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된 시간 전(11.11-12.7, 세오갤러리)

5명의 젊은 작가가 참여한 ‘공존된 시간’전은 이 시대의 혼성의 풍경을 보여준다. 기획자는 이 전시가 ‘장르가 가로지르며 접목되는 총체적 감각’을 추구했다고 밝히지만, 굳이 장르를 뒤섞기 전에, 각 장르의 순수성이라 할만한 것이 남아있는가에 대한 회의가 든다. 현대예술은 각 장르의 순수성을 연마하면서 의미의 총체성에 도달하려는 야심, 모든 것을 총괄하는 이전 시대의 입장을 포기하고, 서로 다른 기원을 가진 목소리들이 아우성치게 내버려 두는 경향이 있다. 미술의 경우, 혼성의 풍경을 용이하게 하는 기본적인 매체는 바로 사진이다. 실재와의 도상적 유사성을 통해 지표index로서의 특징을 가지는 사진은, 원래의 대상을 강조함으로서 강력한 실재 효과를 자아낸다. 그림자나 발자국처럼 지시체와 인과적 관계를 가지는 사진은 실재의 투명한 복제로 간주되어 오면서 현실이라는 상을 형성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실재와는 달리, 뒷면이 없는 사진은 손쉽게 오려져서 여기저기로 이동하여 새로운 맥락을 형성한다. 가위질과 풀칠마져 필요없는 컴퓨터는 여기에 날개를 달아준다.

그러나 사진의 실재 효과가 강력했던 것만큼, 그것의 허구성도 커진다. 우리가 매순간 처리하고 있는 시각적 언어들은 의미로부터 미끄러지는 기표들의 망상조직으로 이루어진다. 의미로부터 각 기표들이 멀어질수록, 기표들의 조합에 의한 낯설고 이질적인, 그리고 모순과 불가능에 대한 느낌은 무뎌진다. 여러색이 합쳐져 만들어진 무채색같다고 할까. 그래서 새로움으로 번쩍거리는 현대적 환경은 자극적이지만 권태롭다. 박용식은 동물 캐릭터를 만들어 실제 공간에 설치하고 이것을 사진으로 찍는다. 실제 공간이 매우 인공적이기 때문에 캐릭터는 잘 만들어진 실사 애니메이션처럼 배경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성유진은 장소에 대한 기억이 고일 시간이 없을만큼 많이 바뀌는 도시풍경을 사진으로 찍는다. 찍힌 건물들은 언제라도 다르게 조립되고 해체될 수 있는 모형같은 느낌을 준다.
각 건물 사진들이 꼴라주처럼 한데 모은 장면에서는 건물이 가질 법한 실재성보다는 기호의 조합이라는 특성이 더욱 강화된다. 이수연의 작품 소스는 세계명화부터 광고까지 전방위적이다. 다양한 소스를 가진 도상들이 홀로그램 안에 조합된다. 홀로그램의 어른어른한 이미지는 뿌리없이 부유하는 기표들이 만들어내는 현기증과 무관하지 않다. 김상균은 비디오로 찍은 일상의 풍경을 회화로 덧칠하는 듯한 장면을 보여준다. 칠해진 컵에 물이 떨어진다든지, 거리에 가득 모인 인파들이 물감으로 칠해지는 공간 속에 고립되는 등의 장면이 흘러나온다. 여기에서 영상은 서로 다른 시공간을 짜깁기 할 수 있는 방편이 된다. 이일우의 [해변의 초상]은 다른 작품과는 달리, 이음매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다양한 성별, 직업, 나이, 국적을 가진 이들이 한 장소에 찍혀있는 사진들은, 세계화의 시대에 유명한 관광지는 그 자체가 혼성의 장임을 예시한다.

-월간 퍼블릭 아트 2006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