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은 재료의 진보를 말해준다. 재료는 우리 자신에 관해 무언가를 드러낸다. 재료는 세계가 존재하는 방식과 깊은 관련이 있다. 쓰레기란 단지 용도를 찾지 못해 잠시 내버려둔 것일 뿐이다.
- 토니 크렉
창작주체가 대상화한 사물은 물체와 물질, 이렇게 두 구성요소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물체는 사물이 지닌 구조적인 측면을 말하며, 물질은 사물이 갖고 있는 질료적 측면을 말한다. 더불어 물체는 오브제 미학과 관련되며, 물질은 재료의 미학과 관련된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상대적인 것일 뿐, 실제로는 상호 관계적이고 상호 내포적인 관계에 있다.
이들 가운데 재료의 미학은, 근대 이후 모더니즘 미술의 논리를 견인했던 장르적 특수성과 매체적 특수성의 개념이 해체되면서, 여러 이질적인 재료들이 표현을 위해 차용되는 과정에서의 재료의 다변화 현상과 맞물려 있다. 특히 탈조각과 비물질조각으로 명명되는 조각에서의 현대적인 현상들과, 아상블라주와 설치미술의 경향성들과 관련이 깊다. 예컨대 클래스 올덴버그의 부드러운 조각, 세자르의 폐차를 재료로 차용한 압축조각과 겔 성분의 합성수지를 재료로 차용한 팽창조각, 이브 클라인의 공기조각(텅 빈 전시장을 사실은 그 속에 공기로 가득 차 있는 것으로 가정해본), 그리고 풍선조각(사실상 공기조각의 한 유형으로 보아야 할), 소리조각(소리 자체를 질료의 한 형태로 보고, 소리와 공간, 소리와 구조의 관계를 중심으로 논의를 진작시킨), 그림자조각(그 자체로는 물질적 실체를 결여하고 있기에 그 흔적을 제시할 뿐인) 등이 작게는 조각의 범주를, 크게는 현대미술의 범주를 확장시키고 있다. 그 이면에는 재료에 대한 달라진 인식이 놓여 있다. 이를 유물론자의 화법을 빌려 말하자면, 하부구조 즉 물질적 토대(재료)가 달라짐에 따라 이에 연동된 상부구조 즉 의식의 변화를 반영하게 된 것이다. 현대미술에서의 다양한 재료는 그러니까 달라진 의식과 시대정신, 패러다임과 아이덴티티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미술에서의 다양한 재료들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주세페 아르침볼드의 초상화는 각종 야채와 꽃, 나무와 식물들로 뒤덮여 있다. 그 계절의 각종 꽃으로 초상화를 장식하는 방법으로써 계절감각을 부여한 것이다. 이처럼 그가 그린 야채인간과 나무인간은 자연 속에 살아 숨쉬는 영적인 존재를 불러일으키며, 인간이 자연과 분화되기 이전의 신화적인 세계를 보여준다. 초현실주의 화가들에 의해 진정한 전범으로 재발견된 아르침볼드가 보여주는 비전은 상식과 합리, 그리고 논리나 감각적인 현실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 즉 공상과 상상력으로 축조된 세계에 맞닿아 있다. 그리고 그의 초상화에서는 모델보다는 이를 구성해내는 이질적인 재료들에 주목하게 만든다.
그런가하면 영국의 작가 토니 크랙은 템즈 강변에 떠내려 온 플라스틱 조각, 병, 주사위, 금속조각, 고무 등의 각종 생활쓰레기를 소재로 차용해서, 이를 작업으로 재구성한다. 그리고 루체른 출신 작가 우르슐라 스탈드는 해변이나 강변에서 채집한 자연 혹은 생활 오브제들을 고고학적인 발굴 개념으로써 박물관 식의 디스플레이 방식으로 재구성한다. 또한 팝아트 작가 라우젠버그는 자신의 침구인 침대와 베개를 재구성한 설치작업으로써 1961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미국인으론 처음으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인간에 대한 시니컬한 풍자로 악명 높은 에드워드 키엔홀츠는 세계 각처로부터 채집해온 온갖 쓰레기들로써 문명에 대한 신뢰를 신랄하게 공격한다. 일종의 쓰레기 미술의 연장선에 있는 이 일련의 작업들에서는 이질감보다는 오히려 친근함이 느껴지고(아마도 삶의 채취가 묻어있어서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현저하게 모호해진 예술과 삶과의 경계가 느껴진다. 이러한 인상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 재료들에서 기인한다. 이로써 현대미술에서의 재료는 자기 외부로부터 부여된 의미를 수행하는 식의 종속적인 것에서 벗어나, 스스로 의미를 생산하는 자족적인 존재를 획득하기에 이른 것 같다.
