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상미술의 다변화와 그 이후를 지향하는 회화
- 2007년 월간미술연감 한국미술 회화부문
2006년에도 어김없이 광주와 부산 그리고 서울 등 세 곳에서 비엔날레가 열렸다. 그동안 비엔날레는 형식적인 면에선 설치미술과 사진을 비롯한 각종 미디어 아트가 자리를 잡게끔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내용적인 면에선 지역적인 특수성과 세계적인 보편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겨냥한 소위 글로컬리즘 담론을 정착시키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국내에 비엔날레가 처음 도입될 당시와는 달리 현재에는 그 열기가 많이 식었으며, 더불어 비엔날레가 내세우던 차이란 게 결국 동질성을 반복 재생산하는데 지나지 않은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현실인식과 맞물리면서 오히려 회화는 눈에 띄게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그 성장의 실질적인 동력이 신진작가들을 중심으로 견인되고 있는데, 이는 최근에 아시아 지역 출신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각종 옥션에서 이들 신진작가들이 앞 다투어 주가를 올림으로써 그 탄력을 받고 있는 듯 보인다. 물론 경매제도는 철저히 경제논리에 의해 작동되는 만큼 그것이 화랑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미술시장을 훼손시키거나, 경제적인 논리가 작가들의 창조성에 제동을 걸 수도 있다는 부정적인 견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부정적인 측면과 함께 긍정적인 측면도 있으며, 그걸 따지기 이전에 경제적인 논리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따라서 작품성과 상업성이 서로 반(反)한다는 식의 등식은 이제 더 이상 설득력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나아가 시장논리를 거부하는 실천논리마저도 오히려 그 때문에 소위 잘 팔리는 아이템으로 새로이 등재되고 있는 실정이다. 여하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화랑의 질적 수준을 담보해주던 각종 미디어 작업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회화들이 귀환하고 있다.
회화, 네오팝과 뉴에이지 페인팅
2006년 회화에서의 특징으론 우선 극사실주의 혹은 사실적 형상미술의 범주에 들 만한 경향성을 띤 작품들이 많다는 점이다. 1980년대 하이포리얼리즘 작가로 활동한 바 있는 고영훈(가나아트센터. 4.21-5.14), 풀사이즈로 화면을 가득 채운 사람의 뒷모습을 통해 현대인의 소외를 표현한 강석호(금호미술관. 5.11-5.21), 캄캄한 어둠으로부터 흐릿하게 그 형태를 드러내는 인체로써 내면의 무의식적 욕망과 억압을 형상화한 송영규(문화일보갤러리. 6.14-28), 그리고 회화에 알레고리를 재도입한 박민준(노암갤러리. 10.27-11.5) 등의 전시가 여기에 해당된다.
그룹전으로는 <사진과 회화 사이>(선 컨템포러리. 1.18-2.11)가 실제에 대한 닮은 꼴 즉 재현의 논리를 공유한다는 점에 착안한 전시로서, 사진과 회화의 관계와 그 경계를 조명한다. 그리고 <사진 같은 회화, 회화 같은 사진>(갤러리 잔다리. 4.20-5.31) 전에서는 사진에 나타난 회화성과, 극사실적 재현에 충실한 회화에서의 사진적 요소를 병치시켜 그 모호한 경계를 드러내 보여준다. 이외에도 서울시립미술관의 <그리다>(5.24-7.16) 전이나 사비나미술관의 <여섯 개 방의 진실>(6.21-8.30) 등의 전시들이 극사실주의 회화 경향을 주제화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안창홍(사비나미술관. 4.19-6.7)과 배준성(헤이리 아트벨리 터치아트. 10.14-12.3) 그리고 권여현(북촌미술관. 5.10-6.4) 등의 작가들의 작품에서는 아예 사진과 페인팅이 혼용되고 있는데, 이는 아마도 사진 같은 회화의 극사실주의 경향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한 경우일 것이다. 이들 중 안창홍은 우연히 습득한 오래된 흑백 인물사진을 확대 인화한 연후에 그 위에다 가필하는 방법으로써 삶과 죽음의 문제를 주제화한다. 배준성은 비닐에 그림을 그려 이를 사진에다 덧대는 방법으로써 일종의 이중 이미지를 시도한다. 그리고 권여현은 여러 이질적인 이미지가 합성된 사진 콜라주에다가 채색과 드로잉을 부가함으로써 일종의 재맥락화를 시도한다.
