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아시아의 지금 전 (2006.12.2--12.17, 대안공간 루프, 쌈지 스페이스, 갤러리 숲)
오윤 전 (2006.12.15--2007.1.7, 가나아트센터)

홍익대 인근 지역 3개 전시장에서 동시에 열린 ‘아시아의 지금’ 전과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오윤 20주기기념 전은 21세기에 민중미술이 왜 다시 보여져야 하는가를 예시한다. 오윤 전은 1965년부터 1986년까지 지속적으로 작가가 천착해왔던 작품 [대지]를 중심에 놓고, 그의 대표작은 물론 조각, 습작, 출판물 등 여러가지 자료를 아우른 전시이고, ‘아시아의 지금’은 ‘세계화와 지역성’의 문제를 화두로 삼은 전시였다. 개인전과 그룹전의 차이이기도 하겠지만, 오윤 전이 민중미술계의 대표작가를 넘어서 한국 현대미술사의 중요 작가로 자리메김될 수 있을 만큼 그의 작품세계가 입체적으로 조명되었다면, ‘세계화에 대응하는 아시아의 지역성의 문제’를 화두로 삼은 후자의 전시는, 관객에게 주제를 명료하게 각인시킬만한 짜임새 있는 얼개를 갖추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시아의 지금 전이 열린 대안공간 루프와 쌈지 스페이스의 전시 들머리에 설치된 작품들이 우연치 않게 모더니티에 대해 직접 언급하는 내용을 가지고 있어, 국내작가 35명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권 작가 17명이 대거 참여한 이 전시를 파악하게 하는 하나의 실마리를 던져준다. 루프에 들어가자 마자 보이는 중국의 작가 리 후이의 작품 [리뉴잉 지프]는 자동차를 개조하여 앞 뒤로 달리게 하였다. 기계와 씨름하는 노동 과정이 영웅적인 분위기로 기록되는 한편, 뒤로도 달리는 차라는 기발한 착상이 경쾌하게 펼쳐진다. 앞으로만 내달리는 진보와 새로움에 대한 대응 논리인 셈이다. 그 옆에 설치된 것은 베트남의 작가 후이누엔후의 작품으로, 우유가 든 투명 플라스틱 컵으로 쓰여진 단어 ‘modernity이다. 여기에서 모더니티라는 개념의 예시 방식은 강고한 실체감보다는 일회용품처럼 가변적이다.

이란 작가의 작품 [바흐무드 운전교실]은 바닥을 넘어 벽까지 이어지는 도로망을 통해 폭발적으로 확장되는 근대의 도시공간을 표현했으며, 일본 작가들이 공동으로 제작한 노숙자용 주거지는 풍요로움 속에서도 계급을 양극화시키고 있는 자본주의의 어두운 면을 드러낸다. 그러나 개집처럼 생긴 하얀 보드지 위로 환상적인 그물망을 이루는 무늬들은 궁핍과 부재로부터 꽃피는 창조성의 일단을 역설적으로 표현한다. 싱가포르의 작가 탄카이싱의 영어로 쓰여진 대형 현수막은 아시아가 주축이 되어, 세계와의 역학관계를 표현하는 것조차 ‘보편 언어’를 통과해야 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아라리오 갤러리 뻬이징 지점을 통해 중국전시도 함께 진행하기로 한 아시아의 지금 전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평등의 문제를 서둘러 봉합한 채 고도성장의 길로 접어든 중국의 미술시장을 염두에 둔 전시이기도 하다.

한국의 개발 독재, 중국의 경우 사회주의를 바탕으로 한 근대화와 1970년대 말 이후의 경제개혁은 부정적이든 아니든 아시아 지역 특유의 활력이라는 것을 만들어 냈으며, 이 전시에서도 그러한 점이 반영되어있다. 루프와 쌈지의 중간 쯤에 있는 숲 갤러리의 작품도 대부분 꼴라주와 도큐멘트로 채워져 있어 전반적으로 어수선한 느낌을 준다. 한국측 참여 작가의 주요 무대인 쌈지 스페이스 1층 입구에 바로 보이는 작품은 주재환의 [몬드리안 호텔]이다. 이 작품은 모더니즘의 대명사라고 할만한 몬드리안의 엄격한 사각형들에 우글거리는 인간군상과 사건들을 펼쳐놓았다. 복제로 나온 이 작품은 민중미술의 시작을 알렸던 그룹 ‘현실과 발언’의 창립전 출품작이기도 하다.





