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낙범 전 (2007. 4.3 - 5.11 카이스 갤러리)

자연적 대상에서 추출한 ‘오각형’(전시부제)이라는 모티브는 구상 및 추상, 구성적인 차원으로 변주된다. 전시장 입구 오른편 벽면에 붙은 작품 ‘아침의 영광’은 비어있는 중심부가 마치 태양처럼 눈부신 한 송이 꽃의 형상이다. 빛을 머금은 듯한 색채 감각은 조밀한 다각형으로 이루어진 추상 작품 ‘견고한 흐름’에서도 감지된다. 그것은 다섯 가지 색상의 작은 기하학적 색 면이 맞물려 소용돌이치는 듯한 운동감을 발생시킨다. 다각형들 사이에 하얀 선이 들어간 작품이 표면을 흐르는 움직임을 만든다면, 간격이 없는 색색의 다각형은 명도와 색상에 따라 수직적(깊이) 운동을 만든다. 은회색 선의 다각형 그물망으로 뒤덮인 한쪽 벽면은 화려한 패션 매장의 벽화같은 장식적 효과가 두드러진다. 작품 ‘셀 수 있는 셀 수 없는’ 역시 몇 가지로 한정된 구성 요소들이 어우러져 음악적인 공명을 자아낸다. 색색의 구슬들이 미묘한 계조를 이루면서 화면에 다양한 중심을 형성하면서 배열되어 있다. 공간에 높은 밀도로 분포된 입자들이 마치 예정된 조화의 세계처럼 서로 부딪히지 않으면서 각자의 궤도를 돌고 있다.





둥근 포도알들이나 단색으로 칠해진 두상들은 구상적 형태를 알아볼 수 있지만, 여러 색상의 계조로 이루어진 동일한 요소들의 집합이라는 점은 비슷하다. 뜬금없이 붙어있는 금발은 일련의 단위가 모여 흐름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다른 작품과 연관성이 있다. 추상적인 색 띠로 이루어진 작품 ‘불꽃’은 타원형 네 개가 연결되어 있고 한쪽이 개방되어 있는 작은 방으로, 다섯 꽃잎 중 하나를 떼어내고 내부로 들어가는 느낌을 주는 설치물이다. 수의 신비를 다루는 상징주의자들은 5를 살아있는 자연의 대표적인 수로 꼽는다. 꽃잎은 다섯 장인 경우가 많다. 고낙범의 작품에서 다양하게 변주되는 오각형의 출발점인 나팔꽃은 그자체가 하나의 소우주로서의 자족성을 가진다. 그것은 인간과 우주라는 유비로 확장된다. 인간은 다섯 개의 손가락과 오감을 가지며, 머리와 사지를 연결시켜 그려진 원 안의 오각성형의 꼭지 점과 일치되고, 이러한 소우주는 다른 천체들의 상징과도 연관된다. 이런 맥락에서 5는 ‘충만함과 완성, 조화와 내적인 균형을’(오토 베츠) 상징한다.

그러나 고낙범의 작품이 고풍스런 상징주의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정중동이 돋보이는 그의 그림은 현대에 부활하고 있는 라이프니츠의 단자(monad)적 세계관--이하 모나드에 대한 설명은 동녘 출판사의 [철학사전]을 참조함--을 연상시킨다. 모나드는 개별적인 실체를 중시하면서도 우주 전체를 포함한다. 하나의 단자가 가지는 행적은 세계의 사건들의 총체와 연결된다. 파도소리를 들을 때 무의식적으로 각각의 물방울 소리를 듣듯이, 지각은 무의식적인 작은 지각들의 총합이다. 고낙범은 하나의 나팔꽃에서 우주 전체를 응축하고 표현한다. 세계는 하나의 조화로운 총체이며, 그 아름다움은 부분들의 일치 속에 들어있다. 단자적 세계관에서 모든 실재의 근본을 형성하는 것은 통일성과 다양성의 결합이다. 그의 작품에서 활동적인 힘으로 채워진 색과 형태적 요소들은 저마다의 자족성을 가지면서도 서로 어울리고 공존하는 세계의 특성을 보여준다. 일련의 단위로 나누어진 색과 형태들은 통일성과 다양성, 즉 최대의 질서와 최대의 다양성이라는 이중적 요구를 만족시키고자 한다.

출처-월간 퍼블릭 아트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