특히 배준성과 권여현의 작품으로부터는 네오팝의 한 경향으로서의 차용된 이미지에 대한 공감이 읽혀진다. 이러한 공감은 그림 속에다 명화를 차용한 변선영(갤러리 아트파크. 5.3-21)과 화가의 아틀리에를 소재로 한 남경민(이화익갤러리. 11.22-12.5) 그리고 조선후기 진경산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정주영(갤러리 175. 12.20-2007.1.28) 등의 전시에서도 확인된다. 특히 정주영의 그림은 회화에 있어서의 전통과 현대, 차용과 재현, 부분과 전체와의 관계와 같은 여러 다중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룹전으로는 갤러리 현대의 <트랜드스포팅>(갤러리 현대. 7.13-8.2)이나 금호미술관의 <후아유>(금호미술관. 7.21-8.27), 그리고 선컨템포러리의 <팝 파티>(8.11-26) 등의 전시들이 네오팝의 경향성을 주제화하고 있다. 이들 중 특히 <후아유>는 한국의 젊은 팝아트 작가들이 자신의 또 다른 자아로 내세운 각종 캐릭터를 대상으로 하여 소위 아티스트 캐릭터의 정체성과 특정성을 모색한 전시란 점에서 흥미롭다.
이처럼 마치 사진과도 흡사한 극사실주의 회화와 차용된 이미지에 대한 공감, 그리고 네오팝의 경향성 이외에도 특정의 주제로 범주화하기 어려운 여타의 형상미술의 경향성을 일컬어 소위 뉴에이지 페인팅이란 말로써 아우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된 전시들을 일별해보면 다음과 같다. 일종의 자유연상기법에 그 맥이 닿아 있는 정수진(아라리오 서울. 7.5-8.6)과 정규리(금호미술관. 10.26-11.5), 극사실로 재현해낸 네거티브 이미지를 통해 현대인의 이면을 투사한 박주욱(갤러리 도스. 8.2-15), 도시 외곽 변두리의 잊혀진 공간을 소재로 하여 현대인의 소외감을 표상한 노충현(대안공간 풀. 5.3-31), 최소 단위의 이미지를 모나드로 하여 이를 자유자재로 부풀려나가는 방법으로써 그 자체 결정적이기보다는 현재진행형의 미완의 형태를 가시화하고 있는 안두진(브레인 팩토리. 8.17-9.3), 역사의 흔적과 현재에 속한 자신의 개인적인 서사를 중첩시킨 윤정선(금호미술관. 5.25-6.4, 두아트갤러리. 11.8-26), 얼굴에 나타난 다양한 표정을 일종의 인종적 담론에 연결시킨 변웅필(갤러리 잔다리. 11.23-12.27), 얼굴 표정을 통해 내향적이고 내면적인 성찰을 이끌어낸 김명숙(금호미술관. 10.12-22), 문화적 혼성을 주제화한 써니킴(일민미술관. 1.20-2.19), 성상을 왜곡하고 비틀어 보여줌으로써 종교로 대변되는 절대 권력을 의문시한 김은진(일민미술관. 1.20-2.19), 사물을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인 양 가정해 본 이준구(송은갤러리. 3.31-4.20) 등의 전시들이 주목된다.