현대미술에서의 이처럼 다양해진 재료는 아방가르드의 창작 논리로부터 힘입은 바가 크다. 그리고 이는 특히 쉬포르쉬르파스, 아르테포베라, 일본의 모노파, 그리고 소위 물성조각을 지지하는 논리로서 작동한다. 부연하면, 쉬포르쉬르파스에서의 캔버스는 더 이상 이미지를 위한 부수적 존재이기보다는 그 자체 하나의 재료로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아르테포베라에서의 가난한 혹은 비천한 미술이란 의미는 사실상 회화적 재료가 갖고 있는 질료의 특정성을 극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모노파와 물성조각에서는 재료의 질료적 특정성과 함께 그것들이 배치될 때 생겨나는 관계에 대한 논의가 바탕이 되고 있다.
그런가하면 아방가르드의 창작 논리는 사실상의 거의 모든 것이 재료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즉 콜라주와 데콜라주, 그리고 파피에콜레로 나타난 입체파의 창작 방법론 이후, 미래파에서의 재료에 대한 인식은 아카데미즘에 대한 거부를 넘어 부르주아의 삶의 양식을 거부하는 공공연한 구실이 된다. 거울과 유리, 종이와 마분지, 시멘트와 콘크리트, 말총(말꼬리 털)과 헝겊, 기호와 활자 등의 타이포그래피와 칼리그래피, 전기광선의 도입에 의한 빛의 다이나미즘의 표현과 함께, 콜라주와 아상블라주가 새로운 창작방법론으로서 예시된다. 이외에도 러시아형식주의와 다다이즘의 포토콜라주 혹은 포토몽타주는 회화와 사진과의 경계를 불투명하게 했으며, 레스타니에 의해 지지되고 있는 신사실주의는 각종 공산품 쓰레기들로부터 고도로 문명화된 시대를 관통하는 리얼리티를 읽어낸다. 신사실주의 작가인 만조니는 공산품 쓰레기를 넘어 예술가의 호흡과 똥마저도 신성한 재료로서 도입하고 있다.
이질적인 재료들은 문명화에 따른 인간성 상실을 병적 징후로 간주하고, 일종의 주술적인 행위를 통해 이를 치유하려는 일군의 작가들의 작품을 정당화해주는 구실이 되기도 한다. 요셉 보이스에게 있어서 지방덩어리는 부패를 방지해주고, 팰트는 보온기능을 한다. 물론 이를 실질적인 의미로 보기보다는 그 자체 상징적인 의미를 수행하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안젤름 키퍼에게 있어서 납은 죽음과 재생, 파괴와 신생의 의미를 동시에 함축한 이중적이고 양가적인 물질이며, 그 자체 변환을 수행하는 연금술적 물질이며, 생사와 윤회의 비밀에 잇대어져 있는 순환론적 물질이다. 또한 못의 작가로 알려진 귄터 워커에게서의 못은 문명 혹은 제도가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과 린치를 암시하며, 못에 찔린 나무를 천(압박붕대)으로 감싸는 것은 이로부터 연유한 상처를 치유하는 행위를 암시한다. 이 일련의 작가들은 사실상 아노미 현상이나 정신적인 패닉 상태, 그리고 소외로 나타난 각종 문명화의 질병을 치유하는 것에서 창작의 이유를 찾으며, 그런 점에서 일종의 현대판 무당이기도 한 셈이다.
