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일이 목포로 내려간 지 꽤 긴 시간이 흘렀다. 광주에서 서울로 미국으로 그리고는 목포로 내려간 그의 여정과 함께 그 많은 그림들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이 공간적 이동과 그림과의 관계는 비교적 밀접한 편이다. 그림의 소재는 자신의 주변 사람들, 그러니까 가족과 지인들의 초상이자 그들의 일상적 모습이다. 아울러 그는 자신의 삶의 반경에서 관찰되는 주변풍경 역시 지속적으로 그려왔다. 그러니까 그는 항상 자기 삶에서 보고 느끼는 대상들을 관찰하고 이를 의미 있게 그려내는 것을 작업으로 삼고 있는 작가다. 그래서인지 그는 거의 변함없이, 슬럼프나 회의없이 자신의 세계관, 미술관을 통해 형성된 나름의 기준과 법칙에 준해서 ‘엄청나게’ 그려낸다. 그의 놀라운 작업량과 확신은 나에게는 거의 경이처럼 다가온다. 그가 거느리는 회화의 왕국은 거의 종교적 수준이다.

목포로 내려간 후 그의 작업은 분명 의미 있게 변했다. 자신의 기족들과 목포 사람들, 멋들어진 해송과 목포에 위치한 입암산, 양을산, 유달산 등이 그의 그림의 주된 소재다. 이전 작업의 지속이지만 그것의 본격적인 펼쳐짐, 혹은 완숙한 숙성이 그림 안에 넘실거린다. 자신의 고향과 인접한 곳에 정착한 그는 그 익숙한 풍광과 사람들을 거침없이 담아내고 있다. 빠르게 스치는 시선에 의해 포착된 대상들은 자연의 살이자 사람들의 실존의 체취 같은 것들이다. 그는 그런 내음과 호흡, 기운과 생동감, 진동과 떨림 등을 분방하고 단속적인 붓질로 화면 위에 올려놓았다. 윤곽선이나 경계없이 모든 대상은 몇 겹으로 흔들린다. 춤추는 듯한 이 경쾌하고 유연한 붓질은 인간 내면의 감정과 실존의 이력, 소나무의 뒤척임과 자연의 기운, 모든 생명체의 생의 리듬을 구현한다. 동양화의 기운생동이란 것을 실감나게 체감하게 하는 그림은 온통 꿈틀대고 뒤척이며 흐르고 떨고 있다. 따라서 시선은 결코 고정되지 못한다. 눈과 몸은 분리되지 못하고 하나로 몰려간다. 내 앞에 존재하는 저 소나무나 풍경, 인물은 그림 속에 갇혀있지 않다. 그것은 이동하는 시선과 움직이는 마음이 읽어낸 이 세상 모든 것의 실존적 모습이다. 사실 그에게 인간과 자연의 구분은 의미없다. 그 모두가 강렬한 생명체로 자신에게 다가왔고 그는 그 만남, 체험, 느낌을 표현하고 그 생명체/대상이 간직하고 있는 생명의 법칙 같은 것을 간파하고자 한다. 그것이 그의 그림이다.

그는 인물과 자연의 개체성보다는 어떤 보편성에 치중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자신의 주어진 삶의 반경 속에서 접하는 주변 사람들과 자연(소나무)을 반복해서 그리고 그 안에서 모종의 시대의 보편성을 읽거나 그 각각의 대상이 지닌 시간과 기억의 지층을 독해하려한다. 그러니까 인물과 자연이 저마다 끌어안고 있는 실존적 상황과 역사의 흔적, 기억의 겹, 시간의 지층 같은 것들을 진실되고 밀도있게 그려내고자 한다. 그것은 그림의 본질에 대한 모색이자 ‘회화성에 대한 집요한 탐구’인 동시에 삶의 진실이나 생명에 대한 자신의 이념을 은연중 반영한다. 그러니까 이 그림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셈이다. 보이는 것 너머, 그 내부에 감추고 있는 비밀스러운 그림이다. 그러나 결코 난해하거나 현학적이지 않다.

이강일의 그림에서 소재나 기법은 그의 그림에 대한 사상을 앞서지는 않는다. 그는 오래전 그 나름대로 자연과 생의 구조를 헤아리고 음미해 왔고 이를 그림으로 표현해왔다. 그 같은 내용은 주로 프레스코벽화기법으로 그려졌다. 과거의 석굴벽화가 보여주는 힘과 생동감을 동경해 프레스코습성기법 등을 작품에 활용해왔던 그는 현재 페인트까지 동원된 재료에서부터 내구성 있는 건축 재료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벽화기법은 대작을 제작하는데 적절하고 그의 취향과 맞아 떨어지기에 선호되고 있다. 또한 유화물감의 번질거림과 아크릴과 모델링페스트에서 오는 탁탁함도 끌어들이고 이런 저런 다양한 기법을 프레스코와 함께 안고 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그의 그림은 수많은 재료실습의 결과들인 셈이다.

그는 자신의 확고한 미학을 소박하고 평온하게, 일기 쓰듯이 그려내고 있다. 현재의 출발점 역시 여전히 자신과 가족, 그리고 목포인근의 풍광과 소나무다. 이를 통해 그는 저 깊숙한 영혼과 하나가 되는 모종의 경지를 꿈꾼다. 그것이 그의 그림이 지닌 비밀이다.
그의 그림의 백미는 단연 소나무다. 나는 그 소나무그림이 가장 좋다. 현재 그가 즐겨 그리는 소나무는 남도 해변가에 위치한 덩어리 굵은 해송들이다. 이전에도 수많은 소나무를 그렸지만 해송을 만나게 된 것은 목포로 옮겨가면서 얻어진 행운이다. 숫솔이라 불리는 이 해송은 더없이 힘이 있고 늠름한 자태를 마냥 뽐낸다. 남도의 황토와 해풍이 어우러진 해송의 아름다운 자태는 그에게 더할 나위없는 즐거움을 제공해줌과 동시에 삶의 자연스러움에 대한 교훈 또한 들려주었다고 한다. 해서 그는 그 소리를 그림으로 옮겼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은 청각을 자극한다. 망막 앞에서 흔들리고 고막에 다가와 떨어대는 자연이 소리가 들릴듯하다. 무성한 소리가 그득하고 깊고 청량한 내음 또한 가득하다.

현재 그가 살고 있고 작업하고 있는 목포에는 자신의 부모형제와 처자식, 자신이 존재하고 있고 그곳에 생활의 터전이 있다. 아울러 가르치고 배워야 할 것들이 있고 그려야 할 것이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그 모든 것을 진솔하게 일기처럼 그려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에게 그림은 삶과 분리되지 않는다. 지금도 그는 치열하게 자신의 일기를 성실히 쓰고 있다. 지금 그 흔적들이 우리 앞에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