2006년 회화에서의 특징은 이처럼 그 형식이나 주제에 있어서 현저하게 다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정의 형식이나 주제에 구속받지 않는 대신에 보다 느슨해진 발상과 유기적인 표현이 두드러져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정통적인 회화와는 구별되는 드로잉 혹은 드로잉적인 회화가 보편화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 경향의 주요 작가로는 김지원(가갤러리. 4.7-28), 김을(갤러리 쌈지. 5.10-29), 설원기(이화익갤러리. 9.7-20), 차우희(이화익갤러리. 10.20-11.2), 수면에 일렁이는 파문을 소재로 한 정적이고 관조적인 그림의 장영숙(가람화랑. 9.20-30), 붓 대신에 소형 그라인드를 사용해서 속도감을 극대화한 박영근(갤러리상. 10.21-11.3), 단 몇 번의 붓질만으로 형상을 드러내는 송현숙(학고재. 10.27-11.9), 노석미(갤러리 쌈지. 3.1-20), 자유연상기법에 의한 벽면 드로잉의 이호진(브레인팩토리. 3.21-4.8)과 임자혁(금호미술관. 4.27-5.7) 그리고 김혜나(인사미술공간. 8.18-9.17), 벽면에 실리콘으로 드로잉 한 황혜선(포스코미술관. 5.11-6.1), 몬스터를 소재로 한 이승애(두아트갤러리. 3.22-4.9), 원동화(브레인팩토리. 9.7-24)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그룹전으로는 갤러리 정미소의 <이민가지 마세요 - 동숭9경>(8.11-27), 스페이스 씨의 <회화의 경계를 넘어서>(2.23-3.25), 갤러리 도스와 충무아트홀의 <드로잉-공간>(8.16-29, 9.7-20), 아르코미술관의 <드로잉에너지>(11.3-12.14), 그리고 소마미술관의 <잘 긋기>(11.16-2007.1.21) 등의 전시들이 드로잉을 주제로 한 전시들이다. 특히 소마미술관은 최근에 관내에다 ‘소마 드로잉 센터’를 개관함으로써 드로잉 전문 미술관을 표방하기도 했다. 이렇듯 드로잉이 회화를 위한 부수적인 과정으로 여겨졌던 지금까지의 인식을 넘어 점차로 그 자체 자족적인 가치를 획득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충무아트홀의 <재료미학>(3.22-4.20)과 <스티치>(6.15-7.23) 등의 전시에서는 최근 들어 다변화되고 있는 재료를 그 주제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재료미학> 전시에는 각종 곡류와 자개, 지우개가루, 접착메모지, 구슬 등의 다양한 조형재료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실과 바늘을 재료로 해서 이미지를 만드는 경향을 대상으로 한 <스티치> 전시는 종이와 캔버스, 트레싱지, 흙, 비닐 등 현대미술과 관련하여 다변화된 재료의 현실이 느껴진다. 이와 관련된 작가로는 특히 이승오(갤러리 미. 2.22-3.14, 갤러리 진선. 9.20-10.22)가 주목되는데, 그는 책의 단면을 절단한 연후에 이를 집적하는 방법으로써 일종의 풍경화를 재구성해낸다.
한편, 2006년 추상미술은 대략 앵포르멜에 연계된 추상표현주의 경향과 함께, 기하학 혹은 후기 미니멀리즘 경향의 회화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추상표현주의 회화의 경향과 관련해서는 정점식(대전시립미술관. 10.20-11.19), 곽훈(표 갤러리. 2.17-3.9), 제여란(토탈미술관. 5.26-6.18), 그리고 박영남(가나아트센터. 10.20-11.12) 등의 전시가 주목된다. 특히 박영남은 붓 대신 손을 사용해 그리는 소위 핑거페인팅을 통해 몸의 행위가 직접적으로 전달되게끔 유도한다.
그리고 기하학 혹은 후기 미니멀리즘으로 범주화할 수 있는 전시로는, 그리드를 기본형으로 하여 이를 다양한 형태로 변주해낸 김재관(박영덕화랑. 11.23-12.2)과 홍승혜(갤러리 신라. 2.24-3.20), 회화의 지층을 주제로 하여 회화의 표면과 이면, 그 경계와 사이에 대한 인식을 반영하고 있는 이인현(가인갤러리. 9.14-10.15), 숫자와 띠 그림을 병치시켜 동시대적인 언어와 소통의 문제를 주제화한 양주혜(갤러리 인. 9.6-20), 한국적인 색면추상을 지향하는 최선호(표갤러리. 10.27-11.17), 색면을 공간설치로까지 확장하는 지니서(영은미술관. 4.8-5.21), 캔버스에다 구슬을 부착하거나 뜨개질하는 방법을 통해 일종의 텍스트를 재구성해낸 고산금(갤러리 스케이프. 5.11-31, 갤러리 쌈지. 5.31-6.12), 국대호(금호미술관. 3.2-12), 이경(세오 갤러리. 7.6-20), 톰 리(갤러리 마노. 8.16-9.10) 등의 전시를 들 수 있다.
