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미술계 결산
2006년 미술계의 초상
미술이 우리사회 반동성에 제동을 걸어야 하지 않나
혼란스럽고 답답한 사회현실이 주는 불안감이 짙게 드리워진 한 해였다. 경직되고 보수화되어 가는 사회분위기는 미술계 역시 마찬가지다. 너무 많은 전시와 행사가 줄을 이었지만 그것들이 무슨 말을 전하고 있고 지금 그 이야기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입장 표명은 지워진 체 유령처럼 부유하면서 자기들끼리 마냥 의미 없는 증식을 되풀이 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이념에 얽매인 집단이 문화계를 독식하고 있어서 문화다양성과 자율성이 줄어들고 수용자들의 선택권이 줄고 있다는, 참여정부의 문화정책을 둘러싼 논의들도 시끄러웠다. 돈이 문제고 밥그릇이 문제다. 또한 문화예술에서 이제 민족이란 단어는 사라져야 한다는 입장과 분단체제하에서 민족은 여전히 중요한 담론이라는 논의의 대립은 여전히 우리 사회, 미술계의 요원한 ‘근대’를 우울하게 떠올려 주었다.
대부분의 작업들이 미술시장에 너무 온순히 길들여졌고 사회와 현실 등과는 거리를 둔 체 개인적인 영역으로 파고드는 은둔, 자폐적인 분위기로 매몰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개인주의와 너무 사적인 내용으로 파고드는 그림이 그것이다. 사실적 구상작업이나 드로잉이 부쩍 많아진 것도 그 반증이다. 이념과 논리가 없어도 가능하고 작업에서 골치 아픈 생각을 지우고 그저 그리는데 몰두하면서 자기 최면에 빠지기 좋고 미술시장에서 여전히 매력적인 상품이 될 수 있는 극사실적 구상화와 자기 혼자만의 시간과 공력으로 매진해 들어가는 일종의 퇴행적인 낙서나 일러스트와 같은 그림들이 주를 이루었다. 물론 드로잉은 시각적인 발견과 사고의 자유로움을 안겨주는 놀라운 일상이자 그림을 그리는 태도의 문제이며 창조를 위한 최초의 생각의 기록, 작업의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고 그 어떤 것보다 일상의 기록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긴 하지만 현재 대다수 작가들의 드로잉은 다소 안일하고 권태로워 보인다. 그럼에도 ‘드로잉 에너지’전과 ‘잘긋기’전과 같은 소중한 전시 및 박미현, 임자혁, 김을 등의 좋은 작품을 볼 수 있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올해는 대형 행사가 많았다.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그리고 대구사진비엔날레까지 줄을 이었다. 그러나 신경줄이 굵어져선지 그게 그거여서인지 기억에 남지 않는다. 아니 모든 게 머리 속에서 마구 섞여버렸다. 미술계의 축제가 되기보다 이례적 행사로 그치고 있다는 생각, 다소 지치고 시들해져서 별다른 감동을 전해주지 못하고 미술에 대한 참신한 시각도 주지 못한 체 더욱이 한국 미술계에 나름의 자양분이 되기 위해 기꺼이 썩지도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전시가 차이를 지니지 못하고 지루한 언어와 형식을 되풀이할 때 차라리 죽는 게 나아 보인다.
중국 진출 사래가 필요하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해였지만 미술시장이 다소 살아나는 분위기고 그에 따라 경매를 통한 대중화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미술시장 규모가 커졌고 경매는 작년에 비해 3배가 커졌다. 블루칩 작가로는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그리고 이우환 등이다. 국내 젊은 작가들 역시 외국 옥션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해외경매에서 중국현대미술에 비해 낙찰가며 총액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작지만 희망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따라서 많은 화랑들이 북경으로 진출하고 그 시장을 공략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미국, 유럽 등 해외 컬렉터들의 중국 현대미술 붐과 맞물려 한국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데 편승하는 것일 텐데 좀더 사려 깊은 전략이 요구된다. 젊은 작가들이 단지 해외미술시장(중국)에서의 판매에 따라 자리 매김 되고 그것 자체가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 논의되고 그에 따라 부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한편 백남준의 타계 소식의 충격과 그를 기리는 기사와 전시 및 작고작가를 기리는 전시들도 줄을 이었는데 우선 박이소 전시와 변관식 20주기, 오윤20주기, 전국광 15주기, 임직순 10주기 및 김서봉 유작전, 간송 탄생100주년 등이 열렸는데 무엇보다도 추사 200주기전시는 매우 중요했다. 이색전시로서는 연초에 열렸던 세탁소를 운영하시는 류해윤할아버지의 전시와 오우암 전시는 독학의 작가로서의 가능성과 미술에의 뜨거운 열정을 새삼 미술인들에게 환기시켜준 감동적인 전시다. 외국 전시로서는 만 레이 특별전과 세계 사진전시, 조르주 루오, 마크 로스코, 조안 미첼, 롭스와 뭉크 전시, 바스키아를 비롯해 중국현대작가들에 관한 전시가 특히 많이 열려서 한국미술시장에 중국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한국화전시로는 서은애, 김보민, 신하순, 김정욱, 정재호, 김은진 의 전시가 기억에 남고 서양화는 박영남, 백지희, 한운성, 박주욱, 정정엽, 제여란, 정수진, 지니서, 장영숙, 송현숙 전시가 인상적이었다. 이상국이 목판화와 홍인숙의 판화, 강홍구, 데비한, 정동석, 안창홍, 주명덕, 이강우의 사진전시가 눈에 띄었다. 황혜선과 원인종, 정현, 이순종, 김상균의 입체작업과 최정화의 개인전이 올 한해 좋은 전시로 각인된다.
어렵고 힘든 현실, 보수적인 시기에 미술인들은 좀 더 불온해질 필요도 있고 부단히 현실을 대면하고 불안과 위기에 대해 대들고 우리 사회의 모든 반동성에 제동을 걸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사실 이런 주문은 그 어느 시간대나 미술에 요구되었던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