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미술사에서 동일한 시간대에 활동하면서 선의의 경쟁을 통해 작품 활동을 해온 작가들을 기억한다. 우선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들라크루아와 앵그르, 고흐와 고갱, 몬드리안과 칸딘스키 들이 그들이다. 그런 맥락에서 가장 두드러진 이들의 하나가 바로 마티스와 피카소다. 앙리마티스(Henri Matisse,1869-1954)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는 20세기 서구미술의 핵심적인 존재이다. 마티스는 세기 초 반역적인 회화혁명의 한 경향인 야수파의 중심적 지도자였으며 피카소는 입체파의 핵심리더로서 회화의 역사 전체를 통해 마음대로 회화의 온갖 가능성을 끈질기게, 끝까지 탐구한 작가였다.

한 사람은 사려 깊고 감수성이 예민하고 신중하며 주지적인 낭만적 감성으로 충만한 프랑스 사람이고 다른 이는 뜨겁고 정열적이며 직감에 의존하는 스페인의 피를 지닌 이였다. 마티스는 젊은 시절 법률을 공부하다가 그림으로 바꾼 이고 피카소는 미술교사의 아들로 어린 시절부터 천재적인 그림솜씨를 보여온 이다. 마티스가 다소 엄격하고 냉정한 얼굴에 안경을 걸치고 수염으로 턱을 감싼 이지적이고 차가운 인상의 소유자였다면 피카소는 석탄 같은 커다란 눈을 번득이며 작고 다부진 몸으로 모든 것을 집어 삼킬듯이 굴었다.

공통점을 살펴보자. 이 둘은 20세기 새로운 현대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우선적으로 추구하고 실현한 이들이다. 반전통주의자들이지만 여전히 회화를 고수하고 화화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실현해버리고 죽은 이들이다. 둘 다 모두 여자를 즐겨 그렸으며 에로티시즘이 두 예술가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마티스는 가까이 있는 여자들에게서 작품의 영감을 받았다. 피카소는 여자가 바뀔 때 마다 양식 자체가 변할 정도였다.
사실 이들은 닮음 꼴보다 차이가 더 많다. 몇몇 여자들과 염문이 있었지만 마티스는 가족을 가장 중요시했다. 반면 피카소는 수많은 여자와 관계를 했고 그녀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으며 이내 파멸시키기도 했다. 마티스가 유기적인 곡선과 관능성을 드러내는 여자를 그려냈다면 피카소는 성과 성폭력에 관한 주제를 거칠고 직접적으로, 강박적으로 드러냈다. 여자라는 대상은 피카소 미술에 있어 핵심적이다. 직접적이고 서사적인 피카소의 작품에 비해 마티스의 그림은 단순한 형상에서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심원하고 난해하다고들 한다. 그러나 일단 피카소의 그림보다 마티스의 그림이 장식적이고 보기에 좋다.

색채를 중시하고 지각에 의존했던 마티스는 환한 대낮에 그림을 그렸고 상상력으로 작업을 하고 기억에 의존하며 선과 명암을 중시했던 피카소는 주로 어두운 밤에 그렸다. 그러니까 낮에 작업했던 마티스는 눈에 보이는 세계를 끊임없이 직시하고 평범하고 흔히 진부해보이는 일상의 사물들에서 의미를 포착하고자 했다면 피카소는 전적으로 상상력과 기억에 의존했으며 종종 사진과 인쇄물, 일상의 사물들도 적극 활용했다. 작업실 풍경 역시 극도로 대비적이다. 짐작했겠지만 마티스의 작업실은 얼룩하나 없이 깨끗한 화실에서 정장을 입거나 가운을 걸치고 그림을 그렸다. 반면 피카소는 반바지만 걸친 상태에서 알몸으로 혹은 셔츠 차림으로 무엇하나 절대로 버리지 못하는 성격에 따라 온갖 것으로 가득 찬, 쓰레기 더미로 어질러진 공간에서 돌아다니면서 미친듯이 그림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마 미술사상 피카소는 가장 많은 작품을 생산해낸 작가로 기억될 것이다. 그는 “숨쉬듯이 그림을 그린다”고 말했다. 마티스 역시 진정한 작가였다. 그는 50년 동안 단 한순간도 작업을 중단한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아침 아홉시에서 열두시까지 작업하고 그런 다음 식사를 하고 낮잠을 자고 두 시에 다시 붓을 집어들고 저녁까지 일했다는 것이다. 50년 동안 매일같이 말이다.