이외에도 1960년대 한국현대미술의 태동기에 그 역동적인 현장을 함께한 한편 기하학적 추상회화의 계보를 잇고 있는 이태현(인사아트센터. 5.10-16, 신미술관. 6.8-24)과, 쌓기와 긁어내기라는 방법으로써 1970, 80년대 한국 모더니즘 추상회화를 대변하는 김태호(노화랑. 10.11-11.11) 등의 전시가 주목된다. 그리고 김용익(갤러리 175. 4.12-5.7)은 모더니즘 서사에 기생하는 동시에 이를 비판하는데, 이는 모더니즘 추상미술에 대한 독특한 해석으로 사료된다.
그리고 2006년 판화와 관련해서는 특히 국립현대미술관과 가나아트센터에서 연이어 열린 <오윤 작고 20주기 회고전>(9.15-11.12, 12.15-2007.1.7), 공평아트센터의 <목인천강지곡>(3.8-14), 헤이리 아트벨리의 <국제판화네트워크>(7.1-23), 서울시립미술관의 <서울공간판화비엔날레>(9.8-10.8), 예술의 전당 미술관의 <서울국제판화사진아트페어>(9.27-10.1), 선화랑의 <프린트스펙트럼(12.27-2007.1.10) 등의 전시들이 주목된다.
이 가운데 <목인천강지곡>은 한국현대목판화의 주요 변천사를 정리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현대목판화의 조형적 가능성을 재고하게 한 전시란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그리고 한국현대판화가협회가 주최한 <국제판화네트워크>와 <프린트스펙트럼>이나, 판화미술진흥회가 주최한 <서울국제판화사진아트페어> 전시는 소위 정통판화를 비롯해 디지털프린트, 멀티플아트 그리고 사진을 아우름으로써 현대판화의 확장된 영역을 느끼게 한 전시였다. 또한 공간사와 서울시립미술관이 공동 주최한 <서울공간판화비엔날레>에서는 매입상의 전략적인 증가를 통해서 판화 보급의 적극성을 보였다는 점이 고무적인 일로 평가된다.
이와 함께 인물을 거꾸로 그려 전후 이념대립과 사회적 갈등을 새로운 형상언어로 표출한 게오르그 바젤리츠(전북도립미술관. 3.24-4.30), 전후 독일의 냉전체제 하에서 현실 참여적 이미지를 그려낸 캐테 콜비츠(갤러리 고도. 5.10-6.6), 팜므파탈로 나타난 세기말 남성들의 여성관을 반영하고 있는 롭스와 뭉크(덕수궁미술관. 8.11-10.22), 그리고 팝아트의 대표적인 작가 앤디 워홀(서울대학교미술관 모아. 12.2-2007.2.10)을 다룬 판화 전시들이 주목된다.
이외에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미술100년> 2부 전시(6.2-9.10)가 주목된다. 예년의 1부 전시가 한국근대미술을 다루었다면, 이번 2부에서는 1950년대 중반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한국현대미술 반세기를 되짚어본 전시로서, 국립현대미술관의 위상에 가장 걸맞은 전시로 평가된다.
한국화. 형식파괴 이후를 겨냥하다
최근 수년 내에 형식이나 서사 모든 면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를 보이고 있는 장르는 단연 한국화일 것이다. 실상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화는 침체를 면치 못했으며, 도대체 변화될 조짐이 보이질 않았었다. 그러던 것이 언젠가부터 젊은 신진작가들을 중심으로 해서 그 재료적 한계를 탈피한다든지, 개인적인 서사나 일상성과 같은 동시대적인 담론을 끌어들이는데 주저함이 없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지만, 일단은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인다. 장르적 특수성에 의해 견인되던 모더니즘 서사가 회의에 부쳐진 현재, 이러한 변화 자체는 향후 한국화단의 다변화와 함께 그 체질을 더 강화시켜줄 것으로 사료된다.
