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근택은 자신의 몸, 피부로 세상을 느끼고 체득하고 이를 그려낸다. 그에게 세계는 그 피부 위에서 감지되고 선회한다. 그러니까 피부는 경계다. 피부야말로 모든 것을 기억하고 느끼고 반응하는 지점이다. 어떻게 하면 그 피부 위에 각인된 것을 온전히 그림으로 그려낼 수 있을까가 그의 고민일 것이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냄새와 시간과 속도, 공기를 그린다. 세계/풍경이란 그 모든 것이 비릿하게 섞여 지천을 떠도는 그 무엇이다. 화가의 몸은 그 사이를 따라간다. 풍경은 지금의 자기와 눈앞의 세계가 만날 때 태어난다. 풍경이란 대지의 투사상태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계기로 하여 ‘인간의 내부에서 발생하는 이미지현상’이다. 동양에서 ‘풍경’이란 바람과 세계의 시각상으로 된 언어를 의미한다. 바람은 타자의 몸을 빌려 자기를 드러낸다. 풍경이 지닌 그런 미세한 기운, 호흡, 생명, 모든 만물의 감촉, 섬세한 주름까지도 잡아내고 이를 형상화하려는 지난한 시도가 바로 산수화가 아닐까? 그러니까 풍경체험은 외계사물의 이미지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의 표정을 읽는 것이다. 유근택의 시선과 그림은 바로 그 지점에서 서식한다. 그는 넓으면서도 한정되고 제한되면서도 깊은 소재를 반복해서 그린다. 아파트 거실은 일상적인 풍경이면서도 매순간 다르게 다가오고 변화하는 장소다. 아이의 장난감으로 어지럽혀진 거실은 낮과 밤, 지난 시간과 현재가 공존하는,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이고 초현실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주변 풍경을 오래도록 지켜보고 그때그때 다르게 다가오는, 모종의 분위기와 사건을 내장하고 있는 듯한 그 풍경을 그렸다. 베이컨의 회화, 최진욱과 김형관의 작업실 풍경 혹은 혹은 에릭 휘슬이 포착한 비근한 일상에 잠복된 기이한 낯설음, 마그리트의 초현실적 공간 연출 같은 것들이 떠오르는 풍경이다. 그는 시간의 진행, 속도에 의해
흐르는 장면을 단속적이고 규칙적인 운율을 머금은 붓질로 가득 채워나가고 물감으로 덮어나가면서 포착했다. 그 각각의 터치들은 화면을 평면적으로 인식시키고 시간이 흐름으로 채워나가면서 동시에 보는 이의 시선과 마음을 유동시키고 진동시킨다. 그것은 영상적이다. 소멸에 맞서서 잠시 멈춰선 세계의 찰나적 장면, 모종의 회억回憶을 아련하게 부추키는 치명적이고도 슬픈 풍경이다. 다분히 현상학적이면서도 매우 동물적인 더듬이와 감각에 의해 포착된 그래서 감각적이고 기분이 묘해지는 그림이다. 대상의 윤곽선은 대기 속에서 소멸하고 형태감은 불분명해지고 그저 아련한 분위기나 걷잡을 수 없는 속도감으로 문득 한 ‘장면’이 멈춰있다. 그것은 유한한 인간의 몸이 영원하고 무한한 세계, 시간 앞에서 치르는 모종의 의식을 닮았다. 그것이 화가의 운명이고 그림의 숙명임을 고하는 의식말이다.
출처-월간미술 리뷰
박영택
#2940
유근택-‘풍경의 회억’
박영택
2007. 03. 31.
박영택
서울 출생
인명사전 바로가기 : www.daljin.com/author/688
미술평론가 박영택(b.1963)은 [얼굴이 말하다, 마음산책(2010)], [예술가의 작업실(2012)]을 저술하였고 아시아프 총감독(2010)을 역임하였으며, 경기대학교 예술대학 예술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