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는 실재의 반영이지만 실재를 감추고 변질시키며, 실재의 부재를 감춘다. 이미지는 어떠한 실재와도 무관하며, 그 자체의 순수한 시뮐라크르(모방)다.”
보드리야르
현대 사회의 특징은 가상이미지가 실제의 현실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가진다는 점이다.
오늘날 현실적 풍경과 인간의 모든 경험은 이미지로 대체되었고 광고와 대중매체를 통해 되팔리고 있다. 따라서 인간 삶의 모든 부분이, 상징과 재현의 체계에 불과하며 자체의 고유한 내부 논리에 지배되는 ‘스펙타클’안으로 들어왔다. 이제 스펙타클은 이미지가 될 만큼 축적된 자본이다. 덧붙여 말하면 이미지 사회 혹은 가상현실의 사회로 일컬어지는 현대사회의 핵심적인 특징은 바로 시피앙(말)과 시니피에(의미)의 분리이다. 일상 언어로 풀이하자면 과대포장 또는 실체없는 이미지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김정선은 그간 지속해서 이미지를 대상으로 해서 작업을 해왔다. 사진을 참조하거나 그 사진이미지에 개입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레디메이드이미지의 연출이고 팝 적인 작업에 해당한다. 팝아트는 우리 주변에 보이는 일상적인 사물이나 대중매체를 통해 일상적으로 우리에게 전달되는 이미지들을 소재로 삼았다. 회화의 대상이 곧 사물이고, 회화자체도 사물이라는 냉정한 두 진실을 화해시켰던 것이다. 김정선의 작업도 동일한 맥락에 위치해있다.
이번에 작가가 참조한 이미지는 보도사진을 통해 접한 폭력적인 이미지다. 광주항쟁, 베트남전쟁, 이라크전쟁에서 폭력이 강제되는 장면, 그 사진과 영상을 취했다. 군인이 곤봉으로 사람들의 머리를 내리치거나 총검으로 찌르고 죽이는 장면, 베트남 전쟁 당시 길거리에서 즉결처분으로 총살당하는 사람, 네이팜 폭격을 피해 알몸으로 길거리을 뛰어나오며 울부짖는 아이들의 얼굴, 이라크 전쟁 시 잡힌 포로들을 학대하는 장면 등이다. 처음 접할 당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그 충격적인 장면은 이제 흐릿한 기억이 되고 그 장면은 하나의 이미지로 박제화 되어 떠돌면서 애초의 의미를 상실했다. 특히나 인터넷은 그 이동과 산포를 적극 가능하게 한다. 그것은 대중적인 이미지인 동시에 하나의 소비품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참혹한 사건까지도 무감동한 현대의 아이콘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마치 앤디 워홀의 교통사고 장면이나 사형도구 등의 연작처럼 말이다.
다른 작업은 티셔츠를 입은 사람의 상반신을 그린 그림이다. 얼굴은 삭제되고 몸통과 그 티셔츠에 그려진 이미지만이 부각된 그림이다. 사진 속에 원하는 부분만 남기는 방법인 크라핑(cropping)을 이용해 얼굴을 지우고 몸통만을 그렸다. 스마일 형상에 얹혀진 히틀러의 얼굴과 체게바라의 초상, 이라크 전쟁포로들을 학대하는 장면이 그 티셔츠에 그려져 있다. 그 이미지들은 본래의 맥락에서 배제되고 이탈되어 옷의 문양, 이미지가 되어버렸다. 순수하게 실용적인 측면에서 보면 의복은 신체보호용이다. 동시에 옷은 주로 커뮤니케이션용이기도 하다. 의복의 상징적 사용은 여러 면에서 광범위한 표현 행위를 허용하는, 문법이나 구문이 있는 언어와 같다. 농담, 반어적 진술, 심지어 속어와 은유까지도 허용할 만큼 풍부한 언어다. 그리고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해 많은 정보를 알려주기도 한다. 또한 우리가 사는 시대를 알려주는 정확한 안내서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우리가 누구인지는 우리가 입는 것으로 명확히 표현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실제의 물건이 아니라 가상의 혹은 허구의 이미지를 하나씩 몸에 걸치고 있는 셈이다. 옷은 하나의 기호이며 옷에 그려진 이미지 역시 그 기호의 역할을 한다. 여기서 기호란 화살표처럼 자기 아닌 다른 것을 지시하는 어떤 것이다.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사물을 대신하거나 재현하는 그 무엇이 기호인 것이다. 덧붙여 소비주의는 상품이 개인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정의한다는 믿음에서 기인한다. 소비주의가 진정한 자기표현을 추구하는 문화적 강박과 경합하면 그 결과는 수많은 소비주의의 덫에 집단적으로 갇혀 있는 사회의 출현이다. 작가는 티셔츠에 찍힌 이미지를 사진 찍고 이를 다시 그렸다. 사진 역시 하나의 이미지로 차용되고 선택된다. 그렇게 그려진 그림은 무척 회화적이다. 윤곽선은 아른거리며 흔들리고 색상은 조금씩 달라 보인다. 외부세계를 재현한 것이라기보다는 그것을 이미지화한 것이다. 그리고 이 흐릿한 이미지는 모호한 성격을 가지고 실제라기보다는 양식화된 실제로서 의미를 발생시킨다. 그러니까 이전의 사진을 차용한 작업과 근작이 여전히 동일한 관심의 자장에서 풀려나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미술은 결국 이미지를 다루는 문제라는 사실을 새삼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