창작환경이 달라지면 시대정신도 달라진다는 말로 확대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농경사회가 파피루스 문화를 낳고, 부르주아의 출현이 인쇄매체 문화를 낳고, 전자 시대가 영상매체 문화를 낳은 것이다. 맥루한은 이 모든 매체의 출현을 인간의 몸과 의식이 연장된 것으로 본다. 그러니까 매체가 이전에는 인간이 들을 수 없었던 소리를 듣게 하고,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게 하고, 접촉할 수 없었던 것을 대면케 한다. 이제 인간은 토성의 표면을 마치 뒷동산의 능선처럼 보고, 사람의 장기 속을 배수관처럼 투명하게 들여다본다. 거시세계와 미시세계 그리고 초미립자의 세계(나노)가 인간의 눈앞에 열려진 것이다. 이와 함께 세계가 증대되고, 그 세계에 반응하는 인간의 의식이 증대되고, 그 세계에 기대어 유추하는 예술가의 상상력이 증대된다. 매체가 몸을 연장시키고, 또한 몸이 의식을 연장시킨 것이다.
또한 장 보들리야르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마치 존재하는 양 만들어 놓은 인공적인 대상물을 뜻하는 시뮬라크르 이론을 제안한다. 그는 이런 가상적인 대상물, 즉 원본과 사본의 구분이 없는 이미지, 아예 원본이 없는 이미지,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이미지,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한다고 본다. 나아가 현실에 대한 인식을 구조화하고 있는 지층 역시 이런 이미지에 의해 견인된 것으로 본다. 이로써 마치 디즈니랜드를 현실에 옮겨 놓은 것과 같은 모텔, 온갖 가상 인격체들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문구류, 전자게임과 구분되지 않는 전쟁, 가상현실 속에서의 익명적인 주체를 대신하는 아바타, 이상적인 남성상과 여성상, 그리고 이에 따른 성형수술과 다이어트 붐, 스타 신드롬, 이상적인 사회의 청사진 등의 온갖 가상적인 이미지들이 현대인의 일상과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매체 시대의 현대판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상의 논의는 모두 디지털 매체 시대의 달라진 창작환경과 의식구조 그리고 이미지의 정체성을 암시해주고 있다. 이 이미지들은 가상현실 속에서 그 진정성을 획득하며, 디지털 매체 속에서 그 현실성을 얻는다. 디지털은 현실과 가상현실, 실제와 허구와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 구분을 모호하게 한다. 아날로그의 물적 토대를 한낱 추상적인 기호로 변질시키고, 이미지의 감각적 근거를 한낱 정보의 차원으로 압축시킨다. 이미지의 정체성이 오리지널리티와 복제를 넘어 정보로 변질된 것이다. 이렇게 정보로 압축된 이미지와 현실 그리고 예술작품이 물적 형식을 전시하는 공간적 점유보다는, 이를 전달하고 전송하는 기능에서 그 효용성이 극대화될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말하자면 예술작품의 물적 근거가 희박해진 대신에 상대적으로 예술작품(혹은 예술행위)을 매개로 한 소통 행위가 강조된 것이다. 더불어 이미지와 현실 그리고 예술작품이 정보로 압축됨으로써 이를 전송하는데 있어서 어떠한 시간적이고 공간적인 제약도 받지 않게 된다. 한 장의 이미지가 이 모니터에서 저 모니터로 순식간에 전송되는가 하면, 이미지를 전송 받은 셀룰러폰을 프린터에 연결하여 언제든 필요할 때 이를 출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정보화된 이미지는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창작주체와 향수적 객체와의 경계마저도 허물고 있다. 그러니까 디지털은 그 생리가 열려진 것이고, 이는 자기 폐쇄적인 전통적 예술관념과는 비교되는 것이다. 소통과 나눔, 관계와 연결(연속)에 민감한 디지털의 생리는 창작 과정 그 자체를 타자와 공유함으로써 예술작품이 특정의 주체에게 귀속되는 현실을 거부한다. 수많은 모니터에 연결된 다중주체가 동시적으로 참여하는 상호 커뮤니케이션의 역동적인 과정이나, 나아가 관객의 참여에 의해서 비로소 작동되고 완결되고 그 의미를 발생시키는 경우에서 보듯, 향수적 객체마저도 상호작용성(인터액티브)을 매개로 하여 창작 행위 안쪽으로 끌어안는다. 나아가 디지털은 예술창작에 있어서의 전문가와 비전문가와의 경계마저도 허문다. 매체에 대한 약간의 조작능력만 있다면 누구든지 이미지를 창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디지털은 현실과 가상현실과의 경계를 허물고, 예술가와 관객과의 경계를 허물고, 예술작품과 대중적인 이미지와의 경계를 허문다.
이처럼 디지털에 의한 정보화 사회는 예술은 물론이고 일반적인 생활양식까지 변화시키고 있으며, 실제로 현대인은 아날로그로부터 디지털로의 체제 변화를 피부로 느끼는 현실에서 살고 있다. 그 변화는 미술의 틀마저도 질료적 형식에 바탕을 둔 오브제미술로부터 비물질적인 개념미술 중심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는 디지털프린트를 비롯한 제록스프린트(복사미술), 사진, 멀티플(복수미술), 팩시밀리, 메일아트, 웹아트 등의 여타의 새로운 형식을 정보미술(이미지를 정보로 압축한다는 점에서)과 전송미술(이미지를 전송한다는 점에서)의 이름 아래 아우르고 있다. 이제 하나의 이미지는 여전히 미적 향수의 대상으로서 소비되면서도, 이와 함께 전에 없이 소통의 매개체로서의 기능과 의미가 강조된 것이다.
이제 현대판화는 창작주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기술적인 제약에서 오는 장애물은커녕 어떠한 머뭇거림도 없이 즉각적으로 하나의 이미지로 실현해 보여주는 디지털 환경에 처해있다. 이러한 디지털환경 하에서는 하나의 이미지에 대한 사실상의 무한정한 자기복제가 가능해지며, 따라서 판화와 관련한 에디션과 한정매수 논의는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이와 관련하여 이우환은 판화를 복제 혹은 복수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으며, 찍혀진 한 장 한 장의 이미지 모두가 오리지널리티를 실현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제 판화는 장르적 특수성, 매체적 특수성, 기술(기법)적 특수성의 논의로부터 창작주체의 개성과 이미지 자체의 속성을 밝히는 쪽으로 확대돼야 한다. 그리고 판화는 회화(각종 판법을 응용한 회화, 특히 사진전사기법을 부분적으로나 전면적으로 도입하는 회화는 이제 더 이상 생소하지 않다)와 사진(사진은 그 생리가 판화와 가장 밀접하다)과 조각(조각에서의 레플리카와 멀티플은 그 속성이 현저하게 판화와 닮아있다) 등의 전통적인 장르는 물론이고, 컴퓨터와 프린트와 복사기 등의 온갖 다중적인 매체들이 하나로 통합되는 한 지점으로 이해돼야 한다. 판화는 말하자면 그 본질상 다중복합매체인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판화는 몸처럼 생생한 것, 바람처럼 피부로 감촉 되는 것, 시간처럼 찍혀질 수 없는 것, 무의식처럼 가시화되지 않는 것을 찍어내고 가시화하는 다중적이고 분열적이고 미시적인 형식실험에 바쳐져야 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술적이고 기법적인 조건으로부터 좀더 자유로워져야 하고, 나아가 그 자체를 제약으로서보다는 자유자재한 강점으로서 거머쥘 수 있어야 한다.
고충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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