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철이 되면 미술관들은 대형 전시를 경쟁적으로 유치한다. 이른바 블록버스터 전시다. 현재 르네마그리트, 고흐에서 피카소까지, 장 뒤뷔페, 루브르미술관전 등등 서양미술의 걸작과 거장들의 목록을 앞세운 전시들이 줄을 잇고 있다. 사실 이것 역시 서울 중심으로 편향되어 있다. 아마도 방학이란 특수를 노려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관람을 적극 유치하고자 하는 전략에서 일 것이다. 거대언론사와 미술관이 함께 기획하는 이 전시들은 영화나 오페라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그래도 대박을 터트리면 꽤나 쏠쏠한 이윤을 남기게 된다는 것은 이전에 열린 샤갈전시 등이 입증했다. 특히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루오전은 지방미술관에서 기획한 전시로는 보기 드문 성공을 거둔 것으로 인정되었다.

이 같은 대형전시를 유치하고 수준 높은 거장들의 진품을 대규모로 전시하고 관람하는 문화는 사실 근자에 가능했다. 그만큼 우리 미술문화의 수준이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일이기는 하지만 이제 외국전시나 대형블록버스터 전시라는 것들의 의미와 질적 수준이 좀 더 고려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 과연 전시를 본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에 대한 감상교육이란 것이 뒤따르지 않으면 진정한 전시체험은 어렵다는 사실도 인식할 때가 되었다. 덧붙여 아직도 인상주의작가나 샤갈, 피카소 같은 서양미술의 대표작가들 만을 반복해서 불러들이는 이곳의 미술풍토도 좀 반성되어야 할 것 같다. 이벤트회사들의 장사 속에 의한 측면과 함께 기획사측에서는 대중들이 알고 있는 작가들이 기껏 미술교과서에서 접한 소수 작가들로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항변하겠지만 좋은 전시는 미지의 이미지를 통해 새로운 비전을 전해주는 것이 미술전시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전시는 일종의 교육이고 새로운 체험이자 발견이다. 또한 전시를 기획하고 유치한데서 머물지 말고 그 전시가 지닌 의미와 작품에 관련된 충실한 해설과 친절한 교육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전시장에 가보면 학생들은 방황하듯 돌아다니고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한편 작품 감상은 뒷전이다. 그들은 그저 방학숙제 하나를 해치우기 위해, 과제물로 제출할 도록 하나 수집하기 위해 온 것 뿐이다. 더 당황스러운 것은 인솔교사나 학부모들 역시 적절한 통제나 관람지도를 하지 못한 체 방임하고 있는 상황도 자주 본다. 미술관의 직원이나 큐레이터들 역시 그런 관람태도나 방식에 대해 적극적인 개선의지를 갖고 있지 못한 듯 하다. 적절한 작품 감상을 고려해 일정한 인원을 시간에 따라 출입시키는 한편 사전에 전시 관람태도나 방식에 관한 교육을 하거나 인쇄물을 나눠주는 한편 전시작품에 대한 핵심적이고 의미 있는 이야기를 잘 전해주는 노력과 배려가 매우 필요하다. 그런 장치 없이 그저 학생들에게 전시를 관람하라고 전시장에 풀어놓거나 상투적인 전시소개로 그칠 경우 전시 관람은 아무 의미가 없다.

전시를 본다는 것은 백화점에 진열된 상품을 쳐다보듯 ‘아이서핑’ 할 수 없다. 그 일은 자신이 직접 작품 앞에 서서 온 몸의 감각밸브를 죄다 열고 반응하고 기다리며 읽고 느끼고 생각에 잠겨야 하는 일이다. 전적으로 자신과 작품이 만나서 파생되는 사건이 작품을 보는 일이다. 그래서 그것은 시간을 요하고 마음의 여유로움과 풍만한 감성으로 찰랑거리는 몸, 그 액체성과 휘발성의 육체와 감각이 유지되어야 한다. 전시를 보는 일은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작가와 작품을 만나는 일이며 그로인해 새로운 정보와 한 인간의 감성과 감각, 기억과 상처 등을 접하는 것이다. 작가들 저마다 미술에 대한 생각, 입장을 표현하는 것이 결국 작업이며 그것을 통해 자신의 사유의 구조를 또한 드러내는 것이다. 좋은 기획전시란 바로 그런 사유와 울림을 풍부하게 던져주는 전시다. 무수히 많은 작품을 보고 그 작품 앞에서 미술에 대한 혹은 우리네 인생과 연루된 문제들을 한께 생각해보는 이 전시 관람은 무엇보다도 소중한 공부고 경험의 장이다. 그러나 이런 인식 아래 전시를 꾸미고 감상하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