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이 바뀌어 지금은 인터넷과 모바일 폰이 지배하는 시대다. 우리의 사정으로 이야기하자면 비행기와 KTX를 이용하면 하루에도 서울과 부산을 몇 차례나 왕복할 수 있는 편리한 세상에 살게 되었다. 즉 전국이 일일 생활권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을 놓고 이 글의 주제인 ‘지역미술’에 대해 논하는 것은 같은 주제로 논의했던 10여 년 전의 사정과 같을 리가 없다. 우리는 지금 인터넷으로 부산비엔날레를 검색하고 모바일 폰으로 광주에 있는 작가와 정보를 주고받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미술은 말 그대로 ‘지역의 미술’을 의미한다. 그것은 관행적으로 풀이할 때 서울을 제외한 지역의 미술을 통칭한다. 문화시설의 대부분이 서울에 편중된 오늘의 현실이 지역을 문제 삼지 않으면 안 되게끔 되어있는 것이다. 한 통계에 의하면 2001년도에 열린 국내 전시 총 6,388건 중 서울에서 열린 것은 모두 3,299건인데, 이는 무려 50퍼센트에 가까운 수치다(2002년도 문예연감). 여기서 참고삼아 각 지역별 전시 건수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부산 389건, 인천 133건, 대구․경북 614건, 광주․전남 457건, 대전․충남 292건, 경기 284건, 강원 122건, 충북 160건, 전북 279건, 경남 219건, 제주 131건.
이 숫자는 10년 전인 1992년도 문예연감 통계와 비교해 볼 때 지역미술에 관한 한 현저히 발전된 추세를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1992년도 전시회 통계는 전체건수 4,969건 중 서울이 3,323건, 부산 280건, 대구 310건, 인천 80건, 광주 234건, 대전 109건, 경기 82건, 강원 23건, 충북 54건, 충남 24건, 전북 260건, 전남 15건, 경북 73건, 경남 66건, 제주 36건 등으로 집계되고 있어 서울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7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이상의 통계자료는 졸고 <한국미술 속의 지역미술-문화예술 인프라의 구축을 중심으로>에서 재인용한 것임).
위의 통계에서 보듯이, 전체 전시건수 대비 서울의 전시건수가 약 10여 년의 시차를 두고 70퍼센트에서 50퍼센트로 낮아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지방자치제의 실시에 있다. 1991년에 처음으로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이후에 전국의 지자체들은 문화예술의 진흥에 주력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사업이 시립미술관을 비롯한 문예회관, 아트센터의 건립이었다. 1991년에 실시한 지방의회 의원선거(기초의회)와 1995년 6월 27일에 실시한 지방의회 및 광역단체장 선거에서는 입후보자들이 지역주민의 삶의 질 개선을 공약으로 내걸었을 만큼 문화예술이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문화예술 시설의 건립을 비롯한 각종 문화 인프라의 구축은 비록 호화판 하드웨어에 걸맞는 소프트웨어를 갖추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성남시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서울의 관객이 지방으로 몰리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기도 했다. 성남아트센터의 경우 ‘미스 사이공’의 유치는 서울의 관객을 지역으로 몰리게 하는 역류현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는데, 이는 지역예술의 탄탄한 기반이 전국적인 경쟁력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한 사례가 되는 것이다.
미술의 경우, 지방자치제의 실시 이후에 나타난 새로운 현상 가운데 하나는 각종 국제미술제의 창설을 들 수 있다. 1995년의 광주비엔날레를 비롯하여 부산비엔날레,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이천세계도자기비엔날레, 세계전북서예비엔날레, Pre-국제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 등등은 지자체의 실시 이후에 봇물처럼 터진 국제미술제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미술계의 일각에서는 이와 같은 국제전의 난립에 대해 곱지 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특별히 차별화한 것도 아니면서 예산만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물론 그와 같은 시각도 가능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나는 좀 다른 측면에서 이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생각해 볼 것은 이 국제미술제들이 지닌 특수한 성격이다.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는 초기에는 현대미술전이 지닌 성격상 중복되는 감이 없지 않았으나 회를 거듭할수록 성격의 차가 뚜렷이 부각되고 있다. 광주비엔날레는 아시아성의 구현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부산비엔날레는 시내 일원이나 해변 등 특수한 입지조건을 이용함으로써 장소 특성적 성격의 행사로 전환해 가는 중에 있다. 그 밖에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는 상암동 미디어센터와의 연계를 모색하고 있으며,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는 직지심경으로 대변되는 목판 인쇄술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이천세계도자기비엔날레는 도자기 명산지로서의 전통과 명성에, 세계전북서예비엔날레는 예향 전주로서 서예의 막강한 인적 인프라와 전통에 각각 기대어 출범했기 때문에 특화된 국제행사로서의 명분과 나름대로의 의의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성격이 분명한 행사를 개최해 나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력있는 전문가의 기용이다. 국제전은 아무리 예산이 풍부하다 하더라도 그것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이 없다면 소기의 성과를 올리기 힘들다. 탄탄한 컨텐츠의 구비와 함께 예산 집행의 효율성을 높인다면 그 행사는 이미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현재 전국의 축제가 수천 건에 달하면서도 내용면에서 서로 엇비슷하여 중복투자의 폐해를 지적하는 비판이 속출하고 있는 것은 지자체들이 축제전문가의 부재와 함께 차별화된 컨텐츠의 확보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의 출범이후 지방분권화와 지역 균형 발전 정책이 많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이처럼 지역에 눈길을 돌릴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점일 것이다. 문화예술의 과도한 중앙 집중에서 지역으로의 산개가 지역주의 시대의 도래를 낳게 되고, 그것이 지역민의 문화 향수 기회를 확대하는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역 문화예술의 미래적 전망은 과연 어떠한가? 각 지자체들은 미래의 지역 문화예술의 발전에 대해 어떤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인가? 여기에는 많은 의견들이 도출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앞으로 문화예술이 고부가 가치를 지닌 전략상품으로 부상될 것이라는 전망 아래 독자적인 문화예술의 컨텐츠 개발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특히 뉴미디어를 비롯한 IT산업은 떠오르는 핵심 산업으로 각광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역민들의 주인의식이다. 이것은 지역의 정체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내가 내 지역의 정책에 깊은 관심을 갖고 효율적인 행정의 집행을 위해 이를 감시하고 적극 참여하는 풀뿌리 지역 참여 민주주의야말로 미래 지역 문화예술의 발전을 위한 필수적 요소인 것이다.
Public Art 2007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