한편, 재료에는 신체적인 것들도 있는데, 이는 주로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일군의 후기구조주의 페미니즘과 몸 철학자들로부터 연유된 것이다. 특히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저급한 물질이란 의미의 애브젝션 개념과, 유아가 차이에 대한 인식작용을 획득하기 이전의 무구분 단계 혹은 통합단계를 일컫는 코라 개념, 그리고 이리가레이의 육체적인 글쓰기의 개념으로부터 그 지지를 얻고 있다. 그리고 이는 정신과 사유에 바탕을 둔 남성적인 글쓰기와는 비교되는, 몸과 물질에 바탕을 둔 여성적인 글쓰기의 형태로 나타난다. 특히 이는 루이스 부르주아와 키키 스미스 그리고 길버트와 조지 등의 작가들에게 성적 특수성을 보장해주는 계기로 작동한다. 루이스 부르주아의 신체를 흉내낸 봉제인형은 남성과 여성이 통합된 형태이며, 이를 통해 무의식적인 욕망이나 두려움, 그리고 불안을 되새김질하는 행위가 바로 이를 치유하는 주술적인 행위와 통합되고 있다. 또한 키키 스미스가 밀랍으로 만든 남성과 여성의 신체 위로 흘러내리는 우유는 각각 젖과 정액을 상징하며, 그 이면에서 남성과 여성이, 삶과 죽음이 통합되고 있다. 이는 이분법적인 가치를 통합하는 미하일 바흐친의 양가성 개념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삶과 죽음을 통합하는 프로이드(삶의 충동과 죽음충동)와 조르주 바타이유(삶과 죽음의 연속성과 불연속성 개념)의 입장에도 맞닿아 있는 것이다.
그 범주는 대략 머리카락, 이빨, 피, 눈물, 정액, 오줌, 똥, 땀, 젖, 침 등의 신체로부터 직접 추출해낸 각종 분비물과 장기들, 밀랍, 파라핀, 실리콘, 라텍스 등의 신체의 속성을 닮은 유사 물질들, 인형과 콘돔 등의 유사신체와 성적 환기력을 불러일으키는 물질들, 밀랍, 버터, 치즈, 글리세린, 비누, 물, 기름, 치약, 설탕, 커피 등의 천연 혹은 인공 물질들, 엑스레이 필름, 신체 분비물이 묻어 있는 패드, 탈지면, 거즈, 머큐로크롬 등의 각종 의료 물질들(그 자체 일종의 메디컬아트로 범주화할만한)을 아우른다. 이 재료들에 나타난 가변성과 부패 가능성은 현저하게 유기체의 생리를 닮아 있으며, 그 이면에 반영된 통합의 원리는 존재를 정신과 몸, 이성과 감성으로 구분하는 이분법적 결정론을 거부하는 몸의 논리에 맞닿아 있다. 이는 폭력과 린치, 상처와 트라우마, 삶과 죽음, 자기애(나르시시즘)와 자기소외, 폐쇄공포증과 대인공포증과 광장공포증으로 나타난 각종 공포증, 불안과 두려움, 자기를 소진하는 퇴폐와 순수에 강박적으로 발목 잡힌 결벽증, 의식과 무의식, 욕망과 억압, 일탈과 검열, 금기와 터부, 다이어트와 성형수술 등의 심리적이고 정치적인, 심미적이고 경제적인 몸의 실제에 맞닿아 있다. 개인으로 하여금 외계(사회와 제도)와 맞닥뜨리게 하는 유형무형의 온갖 계기들에 맞닿아 있으며, 그 실질적인 경험의 장을 반영하고 드러내는 것들이다.
한국 현대미술에 있어서의 현실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원주의 이후 한국의 현대미술에 있어서도 재료의 다양화는 이제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특히 <엘비스 궁중반점>(1999, 성곡미술관. 혼성잡종 문화를 테마로 한 이 전시에서 정연두는 다국적 출신의 작가들과 함께 일종의 음식 퍼포먼스를 실연해 보인다), <외유내강 - 부드러움이 강함을 가로지른다>(2001, 포스코미술관, 사실상 부드러운 조각을 테마로 한), <케미컬아트>(2002, 갤러리 사간. 이 전시에서는 플렉시글래스, 폴리코트, 폴리에스터, 실리콘, 우레탄폼, 무수프탈산, 홀로그램도료, 카멜레온도료, 규산, 기름, 바인더, 수지석고 등 더러는 이름조차 생소한 화학물질들이 새로운 재료로 편입되어지고 있다), <플라스틱>(2003, 갤러리 아트파크), <볼프강 라이프>(2003, 국립현대미술관, 이 전시에서는 꽃가루, 우유, 왁스, 쌀 등의 천연소재들이 재료로서 도입된다), <맛있는 미술관>(2003, 인사아트센터), <일상의 연금술>(2004, 국립현대미술관. 재료보다는 오브제 미학에 기울어진), 그리고 <재료미학>(2006, 충무갤러리) 등의 재료가 갖는 특정성을 다룬 전시들이 주목된다.