쌈지 스페이스에서의 전시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로 얽힌 아시아 국가들을 모호하게 엮어 놓는 식의 추상적인 ‘아시아성’과는 거리가 있다. 또한 그것은 단순히 민중미술의 회고전이나 민미협의 연례적인 전시를 넘어서, 2만달러 국민 소득의 시대가 다가온 한국의 경제성장 이면에 깔린 불균형성의 문제를 다룸으로서, 미술의 현재적 효용성의 문제를 제기한다. 미군기지 이전과 관련하여 뜨거운 감자가 된 대추리 사태,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삶의 기반을 잃을 위기에 놓인 농민들,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는 서민들, 생태계를 파괴하는 골프 공화국, 제국주의 전쟁 등의 주제가 자주 등장하는 한편, 고도 성장 이면에 봉합되어 있는 사회의 모순과 현대적 삶에 보편화되어 있는 폭력의 문제들이 유머러스한 풍자나 숨막힐 듯한 긴장감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참여적인 경향이 영상이나 설치뿐 아니라, 판화나 걸개그림이라는 80년대 민중미술의 대표적인 장르와 집단창작이라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민중미술이 촉발되었던 계기인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은 개발독재라는 후발 자본주의적 상황이 야기하는 갈등이 폭발한 사건이다. 80년대에 폭풍과같이 전개된 민중미술은 우리의 근대성과의 역학관계 속에서 그 에너지를 부여받은 것이다. 민중, 민족이라는 주요 개념 역시 근대사를 추진한 원동력이다. 현대라는 낱말을 서양적 원천으로부터 분리시켜서, 시간 공간적으로 중립화된 사회적 발전과정의 표본으로 양식화한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현대화라는 개념이 자본형성, 자원의 동원과 아울러 생산력의 발전과 노동 생산성의 증대와 관련이 있으며, 정치적 중앙권력의 관철과 민족적 정체성의 형성과도 연관이 있다고 지적한다. 노동자들은 기계만큼이나 현대라는 시대가 만들어낸 존재들인 것이다. 특히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의 근대화는 내생적이기 보다는 국가의 의지나 사회혁명에 의해 자극받았다. 전통과 단절되었으며 합리화, 산업화, 세속화된 사회와 그 속에서 고양된 주체의식 간의 대화와 긴장, 그리고 투쟁이 미술작품에도 스며들게 된 것이다.





자본집약적이며 과학 기술과 관료제에 바탕하는 국가체제는 지난 시대의 냉전을 무색하게 할 만큼 좌익과 우익의 공통된 핵심조직을 이룬다. 21세기의 현실참여적인 예술은 자본주의적 경영과 관료제적 국가장치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근대성의 질서가 더욱 가속화되어 생긴 모순들, 특히 세계화의 문제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장까수가 ‘세계적 규모의 현대성은 세계적 규모의 불행, 착취, 후퇴를 의미한다’고 지적했듯, 세계화는 항시적으로 전쟁 상태를 조성한다. 현대사회의 잠재적, 그리고 명시적인 전쟁 상태는 대규모 자본 및 기술 집약과 소비를 추동하며 총괄하고 있다. 전통과 자연에 순응하던 이전 시대의 삶이 근대에 이르러 총체적 연결된 채 같은 운명의 물결에 휩싸이기 위해서 사회는 먼저 합리화, 즉 추상화의 과정을 밟아야 한다. 오윤 전은 현대사회의 극단적인 분리와 단절의 문제, 세계를 이루는 다양한 요소들을 동질화시키는 힘을 끈질기게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아시아의 지금’의 정신과 연결될 수 있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 ‘추상은 오로지 현대적 세계에서만 발견될 뿐이다’는 마르크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모더니티는 추상을 이용하고 또 그것을 통해 존속하리라는 운명을 지고있다고 지적한다. 현대사회의 보편언어가 된 과학기술이 바로 총체적인 코드화의 결과물이다. 전시 서문처럼 실린, 오윤의 글 [미술적 상상력과 세계의 확대]에서는 ‘분석하고 증명하고 검증을 거친 다음 인식하는 실증 과학적 인식’이 구속력을 갖게되고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과 상상력을 고정화시킨다고 비판한다. 그는 카메라처럼 물화(物化)된 시선을 극복하기 위해 ‘사물에 대한 기억과 경험, 또 사물이 갖는 운동성, 방향성, 사물의 내면과 외면, 전면과 후면에 이르기까지 통일되게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인간의 눈을 신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윤은 ‘껍데기의 사실성이 아니라, 총체적 사실성의 획득’에로 나아가기 위해, 구비문화와 민중연희의 전통에 주목하였다. 특히 기(氣)의 표현에 힘썼다. [무호도], [칼노래] 등 조각적 힘까지 가세한 그의 목판화는 피상적인 전통의 인용이 아니라, 대립과 갈등, 복합, 확장과 수렴의 표현으로 재탄생하여 현대의 단선적 시선을 극복하고 있다. 이를 통해 ‘살아있는 것과 죽어있는 것의 차이, 또한 이것을 넘어서 살게하는 것과 죽게하는 것’을 숙고하였다. 형님, 할머니, 여공 등으로 전형화시킨 기층 민중의 모습이나, [노동의 새벽], [국밥과 희망]같은 작품은 ‘살게하는 것’의 실체가 담기 작품이다. 민중미술에 많이 나타나는 서사구조를 확립한 [원귀도]와 [통일대원도]를 비롯, 민초들의 무의식이 투사되어 있는 괘불탱화 등을 이용한 풍자화에 이르는 작품의 폭과 넓이는 문학 및 다른 분야와 활발히 교류했던 대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특히 1965부터 20여년간 몰두했고, 이후 [애비], [모자], [바람부는 곳] 등의 작품을 낳았던 [대지] 연작과 수많은 습작들은, 탈이 아니라 탈춤을 추는 듯한 역동성을 평면에 고정시키기 위해 끝없이 동요하던 선들로 가득하다. 그것은 대동세상의 이상향을 구현하기 위한 오윤의 선택, 곧 핏줄처럼 이어진 전통의 생명력과 맞닿기 위한 고투를 보여준다. 한해가 저물어 가는 시점에서 열린 두 전시는, 시대는 작가를 낳고, 작가는 시대를 낳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깨닫게 한다.

-출전:아트 인 컬처, 2007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