2006년 한국화단과 관련해서는 조선말기 회화를 집중 조명한 <조선말기회화전>(삼성미술관 리움. 10.19-2007.1.28), 청전 이상범과 함께 한국화의 양대산맥으로 평가되는 변관식의 30주기 회고전 형식으로 열린 <소정, 길에서 무릉도원을 열다>(덕수궁미술관. 2.17-5.7), 화려한 색채의 이면에 인생의 근원적인 고독과 적막감을 그려낸 <천경자>(갤러리 현대. 3.8-4.2) 등의 전시들이 주목된다.
이외에도 인도의 영적 교사인 구루들을 소재로 하여 인간 내면의 초상을 그려낸 이상원(갤러리 상. 4.19-5.21), 에로티시즘과 동물의 육질이 느껴지는 꽃잎의 이미지를 소재로 한 최송대(인사아트센터. 5.10-16), 일종의 오브제로서 도입된 마른 연잎과 종이의 물성을 강조한 송수련(갤러리 베아르떼. 10.11-31), 사이를 주제로 하여 아득하고 내면적인 깊이감을 느끼게 한 김보희(학고재. 5.12-30), 일종의 유목주의를 주제화한 허진(월전미술관. 6.7-20, 갤러리 우덕. 10.24-11.3), 마치 사사로운 일기를 엿보는 듯한 일상성 담론에 대한 공감이 느껴지는 신하순(월전미술관. 3.15-28)과 김호석(동산방화랑. 3.15-28) 등의 작가들이 형식과 서사 양면에서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바처럼 한국화에서의 변화는 원로나 중진작가보다는 신진작가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정용국(표 갤러리. 3.21-4.5), 홍주희(갤러리아트사이드. 5.17-23), 이용석(갤러리 꽃. 5.24-6.3, 관훈갤러리. 12.2-12), 박병춘(금호미술관. 10.26-11.5), 김보민(두아트갤러리. 12.6-24), 임택(인사미술공간. 1.11-27, 스페이스 바바. 10.13-11.8), 장희정(갤러리도올. 5.3-21) 같은 작가들에게서 산수 또는 화조와 같은 전통적인 화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들 중 ‘야생’을 주제로 한 정용국의 그림에선 똑같은 농도의 엷은 묵에 기인한 평면적인 화면 내부로부터 일종의 내적울림이 느껴진다. 그리고 ‘흐르는 풍경’을 주제로 한 박병춘의 그림은 소위 ‘몽준’으로 명명된 특유의 준법을 통해 현대 산수 풍경화의 한 가능성을 예시해주고 있다. 김보민의 그림은 전통적인 산수화풍의 배경화면에다 라인 테이프를 부착하는 방법으로 현대적인 도심의 이미지를 중첩시킴으로써 전통과 현대와의 접목 가능성을 시사해주는 한편, 이질성과 언밸런스가 독특한 정취를 자아낸다. 임택은 이러한 산수화에 대한 재해석을 입체로까지 확장하고 있다. 즉 ‘옮겨진 산수’를 주제로 한 그의 작업은 설치와 디지털 이미지가 어우러져 있으며, 최근에는 사진과 디지털 매체의 특징을 이용해 관객의 참여마저 유도해내고 있다. 그런가하면 장희정은 다채로운 꽃문양이 프린트된 기성의 천 조각을 재봉으로 이어붙인 다음, 그 표면에다가 그림을 덧그린 새로운 풍의 화조도를 제안한다.
