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 정체성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앎에는 권력 관계가 스며있다는 것이 현대철학의 유력한 가설이다. 여성 역시 문명을 지탱하기 위한 여타의 차별적 존재들처럼, 상대편의 이해 관계에 의해 규정되어 왔다. 여성/남성은 투명하고 객관적인 실체가 아니라, 역사적,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고, 그러므로 재구성되거나 해체될 수 있다. 한마디로 영원하고 보편적인 여성은 없다. 여성성이란 범주는 차이를 차별로 전환시키는 사회적 분업의 결과물로, 근대의 독단적 이성에 의해 결정적으로 타자화 된 대상 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약자의 착취를 위한 분리와 지배의 산물인 것이다. 그러나 현재에도 지속되는 권력의 불균형 속에서 여성성이란 범주를 구축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중요하다. 그래서 아직도 ‘여성 관련’ 전시들이 열리는 것 아닌가. 이 전시는 소장품인 마리 로랑생의 작품을 필두로, 동시대 작가들이 생산한 다채로운 여성의 이미지를 ‘-이야기’라고 붙인 전시 부제를 통해 읽고자 한다. 마리 로랑생은 파스텔 톤의 순수소녀 이미지로 알려진 근대 화가이지만, 남성적 환상 속의 순진무구한 소녀들이 아니라 여성들 간의 자매애에 충실한 작품세계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억만장자 상속녀로 매일 매스컴의 가십거리를 제공하는 패리스 힐튼도 그녀의 천방지축 행동거지 보다는, 스스로를 논란화한 ‘21세기적인 팝 아티스트’로 적극 자리매김 된다. 남성적 응시 속에 고착된 광고 속 여성들의 시각 이데올로기가 분석됨과 동시에, 분장에 가까운 기괴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카리스마가 흘러넘치는 유혹적 여성성이 있다. 한편에서는 보다 잔잔하게 여성성이 드러난다. 일상의 반복 속에서 고갈되는 익명적 여성이 모니터 화면 속에서 그려지는가 하면, 추억과 상상으로 대체된 부재의 자리, 그리고 밀폐되고 따뜻한 공간 속에서 모성의 이미지가 출몰하며, 특정 인물과 연관된 사물이 병치됨으로서 그녀들만의 세계가 암시되기도 한다. 이 전시의 많은 작품에서 나타나는 모호하고 유동적인 이미지는 엄연히 존재하는 경계를 관념적으로나 가로지를 뿐인 거짓된 화해가 아니라, 서로 다른 것들의 공존을 위한 담론적인 공간의 설정과 관련된다.
-출처:월간 퍼블릭 아트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