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를 한 두시간 만 돌아다녀도 우리 동네 앞에는 절대 세워놓고 싶지 않은 조형물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것들은 대부분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먼지 푹 뒤집어 쓰고 있는 건물 옆 소나무처럼 그 존재감이나 생명력을 느낄 수 없다. 소위 ‘미술장식품’이라 불리우는 것들은, 그렇지 않아도 간판과 자동차로 어지러운 도시 환경에 악역을 맡는다. 이러한 상황은 ‘공공’과 ‘미술’의 만남은 상극이라는 냉소주의를 낳으면서, 미술을 소수의 밀실로 더욱 몰아넣는다. 공공미술은 규모나 자금 면에서 가장 큰 덩어리를 차지하면서도, 생산, 소비, 유통에 있어서 미술 본연의 장과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것은 중요한 작가들이 참여하지 않으며, 대부분의 생산품이 조야하고, 미술인이나 시민들의 관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진지한 비평 및 담론의 대상이 되지 않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장식물 사업’이라는 긍정적이지 못한 꼬리표를 달고 있는 사업들은 공지되어 지원자들이 경쟁하고, 층층으로 둘러싸인 심의 기구들에 참여하는 전문가들의 존재가 무색할 정도이다. 공공미술은 사회의 공공영역을 문화로 채우는 주요한 방편 중의 하나이지만, 기존의 제도와 구조들이 미술의 살아있는 속살과 연결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딱히 그 누구의 잘못이라고 지적할 수도 없을 만큼 꼬여있는 문화 생태계 속에서, 예술가가 아닌 업자들이, 비평가가 아닌 거간꾼들이 이 사각지대를 채워왔다는 것은 분명하다. 대학을 중심으로 한 ‘미술 아카데미’는 대안 제시는커녕, 자신들의 기득권과 맞물려 있는 부분에서 모순의 재창출에 기여한 바가 없지 않다. 미술시장이나 공공미술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저널이 생긴 것도 얼마 되지 않는다. 과연 수십년간 쌓여온 이 죽은 구조들의 지배를 벗어나는 대안의 공공미술은 가능할까?

문화관광부가 주최하고 공공미술추진 위원회가 주관하였으며, 복권 위원회가 후원하였던 ‘Art In City 2006’ 사업은 ‘소외 지역 생활환경 개선’을 목표로 내건 공공미술 사업이다. 그나마 눈가림 식의 조형물조차 없는 지역들은 소외로부터도 소외된 곳이지만, 재개발 지역이나 공장 등 주변으로부터 새로운 보편적 질서를 구축하고자 하는 시도를 통해, 시작부터 미술인들의 많은 관심, 또는 의혹을 받아온 사업이다. 사업 주관자들의 역할은 미술이 절실하게 필요로 한 곳을 찾아내서 그곳을 성공적으로 채울 수 있는 작가나 그룹을 연결시켜 주는 일이다. 난마처럼 얽힌 생산과 소비의 과정을 단축시키고, 공모 과정을 통해 투명성과 질을 확보하고자 하였으며, 무엇보다도 기존의 공공미술에 대한 대안성을 중시했다. 그러나 시행 첫해라 그런지 서울을 포함한 11개 도시에서 벌어진 각 사업들이 시작되는 시점들이 늦어진 점은 기획자들이나 참여 작가들에게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12월 8일, 가장 늦게 서울에서 오픈 한 낙산 프로젝트가 특히 그러했다.

시간이 부족하면 될 일도 안 되고, 시간이 충분하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할 수 있는 것은 예술도 마찬가지이다. 대안의 공공미술이란 어디선가 완성된 작품을 가져다 놓는 일이 문제가 아니라, 사업 대상지 주민과의 소통과 참여가 중시되는 것이라 더욱 그렇다. 이 사업은 ‘소외 지역 생활환경 개선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대안의 공공미술 사업으로서의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 주민과 함께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비중을 더욱 높여야만 한다. 2006년도 사업의 경우, 대전 홈리스 프로젝트의 한솥밥 대동제, 부천 원종동의 주민참여 벽화, 마석 녹촌분교에서 진행된 이주 노동자들이 참여한 축구경기, 대구 성서공단에서 진행된 예술-노동자 창작 네트워크 등이 그러한 프로그램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소통과 참여는 쉽게 외쳐지는 가치이자 당위이지만, 그것이 질적인 면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적 투자와 미학적 전략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사업지에서 참여 작가들의 헌신과 노력으로 이러한 난관이 가까스로 봉합되기도 하였으나, 주민들의 피해 의식과 오해로 인해 갈등을 겪은 곳도 있었다.

2006년 아트 인 시티 사업 중에는 사업 대상지 신청자와 기획자가 일치된 경우가 극소수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애초부터 사업 대상지와 기획자가 따로 공모되는 과정은 작가와 주민과의 간극 해소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리고 사업 대상지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작업 결과가 직결된다고 볼 때, 기획자의 사업대상지 분석 내용에 많은 비중을 두어야 할 것이다. ‘맨땅에 헤딩하는’ 식이 아니라,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조직과 연관되어 접촉과 접속의 지점을 찾는 것도 효율적이다. 또한 공공미술의 특성상 작가는 동시에 기획자이고, 작가와 작품이 일치해야 하는데, 기획안을 냈던 작가의 작품에 또 다른 기획자를 붙이려 함으로서 혼선을 자아냈던 공공미술 추진 위원회의 자체 기획 사업의 추진 과정도 시행 첫해에 치른 값비싼 수업료라고 생각한다. 참여 작가의 수나 작품이 얼마이든 간에, 기획과 생산물의 통일성, 요컨대 기획자가 고안한 개념의 일관성과 생산물의 내적 밀도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좋은 의도로 시작된 사업이니만큼 쇼는 계속되어야 하며, 2007년도에는 공공과 미술의 만남이 더욱 진해지기를 바란다.

-월간 퍼블릭 아트 2007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