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도 있는 작가, 곧 유명작가와 작품성이 일치 하는가의 문제는 일종의 리얼리즘의 문제이다. 그것은 어떤 대상에 대한 정당한 평가, 어떤 물건에 대한 합당한 가격 책정과 같은 윤리적이고 경제적인 판단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저 고색창연해 보이는 미술사 및 미학의 영역에서조차 중요한 관건이 된다. 그에 대한 긍정적인 대답이 나오는가 부정적인 대답이 나오는가는 평가하는 이의 입장에 따라 엇갈릴 것이다. 제대로 평가받는 승리자는 극소수일 것이기 때문에 대체로 부정적일 것이다. 더구나 자기가 최고라는 식의 나르시시즘에 빠지기 쉬운 미술인들의 속성상, 믿을만한 원칙없이 부화뇌동하는 미술계의 게임원칙에 쉽게 동의할 수 없을 것이다. 교환가치와 사용가치의 분리라는 자본주의 경제의 시스템, 그리고 이와 연관되는 문제로서 말과 사물이 일치하지 못하고 어긋나기 마련인 현대의 패러다임까지 생각해 본다면, 이러한 ‘불일치’의 문제는 거의 운명처럼 다가온다.
특히 매스미디어는 실재와 분리된 기표가 지배하는 현대사회를 추동하는 강력한 힘이다. 미디어 복합체로 이루어진 현대사회의 양지 쪽에는 사회가 욕망하는 바의 기표들--가령 외모에 학벌에 심지어 재능까지 갖춘--로 적당히 구색을 맞춰 성공한 이들이 적지 않게 모여있다. 뭔가 하나의 아이템으로 ‘뜨면’ 주변의 것들을 문어발처럼 독식하는 시스템은 문화계도 예외가 없다. 지난해 말에는 100만부 넘게 팔린 한 밀리언셀러의 실제 번역자가 유명인이 아닌 ‘평범한’ 이였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파문이 일었다. 출판사는 고액의 판권료 때문에 ‘스타 마케팅’을 했던 것이다. 미술계에서도 고용된 구성 작가가 내용의 상당 부분을 대필했다는 의혹이 이는 ‘미술 M.C 겸 작가’의 책이 비슷한 논란에 휩싸였다. 사실상 공동번역자 및 공동저자라고 할 수 있는 무명인들은 헐값에 자신의 지식 노동을 팔아 넘겼고, 몸이 열개라도 부족할 만큼 바쁜 유명인들은 상표만 빌려준 셈이 되었다. 만들기보다는 팔기가 어려워진 후기 자본주의적 시스템은 기표를 또 다른 실재로 둔갑시키는 경향이 있다.
국내외적으로 미술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이름값의 위세는 더욱 커지고 있다. 고유명사뿐 아니라, 일반명사도 실재에서 분리된 기표의 대열에 합세한다. 요즘 미술시장은 ‘젊은 작가’ 쪽으로 관심이 보이고 있다고 한다. ‘화단의 실세는 누구인가’ 하는 식의 조사에 컬렉터 및 대형 화랑주가 1,2위를 다투는 실정이니, 그들의 눈길이 닿는 곳이 뜨거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단 미술 시장이 활성화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미술대학 줄서기에 목메달지 않고, 작품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러한 성공 사례가 재능있는 젊은이들의 예술가에의 꿈을 포기하지 않게 해줄 수 있다면, 미술계의 경쟁력은 한층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시장과 담론이 함께 가지 못하는 현실은, 미술시장이 확실한 토대가 아닌 거품과 뜬구름 위에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혹을 낳게 한다. 미술계가 한 해 동안 담론이나 작품 생산의 차원에서 더 활발하게 움직인 것도 아닌데, 미술작품의 낙찰 총액이 그 전해에 비해 두배로 뛰었다는 통계가 그렇고, 그동안 젊은 작가들의 성장 동력이 되어왔던 대안공간이나 실험적 예술의 열기는 오히려 침체되어 있다는 사실이 그러하다.
시장이 너무 앞서가는 것인가, 담론이 너무 뒤처지는 것인가. 어쨌든 정치와 사교의 장이 시장 쪽으로 쏠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비평적 침묵이 깊을수록 신비주의와 결합된 물신주의는 더욱 맹위를 떨칠 것이며, 미술계 역시 시장의 우상이 지배할지 모른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의 역할은 중요하다. 시장의 자율적 기능을 신뢰하는 경제학자 타일러 코웬은 [상업문화 예찬]에서 예술가의 독립에는 경제적 자립과 활발한 상업시장의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에 의하면 자본주의는 개인이 예술활동을 통해 자립할 수 있을 정도로 부를 키워냈다. 자본주의는 다양한 경로로 재원을 제공함으로서, 예술가들이 기량을 연마하고 장기간이 걸리는 작품제작에 착수하며, 자신이 선택한 장르의 내적 논리를 철저히 추구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한다. 지배적인 사회적 가치를 거부할 수 있는 것도 경제적 자립이며, 그런 의미에서 보헤미안, 아방가르드, 니힐리즘은 모두 자본주의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성향의 예술가들은 현대사회의 고유한 특성인 자유와 창조성을 추구했고, 경제성장은 대중들이 보다 세련되고 전문화된 취향을 갖도록 도와준다는 것이 시장에 대한 낙관론의 요지이다.
코웬은 잘 발달한 시장이 문화의 다양성을 뒷받침한다고 주장하면서, 분업과 전문화가 시장의 크기에 좌우 된다는 근대 경제학의 논점을 인용한다. 시장에 긍정적인 입장이 현상적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면, 시장의 교환체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이들은 다소간 이상주의적이다. 그들은 문화 상품화로 귀결되는 시장의 교환체제가 소외를 야기하고 예술작품의 수준을 떨어뜨리며, 자본주의 체제를 내부의 도전으로부터 지켜낸다고 주장한다. 다소간 엘리트주의적 속성을 지니는 이러한 관점은 기술과 매스미디어가 예술을 타락시킨다고 비판한다. 예술 작품 역시 다른 상품처럼 광고를 포함한 복잡한 유통망을 거치면서, 지명도를 높여가고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그것과 작품의 질적인 면은 함수 관계를 이루지 않는다. 미술사를 되돌아보건데, 시류에 휩쓸려 채산성을 맞추는데 급급한 작품 중에서 걸작이 나온 경우는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작품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시켜줄 미술시장의 몸집이 커진 만큼, 그것의 실제적인 내용을 검증해 줄 비평적 담론도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출전: 월간 퍼블릭 아트 2007년 2월호
이선영
#2894
시장의 우상들 속에서 길찾기
이선영
2007. 01. 31.
이선영
서울 출생
인명사전 바로가기 : www.daljin.com/author/3059
미술평론가 이선영(b.1965)은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으로 등단(1994)하였으며, 웹진 [미술과 담론] 편집위원(1996-2006)과 [미술평단] 편집장(2003-2005)을 역임했다. 제1회 정관 김복진 이론상(2006), 한국 미술평론가 협회상(이론부문)(2009), AICA Prizes for Young Critics(2014)를 수상 하였다.
미술평론가 이선영(b.1965)은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으로 등단(1994)하였으며, 웹진 [미술과 담론] 편집위원(1996-2006)과 [미술평단] 편집장(2003-2005)을 역임했다. 제1회 정관 김복진 이론상(2006), 한국 미술평론가 협회상(이론부문)(2009), AICA Prizes for Young Critics(2014)를 수상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