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대나무화분을 발견했다. 길가에 위치한 화원들이 내놓은 그 화분 속 대나무는 이 봄 풍경 속에 하나의 경이처럼 파랗게 자라고 있었다. 꽤나 큰 키에 댓잎이 비교적 무성한 하나를 골라 차에 실었다. 아파트 베란다에 화분을 갖다 놓았다. 누렇게 죽은 잎들을 떼어내고 위쪽 대는 쳐주다 보니까 다소 작아졌지만 그렇다 해도 대나무의 기상이랄까, 그 줄기의 맛은 여전했다. 사실 나는 식물을 키워본 적도 없고 즐기는 편도 아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꽤 많은 화분들을 키우셨던 것 같다. 그러나 대개 그것들은 볼품이 없는 선인장 종류나 지극히 평범한 난들에 불과했다. 그런 것들조차 추운 겨울을 한 번씩 치루면 대개 몇 개씩은 버려지고 용케 살아남은 것들만이 자리를 지켰다. 허접의 스티로폼과 원색의 싸구려 플라스틱 화분, 거기에서 자라는 모종과 한 해 살이 풀들과 시든 난들은 누추한 살림살이와 그렇게 동거하고 있었던 것이다. 겨울날 연탄난로 하나로 덥혀 지던 마루의 한 귀퉁이를 가득 채우고 있던 것들은 그래도 운이 좋은 녀석들이었다. 수석과 분재를 향유할 여유가 없던, 희귀한 난들을 소유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정원을 가질 만한 여유도 없던 아버지는 집안이나 집 앞의 공공공간을 잠시 빌려서 자신의 정원으로 만들었다. 그 대리만족의 내음을 풍기던 화분들은 도시 속에서, 가난한 살림살이 속에서 질긴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왜 그토록 식물들을 키우고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어른이 되어 새삼 그 시절을 회상한다. 눈길 한 번 따스하게 주지 못했던 그 풀들은 다 어디갔을까? 그런 내가 대나무 화분 하나를 산 것이다. 그저 대나무가 좋았다. 지방에 갈 때면 우연히 만나는 대나무, 한적한 시골 집 뒤를 가득 채우고 있는 대숲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가슴 벅차다.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이란 영화에 등장하는 대숲은 그래서 잊혀지지 않는다. 나도 그런 대숲을 망연히 보고 싶었다. 오래 전 담양에 위치한 소쇄원을 다녀올 때 주변 대나무 숲의 아름다움도 환영처럼 부풀어 오른다. 순간 한국인들의 삶과 분리될 수 없었던 대나무를 떠올린다. 대나무는 자연스레 울타리 구실을 하며 바람을 막아주고 일상에서 필요한 물건을 용이하게 만드는 재료를 간편하게 공급해줌과 동시에 사람이 살아가야 하는 도리를 분명한 매듭과 기상으로 일러주었던 것이다. 죽어서는 소나무로 짜고 대나무 못을 박아 만든 관속에서 삶을 마감했다. 그래서 새삼 동양인, 한국인들에게 대나무는, 식물이란 것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 본다.

강희안의 <양화소록>에는 이런 구절이 적혀있다. “내가 천지 사이에 가득 찬 만물을 보니 수 없이 많으면서도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오묘하게 모두 제 나름대로 이치가 있습니다. 이치를 궁구하지 않는다면 앎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의 미물이라도 각각 그 이치를 탐구하여 그 근원으로 들어가면 그 지식이 두루 미치지 않음이 없고 마음은 꿰뚫지 못하는 것이 없으니 나의 마음은 자연스럽게 사물과 분리되지 않고 만물의 겉모습에 구애받지 않게 됩니다...은일(隱逸)의 모습을 지닌 국화와 품격 있는 매화, 난혜와 서향 등 십여 종은 각기 운치를 자랑하고, 창포에는 고한(孤寒)의 절개가 있으며, 괴석은 확고부동한 덕을 지녀 군자의 벗이 될 만합니다. 언제나 함께 하며 눈에 담아두고 마음으로 본받을 것이니 어느 것도 소홀히 하여 멀리할 수는 없습니다.”

강희안은 지각도 운동능력도 없는 풀 한 포기 미물이라도 그 풀의 본성을 잘 살피고 방법대로 키운다면 자연스럽게 꽃이 피어난다며 그의 양생법을 위 책에서 적고 있다. 또한 그는 인간이 본받을 만한 품성으로 소나무에서는 장부 같은 지조를, 국화에서는 은일의 모습을, 매화에서는 품격을, 석창포에서는 고한의 절개를, 괴석에서는 확고부동한 덕을 찾았다. 그 꽃과 나무를 본성대로 길러서 언제나 눈에 담아두고 마음으로 본받을 수 있다면 수신과 치국에 있어서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옛사람들이 화훼를 재배한 것은 사람의 심지를 굳게 하고 덕성을 기르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대나무를 늘상 삶의 주변에 두고 바라보고 이해하고자 했던 것도 그런 깊은 뜻이 있어서였다. 마루에 앉아 대나무 화분을 가만 바라보고 있다. 오랜 세월 한국인과 같이 했던 이 식물을 이렇게 다시 보고 있다, 순간 남루하고 볼품없었던 아버지의 화분들이 자꾸 생각난다.