둘은 서로를 늘상 당대 최고의 작가로 여겼고 칭찬했으며 한편으로는 질투와 경쟁심리에 시달렸다. 사이가 비교적 좋은 편이었지만 밑바닥에는 시기심이 도사리고 있었다.

피카소는 “모든 것들을 두루 생각해보니 오직 마티스밖에 없다”고 말했고 마티스는 “딱 한 사람만이 나를 평할 권리가 있으니 그건 피카소야.”라고 말했다. 둘 다 당시 자신들의 작품을 구입해간 컬렉터를 사이에 두고 경쟁했으며 서로의 전시를 의식했고 상대방의 그림을 수시로 참조했고 이를 넘어서고자 열망했다.
피카소는 누구보다 더 주의 깊게 마티스의 그림을 바라보았다고 고백했으며 마티스 역시 피카소의 그림을 주의 깊게 바라보곤 했다. 그리고는 작업실로 가서 그 그림을 넘어서고자 열중했다. 마티스는 종종 초초함을 드러냈는데 피카소가 자신의 작업실에 와서 혹은 전시장에서 자기 작업을 보고 아이디어를 훔쳐간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피카소, 그는 매복하고 기다리는 노상강도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마티스 없는 피카소와 피카소 없는 마티스를 상상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둘은 서로 작품을 교환하기도 했고 피카소는 마티스의 그림을 구입했다. 이들의 관계는 마치 송대관이 없으면 태진아도 없게 되는 그런 공존의 관계였다. 결국 그들은 상대로부터 이익을 얻었고 자신의 그림이 보다 더 진전될 수 있는 자극을 주고 받은 것이다. 이 둘은 1905년부터 경쟁관계에 돌입해오다 193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마티스와 피카소’라고 불릴 수 있는 거대하거 확고부동한 실체로 존재하게 되었다. 두 화가는 현대 미술의 특정 관점을 대표하며 본격모더니즘의 대표주자가 되었던 것이다.

20세가 초 이 둘의 존재는 절대적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서구미술사에서 르네상스 이래로 추구되어왔던 회화의 역사를 완성하고 넘어서는 한편 해체한 이들로 이 둘을 통해 서구회화는 사실상 종말을 고했다. 마티스는 회화가 외부세계를 창백하게 묘사하는 데서 벗어나 그 자체로 자율적인 색채와 선의 구성으로 아름답고 장식적으로 보일 수 있는 가능성을 극한으로 밀고가 평면의 그림 표면에서 낼 수 있는 효과를 실험했다면 피카소는 세상의 사물들이 수 백가지의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분해와 결합을 거쳐 무한히 재창조되고 재결합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러니까 이 둘은 세계가 우리에게 어떻게 보이는 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재정의 해주었으며 두 사람 모두 복잡하고 변화하는 현실을 재현하는 예술의 선각자가 되었다.

“마티스는 색채, 피카소는 형태, 하나의 거대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위대한 두 화가”(칸딘스키)였다. 순수색채의 잠재적 표현력을 추구한 마티스는 “어린아이가 사물에 다가갈 때 느끼는 신선함과 순진함을 보존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당신은 평생 어린아이로 남아있으면서 세계의 사물들로부터 에너지를 길어오는 성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카소는“ 나에게 있어 그림 하나하나는 연구이다. 나는 자서전을 쓰듯이 그림을 그린다. 그림에 있어 진보란 말은 없다. 있다면 변화가 있을 뿐이다. 화가가 일정한 틀에 구애됨은 바로 죽음을 의미한다. 일정한 틀의 파괴 이것이야말로 오늘날의 화가가 할 일이다. 나는 모든 것을 말로 하지 않고 그림으로 나타낸다” 둘 다 그림만 잘 그린게 아니라 말도 너무 잘했다. 그들이 남긴 말은 현대미술을 이해하는데 있어 가장 좋은 교과서다. 마티스가 회화만이 포착할 수 있는 인간 경험의 양상들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었던 화가라면 피카소는 회화와 조각의 전통적인 정의를 넘어서는 다양한 예술형태의 강력한 전형이 되었다. 뒤샹의 기성품(레디메이드), 혼합매체로 만든 다양한 형태의 작품, 나아가 행위예술 역시 궁극적으로 그에게서 비롯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해 이 둘이 있었기에 오늘날 현대미술이 가능했다는 말이다.



참고문헌
세기의 우정과 경쟁-마티스와 피카소, 잭 플램, 예경
마티스-원색의 마술사, 그자비에 지라르, 시공사
발견자 피카소, 김원일, 동방미디어
피카소와의 대화, 브로샤이, 에코리브르
피카소의 성공과 실패, 존 버거, 미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