이와 함께 우종택(모란갤러리. 2.15-21), 임태규(갤러리가이아. 3.1-7, 금호미술관. 9.21-10.1), 이진혁(학고재. 9.6-12), 고영미(갤러리꽃. 10.2-17), 양대원(사비나미술관. 10.18-11.26) 등의 전시에서는 현실비판 내지는 풍자가 느껴진다. 우종택은 줄서기 연작을 통해 현대인의 비굴하고 비열한 삶을 풍자하고 있으며, 임태규는 일종의 경계인을 캐릭터로 내세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방황하는 현대인의 심리를 약간은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풍자한다. 그리고 이진혁은 교통 체증 현상에다 빗대어서 일종의 심리적 체증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삶의 풍속도의 한 단면을 엿보게 해준다. 또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란 물음을 주제로 한 고영미의 그림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살벌한 풍경 속에 내던져진 발가벗은 여인을 보여준다. 아마도 자기 외부로부터의 폭력에 대해 철저하게 무기력하기만 한 현대인의 초상을 대변한 것 같다. 그리고 양대원이 제시한 ‘푸른 섬’은 일종의 중의적인 의미로서 읽힌다. 즉 푸른 섬은 유토피아를 암시하면서, 이와 동시에 그 이상향을 결여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부정의식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대중문화의 차용과 문화적 혼성에 맞닿아 있는 손동현(아트스페이스 휴. 1.4-18), 묵으로 그린 이미지에다 자잘한 유리구슬로 피막을 입혀 일종의 기념비적인 아우라가 느껴지게 유도한 정진룡(관훈갤러리. 7.1-10), 가족을 소재로 하여 인간관계의 내면을 엿보게 한 임만혁(박여숙 화랑. 9.12-30), 목판에 그림을 그려 마치 시간의 저편으로부터 현재로 건너온 인물을 보는 듯 아득하고 아련한 향수를 자아내는 김덕용(이화익갤러리. 11.8-20), 캐릭터 동구리를 다양한 유형의 서사적 환경 속에 대입시켜 변주해낸 권기수(갤러리 아트파크. 11.8-12.3), 그리고 정형화된 언어로는 환원할 수 없는 공허함이나 기묘함이 느껴지는 인물을 통해 일종의 심리적이고 내면적인 초상의 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김정욱(갤러리 스케이프. 11.24-12.12) 등의 전시들이 주목된다.
더불어 그룹전으로는 <차도살인지계>(카이스갤러리. 8.23-9.30)와 <온고이지신>(대전시립미술관. 11.15-2007.2.4) 등의 전시들이 전통을 참조하여 이를 현대적인 감수성으로 재해석해낸 미술 경향을 다루고 있다.
한편, 2006년도에도 예외 없이 외국작가들의 국내전시가 러시를 이뤘으며, 특히 중국작가들의 전시가 눈에 띄게 늘어난 점이 확인된다. 최근에는 그룹전의 형태를 빌려 그 주요 경향을 국내에 소개하던 소극적인 단계를 지나, 주요 개별 작가들을 개인전의 형태로 유치하는 식의 보다 적극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국내 주요 화랑들 역시 상당수가 이미 중국 현지에 화랑을 개설해 놓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중국현대미술이 급부상하고 있는 현실은 세계적인 미술경매는 물론이고, 특히 아시아 지역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주요 경매에서 중국 출신 작가들이 상한가를 호가하는 현상과도 맞물려 있다. 그 이면에는 범아시아 권역의 지역적 특수성을 대상으로 한 소위 아시아성 담론을 선취하려는 주도권 다툼과 함께, 신제국주의와 패권주의를 견인하는 경제논리가 뒷받침되고 있다. 이런 사실들은 우리가 이제 그 명과 암을 가려서 현명하게 대처해야 할 시점에 와 있음을 말해준다.
이상에서처럼 2006년도 회화와 관련한 주요 특징으로는 내용적으론 미시서사와 일상성 담론에 경도되는 한편, 형식적으론 마치 사진과도 같은 극사실주의 회화와 네오팝 혹은 뉴에이지 페인팅으로 무장한 신진작가들의 급부상을 들 수 있다. 이는 최근 수년 내에 이들 신진작가들이 각종 경매에서 상한가를 호가하는 현실과, 그리고 중국현대미술의 약진과도 맞물려 있다. 그리고 다른 여타 장르에 비해 한국화의 변화가 두드러져 보이며, 또한 최근에 드로잉 전문 아트센터가 정식으로 개관한 것에서도 엿볼 수 있듯 드로잉이 더 이상 회화의 부수적인 과정에 머물지 않고 그 자체 자족적인 한 영역으로서 자리매김 될 조짐을 보인다. 그런가하면 미술의 재정의를 요구하거나 혹은 보다 급진적으론 아예 미술의 폐기마저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있는데, 이는 한국현대미술의 다변화된 현실과 함께 그 토양이 더 견실해졌음을 반증해주고 있는 듯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