이 전시들을 중심으로 해서 한국 현대미술에 나타난 재료들을 보면, 수건과 라텍스와 털실(김희경), 벨크로(일명 찍찍이, 김수진), 지퍼(한젬마), 비닐봉지(고승욱), 비닐 판(이지은), 못(이재효), 레고(황인기), 스테이플과 엑스레이 필름(한기창), 몽땅 연필(박도철), 납 활자본(노주환), 목도장(이준호), 연탄재와 껌(함진), 알약(박지은), 유황(이기일), 자기발포성 수지(정재철), 실리콘(오이량, 오연화), 테이프(백희경), 청테이프(김남주), 스펀지(안진우), 크레용(이강원), 비누(신미경의 비누조각은 번역의 문제를, 박혜성의 비누조각은 페티쉬의 문제를 다룬다), 향 가루(오인환의 향 가루 텍스트는 성 정체성 문제에 그 맥이 닿아 있다), 쇳가루(김종구), 지우개가루(황혜선, 류지선), 생리대(박윤영, 이세현), 콘돔(방지현), 머리카락(함연주, 이순종), 식용의 김(구경숙), 국수(조성묵), 비스킷과 캔디(오정미), 식빵(정연두), 곡물(이동재), 식용식물의 씨앗과 구근류(김주연), 꽃(손정은), 낙엽(김미형), 낙엽을 빻아 만든 가루(박혜수), 굴 껍질을 빻아 만든 가루(권영석), 짐승의 사체(여락), 불(강성욱), 물(김영진), 소리(김기철, 김지섭, 이윤경, 김안식), 그림자(차상엽), 그리고 기타 각종 한지조형작업과 옻칠조형작업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 엄청나게 다양한 재료들은 미술과 관련하여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범주화에의 시도를 무색케 한다. 이는 한국의 현대미술이 이미 장르적 특수성에 의한 구분의 경계를 벗어나 있음을 말해주며, 현대미술이 시각적 이미지의 경계를 넘어 모든 감각코드가 동시적으로 요구되는 일종의 토탈아트를 실현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음식퍼포먼스, 보이스퍼포먼스, 소리조각, 그림자조각, 불조각, 물조각, 탈조각, 비물질조각, 공기조각, 풍선조각, 메디컬아트, 케미컬아트, 살아있는 미술, 자연미술 등의 온갖 새로운 명칭들이 미술에 대한 재정의를 요구하고 있으며, 이 역시도 머지않아 새로운 명칭들에 의해 갱신될 것이다.
창작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은 다름 아닌 욕망이며, 그 욕망의 다양한 형태나 양상만큼이나 그 욕망을 형상화하는 재료 또한 더욱 다양해질 것이다. 재료가 다양해진다는 것은 곧 창작을 통한 욕망의 내용이 다양해진다는 것이며, 이는 그대로 다원주의와 미시적 사회 정체와도 연관된다는 것이다. 이제 창작 환경은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심리적이고 심미적인 온갖 이질적인 지점들에 맞물려 있고, 그 지점으로부터 문명과 자연, 미술과 마술, 정신과 몸, 개념과 물질, 상식과 신비, 삶과 죽음, 생성과 소멸,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이미지 텍스트와 문자 텍스트 등의 각종 이질적인 계기들을 통합한다. 이로써 재료의 미학은 현대미술의 창작환경과 그 의미가 온갖 미시적인 내러티브의 지점들과 더불어 혼성잡종의 형태로, 이종교배의 형태로 재편되고 있음을 증언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