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긋기 전 (2006.11.16--2007.1.21, 소마미술관)

선과 그것의 연장인 형상은, 생존에 필요한 대상이기도 했던 동물의 이미지를 겹쳐 그리던 동굴 벽화시대부터, 겉도는 이야기들로 지루한 회의 시간 따위를 견디기 위해 인쇄물 여백에 죽죽 선을 긋는 현대인의 낙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스펙트럼을 가진다. 드로잉을 중심에 놓은 이 전시는 완성된 작품의 밑그림이나 습작에 지나지 않았던 드로잉의 위상을 재고한 것으로, 소묘는 물론 설치와 애니메이션까지 미술의 전 영역으로 범위를 확대했다. 이 전시에서의 드로잉은 종이와 화폭을 넘어서 화장실 앞의 렌티큘러, 빨래걸이에 메달린 병들, 요상한 발명품의 복잡한 매뉴얼, 고추장 위에 장난스럽게 그어진 선들까지 모두 아우른다.

여기에서 드로잉은 글쓰기와 비견할 만한 보편성을 가진다. 그것은 모든 미술의 밑바탕에 드로잉이 있음을 강조하면서, 40명이나 되는 작가를 요소요소에 배치한다. ‘잘 긋기’라는 부제로, 자못 소박해 보이는 출발점을 가지지만, 내용성을 갖춘 대규모 스케일의 전시가 가능했던 것은, 단지 이것저것 골고루 섞어 넣거나 작가들이 많이 참여해서가 아니다. ‘상상하기’, ‘계획하기’ 등 일곱가지 범주로 나눈 드로잉의 면면은 곧장 미술의 본질적인 특성이 된다. 미술관 내부 만이 아니라, 외부까지 포함하면서 개념별로 잘 구획된 널찍한 전시 공간이 이러한 의도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미술이 자연모방을 중심으로 한 미학을 벗어나면서, 드로잉은 작가의 의도와 무의식이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장으로 평가되었다.

이 전시에서 드로잉은 현실에서 구현되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계획된 작품 초안도 있고, 정처없이 동요하는 선들로 작가의 욕망과 직관을 직접 분출한 것도 있다. 거기에는 코드나 체계, 그리고 여기에서부터 벗어나려는 이중의 움직임이 존재한다. 대체로 구조와 체계 보다는, 그것들이 생성되는 단계들이 더 많이 표현되어 있다. 현실적으로 제약이 많으며, 이미 확립된 프로세스에 의해 기술적으로 완성하는 것이 문제일 뿐인 ‘작품’ 보다는, 잠재성과 가능성이 복잡하게 뒤얽힌 텍스트의 성격이 강하다. 그것은 완성된 형태보다는 과정을 강조하면서 작품과 작가 간의 거리, 그리고 작가와 관객과의 거리를 단축시키고자 한다.

-월간 퍼블릭 아트 2007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